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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비추어라
줄여서 ‘별밤’이라고도 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는 MBC 표준FM 라디오 심야 음악 프로그램이다. 1969년 3월 17일에 처음 이 타이틀로 전파를 타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명사들과의 대담을 담고 있었으나 3대 DJ 이종환이 진행을 맡은 후 음악 프로그램으로 변모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까지의 진행자로는 조영남, 이수만, 서세원, 이문세, 이휘재, 백지영 등 26명에 이르는데, 현재는 산들이 맡고 있다. 그런데 그 26명 중에 오혜령이라는 이름도 들어 있다. 그는 7대 진행자였다.
이리 말하면 그가, 오혜령이라는 여자가 라디오 DJ로 유명해진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다.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나온 그는 희곡 ‘성야(聖夜)’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래 많은 희곡과 수필집을 내어 이름을 날렸고, <동아일보> 연극대상, 한국희곡문학상 등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그러나 그때까지의 인생이 화려하고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위궤양을 몹시 앓아 만2년 동안 흰죽과 시금치나물로 섭생을 했으며,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는 하반신 대아마비증으로 휴학을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성인이 되어서는 결혼 생활이 평탄치 못한 불운을 겪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 같은 것들이 ‘별밤’의 별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인생길을 방해하진 못했다. 가톨릭 신자였으나 하느님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
그런데 1978년 2월 어느날, 그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들어야만 했다. 몸이 좋지 않았지만 감기몸살일 거라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지내는 동안 병을 키웠던 모양이다. 병원에 가서 받은 검진 결과는 위암에 갑상선 암이라는 것이었다. 암세포가 십이지장, 임파선까지 온몸으로 전이돼 있어 수술도 할 수 없다 했다. 방사선 치료 한 번으로 손을 놓았다. 3개월을 넘기기 어렵다 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1941년생이니 37세 때였다.
그는 그 조금 전부터 투병일기를 썼다. “일어나 비추어라”라는 제목인데, 여기에 그 부분 부분을 소개해 본다.
일어나 비추어라
제 1부: 오, 아름다운 惡의 꽃이여 — 보라 이 찬란한 병력의 소유자를 —
1978년 1월 5일(목)
‘명치 밑에 쇳덩이만한 이물질이 꿈틀거린다. 가슴앓이겠지. 탈출하자, 이 서울을.’ ‘꼭 살아날 것이라는 신념보다는 내 한 목숨을 버려도 좋다는 감상주의에 빠져 들다. 여행 보따리를 싼다.’
2월 14일(화)
‘정월에 온천에서 얻은 “고독이라는 이름의 병”은 나를 줄곧 고열로 떠다밀었고, 나는 마침내 거의 혼수상태로 구급차에 실려 돌아왔다.’ ‘그 후로 다시 심장이 도져서 하루에도 스무 번 이상 고동이 멎는다.’ ‘악성 빈혈 환자처럼 일어나 앉기만 해도 눈앞이 노랬다가 캄캄해진다.’ ‘방 안의 종이연과 거울들이 빙빙 맴을 돈다.’ ‘주물 전등갓으로 바꾸다. 무거운 물체가 얼굴 위로 떨어질 것 같은 공포에 시달리다.’
‘아침결에 두 번이나 피를 토하고 낮에는 고약한 피변을 보다. 미음조차 넘어가지 않는다. 휘청거리며 올라선 체중기의 눈금은 39kg을 가리킨다.’ 믿어지지 않는다. ‘1월 중순에 달아 보았을 때 틀림없이 내 몸무게는 49kg이었다.’
‘복부의 압통을 견디기가 어렵다.’ ‘사나운 짐승에 쫓기는 소년처럼 문설주를 붙들고 비명을 지른다. 눈을 감고 서서 분홍 침을 토해 낸다.’ ‘일곱 번째 시커먼 피를 토하고 나는 아주 무서운 생각에 사로잡힌다. 혹시 위암이 아닐까.’
2월 28일(화)
‘몸무게가 37kg이 되었다.’ ‘상복부에 아가의 주먹만한 혹이 만져진다.’ ‘누구와도 의논하고 싶지 않다.
‘맥박이 55번, 심장이 50번으로 기록되다가 어느 순간에는 둘 다 동시에 0번이 된다. 하루에 깨어 있는 시간은 한 시간 가량이고 나머지 시간은 가사(假死) 상태이다.’ 한 달 동안에‘무려 5백여 번 심장이 멎는 기이한 고통을 겪었으며 한 번 멎는 시간이 5분에서 스물다섯 시간까지의 진폭을 왕래했다.’
‘죽음의 오지(奧地)에서 죽은 사람들을 차례차례 만나기도 했다. 조부와 숙부, 고모부, 친구, 그리고 어머니를 만나서 긴긴 얘기를 나누었다. 강가에 서 있는 어머니는 옥색 치마 저고리를 입고 계셨고 나를 자꾸 강물위에 떠 있는 배로 인도하셨다. 죽음의 나라는 안락하고 평화스럽다고 유인하였다. 그 때마다 나는 힘을 다하여 뿌리쳤다.’ ‘서른아홉에 돌아가신 어머니. 나도 그 이상은 살 수 없겠거니 생각하며 살아왔다.’
‘아, 나는 고작 병 밖에 자랑할 것이 없구나. 나 자신이 갑자기 초라한 벌레처럼 보인다.’ ‘거울을 본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약간 검푸른 색을 띠어 간다. 화색이 없는 얼굴은 이미 죽은 얼굴이다. 베토벤의 데드마스크가 떠오른다.’
제 2부: 죽음의 향기 — 새벽을 깨우리로다 —
4월 14일(금)
‘올케에게’ ‘나의 기일(忌日)을 기억해 달라고 능청떨다. 그는 전화통을 불 지르듯이 소리 내어 울다. 부부 싸움한 것까지 미주알고주알 고해바치는 그는 나를 시누이라기보다 친정 언니로 생각하고 있다.’
‘Y동 성당의’ ‘R신부는 6년 전부터 나의 인생 상담역을 자진해서 맡으시다.’ ‘성직자답게 위로하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기도하라고 말이다.’
‘가족에게 함구령을 내리다. 암환자 아무개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조용히 남모르게 앓다가 소리 없이 죽어갈 것이다.’
‘만병단을 복용하기로 결심을 굳히다.’ ‘하룻밤만 토하지 않고 소화시키면 치유될 가능성이 있다고 L선생은 말했으렸다, 신빙성 없는 말이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것에나마 희망을 걸지 않을 수 없다.’
‘구토증이 심하다. 마구 식도를 타고 올라오다. 절대로 토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 수단이다. 백번을 참자. 천 번이라도 참아 보자.’ ‘구토를 참으니까 설사가 더욱 잦다.’ ‘사지가 뻣뻣하다. 아랫니가 쑴벅거리다.’
‘아, 이 이상은 못 참겠다. 토해야 하겠다. 꼬박 밤을 같이 새운 A는 내내 흐느끼며 쫓아다니더니 대야를 입에 갖다 대어 주다. “언니, 토하세요. 이젠 저도 참기가 어려워요. 이렇게 힘들어 하실 바엔 차라리 약을 토하시고 돌아가시는 게 나아요.” A의 얼굴을 보다. 퉁퉁 부은 눈이 나를 긴장시키다. 나 때문에 잠 못 자고 간호하는 너, 너 한 사람만을 위해서라도 나는 이 밤을 승리하겠다.’
‘멀리서 교회당의 새벽 차임벨 소리가 울려 오다. “무거운 십자가 지고 가신 골고타 언덕을 생각하며…” 오 주여, 감사하나이다. 이 약이 나를 꼭 살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난 이긴 것이다. 새벽을 깨워 알리리라. 이 기쁜 소식을 모두에게 전하리라.’
제 3부: 내 손으로 그린 마지막 잎새 — 기도를 통하여 —
9월 13일(수)
‘체중이 36kg 이하로 안 내려가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요사이 며칠, 인삼 끓인 물을 토하지 않은 덕택일까. 내 마음대로 죽어지지도 않는 인생. 아무래도 하느님의 섭리가 여기에 작용하고 있는가 보다.’
9월 15일(금)
‘한 달 동안 작은고모는 나에게 안수 기도 받기를 끈질기게 권유하시다. 나는 그 때마다 기적의 종교관을 비난하다. 안수 기도로 불치의 병을 고쳤다는 얘기를 못 들은 바는 아니다.’ ‘어느 물리학 박사 부부는 각각 위암과 간암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안수기도를 받은 후에 입으로 더러운 물질을 토해 낸 다음 병이 깨끗하게 나았다는 것이다.’ ‘앉은뱅이가 완치되었다는 증거도 어느 종교 잡지에서 읽은 일이 있다. 그러나 어쩐지 그런 일이 내게는 일어날 것 같지 않다. 하느님이 나를 선택하실 리가 없다. 믿음도 거의 없다시피 하고 그 권능에 의지하려는 마음도 없으며 죽음의 침상에서도 마음의 대죄만을 일삼고 있는 나를 뽑으실 가능성이 전혀 없다.’
‘곡기 있는 음식을 별로 먹지도 못하는데 아직까지 살아 있다니. 나는 오뚝이 인생이야.’ ‘“내 목숨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내 뜻대로 할 수가 없단 뜻이야.” 인간의 생사(生死)는 하느님의 뜻이라는 진리가 가슴에 와 닿다.’
‘점심 때 느닷없이 팔촌 오빠 신부가 방문하시다.’ ‘O신부는 나의 임종이 다가왔다는 소식을 듣고 부산에서 일부러 상경한 것이다. 자포자기하여 죽음을 기다리는 내 앞에 O신부는 꿇어앉다. 내 손을 잡고 땀을 흘리며 기도를 올리시다. 나의 통회가 드디어 시작되다.’ ‘1년간 고백 성사를 회피해 온 나의 죄목이 낱낱이 고해지다. 끓어오르는 울음을 주체할 길이 없다.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을 미워하고 섭섭해 하고 앙심을 품은 죄가 기둥을 이루다. 내가 불구덩이로 밀려들어가는 두려움에 휩싸이다.’
‘“겁낼 것 없어요. 진실한 마음으로 통회하면 하느님께서는 다 용서해 주시니까. 평화스런 마음으로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해요. 아버지의 집으로 가면 눈물도 고통도 없어요. 주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기도를 해요.”
‘O신부의 기도는 확실히 나에게 전환점을 가져다주었으며 또한 큰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밤이 되어 복통과 두통이 발작을 일으킴에 따라 왼쪽 어깨가 저릿저릿하고 심장의 박자가 불규칙해지자 가슴에 더 큰 갈등이 뭉쳐서 데굴데굴 구르다.’
9월 20일(수)
‘낮에 구약성서의 <시편>을 조금 읽다. 눈이 피로하여 진도가 나가지 않다. 저녁녘에 우연히 <욥기>를 들추다. 욥이 하느님을 원망하는 장면에서 나를 발견하고 부끄러워지다. 병상에 누운 후 처음으로 십자가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겸허한 마음으로 기도하다. 죄인의 기도는 끝이 없다.’
‘곧 이어 펼친 <욥기> 42장 5절에 이렇게 적혀 있다. “당신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문으로 겨우 들었었는데 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 ” 즉시 작은 고모에게 연락하여 안수 기도를 청하다.’
9월 22일(금)
‘부천에서 성령 봉사자 E여사와 여러 자매들이 오다.’ E여사는 <루가복음> 5장 12절부터 봉독하다. 나병 환자를 고치신 예수님의 얘기가 적혀 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시고자만 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쳐 주실 수 있으십니다”란 말이 지금 내 입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E여사는 내 복부에 손을 얹고 나머지 사람들은 내 손과 발을 잡고 돌아가면서 기도를 시작하다.‘
‘잠시 후 E여사 혼자 이상한 언어로 열띤 기도를 잇다.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가락이 여간 곱지 않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외국어의 나열이 아니다. 심령 기도. 신비롭게 느껴지며 호기심이 가다.’
‘E여사는 울다.’ ‘E여사의 왼손이 누르고 있었던 이마만 반짝하고 상쾌할 뿐이다. 그들이 간 다음 나는 지난날의 교만함과 이웃을 헐뜯음과 불친절함 등 수없는 허물들을 종이에 적어 가며 일차로 회개하는 연수 과정에 들어가다.’
9월 24일(일)
‘<시편>을 읽다. 정신이 엇갈려 읽은 곳을 되짚어 읽다. 싫증나다. 다 아는 얘기잖아? 문학작품으로 열 번 이상 통독했다. 나는 아직도 이 세상의 지식만으로 삶의 터널을 통과하려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
합리적이고 논증될 수 있는 이론만을 고집한다. 내가 긴긴 병석에서 체득하고 독서와 대학 생활을 통하여 쌓아올린 학문과 지식의 탑을 내 손으로 무너뜨릴 수는 없다. 지식은 나의 신분 증명서였으며 전신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였다.’
9월 25일(월)
‘오전 10시 25분, 나의 대모, 작은고모와 함께 D동 천주교회의 P신부가 오시다.’ ‘P신부가 내 이마에 두 손을 포개 얹고 한 기도는 이성 기도.’ ‘그의 기도를 받을 때 등골을 타고 내리는 가벼운 떨림을 체험하다. 그리곤 아무 변화가 없다.’ ‘P신부가 가신 후, 우선 나는 과거의 나 자신을 송두리째 버리는 연습을 하기 위하여 2차로 죄목을 낱낱이 적어 내려가다.’
9월 27일(수)
‘잠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이에 희미하게 흰빛과 영상이 스치고 지나가다. 눈을 떠 보니 아무것도 안 보이다. 가래로 흙을 파헤쳐 던지듯이 배만 당기고 아플 뿐이다. 아유, 너무너무 아프구나. 그래도 기도를 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자. 기도를 통하여 주님을 만나자. 그 분과 함께 고통을 참아 보자.’
제 4부: 오직 사랑으로 — 한 송이 실비아 —
‘겨드랑이의 종양이 심심치 않게 옆구리에 압박감을 주다.’ ‘배가 딴딴하게 부풀다. 대변은 설사, 소변은 불통. 심장은 마치 석수가 돌을 쪼듯 딱딱 마치다. 임파암 충격파다.’
‘P신부의 안수 기도, 12번으로 접어들다. 기도를 받은 후에 통증이 줄어든 현상은 없지만 급격하게 믿음이 자라오다. 오늘은 기도를 받는 도중에 이상한 언어가 몇 마디 튀어나오다.’
“하느님, 모든 것 안에서 당신 거룩한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당신의 뜻 깊은 사랑을 위하여 기쁨과 괴로움을 모두 당신께 바칩니다. 또한 주님, 제 생명의 순간순간마다 그리고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께 영광을 드리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여, 제가 범한 모든 죄로 착하신 당신을 몹시 괴롭혔사오니 다시는 당신을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도와 주셔서, 저에게 천국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멘.”
‘오늘부터 성령 세미나를 받기로 결정. 성령 송가를 외다.’
“오, 나의 주님. 당신께 실비아를 완전히 바칩니다. 저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되게 해 주옵시고 성령께서 제게 임하시도록 도와주소서.”
‘오늘은 성령 세미나 입문. 성령의 역사와 성령쇄신의 필요성, 성령 세미나의 목적에 관하여 배우다.’ ‘성령 칠은(七恩)을 묵상하며 밤 기도에 들어가다. 등골에 전율이 흐르고 혀가 똘똘 말리는 체험을 하다.’
2월 1일(목)
‘성령 세미나 첫날 강의는 한 시간 5분 만에 끝나다. 제목은 “하느님의 사랑”’.
‘성령을 받음으로써 마음의 눈이 맑아지고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 ‘등을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사랑이신 아버지. 이제 저는 당신의 딸이 되었습니다. 바로 제 옆에 계신 아버지, 당신의 사랑과 더불어 평화와 기쁨도 풍성하게 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사랑으로 성부와 일치하신 당신의 삶을 본받아 저, 실비아로 하여금 당신 안에서 영신적, 육신적으로 자유로운 사랑의 일치를 이룩하게 해 주소서. 한결 같은 사랑으로 저를 사랑하여 넘치는 자비를 베풀어 주신 아버지여, 찬미 받으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성경 숙제는 <요한복음> 1장과 <골로사이 인들에게 보낸 편지> 1장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시며 그 분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시는가에 관하여 요약하는 것이다. 묵상 과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느낀 일을 돌아보는 것이다.’ ‘이제 죽음으로 바싹 다가온 시각,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극진하신 그 분의 사랑을 느낀다.’
‘고통과 시련을 통하여 그 분은 뼈아픈 정을 나에게 아낌없이 후하게 퍼붓고 계시다. 나 또한 지난날의 어느 순간보다 하느님을 사랑한다. 대질서와 영원을 보여주시는 그 분을 가슴 떨리도록 사랑한다. 적재량 한 톤짜리인 나에게 하느님의 사랑은 억만 톤의 무게를 갖는 듯싶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은 마침내 죽음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해 주었고 고통 가운데 있는 형제들을 사랑하도록 불을 당겨주었다.’
2월 2일(금요일)
‘아이 코 시려워. 섭씨 영하 15도를 웃돌다. 콧물이 또 나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미음을 훌훌 마시고 묵상과 성경 공부에 들어가다. 골치가 지끈지끈 아프다. 힘드니까 숨이 더 차다.’ ‘성령 세미나 자체가 무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첫걸음을 디뎠으니 마지막까지 쉬지 말고 걸어보자.’
‘성령 세미나 이틀째. P신부의 목소리가 따분하고 지루하게 들리다. 피곤하신 탓이리라.’ ‘성령 세미나 전화 특강 단기반. 이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강의 시작부터 복통이 야단법석을 떨어서 중간에 수화기를 여러 번 놓칠 뻔하다. 왼쪽 어깨에 수화기를 받치려니 목 주위의 임파종이 걸리고 오른쪽 어깨에 얹자니 글씨를 못 쓰겠고. 하는 수 없이 방바닥에 수화기를 발랑 자빠뜨려 놓고 납작하게 엎드려서 왼쪽 어깨에 귀를 갖다 대다. 아야. 딴딴한 복부가 눌려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허리가 반 동강이 나듯이 새큰거리다. 참아야지. 굳세게 참아야지, 이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이니까.’
‘“구원”에 관한 강의는 모두 한 시간 안에 끝나다. 인간적인 지식이나 능력 이상의 것, 하느님의 지혜와 힘을 나는 필요로 한다.’
“주님, 저를 구원해 주신 주님, 당신은 제게 영생의 길을 보여 주셨으니 이제 오직 그 길로만 걷겠나이다. 주님, 제 안에서 그리고 이웃 안에서 자라고 있는 의혹, 권태, 증오, 중상, 비방, 그리고 싸움을 일으키는 악을 이기게 해 주소서. 오로지 당신과 같이 승리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2월 3일(토요일)
‘묵상만 간신히 하고 성경 숙제는 미처 하지 못하다. 오늘밤에는 도저히 강의를 못 들을 것 같애. 마귀의 장난일까? 아무튼 오늘은 쉬게 해 달라고 P신부에게 전화하다. P신부, 적이 실망하시는 어조다. 그래도 오늘만은 쉬고 싶다.’
2월 5일(월)
‘매순간, 죽음, 또 하나의 새로운 삶을 향하여 열심히 다가가며 기도하다. 믿음에 방해되는 일체를 던져 버리고 겸손하게 신앙에 몰입하다. 각고 끝에 겨자씨만한 믿음을 얻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며 하루 종일 통회의 기도를 하다. 점심 거르다. 저녁나절에 통곡의 뉘우침이 극도에 달하다.’
‘오늘, 성령 세미나 나흘째. <하느님의 선물>에 대한 내용이다.’ ‘나는 이제 하느님과의 진정한 화해를 이루어 가고 있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틀림없이 믿는다.’
‘제 5부’도 있지만, 여기까지 만으로도 오혜령 씨의 병상 상황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생략한다.
그런데 옥한흠 목사가 이 오혜령 씨의 이야기를 예화로 든 설교가 있어 여기에 대충 소개해 본다. 요21:1-14을 본문으로 한 부활절 설교다. 이를 필자가 필요에 따라 자의적으로 재구성해 본다.
너무도 인간적이신 부활의 주님
베드로를 포함한 7명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예루살렘에서 만나 뵌 후에 고향인 갈릴리로 돌아 왔다. 예수님이 그들을 보고 갈릴리에 가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 날이 지나자 ‘생활비를 충당해야 될 어려움이 직면했’습니다. 그리고 ‘황소 같은 장정 7명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매일 빈둥거리는 것, 이것은 쉬운 일 아닙니다’.
그래서 ‘물고기를 잡으러 가야겠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우리도 같이 가겠다.’ 말하고 다른 제자들도 따라 나섰습니다. 무엇이라도 했어야 했던 것이지요.
‘저는 교회 안에서 신앙은 참 좋아 보이는데 자기 생활에 무책임한 사람들,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하기 싫으니까 날마다 기도하네, 전도하네, 그런 데 관심을 가지고 매일 소일하는 사람,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족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 보겠다고 고생을 하고 있는데 자기는 날마다 교회에 와서 빙빙 도는 사람, 저는 정상이라고 보지 않아요. 남의 신세를 많이 지고 있는 딱한 처지에 있으면서, 3D든 4D든 가리지 아니하고 소매 걷어붙이고 일할 생각을 해야지, 이 일은 힘들다, 저 일은 남의 눈에 망신스럽다 하면서 일은 별로 하지 아니하고 성경공부 열심히 좇아다니는 사람, 나는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날 밤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날이 새어갈 무렵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 계셨는데, 제자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예수께서 물으시자 ‘아무 것도 못 잡았습니다’하고 제자들 중 누군가가 대답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의 사랑을 특별히 받고 있던 요한이 알아차렸습니다. 물가에서 소리를 지르고 계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 그리고는 옆에 있는 동료들에게 '주님이 서 계신다.' 이렇게 알려 주었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밤새도록 허탕만 치고 있던 제자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그 바닷가에 오셔서 조용히 지켜보고 서 계시는 부활의 주님,’ ‘상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습니까?’
‘제자들이 아무 것도 잡은 것이 없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했더니 큰 고기 153마리가 잡혔어요. 조그마한 그물에 153의 고기가 바동거리는 것을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신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물은 찢어지지 아니했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은 밤새도록 빈 그물을 가지고 고생한 것은 나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생각하니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빈 그물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빈 그물을 가지고 밤새도록 고통하고 고생하는 것,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헛수고가 아님을 믿습니다. 일시적인 고통은 될 수 있고, 한동안의 눈물과 한동안의 어려움은 되었을지 모르지만 부활의 주님 만나면 그것은 영광스러운 고통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당신의 그물이 비어 있습니까? 밤새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얻은 것이 없습니까?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 바닷가에 서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무엇이라고 하시는지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면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고기 잘 잡는 자기 능력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그래서는 안 될 사람이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자신 있게 세상을 살다가 갑자기 어느 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빈 그물의 인생을 체험하는 되는 사람이 왕왕히 있습니다.
아마 “내가 그런 사람이다”하고 마음에 짚이는 분들은 귀를 기울이세요. 또 나도 그럴 위험이 있다 하는 분들도 귀를 기울이세요. 빈 그물의 인생이 된 다음에 부활의 주님이 옆에 서 계시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분을 통해서 과거의 돈으로도 명예로도 살 수 없었던 하늘의 부활을 그 빈 그물에 가득히 채우는 새로운 인생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분들이 교회 안에 많아요. 저는 좀 극단적인 예가 될지 모르지만, 한 사람의 예를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고 있었을 때, 4년 동안 많은 강의를 들었습니다.’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있던 오화섭 교수가 한 학기 동안 제가 다니는 성균관대학교에 와서 희곡을 가르쳤’는데, 그 강의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에게 그 당시 아주 총명한 딸이 한 분 계셨어요. 연세대를 나오고 그리고 이화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던 딸인데 <성야>라고 하는 희곡을 발표해서 데뷔를 했고, 그 후로 작가로 배우로 방송인으로 또 수필 작가로서 활동을 아주 활발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숱한 소녀들의 편지나 엽서에 그녀의 글귀가 인용될 정도로 사랑 받는 작가였습니다. 그런데 이 오혜령 씨가 최근에 <당신 없는 인생은 빈 그물이오니>라는 책을 내 놓았어요. 그래서 제가 관심이 있어 가지고 사서 보았습니다.
오래 전에 그가 30대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한번 들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 분이 지금까지 살아 계시는구나.” 하고는 제가 그 책을 사 보았어요. 그는 미션 스쿨을 다녔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요. 그러나 흔히 똑똑한 지성인들이 잘 빠지는 길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살아 계심을 안 믿으려 하고 신앙생활은 인생의 실패자들이나 매달리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곁길로 가는 그런 사례들이 많이 있어요. 교만한 거지요. “나는 그물을 던지면 얼마든지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고 하는 자기 과신 때문에 이 오혜령 씨도 예수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지금부터 한 20여 년 전 위암과 임파선 암을 진단 받고 3개월 시한부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서 오혜령 씨에 대한 예화는 에세이 형식으로 재구성한다.
그는 날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달력의 숫자에 빨간 색연필로 빗금을 쳐나가면서 죽을 날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예정된 죽음의 날자가 며칠 지난 어느 날이었다. 물만 먹어도 토하고 혈변을 보는 고통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때 매주마다 꽃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날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메모와 함께 백합 50송이를 보내왔다. 그는 반시간 가까이 꽃에 얼굴을 파묻고 가만히 있었다.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그녀의 목덜미를 낚아채는 강한 손길을 느꼈다. 순간 그는 정신없이 방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직감적으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를 찾아 오셨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그물이 텅 비어 있을 때 주님께서 실패의 현장에 찾아오신 것이다. 그는 반사적으로 이렇게 외쳤다. ‘당신은 대체 누굽니까? 왜 죽음의 한복판에까지 따라 오시는 것입니까?’ 그 말을 내 뱉고 나자 그 동안 주님을 나 몰라라 하면서 마음대로 살았던 자기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어디서부터 회개해야 할지 몰라 눈물만 쏟아졌다. 며칠 동안 화선지에 붓글씨로 자기 죄를 회개했다.
수십 개의 양초가 녹아내릴 때까지 회개하고 또 했다. 그렇게 회개하기를 반년 가까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기도와 찬양을 하며 예배를 혼자 드리고 있었는데 온몸의 오한이 덮쳐 왔다. ‘이제 죽는 시간이 다가 왔구나.’ 죽음을 예감했다.
너무 추워서 이불깃을 잡아당기는데 겨드랑이에 잡히던 임파선 암 덩어리가 만져지지 않는다. 어깨에 복숭아씨만 하던 멍울도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또 복수로 차올랐던 배가 꺼져 있었다.
‘두 번째로 살아 계신 주님이 자기를 찾으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그물은 고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습다. 이렇게 해서 그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그는 경기도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서 버림받은 노인들을 돌보는 평화의 집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는 하루 9시간을 기도하는 시간에 바친다고 합니다.
그가 쓴 글을 읽다가 아주 감동적인 내용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 당신 없는 생의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물고기가 잡히기를 바랐던 지난 나날들은 죽은 시간이었습니다. 오 주님, 이제 당신께서 그물을 채워 주소서. 그러면 저는 비로소 살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자리에 서 계신 부활의 주님, 당신 없이 한평생 수고해 보아야 우리 인생은 빈 그물이옵니다. 비록 저희 인생의 가장자리에 서 계신 당신을 지금 당장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저희의 계획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당신께 대한 신뢰 속에서 새로 시작하려는 각오가 설 때 저희 행위에 방향과 성취가 부여됩니다. 당신은 가장자리에 계시지만 늘 저희에게 그물을 이렇게 혹은 저렇게 던지라고 분부하고 계시기 때문이옵니다. 날마다 호숫가에서 저희를 기다리시는 당신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이 서 계시는 것을 보자 급히 뭍으로 나왔습니다.’ 보니 숯불이 이글거리고 그 위에는 떡과 생선이 구수한 냄새는 풍기며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더러 잡은 고기를 좀 더 가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고기를 더 많이 숯불에 얹어서 구웠습니다. 준비가 다 되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직접 ‘숯불 위에 있는 떡을 가져다가 베드로에게 갖다 주고, 도마에게 갖다 주고, 요한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어린아이를 앉혀 놓고 열심히 먹이려고 하는 어머니 같은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밤새도록 고기 잡다가 지치고 배고프고 한기를 느끼는 제자들에게 이것만큼 반가운 선물이 어디 있을까요? 아침 해가 두둥실 떠오르는 바닷가에서 따뜻하게 데운 떡과 생선으로 배를 불리면서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해 굳어 있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고. 긴장했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저는 이런 장면을 보면서 참 좋은 예수님이시다, 부활의 주님에게서 느끼는 인간미, 참 인간적이시다 하고 저는 감동을 받습니다. 인간적이다. 부활하기 이전에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신 주님이 이런 행동을 하셨다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고기 구워서 갖다 주시고, 떡 구워서 갖다 주시고, 너무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기분 좋은 것도 없고 마음이 끌리는 것도 없는 지친 인생임을 우리 주님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 이렇게 말씀하시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따끈한 떡을 가지고, 따끈한 생선을 가지고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러분 만약에 상황을 좀 바꾸어서 예수님이 이렇게 했다고 한번 가정해 봅시다.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아 녹초가 되어 가지고 지친 제자들이 물에서 올라오는데’, ‘근엄한 얼굴로 “자, 전부 이리 모여. 나하고 기도하자.” 만약 그랬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또 ‘“너희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잖아?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야. 나하고 그 이유를 좀 분석하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자. 전부 모여.” 아마 그랬다면 어떻게 될까요?’ 얼마나 그 분위기가 살벌할까요?’
‘여러분, 사람에게 영은 육보다 중요합니다. 사실입니다. 영적인 문제는 육적인 문제를 앞섭니다. 그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문제를 다루기를 원하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느끼고 있는 요구에 관심을 기울어야 합니다. 배가 고픕니까? 먹을 거 줘야 해요. 병으로 고통 합니까? 그들의 고통에 조금이나마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돼요. 우리가 거룩한 일을 다루면 다룰수록 좀 더 인간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굶주린 자에게 장황한 설교? 감동이 없을 것입니다. 잠을 자지 못한 자에게 성경공부? 그렇게 감동적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사실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말이지 좋으신 분, ‘어떻게 말하면 너무나 인간적인’ 분이십니다. 그런 주님을 ‘우리는 모시고 이 험한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외로울 필요가 없습니다. 실패했습니까? 혼자 교통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픕니까? 혼자 흐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 곁에 계십니다. 내 빈 그물을 던지며 고생하는 그 바닷가에 서 계십니다. 이 자리에 실패하고 빈 그물을 가지고 계시는 분 있나요? 이 가운데 배고픈 분이 계시나요? 이 가운데 잠자지 못하고 고민에 빠져 있는 자 있습니까?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만나세요. 그분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이쯤해서 오스왈드 샌더스의 ‘모래 위의 발자국’이라는 시로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네.
주와 함께 바닷가 거니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 모래 위에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네.
한 쌍은 내 것 또 한 쌍은 주님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네.
마지막 내 발자국이 멈춘 그 곳에서
내 인생의 길을 돌이켜 보았을 때
자주 내 인생 길에는 오직 한 쌍의 발자국만 보였네.
그 때는 내 인생이 가장 비참하고 슬펐던 계절이었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했을 때
당신은 저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러나 보세요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그때 거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 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은 저를 떠나 계셨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다네.
‘나의 귀하고 소중한 아이여,
나는 너를 사랑하였고 너를 조금도 떠나지 않았단다.
너의 시련의 때 고통의 때에도
네가 본 오직 한 쌍의 발자국 그것은 나의 발자국이었느니라.
그 때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노라.’
-임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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