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노리는 마귀를 조심하라
십자가의 용서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 어디겠습니까?
교도소가 아니라 가정과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도데체 일흔번씩 일곱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가족입니다. 또 있다면 같은 교회 교인입니다.
사회 생활하면서 아무리 나쁜 사람을 만나도 이 정도는 아닙니다.
헤어지면 끝이니까요!
저는 목회하면서 교회 안에 악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교회를 무너뜨리고 구원의 문을 막아서서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잘한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힌 일이고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두려운 것은 저 자신이 악마 노릇을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 보다 두려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이 자기중심이라 깨닫지 못할 뿐이지 저도 받은 상처보다 준 상처가 많을 것입니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제 아내와 딸들을 통하여 제 실상을 보았습니다.
목사로 사역하다 보니,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정과 교회는 제가 십자가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결코 좋은 사람들과만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족과 교인들 사이에도 상처를 주고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 그 상처를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마귀가 노리는 것이 우리 마음의 상처이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우리의 눈을 멀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마음의 상처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괴롭지” “힘들지” “너만 불쌍해” “사람들이 나빠” “너는 피해자요” “넌 너무 불쌍해”
마귀는 이렇게 마음의 상처를 키워가며 우리 마음을 자신의 놀이터로 삼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깨어지고 교회가 분열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마음에 심한 상처를 받았어도 마음에 사랑이 식으면 큰 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항변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에 상처가 생기면 즉시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치료하고 진정한 쉼을 누리게 하시는 분입니다. (마 11:28-30)
모든 마음의 상처가 다 쓴뿌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에 쓴뿌리가 자라는 반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냅니다.
마음의 상처가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상처를 치유하는가, 아니면 쓴뿌리를 키우는가가 문제인 것입니다.
받은 상처가 아무리 크더라도 마음 속에 쓴뿌리를 키우지 말고, 십자가의 은혜로 치유받아야 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은혜가 가장 필요한 곳이 가정이고 가장 놀랍게 경험되는 곳이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