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선정 ‘우리 세상을 만들어 낸 100대 소설’
살다 보면 세월이 약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건만 너무나 많은 경우에 그 약은 쓰디쓰기만 하다. 무엇인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대신 어느 누구도 다른 인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이므로 가령 아내는 남편을, 바람둥이 남자는 불륜의 상대인 여자를, 부모는 자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편이 차라리 우리 모두에게 더 편한 일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신을-이해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존재를 발명했는지도 모른다. -본문에서
『조용한 미국인』은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 시대의 인간 의식과 불안을 완벽하게 그려 낸 최고의 작가”(윌리엄 골딩)이자 “인간의 사악함과 잔인함과 비정함과 악독한 우매함의 애매한 경계들을 넘나들며 다양한 차별화를 도모한 대가”(제이디 스미스)인 그레이엄 그린의 정수가 담긴 작품이다. 그린이 앞서 여러 장르 문학에서 선보인 기교와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텔링, 『권력과 영광』 그리고 훗날 발표하는 『말기 환자』 등의 굵직한 작품들에서 섬뜩할 정도로 신랄하게 그려 낸 기만과 모순으로 점철된 인간의 민낯을 완벽히 종합해 낸 『조용한 미국인』은 지극히 ‘그린다운 방식’으로 격동하는 현대사와 공명하며 커다란 울림을 전한다. 두 차례의 파괴적인 전쟁 끝에 도래한 탈식민주의의 물결과, 구세계 유럽의 해체, 이념으로 분열된 냉전 시대의 대두, 가톨릭 신앙과 실존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모든 사건과 현실에 연루되어 있고, 또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그레이엄 그린은 『조용한 미국인』 속의 세 인물, 즉 냉소적이고 기만적인 ‘영국인’ 파울러, 신념과 이상의 노예가 되어 실재하는 고통을 외면하는 이기적인 ‘미국인’ 파일, 구세계와 신세계 그리고 사상과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가는 ‘베트남인’ 후엉을 통해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불길한 암운을 예언적으로 간파한다. 이 작품이 1955년, 가령 참혹한 한국 전쟁(6.25 전쟁)이 겨우 휴전을 맺고 냉전이라는 새로운 제국주의가 본격화하던 시점에, 바로 그 증상으로서 나타난 베트남 전쟁과 거의 함께 발표되었음을 고려하면 그레이엄 그린의 통찰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그린은 얼핏 삼각관계(후엉을 둘러싼 파울러와 파일)를 다룬 여느 연애 소설처럼 보이는 거죽 아래 과거 열강(영국과 프랑스)의 만행과 무책임, 그럴싸한 명분으로 자기 잇속을 차리고자 또다시 베트남을 침략하고 유린하는 냉전 국가들, 특히 미국의 패권주의적 횡포(혹은 그 맹아)를 잔인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담아냄으로써 자칫 교조적으로 흐를 수 있는 주제를 보편적인 인간 조건의 문제와 절묘하게 결합해 내는데, 제이디 스미스의 지적대로 이토록 예민하고 정치적인 내용을 “질서 정연하고, 뚜렷하고, 심지어 재미있도록 엮어 낼 만한 작가는 그린밖에 없”을 터다.
“그래서 난 관여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건 이성이나 정의의 문제가 아녜요. 감정이 북받치는 순간에 우리는 누구나 얽혀 들기 마련이고, 그런 다음에는 결코 빠져나오지를 못하죠. 전쟁과 사랑, 그 두 가지는 항상 비교 대상이었어요.” -본문에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그동안 프랑스의 지배 아래에 놓여 있던 베트남은 해방과 독립의 열기로 달아오른다. 각기 이념은 다르지만 자주(自主)를 부르짖는 베트남 사람들, 지금껏 제국주의를 주도해 온 프랑스와 영국, 이제 새로운 패권 국가로 대두한 미국, 그에 맞선 공산주의 진영의 소련과 중국 등 복마전을 이룬 온갖 세력들은 푸른 대지를 핏빛으로 물들인 인도차이나 전쟁의 기나긴 포화 속에서 저마다 자신만의 이권과 목표를 쟁취하고자 격돌한다. 영국 《더 타임스》의 기자 토머스 파울러는 바로 이러한 혼란한 정세를 취재하기 위해 날마다 폭탄이 날아들고 논밭에서 살육이 자행되는 베트남으로 특파된다. 그러나 파울러의 위태로운 극동 파견에는 개인적인, 어쩌면 이기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이를테면 삶의 권태로부터, 어리석게 자초한 불행으로부터 허겁지겁 도주해 온 것이었다. 세상만사에 심드렁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냉소적인 파울러는 별다른 사명감 없이 기사를 송고하며 그저 매일매일 베트남 여인 후엉의 품에 안긴 채 아편을 태울 뿐이다. 자기 몫의 인생을 외면하고, 심지어 우연한 축복처럼 전장에서 죽기를 바라는 파울러의 눈앞에, 어느 날 낯선 사람 하나가 나타난다. 막 학생티를 벗은 혈기 왕성한 젊은이, 올든 파일, 그러니까 ‘조용한 미국인’ 말이다. 새로운 세계 질서를 수립하고 미국의 이상을 온 세상에 전파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 파일은 현실이 아니라 책 속의 사상에 심취한 채 혼란한 베트남의 한복판을 천연덕스럽게 누빈다. 그런 와중에 파일은 간절히 결혼 상대를 찾는 후엉을 만나게 되고, 동정 혹은 연민에 사로잡혀 별안간 사랑에 빠지고 만다. 안 그래도 서로 다른 가치관 탓에 사사건건 마찰을 빚던 파울러와 파일은 급기야 후엉을 두고 더욱 격하게 충돌하기에 이른다. 한편 프랑스 세력이 패퇴하고, 베트밍과 지방 토호와 사이비 종교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장 단체까지 창궐하면서 급박하게 변화하는 베트남 상황을 취재하던 파울러는, 이토록 죽음으로 얼룩진 참혹한 표면 아래에 더 거대한 암투가 도사리고 있음을 불현듯이 눈치챈다. 그러면서 차차 ‘조용한 미국인’ 파일의 정체를 의심하게 되고, 순진함이 지닌 잔인한 광기를 비로소 깨닫는다. 여태 선택과 책임을 방기하고, 오로지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파울러는 파일과의 만남을 계기로 스스로의 기만적인 태도를 반성하고 이미 세계와 연루되어 있음을 자각하며 결국 ‘참여’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그들은 총에 맞아 죽기를 바라지 않아요. 하루하루 무사히 지내기만을 원한다고요. 이념은 사치예요. 당신 생각에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밤이 되어 토담집으로 돌아간 농민들이 자리에 앉아서 신과 민주주의에 관해 명상할 것 같아요?” -본문에서
나는 스스로를 잘 알고, 내가 얼마나 속속들이 이기적인 인간인지 분명히 안다. 나의 가장 큰 소망은 마음 편한 삶이며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을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감촉으로 느낄 때면 나는 그저 불안하고 속이 몹시 메스꺼워져서 견디기가 어렵다. 때때로 순진한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박애주의 정신이라고 착각하지만, 내 행동은 기껏해야 훨씬 더 큰 어떤 선을 위해 작은 선 하나를 희생했던 데에 불과했으니, 오직 나 자신만을 생각해야 할 때에 조금이나마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행한 선심의 시늉에 지나지 않았다. -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