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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개혁포럼
 
 
 
카페 게시글
……… [자유 게시판] 스크랩 뉘 탓이냐 / 함석헌
어린양 추천 0 조회 118 14.04.20 08:17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뉘 탓이냐 / 함석헌

이게 뉘 탓이냐
비단에 무늬를 놨다는 이 강산에
다섯 즈믄 겹 쌓아 솟은 바람터에 올라
보이느니 걸뜬 피뿐이요
들리느니 가슴 내려앉는 숨 소리뿐이요
맡아지느니 썩어진 냄새뿐이요
그리고 따 끝에 둘린 안개 장막 저 쪽엔
무슨 괴물이 기다리고 있는지
그건 알지도 못하고
그러다 그러다 가게 됐으니
이게 뉘 탓이냐

신선의 산이라 했다는 걸
군자국(君子國)이라 했다는 걸
예의지방(禮儀之邦)이라 했다는 걸
집엘 가도 안을 자식이 없고
길을 걸어도 손 잡을 동무가 없고
오래 거리를 다 뒤타도
이야기를 들을 늙은이를 볼 수 없고
봉 사이, 물결 위에는 스스로
달 바람이 맑고 밝건만
듣고 볼 사람이 없으니
이게 뉘 탓이냐
뉘 탓이냐
어느 뉘 탓이란 말이냐
네 탓
내 탓
그렇다 이 나라에 나온 네가 탓이요
그 너 만난 내가 탓이다
무얼 하자고 여기를 나왔더냐

아니다 탓이람 그 탓이다
애당초에 그이가 탓 아니냐
무얼 한다고 삼위(三危)요 한배(太白)요
그냥 계시지 못하고 홍익(홍익)이니 이화(이화)니
부질없이 이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신단 말이냐
그 탓이다 그이가 탓이다
그 한 탓에 이 노름이다

이게 뉘 탓이냐
가없고 변저리없는 아득한 한 누리에
둘은 없는 묵숨불 탔다면서
소리를 지른 것이 목구멍에 잠기고
뛰어 본 것이 그림자 위에 되떨어지고
생각을 한 것이 살얼음 틈에 녹아나
하늘 가에 맴도는 조롱박 속에서
콩알처럼 흔들려 바사지게 됐으니
이게 뉘 탓이냐

나를 본 자 아버지 본 거라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라 높다
네 자신을 알아라
하늘이 내게 속알을 주셨다
거룩하게 거듭거듭 일러는 주셨건만
불이란 불은 다 불다간 꺼졌더구나
물이란 물은 다 흘러선 흘더구나
바람조차 불다가 불다간 돌아도더구나
종교요 과학이요 두루 캔 뒷 끝은
싹 트는 알 하나의 하품에 놀라
공든 탑보다도 말 먼저 무너져
얼굴이 파랗게 질리게 됐으니
이게 뉘 탓이란 말이냐

뉘 탓이냐고
개인 탓, 사회 탓,
물질 탓, 정신 탓,
그렇다 산 내 탓이요 있는 너 탓이다
뭐 탓다고 이 곤두박질이겠느냐
어떻다고 이 가슴 답답한 냄새겠느냐

아니야 너도 아니오 나도 아니야
제 탓이람 차라리 쉽지만
있자 해서 있는 인생이더냐
없자 해서 없는 자연이더냐
탓이람 그의 탓이다
그가 애초에 탓을 일으키셨다
말씀(뜻) 낸 것이 말썽의 탓 아니냐

영원의 두루뭉수리 그냥을 품고
늙은 암탉처럼 업디는 아버지를
무엇 하자 가만 아니 두고
그 날개를 들치고 나오셨을까
밑 모르는 캄캄 빈 탕에 아로새김을 하자
열쌔고 거세게 슬프게 나서는
한 줄기 외론 따뜻한 빛
아이들은 가만 못있는 것
가만 아니 계신 아들 탓이다
그저 계시면 그저 하나이신 걸
한 번 번쩍 나선 탓
위는 영원한 눈도 깜짝 못하는 쌈이
버러지니, 천지요 만물이요 역사였더라

그러나 아아
삼켜도 삼켜도 삼켜 낼 길 없는 어둠을
삼키려 드는 칼날 같은 그 맘을
누가 아느냐 누가 받느냐
모든 탈의 탓의 탓의 또 탓으로
타고 탓고, 타고 탄, 또 타고 탈 그 탐

아아 그 한 맘의 끝이
쇠도 아니 드는 어둠이 맨바닥 위에
아버지 그린 얼굴을 그린다고
좇고 좇다가
한 몸이 다 탓구나
인젠 그 탓을 빛 지울 곳도 없고
번쩍 탔던 그 순간 그는
단번에 만물을 불러내어
아버지 모습을 그 모든 위에 지져 박았고
네 탓, 내 탓, 육 탓, 영 탓, 안 탓, 모른 탓
모든 탓이 거기 죄 다 탔으니
아무 탓도 아무 탈도 아무 탄도 할 곳 없는
다만 빛의 나라뿐이로다 

 

- 시집 『수평선 너머』(한길사, 1983)

................................................................................ 
 

 "자아에 철저하지 못한 믿음은 돌짝밭에 떨어진 씨요, 역사의 이해 없는 믿음은 가시덤불에 난 곡식이다" 부활절을 하루 앞둔 4월 19일 밤에 다시 듣는 함석헌 선생의 말씀이다. 1970년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면서 천하의 씨알이 다 소리를 내기 위해서 이 책을 창간한다면서 그 구체적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이 잡지를 내는 목적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 사람이 죽는 일입니다. 씨알의 속에는 일어만 나면 못 이길 것이 없는 정신의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어나라는 명령을 받아야지. 누가 명령하나? 하나님 혹은 하늘이 하지. 옳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입을 빌어서 하십니다. 하나님의 입은 사람의 입에 있습니다. (중략) 둘째는 거기 따라오는 것인데 더 중요한 것입니다. 유기적인 하나의 생활공동체가 생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장준하 선생의 <사상계>와 더불어 이 땅의 비판적 지식인과 씨알들의 대변지 역할을 담당했던 <씨알의 소리>, 지난 시절의 문화적 추억으로 덮어버리기엔 현실이 너무나 신산스럽다. 선생께서는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역사를 지을 수 있다."라며 '생각하는 백성'을 그토록 강조하셨지만, 지금 이 나라에는 생각이 아예 없는 사람, 흐리멍덩하거나 불량한 사람들로 인해 수시로 귀한 생명이 죽어가고 그때마다 백성들을 절망과 비탄에 빠트렸다. 선생께서 말씀하신 '생각'은 단순한 의식 작용만이 아니었고 종교의 진리 인식에까지 이르는 넒은 의미다. 그리고 '지행합일' 생각과 실천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곧 실천이었던 게 함석헌의 '생각'이었다. 이번 여객선 사고에서 세월호의 운항관계자는 물론이고 관계부처 공무원들의 행태를 보면 과연 '생각'이란 게 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대책본부'의 현수막이 나부끼고 완장들이 돌아다녔지만 난맥상만 드러낸 채 '대책'은 실종되었고, 설령 대책이 세워졌다 하더라도 '실천'은 미흡했고 효과는 거의 없었다. 수많은 '탓'들이 도마 위에 올라와 잘근잘근 칼질을 당했다. '뉘 탓이냐고 개인 탓, 사회 탓, 물질 탓, 정신 탓, 그렇다 산 내 탓이요 있는 너 탓이다' 정말 이번 사고를 계기로 우리 모두 대오각성하지 않는다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또 전과 다름없이 이대로 잊혀져갈 것이다. 선생은 우리 역사에서 자아를 잃어버렸다는 일, 자기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는 이 일이 백 가지 병, 백 가지 폐해의 근본원인이 되고 나를 잊었기 때문에 이상이 없고 자유가 없고 진정한 행복이 없다고 진단하셨다. 일체의 땅위에서 일어나는 삶, 그 자체 속에 스며든 고난의 비애가 뉘 탓으로 비롯되었는가를 눈꺼풀에 힘을 주어 눈을 질끈 감고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선생께서는 "고난은 인생을 깊게 만들고, 고난을 견뎌냄으로써 생명은 한 단계씩 진화한다."라며 고난을 생명의 원리로 파악하기도 하셨지만 도무지 지금의 참담함과 이 고통은 생명의 거름이 될 것 같지가 않으니 말이다. 이 비참한 현실이 뉘 탓일까. 너의 탓이기도 하고 나의 탓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탓이기도 하고 역사의 탓이기도 하며 국가 시스템의 탓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물질과 이기의 탓이며 협량한 정신의 탓이다. 앞으로 더는 이같은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역사와 사회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겠다. 이 와중에도 이해득실이나 따지고 얍삽한 꼼수로 선거운동에 이용하려 드는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을 가만히 내버려두고는 한치 앞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몇몇 관계자 문책에 그쳐서는 안 될 일이며,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자기 안의 정신적 혁명을 이뤄내지 않고서는 '아무 탓도 아무 탈도 아무 탄도 할 곳 없는' 부끄러운 나라로 남을 뿐이로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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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4.20 09:02

    첫댓글 한마디로ㅡ
    어이할꼬 입니다.
    이 나라 이 국민들이 지금 무엇에 사로잡혀가고 있는지를 냉철하게 들여다 볼것입니다.

    한강의 기적이란 물질의 풍요를 주었더니ㅡ
    그 돈에 환장들이 걸려서 먼저 먹는놈이 임자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터넷을 주었더니 너도나도 헤집는 일에 혈안들이 되어 온통 불신과 비판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눈만 뜨면 무슨 꼬투리 잡을 일은 없나하는 하이에나 처럼 썩은 냄새를 좇아 바쁜영혼들ㅡ

    사단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이 사단의 지혜에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초토화 당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단의 일이 물질 곧 돈이란 악의 매개물로 우리를 유린하고 있습니다.

    눈이 밝음으로 손익개념으로 무장됨!

  • 작성자 14.04.20 20:28

    정치인이건, 종교인이건, 장사꾼이건, 교육가이건, 군인이건, 경찰이건, 일반 백성이건 모두
    대오각성해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참사를 당하지 않으려면.....

  • 14.04.20 20:46

    @어린양 그렇습니다.
    전 국민적인 타락입니다.
    너나할것 없는 난세입니다.
    어디에 진실이 있습니까?
    어디에 진정이 있습니까?
    다 파괴주의 자들이요.
    호박에 구멍내는 악 취미자들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돈이 주범입니다.

  • 14.04.21 13:40

    함석헌이라면 퀘이커교도잖습니까..
    어린양님께서 굳이 이런 글을 퍼오실 필요가 있을까요..

  • 작성자 14.04.21 13:50

    저도 함석헌 선생이 종교다원적 사상을 가진 분이요, 퀘이커에 속한 분인 걸 압니다.
    그러나 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 14.04.22 09:53

    퀘이커교도는 못된 넘들인가요?????

  • 14.05.09 11:58

    @서로기뻐해 못됬다는게 아니라 이단사상을 갖고 있는 집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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