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나이스비트가 지적한 뉴 밀레니엄 시대의 마이크로트렌드 중에는 쿠거족도 있다. 쿠거(cougar)란 원래 퓨마와 같은 고양잇과 동물이다. 이 쿠거란 동물은 먹잇감을 찾을 때까지 어두운 밤을 어슬렁거리다가 희생양이 나타나면 날쌔게 달려가 물고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고 한다. 쿠거족이란 이 동물의 특징에서 나온 속어로 밤늦게 파트너를 찾아 헤매는 나이든 여성을 말한다. 이 용어는 알다시피 어린 남자를 찾아 헤매는 늙은 여자를 경멸조로 부르는 말이었으나 요사이는 다소 중립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인상 깊었던 쿠거의 대표로 파스빈더의 74년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Angst Essen Seele Auf'(1974)에 나온 브리기테 미라를 들고 싶다. 에미(브리기테 미라)는 꽤나 늙수그레한 할머니이다. 그것도 멋쟁이거나 인텔리도 아닌 건물 청소부이다. 가슴, 엉덩이 할 것 없이 펑퍼짐한 체형하며, 늘어진 피부, 무어하나 매력적인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즐거워 할 일도 흥분할 일도 없는 외로운 삶은 에미를 더욱 그늘져 보이게 한다. 그런 그녀가 모처럼 바에 들렀다. 그리고 밤늦게 홀로 술을 마시다가 터키인 노동자 알리(엘 헤디 벤 살렘)를 만나게 된다. 알리는 적어도 30세 정도는 연하일 테니 에미는 쿠거족 중에서도 대단한 여왕 쿠거이다.
이 영화는 마이너리티끼리의 사랑을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60세가 넘은 가난하고 못생긴 청소부 할머니와 터키 출신의 이주노동자와의 동거는 주위 사람들에게 다양한 심정적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에서 에미가 알리보다 압도적 우위에 있는 것은 독일인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 독일인이라는 태생적 우위는 알리에게 감히 넘볼 수 없는 신분적 한계이니까. 장애로 가득찬 이 둘의 사랑이 맺어지는 이유는 외로움 때문일 것이다.
제목 때문에 공연히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영화, ‘파리의 실낙원’에서는 에미보다는 매력적이고도 지적인 쿠거를 만날 수 있다. 이 영화의 원제는 ‘섹스가 끝나면 동물은 슬프다Post Coitum, Animal Trist’(1997)인데 이상하게도 다른 제목으로 출시되었다. 당시 센세이셔널 했던 일본 영화 ‘실락원’ 때문이 아닌가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 디안(브리짓 뤼앙)은 40대 여자로 꽤 성공한 커리어 우먼으로 책 편집장이다. 이 중년 여성이 20대 남자 에밀리오(보리스 떼랄)를 만나 치열한 사랑을 하는 이야기이다. 그 격렬한 사랑이 얼마나 실감나는지 다 보고나면 가슴이 얼얼하고 슬퍼서 동정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젊은 남자를 향한 열정과 집착은 그녀의 온 세상을 훔쳐가고 평온했던 일상마저 위협한다. 그래도 끝까지 달려가는 그녀. 에밀리오가 이별을 통보하며 '이게 인생이다'라고 하자, 디안이 '이건 죽음이야'라고 응수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실연의 슬픔에 견딜 수 없던 디안은 시인 사포처럼 낭떠러지에서 바다로 몸을 날린다. 다시 살아난 그녀의 그 후의 삶이 궁금하다. 예전처럼 제자리로 돌아갔을까, 아니면 이 골목 저 골목 다른 연하남를 찾아 기웃거리고 있을까. 제목처럼 열정이 식으면 우리는 슬프다. 다 타버린 재를 확인하는 건 너무나 쓸쓸하다.
그러나 정말 솔직한 쿠거는 아니 에르노다. '단순한 열정’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녀의 단순하고도 정직한 열정에 완전히 항복하게 될 것이다. 이 여성 작가는 ‘겪지 않는 일은 쓰지 않는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녀의 소설이 허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녀의 불타는 사랑을 받은 연하의 헝가리 외교관이 얼마나 대단한 남자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 제 눈에 안경 아닌가. ‘한 남자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그녀의 사랑이야기는 낯 뜨거운 불륜 이야기로 시작했으나 독자들 또한 점차 그 사랑에 감염되고 중독되어 끝이 난다.
연상이든 연하이든 본질은 하나이다. 특별한 성적 취향을 갖지 않는 이상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그리워하게 되어 있다는 것. 쿠거족의 확산은 마이크로트렌드와 관계없이 사람들이 좀 더 솔직해지고 있다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