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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눈을 들어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 본문: 마태복음 16장 6~12절
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길을 떠나며 제자들에게 단호한 경고의 말씀을 던지십니다.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유대인들은 매년 유월절과 무교절에 집 안에서 모든 누룩을 철저히 찾아내어 제거했습니다(출애굽기 12장).
유대교에서는 '베디카트 하메츠[Bedikat Chametz]',
즉 누룩 수색 작업이라고 부릅니다)에는 역사적 이유와 영적·상징적 이유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성경적 배경 (출애굽기 12:34, 39):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애굽)에서 탈출할 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너무나 전격적이고 긴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빵 반죽이 발효되어 부풀어 오를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발효되지 않은 반죽 담은 반죽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고 급히 탈출해야 했습니다.
집 안에서 모든 누룩을 제거하고 일주일 동안 누룩 없는 빵(무교병/마차)을 먹는 것은,
조상들을 노예 생활에서 순식간에 구원해 내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과 그날의 긴박했던 구원의 은혜를 대대로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유대 문화와 성경 전체에서 '누룩'은 부패와 오염, 그리고 죄를 상징합니다.
누룩은 아주 작은 양으로도 반죽 전체를 부풀려 본질을 바꿔버립니다.
집 안의 아주 작은 누룩 조각 하나까지 촛불을 켜고 구석구석 찾아내어 태워버리는 행위는, "우리 삶 속에 스며든 은밀한 죄나 타협, 위선을 사소하게 여기지 않고 철저히 찾아내어 제거하겠다"는 영적 결단을 의미합니다.
한 사람의 작은 타협, 위선, 잘못된 교훈이 공동체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갑니다.
한 사람의 위선이나 세속적 가치관은 순식간에 가정, 구역, 교회 공동체 전체로 번집니다
"식빵 한 모서리에 아주 작은 곰팡이 하나가 피었습니다.
'이 부분만 떼어내고 먹으면 괜찮겠지' 생각하지만,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포자는 빵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죄와 세상의 가르침도 이와 같습니다. 마음속에 방치한 작은 타협 하나가 결국 영적 삶 전체를 오염시킵니다.“
누룩이 가진 영향력의 핵심은 "작은 양이라도 일단 스며들면 전체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는 점입니다
"이 정도 작은 거짓말쯤이야",
"남들도 다 이렇게 살아가는데" 하며 허용한 사소한 위선과 세상과의 타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혼 전체를 좀먹고 신앙 공동체 전체로 전염됩니다.
: 본질(진실함)은 없고 겉모습만 신앙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외식'을 만듭니다.
2001년 파산한 미국의 포춘 500대 기업 '엔론'은 미국 7대 기업 중 하나이자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치명적인 누룩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누룩의 침투: 시작은 아주 작은 '분칠'이었습니다. 경영진은 실적을 조금 더 잘 보이기 위해 회계 기준을 약간 비틀어 장부를 조작(분식회계)하기 시작했습니다. [분식회계(가짜 실적)**와 조직적 범죄]
"남들도 다 이 정도는 한다", "기업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다"라는 합리화(사두개인적 세속주의)가 개입했습니다.
작은 회계 편법이라는 누룩은 임직원 전체의 윤리적 무감각으로 번졌고,
결국 600억 달러가 넘는 거대 기업을 순식간에 파산으로 몰고 갔습니다. 만 명이 넘는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연금은 공중분해 되었습니다.
실체적인 제품이나 생산 기반보다 장부상의 숫자를 부풀리고 미래 수익을 미리 당겨 잡는 편법을 썼습니다. 겉은 화려하게 부풀어 올랐지만, 속은 비어 있던 '누룩 든 거품'이었습니다.
"이 정도쯤이야" 하고 내버려 둔 사소한 타협과 장부상의 거짓이라는 누룩이 결국 삶 전체와 공동체를 부풀려 파멸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합니까?
당시 유대 사회는 종교적·정치적으로 극단적인 두 부류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며, 둘은 평소 서로 원수처럼 지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대적하는 일에는 하나가 되어 협공하고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근단적 보수·율법주의):
정체성: 성경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을 목숨처럼 지키는 민중의 종교 지도자들.
영적 병폐: 겉으로는 거룩함과 경건을 자랑했으나, 속으로는 탐욕과 교만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는 '외식(위선)'의 대표 격이었습니다.
사두개파 (현실적 기득권·세속주의):
정체성: 대제사장 가문을 중심으로 로마 권력과 결탁해 기득권을 누리던 정치가·귀족 집단.
영적 병폐: 초자연적인 신앙(부활, 천사, 영적 세계 등)을 모두 부인하고 오직 현실의 안위와 세속적 이권만을 중시하는 '세속적 합리주의'의 대표 격이었습니다.
여기서 누룩은 외식(위선)과 신앙의 본질을 왜곡하는 잘못된 교리 및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세속적인 권력욕, 정치적 야망, 세상과의 타협을 경계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나를 이용하고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에게 기뻐할 수 없는데, 어떻게 친절할 수 있는가?
문제는 "친절해야 한다"는 생각은 강박관념이자 '착한 척'일 수 있으며, 겉으로만 착한 척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착할필요가 없다.
그냥 내안에 성령 하나님의 통제 안에서 행동하면 그삶을 증인으로 나타내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내가 착한다는 것, 의롭다는 것은 여전히 내가 주인의 삶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안에 없는 '착함'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은 기만이자 중독과 같다.
타인에게 선행을 베푼 후 "내 선함에 대해 반드시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통제하려는 의도이다.
내가 착하다는 이미지로 ,의롭다는 이미지로 [하나님을 내종으로 부려쓰는것과 마찬가지 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싫어 하는 바리새인의 의로움을 책망 합니다.
바리새인의 의는 돕는 행위 – 내가 선을 행했다. 나의 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의 선한것에 반드시 보상해 주실 것이다.
생각 하면서 하나님을 통제하려고 한다. 이것이 인간의 교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차라리 간음한 야인, 세리장,,,하나도 가링것없고 , 숨길 것 없는 정직한 사람이 하나님께 나오는 바른 태도 입니다.
여전히 자기 중심적인 교만에서 벗어나 참된 겸손과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다.
나는 착한데 왜? 세상은 힘들지 .
여러분은 안 착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을 지었으매 ...더 교활 합니다.
착한척, 의로운척 하면 살아 갑니다. 누가 착합니까?
그런 사람이 겉과 속이 다른 모습: 겉으로는 "네~ 네~" 응답하며 착한 척하지만, 뒤에서는 타인을 판단하고 험담하는 위선적인 태도.엉뚱한 소리 합니다. 이것 괴물입니다.
본인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타인에게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겉으로만 좋은 말을 남발함.
그래서 교회안에서 '우아하게 싸우기', '기도하며 싸우기', '금식하며 싸우기' 등 신앙을 핑계로 다툼을 이어가는 행동의 문제점.
다른 사람을 향해 "왜 저렇게 사느냐"며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의 처지나 부족함은 보지 못함.
교회 안에서 있으면 참는게 아니라 참아지는 것입니다.
아이가 떼를 쓰듯 계속 불평하도 부모는 천하 태평하게 행동함.
왜요? 아직 어리니까.....
그래서 유능하거나 무능하거나, 돈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만 가짐.
그 사람이 대통령이것, 재벌인 것 불쌍하니까 참는 것입니다.
그 불쌍한 사람을보고 화을 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것 보다 더 존귀한 것 없다.
누가 위대 합니까.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참으려고 부뜰부뜰 떠는것보다 내안에 그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 방법 밖에 없다.
고린도전서 5:6~8: 고린도 교회 내 음행 사건을 지적하며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세상 사람들도 차마 하지 않을 엄청난 충격적인 죄가 있었습니다. 바로 한 교인이 '자신의 의붓어머니(아버지의 아내)와 동거하는 음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교회의 태도였습니다.
성도들이 이 죄를 보고 슬퍼하거나 바르게 잡기는커녕, 오히려 "우리 교회의 자유함"을 자랑하며 그 죄를 그대로 방치하고 용납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왜 '누룩' 이야기를 꺼냈을까요? (작은 죄의 무서운 전염성)
[ 주일 지키지 못해서 –회개 해 보았습니까. 음행, 음란 – 다반사. 뒤에서 수꾼 거림. 도적질하고 –다반사... 우리 마음의 성전을 물질의 욕망의 소굴로 만들겠습니까? ]
바울은 이 모습을 보고 크게 호통을 치며 '누룩(효모)'을 비유로 듭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부풀어 오르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5:6)
아주 작은 양의 누룩을 밀가루 반죽에 넣으면, 눈에 보이지 않게 퍼져나가 반죽 전체를 부풀려 버립니다.
한 사람의 죄와 타협을 "이 정도쯤이야" 하고 내버려 두면,
그 오염된 가치관이 순식간에 교회 전체로 번져 성도들 모두의 도덕성과 영성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구원의 날인 유월절이 되면 집 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 모든 누룩을 찾아 태워 버렸습니다. 바울은 이 전통을 가져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미 예수님의 피로 깨끗해진 '누룩 없는 반죽'이다.
그러니 과거의 죄악된 습관인 **'묵은 누룩(음행, 위선, 악의)'*을 삶에서 완전히 털어내라!“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부풀어 오르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잘라버리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여기서 '묵은 누룩'은 과거의 죄악된 삶의 방식과 음란을, '누룩 없는 떡'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순결한 삶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아주 작은 외식과 세속주의 가르침(교훈)이 들어오면 개인의 영혼은 물론 신앙 공동체 전체가 순식간에 부패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경고하신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가 삼가 경계하고 멀리하라고 명하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은 과연 무엇인지,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세 가지로 나누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영적 무감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누룩이 스며들면 반죽이 소리 없이 부풀어 오르듯,
영적인 죄와 타협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심령을 마비시켜 '영적 무감각'에 빠지게 만듭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던 마음이 점차 무뎌지고,
마침내 하나님의 경고나 은혜의 말씀조차 깨닫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로 전락하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4장 2절 "자기의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에베소서 4장 18~19절"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무뎌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탐욕으로 행하되"
히브리서 3장 13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제자들은 주님이 '누룩'을 말씀하시자
즉시 눈앞의 떡 걱정부터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영적인 실재를 바라보지못하고,
늘 눈에 보이는 물질과 현실의 문제에만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사 삼손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었으나,
들릴라의 유혹과 세속적 욕망이라는 '누룩'에 조금씩 삶을 내어주었습니다.
들릴라의 꾀임에 빠져 머리털이 미키고 힘을 잃었음에도, 삼손은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흔들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사사기 16:20)고 기록합니다.
죄와 세상과의 타협이라는 누룩이 침투하면,
하나님의 영이 떠나시고 영적 파멸에 이르렀음에도 그것을 전혀 감각하지 못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 세상의 염려에 마음을 빼앗기면 주님의 말씀이 영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떡이 없음을 걱정하기 전에,
우리 영혼을 좀먹는 부정적인 가르침과 사상을 먼저 경계하라고 요구하십니다.
2. 바리새인의 누룩: '외식과 위선'을 경계하십시오
바리새인은 종교적 형식과 율법에 매여 겉으로는 거룩함을 자랑했지만,
속에는 탐욕과 교만이 가득했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신앙: 사람들 앞에서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한 회개와 사랑은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영적 교만: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자만심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독선이 바로 바리새인의 누룩입니다.
3. 사두개인의 누룩: '세속주의와 불신앙'을 경계하십시오
사두개인은 부활이나 영적 세계를 믿지 않고, 오직 눈앞의 현실과 세속적 기득권, 정치적 안정을 추구했던 일종의 합리주의자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자연적인 능력과 부활 소망을 내려놓고, 세상의 이성과 물질의 힘만을 의지하는 태도입니다.
신앙을 그저 이 땅에서 잘 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세속주의가 사두개인의 누룩입니다.
누룩의 가장 무서운 본질이 무엇입니까?
아주 작은 양이라도 일단 스며들면 반죽 전체를 완전히 부풀려 본질을 바꾸어 버린다는 점입니다.
"이 정도 작은 타협쯤이야 괜찮겠지", "남들도 다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데" 하며 방심하는 사이에, 위선과 세속주의라는 누룩은 우리의 신앙을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텅 빈 거품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5장 9절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부풀어 오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예수님의 안타까운 책망을 듣고서야 제자들은 마침내 주님이 말씀하신 누룩이 '먹는 떡의 누룩'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역시 오늘 이 시간, 당장 눈앞의 먹고사는 문제와 세상 염려라는 '떡'에 마음을 빼앗기는 영적 무감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매년 촛불을 켜고 집 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 작은 누룩 하나까지 찾아내어 태워버렸던 '베디카트 하메츠'처럼, 오늘 우리도 영적인 눈을 들어 우리 마음과 삶 구석구석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인정만 구하던 바리새인의 '위선',
하나님의 능력보다 세상의 물질과 이성을 더 의지했던
사두개인의 '세속주의'라는 묵은 누룩을 십자가 앞에 모두 털어내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5장 8절의 말씀처럼 묵은 누룩을 잘라버리고, 오직 복음의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날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동행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 안에 은밀히 스며든 바리새인의 위선과 사두개인의 세속주의를 십자가 앞에 모두 털어내고, 오직 복음의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날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