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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年 성경적 신앙 뿌리를 깊이 내리는 해(前)
† 구약예언 ☆ (대선지서)
☆ 다른 신(神)에게 예물(禮物)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시편16:4)
사57:1-21절) 우상 숭배의 罪
Ⅱ.우상의 천국 예루살렘(중)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 왕(王)이 앞장서서 신앙(信仰)의 벽을 깨트리면, 백성들 가운데서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상숭배(偶像崇拜)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아주 짧은 시간에 유다는 우상(偶像)의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동안 눌러 놓았던 병마개를 제거하니까 속에 잠재되어 있던 욕구(欲求)가 폭발(暴發)한 것입니다.
57:3절)무당의 자식, 간음 자와 음녀의 자식들아 너희는 가까이 오라”
*무당(巫堂)의 자식, 간음(姦淫)자와 음녀(淫女)의 자식'이 누구를 말하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유다 지도자들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모든 유다 백성들을 칭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본문에서는 둘 다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도자들은 우상(偶像)을 끌어들였고, 백성들은 이를 전폭적(全幅的)으로 지지(支持)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지도자들이“무당(巫堂)의 자식”이라면, 백성들은“간음 (姦淫)자와 음녀(淫女)의 자식들”이 되는 것입니다. 즉 무당(巫堂)의 딸이 굿을 하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면 일반 백성들은 그 굿판에서 놀아나며, 자신을 바쳤던 것입니다.
중요한 문제는 왜 하나님 백성들이 이 지경까지 가게 되었느냐? 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 (世上)의 욕심(慾心)을 따라가는 것이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면, 진리에서 멀어지고, 교회(공동체)는 타락(墮落)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죄악된 흐름을 바꾸려면, 강한 생명의 말씀의 역사(役事)와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과거에 유다 백성들은 히스기야의 강한 부흥(復興)의 역사(役事)에 동참하기는 했지만, 진심(嗔心)으로 수용(受容)하고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 므낫세 때,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백성들이 정신(精神)을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어떻게 왕이 나라의 신앙(信仰)을 망칠 수 있겠습니까? 즉 어떻게 왕이 자기 마음대로 의인(義人)들을 그렇게 많이 죽일 수 있겠습니까?
백성들이 왕을 지지(支持)하고, 따르니까 왕이 이스라엘의 신앙(信仰)을 망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즉 히스기야의 종교개혁(宗敎改革)은 진정한 심령(心靈)의 부흥(復興)이 되지 못하고, 제도적(制度的)인 개혁(改革)에 그쳤던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하나님 생명의 말씀으로 심령(心靈)속에 철저한 변화(變化)가 일어났어야했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은혜(恩惠)받은 한 세대(世代)가 다 죽을 때까지는 그렇게 쉽게 우상(偶像)을 끌어들이지 못했을 것입니다.유다는 여호와 신앙(信仰)의 둑이 한번 무너지고 나니까 걷잡을 수 없이 우상(偶像)의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1)여호와 신앙(信仰)을 마음껏 조롱(嘲弄)했습니다.
57:4절)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거짓의 후손이 아니냐.”
여기서 유다 백성들이“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밀어 희롱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유다 백성들은 이미 예루살렘 성전을 우상(偶像)으로 정복했습니다. 즉 마음껏 하나님을 조롱(嘲弄)하면서 우상(偶像)의 제사(祭祀)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도 이렇게 쉽게 우상(偶像)이 성전 안에 상륙(上陸)할 줄 몰랐는데,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고 나니까 싱겁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우상(偶像)은 이미 하나님과 동격(同格)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만 믿지 말고, 다른 신(神)들도 얼마든지 *믿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다 나라에는
2)바알의 종교(宗敎)가 번성(繁盛)했습니다.
57:5절)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틈에서 자녀를 도살하는 도다.”
푸른 나무 아래에서 바알 제사(祭祀)를 드릴 때는 성(性)관계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성(性)관계가 바알에게 힘을 주어서 자신들을 더욱 번성(繁盛)케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바알 종교(宗敎)는 물질적(物質的) 축복(祝福)과 성(性)관계가 결부(結付)되어 있는 종교(宗敎)였고, 인간의 타락(墮落)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으면서도 끊기가 쉽지 않은 종교(宗敎)였습니다.
거기에는 물질적(物質的) 번영(繁盛)의 축복(祝福)과 함께 성적(性的) 유혹(誘惑)이 있었습니다. 요즈음의 포르노(porno) 문화(文化)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에 한번 중독(中毒)되면, 빠져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알의 중독(中毒)에서 벗어나는데,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이' 걸렸습니다. 그만큼 바알의 중독(中毒)은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날의 음란영화(淫亂映畫)나 오락(娛樂)의 중독성(中毒性)역시 대단히 무섭습니다. 중독(中毒)된 것을 씻으려면 기도원에 올라가 금식(禁食)하며, 성경통독(聖經通讀)을 좀하고 내려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중독(中毒)된 것은 쉽게 자기 마음대로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은 이방(異邦) 제사(祭祀)중에서 가장 잔인(殘忍)한 인신(人神) 제사(祭祀)를 드렸습니다. 이방인(異邦人)들은 신(神)에게 강력(强力)한 제물(祭物)을 드려야 소원 (所願)을 들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살아 있는 어린아이들을 제물(祭物)로 바친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성적(性的)으로 중독(中毒)되니까 무분별한 임신이 많아지고, 자연히 사생아(私生兒)들이 많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들을 제물(祭物)로 바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도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낙태를 하든지, 아니면 외국에 입양을 보내든지 합니다.
그런 짓을 하기 싫으면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데, 생각 없이 죄를 지은 후에 아이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이들 인신(人神) 제사(祭祀)가 유다의 골짜기 마다 자행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이상한 종교의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57:6절)골짜기 가운데 매끄러운 돌들 중에 네 몫이 있으니. 그것들이 곧 네가 제비 뽑아 얻은 것이라. 또한 네가 전제와 예물을 그것들에게 드리니. 내가 어찌 위로를 받겠느냐”
골짜기에서 매끄러운 돌(石)들을 주워 제비를 뽑은 후에 그 돌(石)에 제물(祭物)을 드리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돌(石)을 다윗의 물맷돌(石)로 착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성경 내용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여 비성경적(非聖經的)으로 숭배(崇拜)했던 것 같습니다. 즉 이런 매끄러운 돌(石)이 있으면, 적(敵)들도 다 물리칠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것을 재산(財産)처럼 소유했던 것 같습니다.
골리앗을 이긴 것은 매끄러운 돌(石)이 아니고, 다윗의 믿음이요, 용기(勇氣)였습니다. 흉내를 내려면 제대로 내야 하는데, 엉뚱한 것만 흉내 내니까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모세같이 지팡이만 들고 있다고 해서 홍해가 갈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혹 한 유명(有名)한 사람이 독특한 스타일(style)의 머리를 하고 있다고 해서 그런 머리 스타일(style)만하면 유명(有名)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유다에는
3)다시 산당(山堂)이 등장했습니다.
57:7절)네가 높고 높은 산 위에 네 침상을 베풀었고 네가 또 거기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으며”
유다의 고질적(痼疾的)인 병폐 중에 하나가 곧 산당(山堂)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산당(山堂) 중심(中心)의 신앙(信仰)이 아니라, 성전 중심(中心)의 신앙(信仰)을 원하셨습니다. 산당(山堂) 중심의 신앙信仰)은 기복(祈福) 신앙(信仰)을 나타내고, 성전 중심(中心)의 신앙(信仰)은 말씀 중심(中心)의 신앙(信仰)을 말합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산당(山堂)을 없애려고 애를 썼는데, 므낫세가 우상(偶像)을 끌어와서 다시 산당(山堂)이 활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의 우상숭배(偶像崇拜)를 부부 사이의 부정(不淨)으로 보십니다.
57:8절)네가 또 네 기념 표를 문과 문설주 뒤에 두었으며. 네가 나를 떠나 벗고 올라가서 네 침상을 넓히고 그들과 언약하며. 또 네가 그들의 침상을 사랑하여 그 벌거벗은 것을 보았으며”
부부 사이에 끝까지 지켜야하는 것이 정절(貞節)입니다. 부인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몸을 드러내거나, 남의 침상(侵傷)에 올라가는 것은 남편(男便)을 배반(排班)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부부(夫婦)관계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만으로 만족(滿足)하지 못하고, 우상(偶像)을 끌어들였을 때, 당연히 그들은 파경(破鏡)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는
57:4)외교 관계를 위해 철저하게 신앙(信仰)의 자존심(自尊心)을 버렸습니다.
57:9-10절)네가 기름을 가지고 몰렉에게 나아가되 향품을 더하였으며. 네가 또 사신을 먼 곳에 보내고 스올 에까지 내려가게 하였으며. 네가 길이 멀어서 피곤할지라도 헛되다 말하지 아니함은 네 힘이 살아났으므로 쇠약하여지지 아니함이라.”
본문은 몰렉이 이방 왕이냐? 아니면 이방신이냐? 하는 것에 대해 해석(解釋)의 차이가 있는데, 이것은 이방 신(神)입니다. 옛날에는 외교(外交)를 맺으려면, 언제나 국가(國家)의 신(神)을 인정(認定)해야 했습니다. 즉 어떻게 해서든지 외국(外國)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사신(使臣)은 극진한 정성을 가지고 향품(鄕品)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 신(神)에게 얼마나 저자세로 머리를 굽혔으면, 스올에까지 낮추었다고 했을까? 성경(聖經)은 아무리 멀리 있는 나라일지라도 유다가 기꺼이 찾아갔던 이유는 외국 (外國)의 문물(文物)을 끌어들인다는 것을 생각하니까 너무나 기대(期待)되고, 힘이 솟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나라의 힘이 외국(外國)의 문물(文物)과 군사적(軍事的)인 힘을 끌어들이는데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리 먼 나라라 하더라도 가서 배우고, 또 문화적(文化的)인 교류(交流)를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외적(外的)으로만 보면, 아마 므낫세 때, 예루살렘이 가장 흥청거리고, 외국(外國)의 신선한 물건(物件)들과 사람들로 붐볐을 것 같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므낫세를 칭찬하면서 아버지 히스기야보다 *낫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버지 히스기야가 우리나라 대원군(大院君)처럼 쇄국정책(鎖國政策)을 폈다면, 아들 므낫세는 문호개방(門戶開放) 정책(政策)을 썼고, 그 결과 많은 새로운 이방 문화(文化)를 끌어들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결정적으로 유다를 망하게 한 근본적(根本的) 원인(原因)이었습니다.
57:11-13절)네가 누구를 두려워하며. 누구로 말미암아 놀랐기에 거짓을 말하며. 나를 생각하지 아니하며. 이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나를 경외하지 아니함은 내가 오랫동안 잠잠했기 때문이 아니냐. 네 공의를 내가 보이리라. 네가 행한 일이 네게 무익하니라. 네가 부르짖을 때에 네가 모은 우상들에게 너를 구원하게 하라. 그것들은 다 바람에 날려 가겠고. 기운에 불려갈 것이로되. 나를 의뢰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겠고. 나의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으리라”
하나님은 므낫세나 유다 백성들이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갑자기 우상(偶像)에게 달려간 것이 무엇이 두려웠기 때문이냐?' 고 질문하십니다. 이것은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욕심(慾心)때문이었습니다. 계속 작은 나라로 있을 것이 아니라, 한번 큰 나라가 되어보자는 욕심(慾心)이 여호와 신앙(信仰)을 버리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므낫세와 유다 백성들은 잘못된 목표(目標)를 가졌기 때문에 타락(墮落)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항상 욕심(慾心)을 버리고, 주어진 것에 감사(感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께는 무궁무진한 보화(寶貨)가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목표(目標)로 삼고, 다른 나라의 물질적(物質的) 번영(繁榮)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으면. 자기들 안에 있는 엄청난 보화(寶貨)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짜 소중(所重)한 것은 모두 다 버리고, 아무 쓸데없는 가짜 물건(物件)들을 예루살렘 안으로 가득 들여왔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가짜 물건(物件)들이 자기들을 결코 부요(婦謠)하게 할 수 없고, 또한 자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룩한 산(山)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산(山)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안에 있으며, 악인(惡人)들이 절대로 빼앗을 수 없습니다.아-멘
찬송가 203장 *하나님의 말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