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이(隶)와 광(狂)' 그리고 '미치다'의 어원
노예사회는 미친 사회이다.
례(隷)는 례(隸) 자와 같고, 隶(이, 대)는 의미 부분이며 奈[柰](내)는 발음 부분의 형성자로 설명한다. 이(隶)는 우(又)와 ?가 모두 의미 부분인 회의자로, ?는 미(尾)의 생략형이다. 손으로 꼬리를 잡고 있는 것은 '뒤를 따라가서 다다른다' 라는 뜻을 나타낸다. 그리고 '미칠 / 이, 대'로 훈독한다. 어째서 똑같은 '미칠' 뜻에 그 글말이 '이'와 '대'로 서로 다른가? 흡사 전주자의 형태를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말 '미치다'는 사실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각각의 뜻을 나타내는 전주자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다다라 이르다'의 준말 '대'의 대(隶)는 그대로 '닿거나 이르다'의 '미치다'는 뜻이고, '이어지다(잇다)'의 생략형 '이'의 이(隶)는 다른 사람의 손에[又] 꼬리가[尾] 붙잡혀진(이어진)[이] 상태로, 어떤 일에 지나칠 정도로 푹 빠져있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미치다(狂)'는 뜻을 가지는 전주자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꼬리가 붙잡혀 있는 상태란 곧, 벗어나기 위해 이리저리 몸부림치며 날뛰는 상태로 몸과 마음을 제어 할 수 없는 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난 미친 상태이지 않은가? 지금은 광(狂)자에 밀려 '대(隶)'의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논리적이다. 그렇다면 광(狂)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광(狂)은 '견(犭) + 왕(王)'의 회의자이다. 글말 '광'의 의미를 모르고서는 그 뜻을 유추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글말 '광'은 '광대'의 준말로 보면, '광대놀음'에서 보듯 지난날, 줄타기나 판소리·가면극 따위를 하던 사람을 통틀어 이르던 말이고, 얼굴의 속된 말이며 '탈(가면)'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면 광(狂)은 '개(짐승)이[犭] 올바른 이(왕)[王]의 탈(가면)[광]을 썼다'는 의미로 곧, 올바로 선 사람[王]의 탈을 쓴[광] 개(짐승)[ 犭]이거나 그와 같은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개가 개들의 왕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중에서도 올바른 사람 노릇을 한다는 뜻이다.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요즘 '구가의 서' 드라마를 보면서 광(狂)이란 글자의 실체와 설명하기 힘든 그 역설의 오묘한 조화를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곤 소름이 돋았었다.
한말 '미치다'는 첫째로 '(일정한 곳에) 가 닿거나 이르다'는 주된 뜻과 둘째로 '정신에 이상이 생기다' 또는 '어떤 일에 지나칠 정도로 푹 빠지다'는 뜻을 가지는 말이다. 첫째 의미의 한말글이 대(隶)로서 '손으로[又] 꼬리에[尾] 다다라 이르다[대]'는 뜻이다. 이와 견주면 '미치다'는 '미좇다(뒤미처 쫓다) + 이르다' 즉, '미좇아 이르다'의 준말로 유추된다. 아니면 '미좇다 + 치다(때리거나 두드리다, 치르다, 해내다)' 또는 '미나다(내밀다) + 치다'의 준말로도 볼 수 있다.
둘째 의미의 한말글은 이(隶)와 광(狂)이다. 이(隶)로서 '다른 사람의 손에[又] 꼬리가[尾] 붙잡혀진(이어진)[이] 상태'와 견주면, 한말 '미치다'는 '미늘 + 치다(엮다)' 곧, '(낚시)미늘에 치이다(엮기다)'의 준말로 추론된다. 또한 '어떤 일에 지나칠 정도로 푹 빠지다'는 뜻과 비교하면, '미나다 + 치다(엮다)'의 준말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미치다'의 첫째나 둘째의 뜻이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엮임'의 유무(有無)에서 그 차이가 발생될 뿐이다. 곧 그 정도가 지나칠 때, 제어할 수 없을 때, '미치다'는 둘째의 뜻이 되는 것이다. 결국은 자유로울 수 있느냐의 유무에 따라 그 의미가 갈리는 것이다.
광(狂)으로서 '올바로 선 사람[王]의 탈을 쓴[광] 개(짐승)[犭]이거나 그와 같은 행위를 이르는 말'과 견주면, '미쁘다(미덥다) + 치다(인정하다, 가정하다 또는 헛기세를 뽐내다)'의 준말로 볼 수 있다. 아니면 '미쁘다(미덥다) + 치대다(자꾸 눌러 문지르다 예를 들면, 반죽을 치대다)'의 준말로 곧, (자신만의) 옳은 것으로 믿음을 강요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말이다.
결국 자신을 강압적으로 합리화하는 짓이 미친 짓이라는 뜻이다. 나아가 미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는 역설이다. 하여 광(狂) 속의 이면에는 내가 또는 나만이 옳다는 가면을 쓰지(가면 속에 숨지) 않으면 결코 살아 갈 수 없는 사회를 반증하는 말이 숨어 있는 뜻이다. 광신도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오늘날 '돈'에 노예가 된 우리네 모습과 무엇이 다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