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외항 선원과 그 아내들의 애환 / 正道 金珉煥
나는 우리 회사의 원료를 싣고 오는 외항 상선을 접하며 30여 년간 일을 하였기 때문에 외항 선원들의 애환을 조금은 안다.
성난 파도와 매일 같이 싸움을 하면서 일을 하다 보니 그런지는 몰라도, 대부분 외항 선원들은 좀 거칠고 다혈질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전 세계로 떠다니는 외항 선원들이 많고 많은데, 다 말을 할 수는 없고 몇 개국인들만 조금 밝히려한다.
영국인들은 형식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일을 할 때는 상의를 벗고 일을 하다가도, 식사시간이 되면 정장을 하고 밥을 먹는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가 되는 자정에는 엄청난 뱃고동 소리를 울려대며 거대한 파티를 벌인다.
우리들도 초대되어 멋지고 휘황찬란한 파티를 즐기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네덜란드 인들은 자존심이 강한 것 같다.
우리가 네덜란드라고 말을 하면 자기네들은 기어코 홀랜드라고 고집을 부린다.
한국이든 조선이든, 일본이든 자판이든, 태국이든 방콕이든 그 나라가 그 나라 아닌가?
그리스 사람들은 황색인종인 우리나라 사람들을 우습게 얕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별것도 아닌 인간들이 고집이 세고 멋도 모르고 침 대롱을 흔드는 사람들 같이 보인다.
베트남사람들은 부지런하다.
우리나라의 고물이란 고물은 전 부 구입 해다가 새것으로 만들어 내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자전거, 오토바이, 티비 등등의 고물들을 한 트럭씩 구해다가 배에서 분해하고 고치고 조립을 하는데, 그야말로 귀신이 곡을 하리만큼 재주가 좋다.
그리고 초코파이를 몇 박스씩이나 사가지고 귀국을 한다.
심성으로 친다면 필리핀 선원들이 제일 심성이 착하고 무엇이든 있으면 있는 대로 나누려고 한다.
아마 가톨릭 신자들이 90% 이상 되어서 그런지 심성들이 착한편이다.
필리핀 선원들은 급여를 타면 거의 절반은 자기가 쓰고 나머지는 가족한테 보낸다.
배가 정박을 하면 배 안에서도 양주와 맥주를 마시며 드럼을 두드리고 기타를 치며 해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마음껏 푼다.
김치를 좋아하고 라면을 몇 박스씩 사가지고 자기들이 먹고 또 선물로 가지고 간다.
필리핀 고유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어로 말을 하며 영어로 편지를 쓴다.
한번은 자기들끼리 삼천 개를 쓰리싸우잔 쓰리싸우잔 하기에 무슨 말인가? 하고 누구한테 물어봤더니, 쓰리를 해다가 싸우나를 가자고 하는 말이란다.ㅎㅎㅎ
의사를 독토리 독토리 라고 하기에 나는 도토리를 따다가 도토리 묵이나 해먹자고 하는 줄 알았다.ㅎㅎㅎ
서론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외항 선원들이 한번 승선을 하면 보통 1년 정도의 기간을 배를 타고
오대양 육대주를 항해하다가 약 1개월 정도의 휴가가 주어진다.
한국의 배들도 가끔가다가 한국으로 입항하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 일주일 아니면 10일 정도 부두에서 머문다.
한국으로 입항을 한다고 하더라도 며칠 씩 집엘 가서 자고 오는 게 아니다.
자기의 맡은바 본연의 근무 때문에 잘하면 두 번, 재수가 없으면 한번 정도를 집엘 다녀 올 수가 있다.
어느 때는 현장 작업상 집엘 갈 수가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가족들을 배로 오라고 하여 그 가족들이 배에 와서 하룻밤을 보내고 떠나보내야 하는 그들의 애환은 겪어보질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선원의 아내들은 더러 항변을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내가 뭐 과부냐? 시집을 와가지고 남편 놈 하고 일 년에 한 달 밖에 같이 지내보지 못했다.”
“내가 창녀냐? 멀쩡한 년 데려다가 생과부를 만들어 놓고, 철썩거리는 부둣가의 어설픈 선상에서 하룻밤만 재워주고 떠나라고 하느냐?”
“못 살겠다 갈아보자 이 쇠 도둑놈 같은 남편 놈아,” 라고 왜 생떼를 쓰지 않겠는가?
지금은 전화도 많고 흔하지만 그전에는 전화도 귀하여 주로 우리 회사 부두의 사무실에 와서 직원들의 이름을 대고 교환을 거쳐 자기들의 집으로 전화를 했었다.
배가 부두에 정박하고 나면 선원들은 자기의 집이 제일 궁금하여 우리 회사 부두의 사무실로 부지런히 달려와 자기들의 집에 전화를 거는데, 옆에 서 들어보면 참으로 기가 막힌 사연들이 많이 있다.
경상도 선원의 전화를 들어보면,
“어무이 예, 지캄 왔심더”
“항군기라 예”
“지 밥쟁이 인능교?”
“머라코 예?”
“지블 나가브럿다고 예?”
“와 나간능교”
“내는 묵고 살라고 억세게 고생을 하는데 예”
“지는 지블 나가브럿다니 그게 말이나 되능교?”
“내 가서 찾으먼 직이삘란다.!!”
호남권에 전화를 하는 선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기가 목포 아니다요?”
“지는 길동인디요 이,”
“지금 막 부둘 왔당께요,”
“지븐 다 무고한게라?”
“뭐라고라?”
“고 소리가 무신 소리다요?”
“집사람이 고뮈신을 거꾸로 신었다고라?”
“뭐땀시 고뮈신을 거꾸로 신었당가?”
“미치고 환장을 했능개벼어!”
“내 가서 찾기만 하면 작쌀을 내벌껏잉께!!”
그리고 또한 충청도 선원의 전화를 들어보면,
“엄니 저 왔슈 우”
“지금 막 항만에 도착을 했슈 우”
“집사람두 잘 있남 유?”
“그게 무슨 소린지 땅띰을 뭇허건네 에”
“뭐라구 유,?”
“아~ 그게 증말유?”
“여펀네가 집구석에 가만히 쳐박혀 있질 안쿠”
“별 지랄을 다하구 자빠젼내배에~ 에”
“틀림없이 도망가구 만규~ 우”
“아 냅둬유`우”
“내가 가서 찾기만 하면 죽여버리구 말규 우”
수화기를 내려놓는 그 선원들의 침통한 표정과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분노를 지켜보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도, 납덩어리처럼 무겁게 내려앉는다.
외항 선원들은 그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사정없이 몰아치는 바람과 성난 파도에 떠밀려 다니며 출렁거리고 흔들리는 망망대해의 배 위에서 절망과 좌절과 죽음의 공포 속에 하루하루를 생과 사의 전투를 벌여가며 싸우고 있다고 한다.
선원들은 그렇게 가족들을 위하여 가진 고생들을 다 하고 있는데, 그 가족들은 한눈을 팔고 엉뚱한 짓을 하고 다니고 있다니 그게 있을 수가 있는 일이란 말인가!!?
사실이지 미꾸라지 한 마리가 왼 강물을 다 흐려 놓는다고, 문제를 일으키는 선원의 부인들은 몇 명이 되지를 않는다.
중동에 간 남편 몰래 춤바람 난 부인들이 몇 명이 되지를 않듯이, 외항 선원들의 아내들도 극소수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지 대다수의 부인들은 내조를 잘 하고 있다.
배가 입항하면 나는 배에 비치되어 있는 사보들을 가끔씩 읽어본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모 회사의 사보를 읽는데 너무나 감동적인 글이라서 여기에 조금만 옮겨본다.
“여보”
“당신은 지금 어느 망망대해에서 항해를 하고 계시나요?”
“당신이 그렇게 미치게 보고 싶고 그리운 건 둘째 치고, 아이 때문에 마음을 졸이고 애간장이 다 녹아내린 저의 가슴은 그야말로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아이가 대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을 하였는데 당신은 안계시고 저 혼자서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더라구요!!“
“의사 선생님이 서류를 내밀며 도장을 찍으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가슴이 떨리고 손발이 떨리는지 그야말로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벌 벌 벌 벌 떨리는 손으로 도장을 찍고 아이가 수술실로 들어갔는데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이 되는데, 왜 그렇게 불안하고 초조한지 안 절 부절을 못하고 있었어요!!“
“불쌍하고 가련한 우리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쓰리고 아려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술실 앞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천만 다행으로 수술은 잘되어 회복을 하고 있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 군요!!“
“여보, 당신 힘내세요.”
“고국엔 사랑하는 우리 아이와 제가 있으니까요,!!”
“당신이 모든 어려움을 잘 이겨내며 일을 하듯이, 저도 어떠한 고통이 밀려와도 잘 참아내고 열심히 살거예요.!!“
나는 그 부인의 수기를 읽으면서 남편도 없이 아녀자 혼자서 가정사를 이끌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외항 선원들의 아내는 아이들의 교육문제나 집안의 대소사 모든 문제를, 남편도 없이 혼자서 결정을 내리고 처리를 해야 한다.
혹시나 부녀자가 혼자 산다고 깐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또는 엉큼한 수작을 부리는 쇠 도둑놈 같은 사내들도 있을 것이다.
어쩌다가 모 선원의 아내가 가정을 잘 이끌어가지 못하면, 많은 선원의 가족들이 매도를 당하는 일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묵묵히 가정을 지키며 내조를 다하는 절대 다수의 선원 가족들에 의해서, 세계의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니며 화물을 운반해주고 민간 외교를 다 하는 많은 선원들이 있다고 하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끝으로 대전 도마동에서 산다고 하는 모 갑판장의 전화 하는 내용이 인상적이라서 그 내용을 몇 자 적으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여보슈 우”
“당신잉감?”
“아~ 나여 어”
“애들두 다 잘인남?”
“뭐라구?”
“둘째 놈이 딸란트가 어쪘타구?”
“뭐셔~어?”
“아~ 걔가 딸란트가 뎠다구?”
“내 시상에 별꼴 다 보건네 에”
“워디서 부주웁는눔이 태어났댜 그래 에!!”“
“뭐라구?”
“셤을 시번씩이나 치러서 햅격했다구?”
“뭔놈의 셤을 시번씩이나 치룬댜 그래 에!!”
“한번으로 후딱 해치우지 안쿠 우”
“그럼 테레비두 나온댜?”
“지금 교육중이라구?”
“교육은 뭔놈의 교육여”
“그냥 후딱 내보내지 안쿠 우”
“그라구”
“막내가 남자친구가 생겼다구?”
“지지배가 별 지랄 다하구 자빠젼내배~ 에”
“하라는 공부는 안하구 무슨놈의 연애질을 하구 댕긴댜 그래 에~에”
“뭐라구?”
“남자친구가 서울대 졸업반인디 삼성전자에 햅격했다구?”
“그눔 머리통에 똥은 안들은 모냥인디”
“그래두 남자들은 전부다 도둑놈덜이닝께 말여”
“몸조심 잘하라구 단단히 일러둬~ 어.”
그 갑판장의 자녀들이 잘 풀리는 모양이었다.
그날 저녁 조리장이 갑판장을 축하하여 주려고
특별 요리를 만들어 놓고 우리들 까지 초대를 하였다.
나는 양주 몇 병을 마른가리 물대듯 꿀꺽꿀꺽 마셔대고 나니
무엇이 많이 헷갈리기에 몇 마디를 했다.
“갑판장님 부인을 참말루 잘 으드션내유~ 우”
“그리구 자녀들두 잘 키우션내~ 유~ 우”
“그동안 배타면서 고상한 보람이 행복으로 주렁주렁 열리구 있구먼~ 유~ 우!!”
“진심으로 축하드려~ 유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