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아름다워라}
사개오 집사 (감동실화)(2)
30대 중반 한 여인이 실오라기 하나도 안 걸치고 거창 읍내를 쏘다녔다. 여인은 여자의 부끄러운 곳을 다 보이면서도, 얼굴엔 수심 하나 보이지 않는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어느 날부터 그 여인은 거창읍내 명물이 되었다. 심심하면 화젯거리를 만들었고, 사람들은 은근히 그 여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거나 입가심으로 삼았다.
점잖은 사람들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허. 참.." 하고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았지만, 구잡스런 사내들은 오히려 즐기며, 천한 웃음을 흘리곤 하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리곤 여인에게 옷을 걸쳐 대충 가리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갔다.
바로 '사개오' 집사였다.
사개오 집사는 키가 매우 작았다.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기이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였지만 아주 신실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내가 처음 거창에 와 자취방을 얻었을 때가 바로 그 무렵이었고, 얻은 자취방이 바로 사개오 집사 집이었다.
나는 살면서 사람이 징그럽다고 느낀 것은 다름 아닌 내 아내에게서였다. 결혼 3년 차에 이미 우리는 파경에 이르고 있었다. 중학교 영어 교사였던 나는 아내를 서울 처가에 남겨두고 홀로 거창중학교에 전근을 왔는데 사실은 전근이 아니라 도피였다. 잠시라도 아내와 떨어져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별거를 시작한 것이었다.
아내를 만난 것은 서울의 영어 학원에서였다.
당시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학비를 벌기 위해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아내는 그 학원 수강생이었고, 미모에 부잣집 외동딸이었다.
영어 선생과 학생으로 만난 우리는 수업 시간에 뜨거운 눈길을 주고받다가 결국 사랑에 빠졌고, 결혼까지 한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서로 당기고, 끌리는 아름다운 별들의 중력 같은 것이지만, 결혼은 접착제의 귀찮은 끈적거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데 불과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매일 싸웠다. 성격이 서로 맞지 않았다. 아내는 외동딸로 자라서인지 자기중심적이고, 이해심이 없었다.
매사에 짜증이고, 불평이 많았다. 그 기분을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다.
사소한 일로도 충돌하곤 하던 우리는 이젠 다투고 화해할 마지막 힘마저 남아있지 않는다고 느꼈다. 나는 더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저 없이 아내와 가정을 떠나와 버렸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사랑해 본 사람도 아내였고, 목을 졸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워해 본 사람도 내 아내였다.
따로따로 각자 뜯어보면 그렇게 사악하지 않았지만 서로 맞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는 관계..
사소한 일이 세계 대전으로 치닫는 관계가 바로 부부라는 관계였다.
언젠가 나는 성경 말씀을 읽다가 크게 은혜를 받고 위로받은 적이 있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천국에서는 부부로 살지 않는다ᆢ.
천사 같이 형제자매로 산다ᆢ.
이 얼마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인가.
사개오 집사는 바쁘게 장사를 하면서도 점심 식사 후엔 꼭 자전거 타고 자기 집으로 갔다. 자기 아내가 집에 잘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 아내는 가끔 집을 나가 정처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거나, 옷을 훌훌 다 벗어버리고 동네 우물가에 나타나곤 하였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이 자캐오 집사에게 알려 주었고, 사개오 집사는 얼른 달려와 아내를 집에 데리고 갔다.
그는 자기 아내 때문에 긴 여행이나, 단 하루라도 다른 집에 가서 잠을 자고 온 적이 없었다.
부산에 사는 동생 집에 다녀올 때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아내 걱정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사개오 집사는 가끔 밤이 늦어지면 마당에 나와 "허흠..허흠" 큰소리로 헛기침을 했는데 바로 나에게 주는 사인이었다.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지금 제 아내를 목욕시키려고 합니다.'
그는 마당에서 정성스레 백치 아내를 목욕도 시켜주고.. 머리를 빗으로 빗겨주기도 했다.
그 모습이 애처로워 사람들은 그에게 충고도 해봤다.
"백치 아내와 이혼하고 새 장가를 들라.." 고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는 아예 들으려고도 ㄴ하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아내와 전화로 큰 소리를 내며 다투었다. 늘 다투는 내용은 똑같았다.
그날 밤 퇴근길엔 술을 몽땅 마시고 들어왔다.
당시 우리 부부 사이엔 자식도 없었고, 더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갈수록 출구가 없는 터널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어렵게 결단하였다.
'이제 별거를 지나 이혼으로 가는 게 서로를 위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밤늦게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에 당도해 대문을 열었다.
내 방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부엌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다가가 문틈으로 보니 사개오 집사가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아마 아내를 목욕시키려 목욕물을 데우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비틀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옆에 앉았다.
그리고 술기운에 몇 마디 말을 걸었다.
"사개오 집사님 뭐 하세요..?"
"예..물 데웁니다."
"아..네..아내 분 목욕시켜드리려구요..?"
"예.."
그런데 그날 밤, 나는 술기운에 그에게 해서는 안 될 말 하나를 뱉어 버렸다.
"그런데요.. 사개오 집사님.. 내가 물어볼 게 하나 있습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무엇인지 말해보라는 눈치였는데 나는 무례하게 다짜고짜 물었다.
"사개오 집사님.. 집사님은 왜 이혼하지 않고, 저런 아내하고 사십니까..?"
정말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던..
그러나 나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버린 물음이었다.
사개오 집사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곤 잠시 뒤 겸연쩍은지 날 쳐다보지도 않고 부끄러운 듯 한 마디를 내뱉었다.
"겨..결혼식 날.. 하나님 앞에서 한 그놈의 서.. 서약 때문에.."
"뭐라고요..? 겨..결혼식 서..서약 때문이라고요..?"
나는 순간 할 말을 잊었다.
'불쌍하거나 사랑해서도 아니고.. 서약 때문이라고요..?'
나는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아궁이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만 바라보았다.
그리곤 말없이 내 방으로 돌아왔다.
조금 뒤 밖에서는 사개오 집사가 그의 아내를 목욕시키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결혼식 서약 때문이라..'
나는 다음 날 일찍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거창으로 오늘 당장 내려와.."
"아니 무슨 일이야.. 이혼하자더니.."
아내는 까칠하게 전화를 받았지만 그날 서울에서 내려왔고 우리는 언제냐 싶게 다시 결합했다. 내려온 아내는 까닭도 모르고 정복자처럼 굴었지만, 나는 그날 이후 내 마음속에 큰 결심 하나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부부는 그 집 단칸방에서 이제 딸 하나를 낳고 알콩달콩 가정이 무엇인지 깨달아 갈 무렵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급한 전화 한 통이 아내로부터 걸려왔다.
"여보..큰일났어요..빨리 좀 와보세요.."
"왜 무슨 일인데..?"
"사개오 집사님이 쓰러지셨어요. 연탄가스 중독으로요.."
나는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자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던 아내가 사개오 집사 안방으로 안내했다.
이미 사개오 집사는 의식이 없었고, 의식이 없는 그를 나는 타고 왔던 택시에 싣고 병원 응급실로 갔지만 중태였다.
사개오 집사는 벌써 며칠째 의식이 깨어나지 않았다. 나와 아내, 그리고 교회 성도들은 정성스럽게 돌아가며 그를 돌봤고, 그의 백치 부인은 내 아내가 돌봐주었다.
그러나 이를 어찌하랴.. 입원한 지 1주일 만에 사개오 집사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참으로 비극이었다. 백치가 된 아내를 남겨두고 이 세상을 영영히 떠나버린 것이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은 슬퍼하고 안타까워하였다.
사실 거창 읍민 거의 모두가 자캐오 집사 부부를 알고 있었다.
사개오 집사는 길거리에선 이웃들에게 인사를 잘하고, 매사에 성실하던 선한 이웃이었고, 백치 아내에겐 그토록 헌신적이던 착한 남편이었다.
그의 싸늘한 시체를 안고 집에 돌아온 건 나였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그를 집으로 모셔왔다.
키가 작고, 몸집이 작은 사개오집사의 싸늘하게 식은 시체를 두 손으로 안고 집 안으로 들어섰는데 그때 그의 아내가 마루에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밖에서 보였다.
백치 아내가 나의 손에 들려 있는 죽은 남편의 시체를 보자, 백치인 그녀가 갑자기 어떤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흐..어흐.." 반가운 얼굴을 하며..두 손을 저어대며.. 빨리 오라는 시늉을 하였다. 시체를 마루에 올려놓자 눈물을 흘리며 남편 시체를 여기저기 만지기 시작하였다.
"어흐..어흐.."
옆에서 이를 보던 동네 사람들이 놀라 한 마디씩 하였다.
"아이고. 저를 어쩌나.. 쯔쯧..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더니 남편이 죽었는지는 아는 가베.."
모두 눈가에 물기가4 촉촉이 적셨다.
사개오 집사의 아내는 백치였다.
평상시 눈동자는 풀려 있었고.. 거의 한 마디도 말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눈치였다.
사개오집사 장례는 거창교회 온 성도들과 동네 주민들이 가슴 아파하며 슬퍼하는 가운데 치러졌다. 그 사연을 알고 있는 거창 읍내 사람들은 모두 안타까이 여기며 슬퍼하였다.
장례가 끝나자 사람들은 이제 사개오 집사의 아내에 대해 염려하기 시작하였다.
"아이구.. 남편은 좋은 곳에 갔겠지만.. 이제 남은 백치 부인은 어떡하나.."
"친정에서 데려가겠지..뭐.."
"불쌍해서 우짜노."
그러나 모두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염려를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기라도 하듯 장례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그녀는 입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모든 음식 먹기를 거부하였고, 물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입에 강제로라도 먹이려 들면 이를 굳게 다물고 저항하며 거부하였다.
"으음..으음.."
고개를 돌리며 뿌리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도저히 먹일 수 없었다.
그러기를 열흘째..
아침에 내 아내가 그녀 방에서 소스라치게 놀라며 튀어나왔다.
"여보..여보..빨리 이리 와보세요.."
나는 놀라 급히 그녀의 안방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잠자는 듯 누워 있었는데 호흡은 이미 정지되어 있었다.
남편을 보낸 지 딱 열흘 만이었다.
백치 부인은 남편의 뒤를 따라간 것이다.
그녀의 죽은 얼굴은 평상시 살아있을 때와 달랐다. 참으로 근심이나 두려움 하나 없는 아주 평온한 얼굴이었고, 늘 보던 맹한 얼굴이 아니라 한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마치 우리 부부에게
"그동안 고마웠어요. 저의 장례도 부탁해요.
저는 사랑하는 남편 뒤를 따라갑니다. 천국에서 다시 봬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부부는 그녀 장례도 치러 주었다.
그날 거창읍내 거의 모든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
희한한 것은 며칠간 한겨울 강추위가 극성을 부리다가 사개오 집사의 백치 아내 장례식 날만큼은 이상하게 따뜻하였다.
계절은 바로 수십 년 전 땅꼬마 거지가 거창에 나타난 그때와 같이 추운 한겨울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눈보라 치고 맹렬히 추웠지만 그의 아내가 떠나던 날은 마치 봄날처럼 따뜻하였다.
누군가가 한마디 하였다.
"참 날씨 좋데이~ 아마 하늘에서 사개오 집사가 지 각시를 불러 갈라꼬 날씨를 이렇게 좋게 맹글었는가 보데이.."
한 두어 주간이 충격 속에 정신없이 지나갔다.
나는 장례가 끝난 뒤 그 집을 떠났다. 학교도 옮겨 서울로 왔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나도 적지 않은 시련을 겪었다. 내 아내는 불행하게도 60이 지나자마자 중풍으로 쓰러졌다.
내 인생도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아내는 결코 성품이 변하지 않았다. 늘 아내는 잔소리로 나를 피곤하게 했고,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개오 집사가 그날 밤 내뱉었던 말을 떠올리곤 했다. 그가 그의 백치 아내를 목욕시켜주는 장면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옛날 거창에서 술 취해 귀가했던 그 어느 날 밤 결심 이후로 지금까지 난 내 아내와 단 한 번도 다투어 본 적이 없다.
*이 글은 약 30년 전 거창중학교 교장 전성은 선생님 특강을 듣고 감동했던 어느 청년이 쓴 실화, 현장소설입니다.
[출처] 사랑은 아름다워라|작성자 마당쇠
첫댓글 아!아!아! "대단한 사랑" 그 자체군요.감동 깊게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