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그림 자료실을 검색해 보니 추승균 선수의 자료가 하나도 없고,
또 예전에123456789101112 님의 부탁도 있었고 해서,
추승균 선수의 영상을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15시즌을 뛰며 역대 최다인 5개의 우승반지와 함께 올해 초에 은퇴를 했지요.
아래 영상들은 95-96 농구대잔치 때 고려대를 상대로 한양대의 추승균이 묵묵히 활약하는 모습입니다.
연장전까지 간 접전이었고, 추승균과 전희철이 주거니 받거니 맹활약을 했던 명 경기죠.
1. 파워 돌파
추승균은 오른손 잡이이지만 왼쪽 돌파를 즐겨했고 더 편안해 했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왼쪽으로 돌파할 때 더 다양한 기술이 나오고 몸에 힘도 더 실린다는 느낌을 항상 받았거든요.
워낙 하드웨어가 좋은 선수였죠, 상체의 근력이나 하체의 힘이나... 조용하면서 강했던 남자.
위 영상에서도 한 번은 왼손으로, 다른 한 번은 오른손으로 상당히 어려운 돌파를 성공시킵니다.
2. 안정된 패스워크
절대 화려하지 않았지만, 상대 수비진의 허를 찌르는 패싱이 많았죠.
슛을 하는 모션에서 오픈된 골밑 팀원에게 킬 패스, 또는 속공 상황에서 노-룩 패스....
추승균 선수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농구에서 기본기가 얼마나 중요한가?'였습니다.
'소리없는 리더쉽'으로도 유명한 그답게 소리없이 패싱으로만 팀을 이끌 때도 정말 많았습니다.
3. 정확한 미드레인지 점퍼
추승균 선수의 게시물에서 빠질 수 없는 것, 바로 그의 점프슛이죠.
코트 어느 위치에서나 안정된 자세로부터 터져나오는 그의 점프슛... 수비수들로선 공포의 대상입니다.
총 1만 19득점으로 정규리그 통산 2위에 빛나는 그의 많은 득점들이 바로 이 점퍼에서 파생됐지요.
포스트업 상황에서의 기운찬 턴어라운드 점퍼도 추 선수의 장기들 중 하나였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슈팅이고, 쉽지 않은 자리였어도, 무난한 슛인 것처럼 보이게 한 특별한 재주의 소유자.
78:78로 마쳐지며 연장전에 돌입한 이 경기는 결국 95:85 고려대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전희철이 35득점, 10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추승균이 31득점, 7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각각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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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기아를 응원하던 입장이어서... 추승균... 조성원...;;;
바클리? 댄틀리? 당장 생각 난 두선수가 마침 언더사이즈네요.
노비츠키와 멜로도 오른쪽보다 왼쪽 돌파를 더 선호하죠
티맥이 오른손인데 왼쪽을 선호한다고 본인 입으로 말한 기억이 나네요. 원래는 오른쪽을 더 잘하고 편했는데, 양쪽이 차이가 없도록 연습하다보니 오히려 왼쪽이 더 좋아졌다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자유투 1위만 6번인가 했을 걸요?
추승균 다시 보고싶네요 ㅠㅠ
포지션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지만 추승균 보면 왠지 팀 던컨이 생각납니다.
동감입니다.
절친중에 추씨가 있는데, 그 놈이 항상 요즘 농구선수 중에 '추승균' 잘 한다고 얘기했었는데... 아마 추승균 대학선수였을 때 일겁니다. 진짜 위에 Dennis Johnson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던컨같은 이미지가 있어요. 듬직하고 묵묵한데 '추겨털'같은 개그 짤방도 많고...
그이 미들으 볼 수 없다는 것이 ㅠㅠ
소리없이 강한 남자
추승균 미들은 듬직해서 좋았음..ㅎ
자유투는 물론이고 전성기때 점프슛쏘면 그냥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잘넣었죠.
저도 대학시절 한양대 혼자 이끌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특히 자유투 라인정도에서 풀업점퍼는 정말 정확했거든요. 팀공격을 전체적으로 이끌기도 했고 연고대 잘나갈때지만 그팀들의 에이스와 경쟁하던 선수...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입니다. 추승균 하면 미들슛과 함께 수비력도 빼놓을 수 없죠.
전태풍선수가 인터뷰에서 같이 뛸 때 가장 편한 선수로 추승균선수를 지목했었죠. 농구를 알고 하는 몇 안 되는 선수이고 패싱게임에 워낙 능한 선수이기 때문이죠.
파워풀한 포트업에 당해낼 국내선수는 없었던것 같습니다....미들슛 1등!
제일 좋아하는선수에요~ 닥터제이님 게시물로 접하니까 더 좋네요. ㅎㅎ
연세대로 갈수있었으면서도 더 많은 출장기회를 가지고 싶어서 한양대로 갔다고 하더군요.대학진학을 앞둔 선수들중에서도 이런 멘탈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더 많았으면 합니다..과거 조성원도 고대 진학이 가능했는데 실력이 부족했던 자신을 고교농구팀에 들어갈수 있게 도와준 친구들을 위해 명지대로 진학했다고 들었습니다..그 결과 더 많은 출장기회는 잡았다지만(당시는 별로 못하셨던 기억이..) 학교간판보다 자신을 위해서 더 좋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마인드도 정말 중요한듯해요..추승균과 조성원..재밌게도 둘이 최강슈터콤비였네요..전 아직까지도 조성원만큼 아름다운 더블클러치를 보여준 선수는 보질 못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마인드의 소유자!
확실히 농구를 포함한 모든 운동선수에게만큼은 용의 꼬리보단 뱀의 머리가 낫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조성원, 추승균 정도의 클래스를 지닌 선수들이 용의 '꼬리'가 되지는 않았겠지만요.
은퇴햇던 스타일이나 대학때나 다른게 업네요 그때부터 소리없이 강했네요 ㅎ
소리없이 강한 남자
추사마...어릴적 형네집 놀러왔던 기억이...
의리도 있는 선수입니다~
우승반지가 해병대 반지와 닮았네요. ^^
미드레인지 슈팅만큼은 한국농구 역대 탑3라고 생각합니다.
추승균선수의 위상은 학교다니면서 많이 느꼈었습니다. (저도 한양대 출신이라..)
한양대가 사실 배구로는 명문인데 반해, 농구는 좀 쳐졌었죠. 그래도 93년부터 96년 까지는 그래도 추승균선수가 있어서 괜찮았다고 하더라구요.
강팀은 아녔어도 만만한 팀은 아닌 다크호스의 이미지?
제가 입학하던 때부터 추승균선수가 딱 프로가 되서... 한양대는 대학농구에서도 좀 찬밥이 됐었습니다. (나중에 양동근이란 걸출한 가드가 나와서 좀 나아졌지만...)
당시인 97년 ~ 2000년 초반에는 중앙대가 최강였고, 연고대가 그 뒤를 따라갔는데, 그 뒤에 경희대, 한양대, 성대 뭐 이랬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어찌보면 전형적인 약팀의 에이스였고, 그래서인지 대학시절엔 실력만큼 입상은 못했죠.
오히려 프로시절과 각종 국가대항 경기에서는 제 몫을 해주고, 인정까지 받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추승균선수와 같은 포지션에 비슷한 역할을 했던 김영만, 양희승, 우지원, 양경민 같은 뛰어난 선수들이 있었지만,
선수생활 내내 가장 오래 또 가장 제 몫을 해줬던 선수가 추승균였다고 단언합니다.
국가대표로 뽑혀 활약하는 모습은 잘 보지 못했는데, 국제대회에서의 모습은 어땟나요?
7년 정도 대표선수에 발탁된 것 같은데... 큰 활약은 없었습니다.
최전성기 시절엔 동 포지션에 문경은이 버티고 있었고요.
98년 세계 선수권 나이지리아 전에서 미드레인지 점퍼 두 개 꽂은게 기억나네요.
전주에 자랑 ㅋㅋ
한양대 원맨팀하던 시절이군요 ㅎㅎ
어릴때 가장 조성원과 더불어 가장 싫어하던 선수
기아 응원할때 이상민은 별로 안무서웠는데 두 명은 너무 무서웠습니다.
추사마! 저도 어렸을적에 어린 마음으로 기아를 응원했는데 정말 잘한다라는 느낌을 줬었죠. 그리 화려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돌파와 점퍼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게 상대편이어도 멋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