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평저수지 수변산책로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석곤
산으로 갈까 바다로 갈까 망설이다가,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란 고사성어가 생각나서, 오늘은 인자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정오가 한참 지나서야 금평저수지로 달렸다. 가다 맛 집 청원골에 들러 아내와 겸상으로 차려준 검은콩과 검은깨로 만든 수제비를 먹으니, 산책이 더 기대가 됐다.
저수지 곁을 차로 서너 번 지나고 놀다갔는데도 금산사 아래 저수지로만 불렀다. 요즘에사 KBS-TV 뉴스에서 ‘금평저수지’ 란 이름을 듣게 되었다. 또 김제시에서 시민을 비롯한 탐방객에게 여가문화와 휴식공간을 제공하려 저수지 수변(水邊) 산책로를 조성했다는 것도 알았다. 저수지에 도착하자마자 수변산책로에 눈길이 멈췄다. 친구들과 다녀간 지가 꽤 오래 된 게 실감났다.
오늘은 4월 18일. 우리 결혼기념일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결혼식은 거의 휴일에 했다. 그런데 우리는 목요일에 결혼을 했었다. 결혼식 날 요일이 몇 년마다 일치하는지는 모르지만, 올해는 목요일이다. 탐방객이 적었다. 그래도 가족, 친구, 연인, 신혼부터 나이 지긋한 부부 등 탐방객이 저수지 수변산책로를 걷는 모습들이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보기 좋았다.
마을 길섶 민들레가 즐비하게 피어 있었다. 노란, 하얀 꽃들이 오므라들어 꽃대는 둥그런 은빛 털모자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모자의 털은 바람 따라 흔들렸다. 강소천의 동요 ‘종소리’에 나온 가사처럼 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민들레 꽃씨는 멀리 흩날릴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결혼 마흔다섯 돌을 맞은 우리의 삶을 표현한 것 같아 보고 또 보았다.
테크목재 수변산책로를 걸었다. 연분홍 웃음을 띤 꽃잔디가 돌 축대 틈 예서제서 얼굴을 내밀었다. 이웃 개나리도 활짝 웃었다. 철쭉도 잎을 단 빨간 꽃봉오리를 머금고 있었다. 줄서있는 벚나무는 꽃비를 바람에 실어 맞은 편 버드나무한테 보내고 있었다. 꽃비는 사진을 찍는 이들에게는 더 흥을 돋우어 주었다.
산자락 산책길에 들어서니 노란 갈대가 물 가운데서 인사를 했다. 키와 몸집이 큰 나무들이 물에 담긴 채 연녹색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쭉쭉 자란 산죽들도 두 손을 흔들었다. 모진 세월을 지내온 소나무 숲 사이 산책길은 햇볕도 머물러 있어 장관이라 사진을 여러 번 찍었다. 이름 모를 새 한 쌍이 숨어 결혼기념 축하 노래를 불러준 것 같아 더 신이 났다. 조금 경사진 계단을 올라가 멈췄다 내려가니 저수지의 둑과 취수문(取水門)이 나왔다.
저수지는 산으로 삥 둘러싸이고 앞쪽으로 신평 마을을 바라보며 높고 넓고 긴 둑을 자랑하고 있었다. 둑에는 튼튼한 난간(欄干)을 만들어 놓아 누구나 마음 놓고 산책하며 사방에 펼쳐진 정경을 감상하기 좋은 관람석이었다. 봄바람을 타고 일렁이는 파란 물결은 저수지라기보다는 호수라고 불러야 할 성싶었다.
멀리 연녹색으로 뒤덮인 크고 작은 겹겹의 산은 하얀 벚꽃으로 수를 놓고 있었다. 마치 하얀 양떼들이 산 능선을 보고 흩어져 기어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았다. 산에도 봄이 왔음을 알렸다. 멀지 않는 금산사는 보이지 않고, 그 뒤로 푸른 하늘 아래 모악산 정상과 KBS송신탑이 희미하게 보였다.
수변산책로를 출발할 때 우리는 우측 산자락에 보이는 쉼터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그러나 가보니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반대쪽에서 젊은 부부가 싱글벙글하며 오는 게 아닌가? 저수지를 한 바퀴 돌도록 산책로를 만들어 놓은 게다. 김제시에 칭찬의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결혼기념일의 세월이 많이도 쌓였다. 그럴수록 매사에 ‘거기까지만 하자.’고 선을 긋는 것도 많아진다. 쉼터까지만 다녀오기로 한 건 잘한 일이 아니란 걸 느끼며 저수지 수변산책로를 일주했다. 아예 무슨 일이든 선을 긋고 그 너머는 단념하는 것보다는 시나브로 해보는 게 어떨까 싶었다. 오늘처럼 산과 물을 바라보며 더 즐길 수 있으니까.
(2018. 4.18.)
첫댓글 지난 4월 월 초에 우측 다리의 부정맥을 수술하고 친목회 모임이 금평 저수지 안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남자들만 둘레길을 걸었지요 조금만 걷다가 말것이란 나의 생각이 큰 오산이었어요 우측다리 수술한지 한달 조금지났는데 친구들 따라가기가 무척 힘들었지요. 힘겨워 되쳐저서 걸었지만 참 좋은 산책로였어요. 신아문예대학 시인의 창작시가 걸려 있어서 더욱 기뻤어요. 결혼기념일의 추억이 얽힌 구수한 수필 감명깊게 맛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순원 문우님,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수필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