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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복을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밥그릇에도, 숟가락에도, 베게에도, 대문에도 복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흔히들 갖고 싶어하는 복을 오복이라고 합니다.
• 수(壽): 오래 사는 것 (장수)
• 부(富): 재물이 많고 풍족한 것
• 강령(康寧): 육체와 정신이 모두 건강하고 평안한 것
• 유호덕(攸好德): 남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하여 덕을 쌓는 것
• 고종명(考終命): 병치레나 사고 없이 천수를 누리다가 편안한 죽음을 맞는 것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복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시는 복은 죽음을 이기고 영생으로 가는 복입니다. 그것은 마음에서 시작되고,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복입니다. 하늘은 아무도 차별하지 아니하여 누구나 원하면 받을 수 있는 복이나, 그렇다고 아무나 받을 수 있는 복은 아닙니다. 교만한 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복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만이 이 천국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산상 설교는 주옥같은 내용이어서 여러 가지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기독교 대헌장, 도덕적 황금률, 천국의 복음 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산에서 하신 설교라는 뜻에서 산상 설교라고 불리며, 보배와 같은 교훈이라는 뜻으로 산상보훈이라고도 합니다. 또한 계속해서 후세에 전하는 교훈이라는 뜻에서 산상수훈이라고도 하고, 가르쳐서 본받게 하는 말씀이라는 뜻으로 산상 교훈이라고도 합니다.
이처럼 귀중한 산상 설교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 중요성 때문입니다.
첫째로, 산상 설교는 예수님의 초상화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예수님의 품성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산상 설교에 비추어 자신을 성찰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영생은 곧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이처럼 산상 설교는 예수님을 배우는 지름길입니다.
둘째로, 산상 설교에는 놀라운 부흥의 비결이 들어 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언제 부흥이 일어났는가를 살펴보면, 성도들의 삶이 산상 설교의 교훈과 일치될 때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참된 경건의 부흥입니다. 예언의 신의 권면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들 가운데 있어야 할 참된 경건의 부흥은 우리의 모든 필요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가장 긴급한 것이다. 이러한 부흥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의 첫째 사업이 되어야 한다." (가려 뽑은 기별 1권, 121쪽)
어떻게 이런 신앙 부흥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이 바로 산상 설교에 들어 있습니다. 산상 설교는 팔복으로 시작하는데, 이 팔복은 산상 설교의 핵심입니다. 팔복은 그리스도인의 균형 잡힌 성품을 보여주며, 그가 누리는 최고의 축복된 삶의 원리를 제시해 줍니다.
먼저 팔복의 두 가지 특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팔복은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변화된 품성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온유란 천성적으로 착하고 순한 성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절제된 외유내강의 성품을 말합니다.
둘째, 팔복은 각각 분리된 복이 아니라 상호 연결된 복이라는 것입니다. 팔복은 하나의 띠처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애통하는 자가 되고, 애통하는 자는 온유한 자가 되며, 온유한 자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팔복 중에서 첫 번째 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복은 나머지 일곱 가지 복을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또한 팔복 전체는 산상 설교를 해석하는 열쇠가 됩니다. 본문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3절)
우선 첫 번째 복의 특성을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팔복의 토대입니다. 나머지 일곱 가지 복은 모두 이 첫 번째 복 위에 놓여 있습니다.
둘째, 영적 삶의 기초입니다. 그리스도인 삶의 기초는 바로 이 심령의 가난입니다.
셋째, 천국 시민의 기준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못하느냐를 결정하는 기준이 바로 심령의 가난입니다. 즉, 심령의 가난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가르는 경계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심령'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프뉴마(Pneuma)'입니다. 이는 영과 마음을 의미합니다. 프뉴마는 단순히 인간의 내면적인 영과 마음을 가리킬 뿐 아니라 전인격적인 존재를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또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헬라어로 '프토코스(Ptochos)'인데, 이것은 절대 빈곤 상태를 의미합니다. 절대 빈곤이라는 것은 완전히 파산하여 생존이 불가능한 상태, 즉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결코 살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곳에서 말씀하신 가난은 물질적 가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영이 가난해서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는 '영적 빈곤 상태'를 뜻합니다. 어떤 분들은 청빈을 미덕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은 물질적인 가난 자체를 미덕이나 영성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가난한 사람이나 교만하고 못된 부자나 모두 천국과 거리가 멀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두 가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심령이 가난한 자란 자신의 가련한 처지를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선한 것이 전혀 없음을 고백합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에서 세리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영적으로 완전히 파산했음을 인정하고,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내맡깁니다.
시편 기자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시편 40편 17절)
이처럼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둘째,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란 마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이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저는 티끌에 불과합니다"라는 철저한 자기 이해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겸손한 마음을 가장 귀하게 보십니다. 겸손은 그리스도인 품성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입니다. 겸손한 마음에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그래서 겸손은 천국을 소유하는 비결입니다.
겸손의 반대는 교만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마음입니다. 인간의 타락과 불행이 교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늘 자신을 내세웁니다. 누가복음 18장에서 바리새인은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오, 나는 저 죄인과 같지 않습니다. 저는 십일조를 드리고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합니다. 나는 이렇게 의로운 삶을 살기에 감사합니다." 그는 자기의 의와 경건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웃을 사랑하는 대신 비판하고 정죄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를 부인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장 24절)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성숙한 신앙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 바로 자기 굴복입니다.
"자신을 포기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요지이다." (시대의 소망, 523쪽)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을 천국에서 큰 자로 삼으십니다(마태복음 20장 26-27절).
따라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의 공적을 과시하거나 드러내지 않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공명심에 흔들립니다. 다는 아니지만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공명심입니다. 이 공명심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세상을 어지럽게 만듭니다. 내가 이룬 공에 대하여 인정받고 대우받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공을 자랑하고 과시하는 순간, 내가 베푼 공은 허공으로 사라집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마치 물과 같습니다. 물은 만물에 아낌없이 혜택을 주지만 자신의 공을 드러내거나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물은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 머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용합니다. 물은 앞을 누가 가로막아도 원망하거나 다투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가 돌아가든지 차올라 넘어갑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은 헬라어로 '마카리오스(Makarios)'인데,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일시적인 복이 아닙니다. 이 복은 최고 수준의 행복을 가리키며, 곧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의미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이유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천국'은 헬라어로 '바실레이아(Basileia)'인데,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뜻합니다. 마태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기록했기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대신 '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반면 이방인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기록한 마가나 누가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천국을 단지 먼 미래의 저 멀리에 있는 나라로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장차 임할 영원한 천국도 있지만, 성경을 자세히 보면 현재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모든 심령과 영역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한 천국은 주님을 모셔 들인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7장 20-21절)
또한 주의 이름으로 모인 성도들이 있는 곳 역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8장 20절)
그리고 주님이 불러내신 무리를 가리키는 교회 역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혼을 구원하여 믿음의 공동체로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입니다.
이처럼 이 땅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의 재림을 통해 천년 왕국으로 연결됩니다.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요한계시록 20장 4절)
그리고 이 천년 왕국은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어집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21장 1-2절)
이러한 천국을 소유하는 비결이 바로 심령의 가난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그의 것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온전히 다스리시는 나라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천국은 내 마음에서 시작되어 가정과 교회로 확장되고, 장차 천년 왕국과 신천신지로 완성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내 결심이나 인간적인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만 가능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영안을 열어 주셔서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이며 무력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 주셔야 합니다. 그제야 우리는 자신의 영적인 파산 상태를 직시하게 됩니다.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음을 알고 철저히 겸손해집니다. 자신의 처지가 절망적임을 깨닫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렇게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될 때 우리는 천국을 경험하는 참된 복을 누리게 됩니다.
어느 곳에 심령이 가난한 성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삶에는 큰 덕이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천사들이 그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동하여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신앙생활을 참으로 신실하게 하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그대가 기도하면 무슨 병이든지 다 낫고,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 큰 권세를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자 성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답했습니다.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 미천한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 은혜를 사양하겠습니다."
천사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그대가 말만 하면 어떤 죄인도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게 하는 권세는 어떻습니까?"
성자는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권세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께서 하시는 일인데, 어찌 사람이 그 일을 가로채겠습니까?"
천사들이 "그러면 그대는 무슨 은혜를 원하시오?"라고 묻자, 성자는 이렇게 청했습니다.
"세상 사는 동안 제가 선을 행하되, 그 선행을 제 스스로도 알지 못하고 행할 수 있는 겸손의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천사들이 의논한 끝에, 그 성자의 그림자에 닿는 모든 병자와 죄인이 치유받고 변화되는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님 산상 설교의 핵심인 팔복의 첫 번째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열어 주셔서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절망적인 상태를 깨닫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 모든 일에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 역시 조용히 묵상해 봅니다. 마치 거울 앞에서 얼굴과 옷매무새를 손질하듯이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어 봅니다. 거칠고 모난 부분을 다듬어 주시도록 성령께 간절히 구합니다. 자아를 내려놓는 가난한 심령, 하나님이 온전히 다스리시는 마음이 되어 하루하루 천국 시민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나 자신이 먼저 변화됨으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천국으로 변화되는 축복을 경험하기를 간구합니다. 이 복이 우리 삶에 충만하기를 바라며 말씀을 마칩니다.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귀한 은혜의 말씀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신 말씀처럼 저희가 날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성도들 가운데 몸이 아픈 분들과 마음이 상한 분들에게 하늘의 치유와 위로의 은총을 덧입혀 주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복 주시고,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 주옵소서. 위정자들에게 하늘의 지혜와 공의를 부어 주셔서 나라를 바르게 이끌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의 크신 은혜가 다가오는 한 주의 삶도 선하게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https://youtu.be/DkRyQaAiS84?list=RDDkRyQaAiS84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