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메시아를 기다리는 이유, 역사의 변혁과 파스카
이사 29,17-24; 마태 9,27-31 / 대림 제1주간 금요일; 2024.12.6.
“악인은 제 악행에 붙잡히고 제 죄의 밧줄에 얽매인다. … 악인에게는 무서워하는 일이 닥치고 의인에게는 바라는 일이 이루어진다.... 주님께서는 간사한 모든 입술과 호황된 것을 말하는 혀를 잘라 버리시리라.”(잠언 5,22; 10,24; 시편 12,4)
잠언과 시편에 쓰여진 성경 말씀처럼, 우리 시대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 격변하고 있습니다. 본질적 요건도 절차적 요건도 갖추지 못한 채 민주 헌정 질서를 짓밟으려던 비상 계엄 정국은 이제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바뀌었습니다. 그야말로 비상 시국입니다. 그런데도 당사자인 윤석열과 여당의 당대표인 한동훈과 원내대표 추경호는 간사한 입술로 현 위기를 모면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대로 정권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안간힘을 쓰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국민과 맞서겠다는 것입니다.
윤석열을 권좌에서 끌어 내려 직무를 정지시키는 일은 해가 바뀌기 전에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가 되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모처럼 국민을 깨어나게 만든 이 동력을 바탕으로 해서, 현 시국을 개헌 정국으로 진화시켜 사회권을 실현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한 단계 도약해야 합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는 메시아가 오셔서 이룩하실 놀라운 변화에 대해 예언합니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던 레바논 숲이 과일나무가 듬성듬성 심겨진 과수원으로 변하고, 또 과수원은 울창한 숲으로 바뀌는 엄청난 변화가 메시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리라는 예언입니다. 하지만 역사적 변화를 암시하는 일종의 비유인 이 예언의 뜻은 자연환경에서 물리적으로 나타나는 그 외적인 변화가 “귀먹은 이들도 책에 적힌 말을 듣고,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는”(이사 29,18), 그러니까 사회적 상황에서 영적으로 나타나는 질적인 변화로 도약하리리라는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변화는 인간 진화의 영성적 도약 현상인데, 이것이 일어날 수 있는 원인은 메시아께서 지니신 신적 권능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불러일으키신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격적 변화의 목표는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보게 되고, 하느님을 거룩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되는가 하면, 하느님의 뜻을 받들게 되는, 본연의 제사요 파스카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실현된 바 있는 이러한 이사야의 예언은 당시 동시대인들의 메시아 대망(待望) 신앙을 반영한 것일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이 대림 시기에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당되는 희망입니다.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은, ‘나와 너’가 각각이거나 심지어 대립하는 적이 아니라 ‘한 몸’임을 깨닫는 자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소박하지만 자기 혼자만의 소망을 간직하고자 하는 우리를 각성시키시고 도약시키시는 영적 사다리입니다. 보편 교회의 초대 교회 시절에 시작된 이러한 자각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이 가르치는 대로 ‘공동체’에서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공동체 안의 그리스도 현존이라는 진리가 지닌 현실적 위력에 대해서는 이미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바가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메시아께서 오셔서 사람들의 믿음을 불러일으키시어 파스카 과업으로 이끄시는 이러한 영성적 도약이 개인으로나 공동체로서나 또 민족으로서나 인류 전체로서나 세례의 본질입니다.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물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영이 내려 오셨으며 하늘에서 그분을 인정하는 소리가 들려왔듯이, 우리가 세례성사를 받을 때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었습니다. 하늘이 열렸으며, 영이 내려 오셨고, 우리 가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서양인들이 이룩한 물질문명은 제도적인 의미로만 세례를 받은 탓에 비인간화와 세속화 현상은 물론 지구 남북반구의 경제 양극화 현상과 생태 환경을 파괴하는 재앙을 초래하였고, 동양인들이 고수해 온 정신문화는 인습적으로만 막연한 영성을 물려받은 탓에 사회 체제가 정치적으로 전근대적인 봉건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경제적으로는 불평등해서 대다수 주민이 빈곤하게 살아야 하는 처지를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洋)의 (東西)나 피부색을 막론하고 또한 신봉해 온 종교나 물려받은 문화적 양식에 관계없이 사랑의 문명을 이룩해야 할 새 인류로 거듭 나야 합니다. 그러자면 하느님으로서 사람이 되신 예수의 신성이 사람들 안에서 빛을 발해야만 하고, 이는 먼저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가 그들이 눈높이에서 알아보고 알아들을 수 있도록 증거를 해야 하는 과업입니다. 이것이 메시아 도래와 파스카 과업의 역사적인 뜻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가톨릭교회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눈먼 이들이 청했던 기도를 미사에 도입하였습니다. 바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는 청원 기도입니다. 우리도 미사를 시작할 때마다 이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청원 기도가 들어질 수 있는 요체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다고 믿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진정으로, 그리고 우리 자신의 투신 각오를 담아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해야 우리가 믿는 대로 눈을 뜰 수 있고, 귀가 열릴 수 있으며, 혀가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레바논의 자연에서 일어나는 외적인 변화 현상을 통하여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 이룩하실 내적인 변화 현상을 예언한 이사야의 예언자적 상상력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이사야가 예언해 놓은 바를 더욱 놀라운 신적 권능으로 입증해 보이신 예수님의 자비를 믿어야 합니다. 2천 년 전에는 겨우 눈먼 사람 둘의 눈을 뜨게 해 주시어 사물을 보게 하셨을 뿐이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훨씬 더 많은 신앙인들 안에서 현존하시며 활약하시는 지금에는 우리 자신을 포함한 겨레와 인류 모두를 눈 뜨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의 신성이 지닌 놀라운 권능입니다. 이것이 이 대림시기에 우리를 위하여 마련된 성령의 세례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늘을 열어 놓으신 하느님, 당신의 영을 땅에 내려가게 하시어 우리에게 부어 주실 준비를 마치신 하느님께서 우리가 하느님의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역사를 변혁하여 파스카 과업을 이룩하라는 소명을 자각하는 것이 우리가 메시아를 기다리는 잉 입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화답송 후렴. 시편 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