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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4.16. 부활절 제2주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시147:10~12)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부활의 주님과 함께 은혜로운 한 주간을 보내고 부활의 감격 속에 다시 주일을 맞이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삶의 환경과 여건이 아무리 어둡고 고난이 깊을지라도 십자가 보혈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함으로 부활의 소망을 이루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유익과 만족, 성공과 출세에 눈이 멀지 않게 하시고, 교만하여 주님의 음성에 귀 먹지 않기를 원합니다.
삶의 어떤 장애물을 만날지라도 부정적인 생각보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신뢰하게 하시고, 불평과 불만으로 정죄하는 입에 파수꾼을 세워 입술의 문을 지키게 하옵소서.
따뜻한 날씨와 아름다운 자연을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봄의 기운을 만끽하며 더욱 주님을 바라봄으로 내 안에 영적 기운이 충만하게 하시고 가정과 일터와 세상 속에서 주님의 귀한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경제 회복으로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게 하시되 돈의 위력 앞에 무릎 꿇지 않게 하시고 돈을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는 지혜가 더욱 열려지게 하옵소서.
구주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 나의 이익과 상황에 유리하게 하나님 뜻을 끼워 맞추려 했던 악함을 회개합니다.
아무리 선한 목적이라도 누군가의 마음이 상하지 않는지 살피며 끝까지 하나님 뜻에 집중하게 하소서.
주님보다 앞서가지 않게 하시고,
각 사람 인생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볼 수 있도록 믿음의 눈을 열어 주소서.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라는 고백 속에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어려움과 환난의 순간에 결코 의심하거나, 죄의 짐을 지지 않게 하옵소서.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굳건히 잡아주옵소서.
허상에 지나지 않는 그릇된 방식에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당신의 계획만을 구하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의도적으로 지게 하시는 짐들이 있을 때, 주께서 그 짐을 옳길 의도가 없으실 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내게 부여하신 권한, 때론 그것이 무거운 짐일지라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 맡기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나의 모든 짐, 나의 모든 소망, 나의 작은 믿음조차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주님의 손에 올려놓습니다.
수많은 영혼들을 살리게 되는 영화로움을 목격하게 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전 세계적 열풍을 불러일으킨 BTS의 제작자 방시혁 씨는 모교인 서울대 졸업식에 연사로 초청받아 이런 말을 남겼다.
“오늘의 저를 만든 에너지의 근원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화’, ‘분노’였습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음악 산업 구조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음악 종사자들, 그리고 소명 없이 그저 적당함에 젖어들려 하는 자신을 향한 말이었다.
분노가 무조건적인 악덕이 아니라, 세상을 바꿔 나갈 동력이 될 수도 있음을 천명해 준 역설적인 발언이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문제는 화를 너무 많이 내는 게 아니라, 어쩌면 너무 적게 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스도인은 악을 발산하는 뒤틀린 세상의 대안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그리스도인은 지금 가진 것에 안주하려고만 하는 교회와 자신에게 좀처럼 분노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거나, 교회의 덕을 위해 자신이 아고 간다는 메시아 콤플렉스에 빠진 이들이 많아진다면 오히려 한 방에 무너질 수 있다.
예수님이 성전의 좌판을 뒤집어 엎으신 것은 단순히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장사치의 상행위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성전 권력에 매몰되어 돌아가는 기존 종교 체제와 문제의식 없는 권력자들에 대한 상징적 분노였다.
물론 그러한 행위는 기존 체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여겨져 십자가형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이는 구원과 교회의 탄생으로 귀결되었다.
자신이 희생한다고 생각하며 문제를 덮고 넘어갔던 수많은 이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후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그렇게 넘어가면 악은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참고 넘어간 이들을 모함하고 조롱한다.
때문에 악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것은 때로는 숭고하지 못한 신앙 행위요, 인간 존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패착이다.
그것은 또 다른 악을 관용하는 결과를 낳는다.
- 손성찬, 『일상의 유혹』 (토기장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복이요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삼상 15:3). 이스라엘 백성이 막 출애굽 했을 때 뒤처진 노약자들과 어린아이들을 공격한 비열한 족속이기 때문입니다(신 25:17~18).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고, 그 후 그의 비참한 죽음은 진멸하지 못한 아말렉 사람에 의해 알려집니다.
순종은 이익 여부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경외함과 '온전한 순종'은 함께 갑니다.
어떤 사람의 진정한 신앙과 성품을 파악하려면 그에게 권한과 권력을 쥐여 줘보면 된다. - 스티븐 그레이브스
2023.4.9. 부활절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다시 사신 예수님께 경배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주님의 부활은 고통과 실망, 질병과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아가는 저희에게 참 소망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끝까지 견디심은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시고 순종하셨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일어나라 함께 가자”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나의 사명을 다하는 날까지 주와 동행하게 하옵소서. 어떠한 고난이 오고 시련이 와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생명이 되시고 소망이 되신 주님만 찬양하며 순종하게 하옵소서. 두려움이 앞을 가로막고 절망이 에워싸며 죽음이 우리의 곁을 맴돌지라도 뒤로 물러서지 않게 하시며 담대히 나아가게 하옵소서.
부활의 복음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게 하시고 부활의 신앙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가족과 이웃을 향한 진정한 사랑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임을 믿습니다. 예수 복음을 전하며 함께 나와 예배드리는 날이 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쉼 없이 전하고 또 전하게 하옵소서. 설익은 열매를 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시고 열매가 익을 때까지 사랑과 관심으로 돌보게 하옵소서.
나의 산 소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남편이 설거지만 대신해줘도 고맙고, 아내가 출근길 손만 흔들어줘도 고맙고, 아이들이 아빠 엄마의 도움 대신 본인 스스로 학교 갈 준비와 숙제를 하면 그렇게 기특하고, 부모님이 대신해서 아이들을 봐주시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고, 직장 상사와 동료의 따뜻한 위로 한마디와 어깨를 토닥임마저도 눈물 나게 고맙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지신 십자가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 불가능이다.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고 찢기셨고 모든 것을 다 흘리셨다.
꼭 그러셔야 했을까? 그것 밖에 답이 없었을까?
이유는 단 하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주의 자녀들 살리시려고 그의 몸을 대속물로 주셨다.
이러한 사실이 지식적으로가 아니라 마음 깊이 새겨지고 깨달아지며 그 사랑에 감격할 수 있어야 한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심으로 침묵하신 토요일이다.
만왕의 왕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로 오신 그 분은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 분이 말씀으로 이 땅을 멸할 수도 그리고 그의 창조하신 사람들을 심판할 권세도 있으셨지만 오직 침묵으로 순종하셨다.
이 시대는 속도와 소음에 중독되어 있다.
하루에도 많은 말들을 하며 살아가지만 새벽 시간은 나와 하나님만의 데이트 시간이다. 그 시간에는 핸드폰도 울리지 않는다. 아이들도 잠잠하다. 고요한 그 시간 말씀을 펴고 오늘은 어떤 말씀을 주실지 조용히 묵상한다. 그리고 나에게 말씀 하시는 그 분께만 집중한다.
현대인들은 침묵을 두려워하고 고요한 시간을 견디지 못해 이내 금방 다른 소리들로 나를 채운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소리들 가운데에서는 나를 발견할 수 없으며 하나님은 더더욱 찾을 수가 없다. 세상은 하나님과 반대되기 때문이다.
사순절의 마지막 날이다.
잠잠한 가운데 세상의 소리를 끄고 주님과 대면해야 한다. 조용한 장소, 조용한 시간을 따로 구별하여 우리 주님 만나기를 갈망해야 한다. 침묵으로 순종하신 예수님을 닮아 하나님과 깊은 교제로 들어가야 한다.
언약 된 아침, 부활의 호흡을 준비하자.
나의 산 소망 되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온 맘과 정성을 다해 예배하러 주님의 몸 된 교회로 나아가자.
할렐루야!
하나님의 일하심은 선하고 아름답지만 죄인의 행함은 악하고 비루합니다.
죄인을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분은 하나님이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는 죄인입니다.
죄인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분은 예수님이지만, 예수님의 목숨을 앗아간 이는 죄인입니다.
따라서 죄인을 사랑이신 예수님께는 영광을, 예수님을 죽인 죄인에게는 피 값을 돌림이 마땅합니다.
바로 내가 그 죄인입니다.
오늘도 겸손히 주님을 섬기며 따르며 행하겠습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은 어둠의 일을 행해서이기 이전에 어둠의 일을 사랑해서다. - 존 파이퍼
참성도는 예수님을 위해 자기 삶을 드리고, 거짓 성도는 예수님을 자기 삶에 이용합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것은 자신의 전부를 드린 행동입니다.
반면 예수님에게서 부와 영광을 기대했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이용해 돈을 챙깁니다.
참성도는 육신의 형통보다 예수님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나의 삶을 예수님께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고백'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드러나는 '행동'으로 중명됩니다.
주님을 이용하려 하는가, 아니면 그분께 사용되기를 원하는가? '나의 삶으로'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 프레드 크릭스
2023.4.2. 사순절 제6주. 종려주일.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사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이요 눈물 없이는 못 가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칠 때까지 십자가의 길을 외면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죽고자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고 박해를 받고 고난을 당할지라도 정의와 진리의 편에 서게 하시고 정직과 진실함으로 주님을 따르기 원합니다. 주님의 떡과 잔을 피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늘나라의 받을 상을 위해 골고다 언덕을 오르게 하옵소서.
십자가 후에는 부활이 있음을 믿습니다. 고난 뒤에는 영광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물질과 정욕의 유혹에 지지 말게 하시고, 세속의 영광과 타협하지 않게 하옵소서.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마귀와 싸워 이기고, 죄와 싸워 이기고, 나와 싸워 이기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과 빛을 바라보며 인내의 신앙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주님의 겸손을 배우게 하시고, ‘호산나!’ 외치는 군중의 환호 속에도 인기와 명성의 욕망을 이기시고 사명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의 삶을 배우는 고난주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구원을 이루게 하시고, 친척과 이웃의 구원을 이루게 하옵소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며 부활과 영생으로 초대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이는 ‘재앙과 근심, 걱정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좋지 않은 일로 여겨졌던 것이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와서 좋은 일이 되는 것을 말한다.
‘전화위복’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전화위복과 유사한 영어 표현이 있다.
‘A Blessing in Disguise.’란 문장이 있다. 직역해보면, ‘변장한 축복’이라는 말로 옮겨볼 수 있는데, ‘축복이 축복처럼 보이지 않게 변장하고 찾아오는 것’을 가리킨다.
즉, ‘축복인 줄 모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축복이었다’는 말로, ‘전화위복’(轉禍爲福)과 상당히 닮아있는 속담이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5).
이 말이 다윗을 인생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던가! 사울의 시기를 발동케 한 이 말을 시작으로 다윗은 여러 차례 죽을 뻔 했고 지금은 아내도 잃고 적국에 은신하고 있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다윗을 곤경에 빠뜨렸던 이 말이 다윗을 구한다.
블레셋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 소환 된 이 말 때문에 다윗은 동족과의 전쟁에서 배제될 수 있었다.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전화위복의 하나님을 신뢰하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2023.3.26. 사순절 제5주.
종려주일과 고난주간 그리고 부활절로 이어지는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회개와 기도 가운데 자기 자신을 비우는 삶을 살며, 말씀과 헌신으로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 겸손과 온유로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시며, 희생과 섬김으로 자신을 낮추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의 못 박힌 손과 발에 나의 손과 발을 포개어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살기를 원합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온 맘과 정성을 다해 주님만 사랑하게 하옵소서.
수많은 영적 싸움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주님은 나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나를 단련하신 후에 정금 같게 하실 것을 믿고 살아계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옵소서. 정욕과 탐욕으로 시험하는 거대한 맘몬의 미혹이 있을 때에 두 손 들기를 부끄러워 말게 하시고 기도와 찬양을 멈추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주님께 예배함이 나의 기쁨이요 소망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약속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은혜와 진리 가운데 넉넉히 이기게 하옵소서.
죽어가는 영혼을 바라보며 눈물로 기도하게 하시고, 입술의 고백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세상에서 방황하던 이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옵소서. 병든 자들이 고침 받게 하시고 감추어진 모든 죄를 고백함으로 자유함을 얻으며 새로운 변화를 통해서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체험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산 소망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