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어서야 겨울이 간 걸 알았습니다 세월을 껴안고 고요가 산처럼 쌓인 집 고삿길 산수유 꽃담 정겹게 눈길 줍니다 흐드러진 꽃발에 잔치 벌인 벌 나비들 그 소리에 내 유년이 귀 기울인 듯 보이고 가슴에 묻어둔 이름 가만가만 불러봅니다 함석지붕 처마 위로 참새 떼 날아가면 마파람에 흔들리는 산동마을 산수유 꽃잎 봄날도 그냥 못 가고 질척이는 강물입니다.
산수유꽃 진 자리 / 나태주
사랑한다, 나는 사랑을 가졌다. 누구에겐가 말해주긴 해야 했는데 마음 놓고 말해줄 사람 없어
산수유꽃 옆에 와 무심히 중얼거린 소리 노랗게 핀 산수유 꽃이 외워두었다가
따사로운 햇볕한테 들려주고 놀러 온 산새에게 들려주고
시냇물 소리한테까지 들려주어 사랑한다,나는 사랑을 가졌다.
차마 이름까진 말해줄 수 없어 이름만 빼고 알려준 나의 말
여름 한 철 시냇물이 줄창 외우며 흘러가더니
이제 가을도 저물어 시냇물 소리도 입을 다물고
다만 산수유꽃 진 자리 산수유 열매들만
내리는 눈발 속에 더욱 예쁘고 붉습니다.
산수유나무의 농사 / 문태준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터트리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 마음의 그늘이 옥말려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보아라 나무는 그늘을 그냥 드리우는 게 아니다 그늘 또한 나무의 한해 농사다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꽃은 하늘에 피우지만 그늘은 땅에서 넓어진다 산수유나무가 농부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 끌어모으면 벌써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의 그늘이다
산수유에게 / 정호승
늙어가는 아버지를 용서하라 너는 봄이 오지 않아도 꽃으로 피어나지만 나는 봄이 와도 꽃으로 피어나지 않는다 봄이 가도 꽃잎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내 평생 꽃으로 피어나는 사람을 아름다워 했으나 이제는 사람이 꽃으로 피어나길 바라지 않는다 사람이 꽃처럼 열매 맺길 바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