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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최후의 희망으로 불렸던 장군, 제12군 사령관 발터 벵크 기갑대장.
안 온다고
영화 <몰락>에서 히틀러가 애타게 찾아대는 데에 비해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지도가 매우 낮은 장군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베를린 공방전에서 활약한 장군이라는 사실 외에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대체 왜죠? 저도 정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와 능력을 보면 평전이 사실상 딱 한 권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국내 2차대전 대체역사물에서도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점도...
별명: 상사조, 벵크 압바, 베베(Wewe)
하지만 발터 벵크 붐은 온다. 더 많은 사람이 이 청년(?)에게 관심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소개를 해보겠습니다.
이거 나무위키 복붙 아니냐? 하고 불만을 품으신다면... 어쩔 수 없기는 한데 얘 위키를 제가 써서요.
발터 벵크는 1900년, 비텐베르크 소재 보병연대의 연대 부관 막시밀리안 벵크 중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벵크 집안은 덴마크 폰씨로, 18세기부터 대대로 군인을 배출한 집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대부터 덴마크군이 아닌 독일군에서 복무하면서 덴마크 귀족 작위를 반납하게 됩니다. 위로는 마찬가지로 군인인 형이 둘 있었습니다. 1896년생 장남 헬무트와 1898년생 한스울리히는 모두 제1차 세계대전에 장교로 참전했고 전사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바로 군사교육을 받은 벵크의 사관학교 성적은 처참했습니다. 형들이 다녔던 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사교성과 대인관계는 좋지만 산만하고 공부에 전혀 집중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교관들에게 자주 받았죠. 어릴 적에는 몸도 약한 편이라 체력 훈련을 따라가는 것을 어려워했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실력도 미진하다는 지적을 받은 과목은 독일어, 라틴어, 영어, 작문, 수학, 과학, 종교학... 일과 중에도 계속 감시하거나 쪼지 않으면 산만해지고, 자꾸 이상한 실수를 하거나 뭔갈 빼먹는 경향이 크며 질책받을 때 괴상한 핑계를 지어낸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성적 문제로 유급을 두 번이나 당한 벵크는 결국 제때 졸업하지 못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도 못합니다. 종전 때까지 학교에 다녀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베르사유 조약 때문에 독일 내 사관학교 교육 자체가 금지될 낌새가 보이자, 벵크는 냉큼 학교에서 도망쳐 자유군단에 상병으로 입대합니다. 복무 기간 자체는 짧았지만, 당시 부상을 입으며 복무 기록을 남기고 하사관으로 진급한 덕분에 '전선 복무 경험이 있는 군인'으로 대우받아 아슬아슬하게 바이마르 국가방위군에 속할 자격을 받습니다.
1차대전 동안 중령까지 진급하며 전선에서 복무했던 벵크의 아버지는 막내아들이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 공황에 빠졌습니다. 장남과 차남도 전사했는데 막내까지 실종되었으니... 다행히 동료 하나가 벵크 중령에게 아들을 봤다고 알려줍니다. 아버지는 벵크를 잡으러 뛰쳐갔고, 마침 주둔지 보초를 서고 있던 벵크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출입을 금지시킵니다. 다른 병사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이 사람이 제 아버지라고 주장하는데, 신분증이 없어서 출입을 금지시켰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직후 대대장에게 잡혀가 전역당했고요. 벵크 중령은 아들이 소지하던 총을 뺏은 후 사관학교로 끌고 가서 교관인 대위에게 이 자식 가둬 놓고 학교부터 졸업시키라고 고함을 칩니다. 아들 벵크는 탈영죄로 5시간짜리 징계를 받게 됐지만, 징계실에 도착하자마자 교관에게 나가겠다고 선언한 후 창문으로 빠져나가 도망칩니다.
아기 불효자 (1919년)
벵크는 이전에 있던 군단으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었으니 다른 군단을 찾아 갑니다. 그런데 마침 그 부대 사령관이 아버지와 아는 사이였습니다. 사령관은 벵크에게 군에 남는 장교 후보 목록에 넣어줄 테니 일단 집에 다녀오라고 말합니다. 시키는 대로 집에 가자 아버지는 졸업장도 없는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벵크는 부대로 복귀했고, 곧장 뮌헨 보병학교 입학 허가장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벵크는 신나서 아버지에게 편지로 군대에 남을 테니 일자리 같은 건 알아보지 말라고 써서 보내버립니다. 그리고 1921년 소위로 보병학교에 입학하지요.
벵크는 재학 중인 1922년에 하인츠 구데리안을 처음 만납니다. 그를 처음 만나고 한 방 먹었다고 회고할 정도로 인상적인 첫만남이었던 모양인데, 정작 구데리안은 회고록에서 벵크와의 첫만남이 1929년이었다고 씁니다. 어쨌든 벵크는 사관학교 시절 바닥을 기던 성적과 달리 졸업 시험에서 총 62명 중 25등이라는 성적을 받습니다. 기특해라! 그리고 제9보병연대로 배치받습니다. 1928년에는 중위로 진급하고 해당 연대의 3대대 부관으로 근무하게 되죠.
부관 일 하는 중
10여 년을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만큼 흥미로운 일화가 여럿 있는데, 부관으로서 대대 재정을 담당한 벵크는 대대장이 키우던 양의 털을 팔아서 주둔지에 수영장을 짓고 민간인에게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돈을 열심히 모아 대대장 전용 차량과 사이드카 달린 오토바이를 마련했습니다. 오토바이는 본인의 사심에 가까웠던 듯한데, 나중엔 대대장을 오토바이로 모시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당시 벵크네 대대장으로 있던 인물 중 하나가 에른스트 부슈였습니다. 그리고 1929년에 합동 훈련에서 벵크를 본 후 눈도장을 찍어 뒀던 구데리안이 부슈에게 접근해 벵크를 내놓으라고 합니다. 벵크는 가기 싫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부슈가 그를 구데리안에게 보내버렸다고 합니다. 다행히(?) 둘은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1943년에 부슈가 벵크에게 보낸 편지가 인상적인데, 그 통통하던 뺨이 다 어디로 갔냐고 적은 부분이 있어요. 아기 취급이죠 완전.
벵크는 1932년부터 구데리안과 일하기 시작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총애를 받았지요. 1934년에 있었던 훈련에서 오토바이 부대를 아주 멋지게 보여줬는데, 당시 군에 오토바이를 납품하던 BMW에서 우리 오토바이를 멋지게 보여준 것에 감사한다며 시계를 하나 선물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구데리안은 아끼는 부하를 참모장교로 만들겠다고 전쟁대학 입학을 권유합니다. 사실 벵크는 제9보병연대 시절에 입학시험을 봤는데 떨어진 전적이 있었어요. 구데리안은 시험을 접수해 놓고, 치러 가기 싫다는 벵크를 잘 어르고 달래서 전쟁대학에 합격시킵니다.
이 시기에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전쟁대학 재학 중 오토바이를 몰면서 과속을 하다 교통사고를 내는 바람에 학교에서 조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나 심각한 기물파손은 발생하지 않아 징계는 무마되었다네요.
졸업 후에는 한스 폰 젝트의 부관이 되지요. 젝트는 벵크를 아주 예뻐했습니다. 한 번은 벵크가 새 연미복이 아주 잘 어울린다고 추켜세우자 그렇게 마음에 들면 나 죽고 네가 가지라고 말한 적도 있고, 실제로 유언장에 연미복을 벵크에게 주라고 적어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젝트가 죽고, 구데리안이 별을 달자 다시 구데리안의 참모부로 편입. 당시 참모부 명단이 참 화려합니다.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발터 벵크, 발터 네링, 헤르만 발크... 벵크는 1938년 안슐루스 때 구데리안과 같이 차를 타고 빈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소령 진급 후 제1기갑사단장 키르히너 장군의 작전참모가 됩니다. 그 보직 그대로 1939년 폴란드 전역, 1940년 프랑스 전역,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에 참전합니다.
1939년) 남부집단군(룬트슈테트) 제10군(라이헤나우) 제16군단(회프너) 소속.
1940년) A집단군(룬트슈테트) 제1기갑집단(클라이스트) 제19기갑군단(구데리안) 소속.
1941년) 북부집단군(레프) 제4기갑집단(회프너) 제41기갑군단(라인하르트) 소속.
폴란드 전역 당시 (1939년)
폴란드에서 철십자장을 받고, 프랑스에서는 벨포르 요새 점령을 주도한 공을 인정받아 중령으로 진급합니다. 프랑스 전역에서 부상을 당해 전상장을 받기도 하지요. 사단장 키르히너 장군은 풀밭에 누워 있다가 지휘차량 앞바퀴에 무릎을 밟혀 다친 후 지도 옆에 누워서 회의를 진행하던 참이었는데, 부대에 다친 장교가 한 명 더 생겼다는 사실에 무척 기뻐했다고 하네요. 벵크는 언제나 상관 부하를 막론한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제1기갑사단 장교들과 병사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전후에도 당시 부대원들과 계속 연락하고 지냈지요. 부대 좌우명으로 쓰이던 'Auf los geht's los - Los!' (적당히 의역하면 가보자고! 쯤)도 벵크가 폴란드 전역 출전 당시 명령을 내리며 쓴 맺음말이 유행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벨포르 점령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얽혀 있습니다. 5월 말에 부대 편제가 바뀌면서 구데리안이 기갑집단 사령관이 되고, 제1기갑사단은 제39군단(슈미트)를 거쳐 구데리안 아래에 속하게 됩니다. 군단 사령부에서 정해 준 목적지에 도착한 벵크는 연료가 남아 진군을 계속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는 사단장에게도 알리지 않고 단독으로 휘하 부대에게 진격 명령을 내립니다. 덕분에 벨포르 요새를 몇 시간 내로 점령할 수 있었지요. 구데리안은 즉시 그리로 달려가고, 벵크는 꼭두새벽부터 도착한 상급대장을 맞이합니다. 사단장은 새 사령부로 삼은 호텔 욕실에서 씻고 있었습니다. 구데리안은 키르히너가 씻고 싶어하는 심정을 이해하니 재촉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만 벵크는 장군을 불러내겠다며 호텔 밖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지나가던 대공포를 붙잡고 호텔 입구에서 아직 점령하지 않은 프랑스군 요새 방향으로 발포하라고 명령합니다. 식사를 하던 구데리안이 포격음에 화들짝 놀라 두리번거리는 사이, 키르히너는 적습인 줄 알고 목욕 도중 뛰쳐나왔다가 구데리안과 마주칩니다. 쫄딱 젖은 채 옷도 입지 못하고... 구데리안은 실컷 웃었다지요.
동부전선에서 복무할 당시에는 옆 부대에 제1기갑사단 군수참모였던 요한 폰 킬만세크가 참모로 있었는데, 그와 무전을 주고받을 때 계속 라임을 넣어 통신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통신장교들 사이에서 언어유희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그 탓에 소련군 측에서 통신을 도청하고 해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1942년 2월에 갑자기 베를린 전쟁대학 교관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교관 일을 하면서 대령으로 진급하게 되고요. 반 년간 아주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며 굉장한 인기를 끌죠. 어딜 가나 인기가 많았지만 학생들은 특히 그를 좋아하며 '파피 벵크'라고 부르고, 교직을 그만두고 전선으로 다시 배치받을 때 벵크를 위한 몇 페이지짜리 헌정시를 써서 선물했습니다. 참고로 당시 구데리안의 아들 하인츠귄터 구데리안도 교관으로 있었답니다.
그리고 벵크는 다시 동부전선에 투입됩니다. 이번에는 제57기갑군단 참모장을 맡았습니다.
A집단군(사령관 부재) 제17군(루오프) 소속.
그리고 스탈린그라드 사태가 터집니다. 천왕성 작전 이후 루마니아군이 와해되기도 하고요. 벵크는 별안간 제3루마니아군 참모장을 맡으라는 명령을 받고 파견을 나갑니다. 병사들은 전부 뿔뿔이 흩어진 데다 무기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다시피 한 상태였습니다. 그 와중에 방금 돈 집단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만슈타인은 벵크에게 책임지고 로스토프 전선을 사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벵크가 무슨 부대로 그걸 지키냐고 물으니 만슈타인은 '그건 나도 모르겠고 자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라고 답합니다.
그래서 벵크는 머리를 굴리다가 선전부대에게 길가에 극장을 하나 세우고 영화를 상영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지나가던 병사들이 기웃거리면 그대로 잡아다 무기를 쥐여 주고는 부대에 넣어버리는 방식이었죠. 또는 버려진 연료 보급소를 발견하자 공병대를 시켜 가까운 길가에 '연료 보급 지점으로 가는 길'이라는 푯말을 세우게 합니다. 병사들이 연료 보충을 위해 자동차든 트럭이든 뭐든 끌고 오면 그걸 빼앗아서 부대 차량으로 사용했습니다. 호트 장군의 부대로 가기로 되어 있는 전차들도 보급소에 도착하자 점검하겠다고 멈춰세운 다음 '장비 불량' 명목으로 몇 대씩 빼앗아서 기갑부대를 하나 만들어버립니다.
비밀로 남았어야 할 이 강도 사건(?)은 한 참모가 실수로 치르 강에서 벌어진 접전을 보고하며 '우리 기갑여단'이라는 말을 흘려 버리며 집단군 사령부에 알려집니다. 만슈타인은 즉시 벵크를 불러내서 없어야 할 기갑여단이 어디서 굴러나왔냐고 따지지요. 벵크는 당당하게 '원수님이 알아서 잘 로스토프 전선을 사수해보라고 하셔서 알아서 잘 해봤다'라고 말하고 그래도 마음에 안 드시면 군사재판에 넘겨보시라고 답합니다. 만슈타인은 어이없어하면서도 그의 상황을 이해해주지만 도둑질은 당장 그만두라고 부하를 혼냅니다.
루마니아군은 어찌저찌 수습한 후, 그 해 말에 홀리트 분견군의 참모장이 됩니다. 이 즈음 드디어 소장을 달게 되지요. 제3차 하르코프 전투 종료 이후인 1943년 3월 15일부터는 제1기갑군(마켄젠, 43년 10월에 후베로 교체) 참모장으로 복무하고, 44년 3월부터는 A집단군(쇠르너) 참모장이 되고 중장 진급을 합니다. 그리고 1944년 7월 20일 사건이 발생하고, 하인츠 구데리안이 육군 참모총장이 되지요. 7월 21일 밤, 벵크는 사령부에서 부관과 히틀러의 발표를 라디오로 듣고 있었습니다. 히틀러가 구데리안을 새로 참모총장에 임명했으며 동부전선에서 검증된 장군을 오른팔로 붙여줬다고 말하자, 벵크는 부관에게 저 불쌍한 친구가 누구일 것 같냐고 물었습니다. 부관은 장군님일 것 같다고 말했고, 다음날 벵크는 정말로 불려가고 말았습니다.
1944년, 벵크와 후베와 만슈타인. 체르카시 포위전 즈음으로 추정합니다.
구데리안은 벵크를 정말 아꼈습니다. 일례로 참모차장 부임 직후, 벵크가 그에게 입대 이래로 처음으로 오토바이가 없는 보직이라고 말하자 구데리안은 바로 하나를 '전격 수송'으로 구해다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는 정말 얼마 후 새 오토바이를 선물합니다. 벵크는 신나서 그걸 끌고 그대로 총통 사령부까지 질주합니다. 히틀러가 시끄러운 소리를 싫어해서 장군들은 모두 차량을 멀찍이에 대 놓은 후 걸어가야 했는데, 벵크는 당당하게 오토바이를 몰다 걸어가는 상관 떼거리(카이텔, 요들, 되니츠, 괴링)가 길을 막자 경적을 울리고 놀란 장군 떼거리가 옆으로 펄쩍 물러나자 갈 길을 갑니다. 괴링은 부들부들 떨며 그를 혼내려고 했지만 때마침 나온 히틀러가 그 광경에 감격하고(...) 벵크는 냉큼 앞으로도 오토바이로 오겠다는 허락을 받아 냅니다.
1944년. 구데리안의 휑한 정수리와 영끌한 머리털이 너무나도 안쓰럽습니다...
하지만 참모총장과 사적으로 친한 것과 업무강도는 별개였습니다. 육군 참모총장 구데리안은 육군 총사령관 히틀러와 매일 대면하고 회의를 해야 했는데, 두 사람 모두 고집이 더럽게 센 인간들인지라 매일같이 싸워댔습니다. 구데리안은 가끔 히틀러 때문에 짜증이 나면 회의에 가지 않고 벵크를 대신 보내서 시위하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히틀러가 벵크를 아주 좋아했다는 사실? 처음 히틀러 앞에서 상황 보고를 할 때, 벵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총통 각하, 동부전선 전체가 스위스 치즈 같은 게 보이십니까? 전선에 구멍이 너무 많죠."
카이텔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벵크를 불러내 말투에 대해 훈계하고, 벵크는 시정하겠다고 답한 후 다음날부터 아주 진중하고 침울한 어투로 보고하기 시작했습니다. 히틀러는 벵크에게 왜 생기를 잃었냐고 물었고, 벵크는 카이텔 원수가 명령했다고 고자질을 해버립니다. 히틀러가 원래의 직설 화법이 좋았다고 말하자 벵크는 '그 친구 내일은 돌아올 거다'라고 답한 후 다음날부터 원래 말투로 보고를 했습니다. 카이텔이 회의 내내 그를 노려보았고, 벵크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방 반대편에 있는 카이텔에게 다가가서 총통 허락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어쨌든 열심히 일하던 도중 힘러의 참모장직을 맡아 퀴스트린 구원 작전을 지휘하게 됩니다. 구데리안이 두 시간 동안 히틀러와 소리를 지르면서 싸운 끝에 얻어낸 결과였습니다. 히틀러는 '힘러는 사내답게 충분히 할 수 있다', 구데리안은 '안 됩니다, 벵크를 참모장으로 씁시다'를 무한히 반복했고, 결국 뚜껑 열린 히틀러가 부들부들 떨면서 난리를 치다가 양보했지요. 그러나 부임하고 며칠 후, 베를린으로 와서 꼭두새벽까지 상황 보고를 한 벵크는 전선으로 돌아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이틀간 한숨도 못 잔 운전병이 더는 못 가겠다고 하자 벵크가 운전대를 대신 잡았는데, 벵크도 과로한 탓에 졸음운전을 하다 교각 난간에 차를 들이박았던 겁니다. 동승했던 부관과 운전병은 차에서 튕겨나왔고, 벵크는 그대로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정신을 잃습니다. 운전병이 차에 불이 붙어 폭발하기 직전 상관을 끌어낸 후 도로에 굴려서 옷에 붙은 불을 꺼야 했고, 전치 6주의 두개골과 늑골 골절상을 입은 벵크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습니다.
벵크의 참모차장직은 한스 크렙스에게 넘어갔습니다. 2주간 입원했다 퇴원 후 바이에른에서 요양하던 벵크는 부르크도르프의 연락을 받고 제12군 사령관이 되었다는 통보를 받습니다. 12군이 어디 있냐고 어리둥절해하자 이제 만들어지고 있으니 일단 베를린으로 오라는 답만 받지요. 베를린에서 상황 설명을 받은 벵크는 참모장으로 귄터 라이히헬름 대령을 선택합니다. 당시 라이히헬름은 발터 모델의 참모장으로, B집단군과 함께 루르에 포위되어 있었지만 비행기를 타고 겨우 탈출해 베를린으로 향합니다.
벵크의 군인 커리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휘관을 맡은 때였습니다. 제12군의 최초 임무는 서부에서 밀려드는 미군을 막고 루르의 B집단군을 구원하는 임무였지만, 갑작스럽게 테오도어 부세의 제9군과 합류해 베를린으로 진격하는 소련군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카이텔이 직접 방문해서 명령을 전달하지만, 벵크는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그 계획이 불가능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카이텔에게는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말하며 돌려보낸 다음, 카이텔이 떠나자마자 참모들을 불러모아 그러지 않을 것이라며 새 작전을 계획하지요. 그리고 베를린의 포위망을 뚫어 히틀러를 구하는 대신 베를린 근교 지역에서 포위당한 민간인과 병사들을 구출하고, 또 할베에서 포위당하고 전투 능력을 상실한 제9군의 잔여 병력 및 민간인을 흡수해 엘베 강까지 후퇴합니다. 벵크가 전선을 사수하는 동안 부하 에델스하임 장군이 그를 대신해 미 제9군 참모들과 민간인을 빼내기 위해 협상합니다. 미군은 항복하는 독일 군인들은 받아주겠지만 민간인 철수는 도울 수 없다 거절합니다. 대신 엘베 강을 가로지르는 반파된 교각들을 쓰게 해 줍니다. 벵크는 소련군이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 철수를 지휘하다 마지막에야 보트를 타고 참모들과 강을 건너고, 미군의 포로가 됩니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영국군 포로로 신분이 바뀐 벵크는 벨기에 소재의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1947년 크리스마스에 출소합니다. 그리고 심한 위궤양과 위출혈로 고생하지만, 은행 계좌도 압류당하고 연금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돈이 없어 병원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돈을 받지 않고 그를 치료해주겠다는 의사를 겨우 만나고 6개월간 입원해 지냅니다. 그리고 몸이 조금이나마 회복되자 곧장 민간 회사에 취직합니다. 회사원 일이 적성에 잘 맞았는지, 빠르게 승진합니다. 해외 출장도 자주 다니게 되는데, 사업계약을 위해 방문한 아르헨티나에서는 후안 페론에게 붙잡혀 한참 동안 전쟁 당시 얘기를 해줘야 했던 적도 있습니다. 일이 잘 풀려 금전적 여유가 생기자 여전히 빈곤하게 지내는 옛 동료들을 돕겠다 나서기도 하지요.
그 무렵은 서독 연방군이 막 창설될 때였습니다. 구데리안이 총사령관에 만슈타인을, 참모총장에 벵크를 추천했으나 전범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기록이 있는 만슈타인을 총사령관 자리에 앉힐 수 없었기 때문에 벵크에게 '총감찰관'이라는 보직 제안이 들어왔지요. 그러나 벵크는 총감찰관이라는 보직명을 마음에 들지 않아했고, 또 연방군 수뇌부에서 나치 논란이 불거지지 않도록 조사위원회가 군복무기록을 검토해야 한다는 말을 듣자 자신의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훼손하는 짓 아니냐며 강경하게 반대합니다. 결국 초대 연방군 총감직은 당시 같은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아돌프 호이징거에게 돌아갑니다. (사실 처음엔 벵크가 강력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벵크는 이미 직장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요구하고 간을 봤던 반면, 평생을 군인으로만 살아왔고 다른 적성도 없어서(...) 군인 말고 할 일이 없던 호이징거는 눈에 불을 키고 그 자리를 탐냈고, 결국 얻어냅니다.) 그리고 벵크는 쭉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1960년부터는 딜 디펜스의 임원으로 일합니다.
1955년의 벵크. 55살이나 먹었는데도 참 동안이죠?
벵크는 상관, 동료, 부하를 막론하고 인기가 많았던 만큼 전후에도 여러 장교들과 교류하며 지냈습니다. 제1기갑사단 부대원들, 옛 상관이었던 키르히너나 홀리트와도 교류했고, 무엇보다도 만슈타인과 계속 연락하고 만납니다. 테오도어 부세, 지그프리트 베스트팔과 함께 '만슈타인의 제자들'이라고 공공연하게 불리는 모임에 속했다고 합니다. 만슈타인의 80번째 생일을 기념해 출간된 만슈타인 간증에세이 모음집 <Nie außer Dienst>에 그가 연방군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다루는 글을 기고하기도 하고요.
라이히헬름과 한 컷
만슈타인과도 한 컷
1966년에 회사에서 은퇴하고 니더작센에서 지내던 벵크는 1982년 5월에 오스트리아에 휴가차 방문했다가 잘츠부르크 인근에서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운전하던 차량이 젖은 도로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나무에 박았고, 즉사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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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베를린 공방전 당시 그의 활약을 두고 양심적인 군인, 진정한 영웅, 참군인이라고 평가하는 사례를 많이 봤습니다.
물론 무의미한 전쟁을 계속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민간인을 구출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지만, 군인으로서의 능력과 별개로 도덕적으로 우러러 볼 만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시에 군인이 자국 민간인을 구출하는 선택은 어찌 보면 아주 상식적이지 않은지요.
그가 전쟁의 승패, 국가의 존망에 정신이 팔려서 사람들은 모두 팽개쳐 놓은 다른 장군이나 정치인과 달리 행동했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그 온정은 어디까지나 자국민에게만 국한되는 태도였습니다.
가령 상관이었던 카를아돌프 홀리트가 전범재판을 받을 때 벵크가 증인으로 나서지요. 그는 당시 지나가던 길에 수용소가 있었다면 그들도 구원했을 것 같냐는 검사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요? 전후 벵크는 소련군이 얼마나 독일인들에게 악독하게 구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독일인들을 그런 재앙에서 구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애국자였지, 영웅적 인도주의자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결국 그도 전통 있는 군인 집안에서 자라온 독일 장군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군주를 섬기고 정치적 판단은 일체 배제한 채 국가를 위해 싸우겠다는 마음가짐이지요. 더불어 1차대전의 종전과 군축당한 독일군을 보며 모욕감을 느끼고 반민주주의, 반공산주의적 정서를 굳힌 독일 장교단의 전형입니다. 유연한 사고법과 필요할 시에는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을 무시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자세마저도 훌륭한 그 시절 장교의 자질이지요.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그가 전쟁범죄에 얼마나 엮여 있었는지입니다. 그가 참모장으로 모셔온 상관들의 목록을 볼까요? 만슈타인, 홀리트, 마켄젠, 쇠르너, 구데리안… 전부 전범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거나 실제 처벌은 면했지만 현재는 전쟁범죄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들이지요. 참모장은 상관에게 넘어가는 문서를 대부분 받아 검토하고, 또 상관이 내리는 명령을 대부분 검토합니다. 뉘른베르크 증언대의 만슈타인처럼 “참모장이 대신 서류를 봤기 때문에 나는 그걸 확인해보지 못했다”라는 변명을 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당시 증언의 일부입니다. (심문인: 검사 월터 랍)
Q. 좋습니다. 증인, 당신은 뵐러 장군과 홀리트 장군의 성격에 대해 증언했으며, 증언의 요지는 한쪽, 즉 피고인 홀리트의 경우는 매우 독실한 사람이었으며 다른 한쪽, 즉 뵐러 장군의 경우는 총통사령부에서 그가 나치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맞습니까? 방금 제시한 두 주제에 대한 당신의 태도를 바탕으로 질문하겠습니다. 당신은 나치 철학에 동의했던 사람입니까?
A. 그건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전 직업군인이었습니다. 전 선서를 했고 그 선서를 지켰어요. 저는 그냥 군인, 순수하게 군인일 뿐입니다. 제 개인적 태도는 여기서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Q. 증인, 다시 질문하겠습니다. 이게 중요한지 아닌지는 당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당신은 다른 인물에 대해 매우 인상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았습니까.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마찬가지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안 그럽니까?
A. 제 자신에 대한 판단은 저를 평가했던 상관들에게 맡기는 편입니다. 전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제 가족도 정치와 무관했으며, 제가 군인 집안에서 태어나 군인이 되었고 끝까지 군인으로 남았다는 점만을 거듭 강조할 수 있습니다.
전체 증언 분량부터가 길지 않지만, 이렇듯 자신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주장으로 일관합니다. 참 괘씸한 점이, 평소엔 잘만 개기고 명령에 따르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다가 이럴 때만 명령에 따르는 군인답게 행동했다고 주장하는 부분입니다. 이건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의지 자체가 없었던 셈이지요. 사실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듣고 있냐 구데리안?
그리고 그는 전후에 끝까지 다른 장교들과 마찬가지로 잘못을 뉘우치거나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대신 모르쇠로 일관하고 인생을 재밌게 잘 살다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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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크는 분명 재밌는 인물이고, 만슈타인과 구데리안 다음으로 가장 애정이 가는 독일군 장군이기도 합니다. 베를린 공방전 때를 제외하고는 행적이 거의 주목받지 못한다는 점이 다소 아쉽기도 하고요. 하지만 군사적 능력을 고평가하거나 또라이 기질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를 높이 사고 싶지는 않습니다. 결국 벵크도 도덕적 판단력을 외주 맡긴 후 책임을 회피한 그 시절의 흔한 국방군 장교였으니까요.
참고자료
- 더모트 브래들리, <발터 벵크: 기갑대장> (1981) / 원제: Walther Wenck: General der Panzertruppe. 현존하는 유일한 벵크 평전입니다. 브래들리는 아일랜드인이지만 독빠밀덕정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독일에서 사학을 전공한 후 생존한 2차대전 장군들을 쫓아다니며 인터뷰를 따고 자료를 수집해 책을 여러 권 냈습니다. 원래는 구데리안과 독일 기갑군의 발전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벵크와 연락을 시작했는데, 친분을 쌓으며 그에 대한 책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필했다고 합니다. 소소하게 자랑하자면 저는 싸인본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자랑샷
- 귄터 겔러만, <벵크 군: 히틀러 최후의 희망> (1984) / 원제: Die Armee Wenck - Hitlers letzte Hoffnung. 벵크 개인보다는 4월부터 5월까지 제12군의 행적을 다루는 책입니다. 정리가 잘 되어있습니다.
- 발터 벵크, <더 이상 베를린을 구원할 수는 없었다> (1965) / 원제: Berlin war nicht mehr zu retten. 슈테른 지 16호(1965년 4월 18일자)에 실린 글. 전지적 벵크 시점의 베를린 공방전 이야기입니다. 전문 번역: https://cafe.naver.com/bitethatbait/129505?tc=shared_link
- 프리드리히 폰 멜렌틴, <내가 본 2차 세계대전의 독일 장군들> (1977) / 원제: German Generals of World War II: As I Saw Them. 저자가 멜렌틴이라 좀 믿고 싶지 않으면서도 재밌는 일화가 참 많아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 코넬리우스 라이언, <마지막 전투> (1966) / 원제: Last Battle: The Classic History of the Battle for Berlin. 생존한 장성들의 증언을 재구성해 쓴 논픽션으로, 시점이 시점인 만큼 벵크 비중이 꽤 됩니다.
- 발터 벵크의 홀리트 재판 증언 기록 (NA 289433863)
- 에리히 폰 만슈타인, <잃어버린 승리> (1955년 독일어판) / 벵크가 도합 5회 언급되는데, 영역판에서는 언급된 부분이 모두 누락됐습니다.
- 하인츠 구데리안, <한 군인의 회상> (1951)
- 더모트 브래들리, <하인츠 구데리안 상급대장과 현대 전격전의 탄생사> / 원제: Generaloberst Heinz Guderian und die Entstehungsgeschichte des modernen Blitzkrieges. 위에서 언급한 구데리안 평전입니다.
- 마티아스 몰트, <국방군에서 연방군으로: 1955-1966년 독일군 개편의 인사 연속성과 불연속성> / 원제: Von der Wehrmacht zur Bundeswehr - Personelle Kontinuität und Diskontinuität beim Aufbau der Deutschen Streitkräfte 1955-1966. 서독 연방군 창설 과정에 구 국방군 인사들이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다룬 논문입니다. 벵크가 언급돼서 읽어 봤는데, 호이징거와의 정쟁(정확히 말하자면 호이징거가 일방적으로 무한견제를 한 것이지만)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 토니 르티시어, <할베 강의 살육> (2007) / 원제: Slaughter at Halbe: The Destruction of Hitler's 9th Army. 벵크도 나오지만 벵크 친구 부세와 당시 동부전선을 간신히 사수하던 여러 장교들이 등장합니다. 소련군 시점에서도 전투의 양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보여줘서 좋았고요.
- 데렉 줌브로, <루르 전투> (2006) / 원제: Battle for the Ruhr: The German Army's Final Defeat in the West. 귄터 라이히헬름 대령의 전후 증언을 기반으로 재구성된 저작이기 때문에 제12군 참모장 시절 이야기에 벵크가 섞여 나옵니다.
- 만슈타인이 회고록을 출간하고 받은 편지 모음 (BArch N 507/24) / 벵크가 보낸 편지 두 통이 섞여 있습니다.
뭐 언젠가는 벵크가 등장하는 재밌는 컨텐츠가 나오지 않을까요? 소소한 희망을 품어 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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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밌네요
잘봤습니다
재밌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