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 할매
박분필
할매가 햇살 바른 곳에 멍석을 펴고 앉아 곶감을 깎으면서 시퍼렇게 젊었던
시절엔 모든 일들이 참 많이도 떫었지 생각한다
어느새 발그레 익어 삶의 단맛을 겨우 알 듯도 한데 쌓아온 생이 송두리째
벗겨져 꼬지에 꽂히는 이것이 나지 싶어지다가
어느 듯 처마 밑에 매달린 곶감이 시집살이 등살에 시달리듯 풍상에 시달리며
절이 삭고 어쩔 수 없이 쫀득쫀득 곶감이 되어갈 때쯤
떫디떫었던 당신의 마음자리에도 보이지 않게 새록새록 채워지던 단맛이 적지
않았음을 눈웃음 짓는다
할매가 주름지고 오그라진 곶감 한 접을 반반하게 펴 열 개씩 노끈으로 묶고
뽀얗게 분이 낀 열 묶음의 곶감들을 차곡차곡 쌓으면서
무거운 것들이 다 빠져나간 후, 가벼워진 이것을 나는 달콤한 행복이라 이름
짓는다
---애지 2025년 봄호에서
곶감이란 무엇인가? 곶감이란 감을 가공하여 말린 건과乾果를 말하며, 수분이 많아 잘 썩는 감을 오랫동안 두고 먹을 수 있는 보존식품을 말한다. 곶감은 비타민 A와 C, 칼륨과 탄닌 등 수많은 영양소를 지니고 있으며, 그 결과, 면역력 증진과 심혈관 건강, 소화 개선 등의 다양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과 일본과 중국에서는 곶감문화가 있었지만, 그러나 이 달콤하고 맛있으며 농가소득 식품인 ‘곶감문화’는 우리 대한민국에서만이 가장 잘 보존되고 널리 퍼진 문화라고 한다.
박분필 시인의 [곶감 할매]는 시와 곶감과 삶이 하나가 되는 우리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할 수가 있다. 그의 시들이 언어의 곶감으로 익으면 이 언어의 곶감들이 실제의 곶감으로 익으며, 시인과 곶감 할매의 삶이 아름답고 행복한 삶으로 익는다. 언어가 곶감이 되고, 곶감이 시가 된다. 시인이 곶감 할매가 되고, 곶감 할매의 삶이 모든 독자들의 삶이 된다. 시와 삶이 예술 자체가 된 세계, 바로 이 아름다운 진경의 세계가 박분필 시인이 창출해낸 [곶감 할매]의 세계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할매가 햇살 바른 곳에 멍석을 펴고 앉아 곶감을 깎으면서 시퍼렇게 젊었던 시절엔 모든 일들이 참 많이도 떫었지 생각한다”라는 시구는 곶감 할매의 수많은 우여곡절의 삶을 말하는 데, 왜냐하면 너무나도 불평과 불만이 많았고, 그만큼 고통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에는 어린 소녀와 젊은 새댁과 중년의 아줌마의 열정과 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따라서 수많은 난제들과 과식과 소화불량증으로 시달려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의 꿈과 열망,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들과의 대립과 갈등, 어린 자식들의 양육과 남편의 바람기와 경제적 궁핍 등이 그것이며, 그러나 그러한 불평과 불만과 고통이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아름답고 붉게 익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추억이나 회상은 수많은 불평과 불만, 그리고 그 고통들마저도 아름답게 미화시키지만, 그러나 이 아름다움과 단맛의 깊이를 알 때쯤이면 지나온 인생이 송두리째 벗겨져 삶의 꼬지에 꽂히는 것이다. “어느 듯 처마 밑에 매달린 곶감이 시집살이 등살에 시달리듯 풍상에 시달리며/ 절이 삭고”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쫀득쫀득한 곶감이 되어갈” 수밖에 없게 된다. 살아야 할 때와 죽어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최고급의 삶의 지혜이며, 따라서 모든 시인들과 성자들은 만인들이 박수칠 때 떠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의 모든 가치기준표는 자기 만족이며, 이 자기 만족의 가치기준표는 무한한 성실함 속의 자기 긍지라고 할 수가 있다. 수많은 비바람과 수많은 병충해와의 싸움에서 이겼을 때만이 할매의 곶감이 탄생할 수가 있듯이, “떫디떫었던 당신의 마음자리에도 보이지 않게 새록새록 채워지던 단맛이 적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가 바로 자기 만족의 절정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시간은 무한히 늘어지고 공간은 무한대로 확장되면서 “할매가 주름지고 오그라진 곶감 한 접을 반반하게 펴 열 개씩 노끈으로 묶고/ 뽀얗게 분이 낀 열 묶음의 곶감들을 차곡차곡 쌓으면서”라는 시구에처럼 그 영원한 행복을 살게 된다.
박분필 시인의 [곶감 할매]는 지혜와 용기와 성실함으로 천하무적의 장군처럼 자기 자신의 ‘달콤한 행복’을 연주해왔던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이 [곶감 할매]의 명시의 세계이기도 한 것이다. 인간은 모두가 다같이 자기 자신의 행복의 연주자이며, 마음의 가난함은 모든 불행의 근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지혜와 용기와 성실함의 토대는 자기 만족의 근원이며, 요컨대 마음이 부자인 사람은 순간 속의 행복을 살며, 천하를 다 소유하게 된다.
“무거운 것들이 다 빠져나간 후, 가벼워진 이것을 나는 달콤한 행복이라 이름 짓는다.”
박분필 시인과 곶감 할매는 아름답고 행복한 삶의 대명사이자 우리 인간들의 영원한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