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되어 요1:14~18절 2025.2.2. 주일오전
* 말씀에 대한 순종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성육신'이라는 단어로 줄여서 말하기도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비록 우리들은 이 말씀을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으로 가볍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1절에 말씀은 하나님인데 왜 하나님이 육신으로 세상에 오셨으며 왜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셔야 했습니까? 이 세상에서 뭔가 하실 일이 있다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말씀 하나만으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이루실 수는 없었던 것입니까? 만약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면 그냥 말씀으로만 우리를 구원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까? 단지 천국 보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분명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오시는 일이 없이도 그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필히 말씀이 육신 되어 하나님이 세상에 오셔야 했다는 것은 우리의 구원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말씀, 즉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육신이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죄악을 담고 있는 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죄 없으신 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육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죄가 있는 몸이 아니라 아담의 혈통으로 태어난 육신이 죄있는 몸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죄 없으신 몸입니다. 그냥 죄 없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죄 없으신 몸으로 사셨습니다. 결국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죄 없으신 몸, 즉 참 사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세상에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그리스도의 삶의 전부였습니다. 이것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야 했던 이유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심으로 인해서 결국 세상에 사람은 많지만 참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사람은 많았지만 진실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로 인해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날 때부터 육신을 가지고 태어나는 우리 입장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장에서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고 하늘에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세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별된 나라입니다. 전혀 다른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하늘은 영원한 생명이지만 세상은 한시적 생명입니다.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하늘을 버리고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을 버린 것과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 예수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에 오셨습니까? 세상에 오셨어도 세상으로부터 환영을 받고 높임을 받으셨다면 그나마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빛이 오되 세상은 빛을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아무도 영접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오심은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던 것입니다.
* 만남의 역사, 독생자의 영광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말씀에 대한 순종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십니다. 그것으로 세상은 전혀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말씀에 순종하신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내 힘으로 말씀에 순종해 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곧 말씀입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입니다. 즉 '예수님=말씀=하나님'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이나 예수님의 마음이 같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과는 다른 예수님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곧 예수님의 마음 되어서 사셨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순종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순종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 자기 마음으로 사신 것이고 그것이 순종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경우를 예로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도들이 소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할 때 대개의 경우 내가 그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과 내 마음이 서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즉 내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고 싶지 않은데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니까 할 수 없이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실천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순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만 맹목적인 신앙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분명히 하라는 명령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블신자에게 하는 명령이 아니라 성도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말씀은 지켜야 할 명령이 아니라 당연히 살아야 할 삶입니다. 즉 성도로서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산다면 말씀은 이미 명령이 아니라 당연히 살아야 할 삶입니다. 예수님의 순종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이미 같은 마음이기에 예수님께는 굳이 말씀에 순종한다는 의식이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만약 말씀대로 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면 그것은 내 마음이 아니라 곧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함께 하심은 곧 하나님의 생명에 함께 함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자신의 일을 도와주기 위한 함께 하심으로 생각을 하지만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생명에 함께입니다.
구약을 통해서 볼 때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된 존재이기 때문에 의 앞에서는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존재, 즉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기 위해서 필히 죄문제가 해결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신 것이 이스라엘 안에 성막을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생명이 무엇으로 연결되어지는가를 성막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막에는 제물의 피가 흘려집니다. 제물의 피로 인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성막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했습니다. 이처럼 구약에서 하나님의 성막에 충만했던 하나님의 영광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라는 성전에 충만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입니다. 죽도록 순종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어 하나님께 영광이 죄인과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 충만한 은혜와 진리
우리는 아버지의 뜻에 대한 아들의 순종으로 말미암은 영광을 보는 자들입니다. 이 영광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입니다. 그 아들의 십자가의 희생의 피로 나타난 영광입니다. 죄를 용납하지 않고 철저히 심판하시는 거룩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그 아들이라도 죄가 있다면 철저히 심판하시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드러나고 계시된 사건이 십자가입니다. 뿐만아니라 아들을 죽이심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한 대신의 죽음입니다. 죄인들을 불상이 여겨 그 죄인들의 죄를 그 아들에게 대신 담당케 하시고 그들을 대신해서 그의 아들을 대신 희생시키시는 긍휼의 하나님으로 드러나고 계시된 것이 독생자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이 그의 아들을 통해서 드러남을 통해서 하나님은 만족하시고 기뻐하심이 하나님께 영광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16~17절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모든 것이 은혜라는 고백입니다. 은혜는 은혜를 받는 자의 어떤 행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은혜 받을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베푸는 것은 은혜라고 하지 않습니다. 은혜가 요구하는 것은 단지 은혜를 은혜로 받으라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은혜와 다릅니다. 율법은 받는자에게 지킬 것을 요구합니다. 즉 율법은 율법을 지켜야 하는 행위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복종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종하지 않으면 형벌을 내립니다. 이러한 율법의 요구에 개입된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고 죄인 된 우리의 모든 것을 홀로 담당하신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고 말하지만, 사실 예수 그리스도가 곧 은혜이며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체가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이 없던 자들에게 하나님이 있게 되었고, 죄와 허물로 죽음밖에 없던 자들에게 용서가 되었고, 죄악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악하고 더럽고 흉악한 자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 된 상태 즉 생명의 사람이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 자체가 진리입니다. 진리라는 말은 참입니다. 인간 즉 이 세상은 거짓입니다. 인간 자체가 거짓이기 때문에 인간으로 구성된 이 세상은 거짓입니다. 이 세상의 인간은 마귀에 의해서 죄를 짓고 그 마귀의 사고에 의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마귀와 같은 거짓의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인간으로 비롯해서 참이라는 진리는 없고 있다면 다 거짓입니다. 그런 세상에 하늘의 참이요 진리이신 그리스도가 강림하신 것입니다. 거짓된 인간의 피를 단절하고 거룩하고 참 생명의 피를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오신 것입니다. 이 피에만 용서가 있고 생명이 있기에 은혜요 진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라는 한 분으로 충만한 사랑과 기쁨 감사를 누리게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