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저의 내면에는 옛사람의 본성과 부정성이 아우성을 치니
날마다 주님의 깊은 은혜를 알아가는 자로서
주님께 면목이 없고, 사람 앞에 부끄럽습니다.
스스로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자임을 확인하고 또 확인합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구하오니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보혈로 덮어주옵소서.
성령님,
오늘도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진리를 보고 기뻐하며 주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1.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15.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20.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21.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본문 주해)
11~14절 : 멜리데 섬을 출발한 배 디오스구로호는 수라구사에서 3일, 레기온에서 1일, 그리고 브디올에 이르렀는데 거기서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만나 바울 일행은 거기서 일주일을 보낸다.
15절 : 그리고 드디어 로마에 도착한다.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이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마중을 나왔다. 생면부지의 로마 그리스도인들이 멀리 떨어진 곳까지 바울 일행을 맞으러 오자,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용기를 얻는다.
로마 형제들은 바울이 전도한 사람들이 아니다. 아마 스데반 순교 이후 로마에까지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로마로 호송되고 있다는 바울의 소문을 듣고 바울을 영접하러 온 것이다.
이는 오르지 믿음 안에서 교제하며, 쇠사슬로 결박된 채 이동되고 있는 바울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함이었고, 바울은 이 위로와 격려에 감격하며 힘을 얻는다.
16절 : 바울은 죄수였지만 어느 정도 자유가 허락되었다. 바울은 죄수들의 집단시설에 수용되지 않고, 한 집에서 자기를 지키는 한 명의 군사와 함께 따로 있을 수 있도록 조치된다.(이 로마 군인은 싫든 좋든 바울과 함께 동행해야 하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어야 했다. 그것도 번갈아 근무하니 여러 군인들이 어쩔 수 없이 복음을 들어야 했을 것이다.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는 동안, 그리고 바울이 사람들을 불러 놓고 복음을 전하는 동안 이 군인들도 계속 복음을 듣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가택연금 정도의 조치가 취해진 것은 베스도 총독의 긍정적인 보고서가 있었고, 무엇보다 호송 책임자인 율리오 백부장의 진술과 보고–바울에 대한 좋은 평가-때문이라고 추측한다.
17~20절 : 바울은 자신이 머무는 곳에 손님들을 초청하여 대화할 수 있는 자유도 있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먼저 유대인들을 청한다.
바울은 그곳에서 유대인 지도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하여(자신은 구금 상태라 집 밖 출입은 통제 되어 있었기 때문) 자신이 로마에까지 이르게 된 경위를 설명한다.
바울은 그가 황제에게 상소했다고 해서 동족 유대인을 고발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동족 유대인은 바울을 적대시하였으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가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은 베스도가 자기를 동족들에게 넘겨주려는 상황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정작 바울의 요지는 ‘이스라엘의 소망’에 관 것이다.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받게 된 것, 예루살렘에서 붙잡혀 이곳까지 죄수의 몸으로 오게 된 이유가 모두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의 소망에 대한 생각이 유대인들과 달랐던 것이다.
유대인들의 소망은 힘 있는 정치적 메시아였는데, 사도 바울이 증거 하는 메시아는 고난 받는 종으로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21~22절 : 유대인 지도자들은 의외로 그리스도교에 대해 호의적이다.
항상 유대인들로부터 반대를 받고 있는 이 종파지만 그들이 바울의 말을 더 듣고자 한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날짜를 따로 잡고(23절) 그 첫 대면을 끝낸다.
(나의 묵상)
바울이 드디어 로마에 도착한다.
바울이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의욕에 불타오른 지 벌써 4~5년이 지났다.
그동안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대인들의 시기와 핍박으로 인해 재판받느라 보냈고, 또 한 달이면 갈 수 있었던 로마행을 5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죄수의 몸으로 배에서 시달려야 했다.
바울은 이미 인간의 계획과 주님의 계획이 다르다는 것을 수많은 전도 경험을 통해서 알았을 것이다. 이제 죄수로 온갖 일을 겪으면서 로마로 오게 된 경험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방법과 주님의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알았을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계획이나 방법대로 되지 않고,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과 방법이 있다는 것에 대해 요즘 더 많이,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바울의 전도 여행에 동행하니 그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 것이리라.
그런데 그것이 내게 아주 새로운 은혜로 다가온다.
과거에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조급해하며 하나님께 섭섭해하거나, 투덜거리며 한숨을 쉬었는데, 요즘은 그 빈도가 줄어들고 그 정도가 심각하게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순적하게 되지 않을수록 묘한 기대감이 솟구치는 것이다.
어리석고 지혜가 없는 나의 뜻에 함몰되었던 눈을 다시 들어서 만물의 주관자이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정말 귀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가진 소망이 점점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무섭게 바람 부는 밤 물결 높이 설렐 때 우리 주 크신 은혜에 소망의 닻을 주리라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전에 뵈올 때 구주의 의를 힘입어 어엿이 앞에 서리라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찬488장)
전과 다르게 가사 하나하나에 ‘아멘’이 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나의 소망은 예수님뿐이다.
내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고난 받는 종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예수님,
잠잠히 무덤의 시간을 보내신 예수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그리고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예수님!
이 예수님이 나의 소망이시다.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의 바울이 아니다.
이제 나이가 많은 자가 되었다.
그런데도 그 소망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수없이 많은 환란과 고난과 핍박 속에서 그의 소망이 더욱 불타오르는 것을 본다.
주님께서 바울에게 그렇게 해 주셨듯이, 인생 후반전을 살아가는 내게 이 소망을 든든하게 하시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묵상 기도)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
나의 소망이 되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소망이 제 모든 삶의 원동력입니다.
남은 인생을 주님께 쏟아부을 수 있게 하옵소서.
유대인들의 시기 질투 속에서도,
긴 시간 재판을 받을 때도,
폭풍의 바다 위에서도,
멜리데 섬의 위로 속에서도,
원하던 로마에 발을 디뎠을 때도,
믿음의 형제들에게 위로를 얻을 때에도,
오직 주님만이 나의 소망입니다.
성령님,
한결같은 이 소망을 든든히 가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