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산나물 뜯어 묵나물 말리기를 하다가...
2022년 5월 27일 금요일
음력 壬寅年 사월 스무이렛날
어제는 새벽에 잠시 제법 거세게 소나기가 내려
밭에 물주기를 하지않았다. 이미 전날 저녁무렵
물주기를 한 이후에 잠시잠깐이었지만 5mm쯤
비가 내렸으니 굳이 또 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어젯밤 예보에도 새벽녘에 소나기가 내릴 것이란
반가운 소식이었으나 빗나간 모양이다. 8시쯤에
소나기가 있을 것이라는 것으로 미뤄진 것 같다.
바람이 불고 잔뜩 흐린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같다. 꽤나 심한 봄가뭄이고 비를 기다리는
마음인지라 소나기라도 좋으니 내려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어제는 아내가 산나물을 뜯어서 묵나물 말리기를
하자고 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산나물을 뜯으려고
산에 올라가 온 산을 누비고 다녀야 하는 수고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단지 곳곳에 번식을 시켜놓은
갖가지 산나물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철에 나는 산나물은 그때그때 먹고싶으면 싱싱한
것을 한두 끼 먹을 만큼만 조금씩 뜯어서 먹곤 한다.
머잖아 날씨가 더 더워지게 되면 야생초인 산나물은
줄기와 잎이 억세져서 나물로 먹을 수가 없게 된다.
지금 이 시기가 산나물을 뜯어 묵나물로 말리기에
딱 좋은 때이다. 여러가지 산나물을 묵나물로 말려
두면 다음해 이맘때까지 언제든지 먹을 수가 있는
것이다. 넉넉하게 해놓아 우리만 먹는 것이 아니고
형제들과 나눔을 하고 이따금씩 집에 들리는 친구,
지인들께도 조금씩이나마 나눔을 하기도 한다.
산나물은 생나물과 묵나물 둘 다 좋은 식재료이다.
특히 햇볕에 말린 묵나물은 건조와 발효가 되면서
생나물일 때보다 영양분이 더 많아지고 보존이 더
잘 된다고 한다. 또한 비타민D, 엽산이 더 많아지고
식이섬유, 미네랄, 무기질등이 훨씬 더 풍부하다고
한다. 묵나물은 말려 묵혔다가 두고두고 먹는 것은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로운 저장방법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나물은 그 옛날에 쌀이나 보리같은
양식이 부족한 시절엔 구황작물(救荒植物)이기도
했다고 한다. 울릉도의 명이나물이 그랬고, 산촌의
어죽이 그랬으며, 흔히들 봄날 쑥으로 만들어 먹는
쑥버무리가 그런 것이며, 강원도 산골의 곤드레밥
또한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든 것이 다
풍부한 요즘은 별미로 먹거나 옛 추억을 되살리며
먹는 음식이긴 하지만 못 먹고 못 살던 그 옛날에는
산나물이 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우리는 여섯 가지의 산나물을 뜯어 데쳐서 말렸다.
곤드레, 참취, 개미취, 잔대순, 여린 망초순을 단지
곳곳에서 채취했고, 고사리는 뒷산의 군락지에서
아내와 함께 2~3일에 한번씩 꺾어온 것을 말렸다.
그동안 잔대순을 먹지 않았으나 마을분들이 맛있는
나물이라고 하여 지난해부터 먹고 있는데 맛이 꽤
좋다. 올해 처음 시도하는 여린 망초순은 지금까지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지만 꽤 괜찮다고 한다. 아주
지긋지긋한 생명력과 왕성한 번식력을 가진 망초는
보이는대로 뽑아제끼는 잡초인데 여린 순을 나물로
먹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묵나묵 말리는 작업도 우리 부부는 환상의 복식조,
산나물 뜯는 것은 함께 한다. 그다음 둘이 데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정겹게 나누며 잘 다듬은 다음
아내가 종류별로 하나씩 데쳐주면 촌부는 채반에
담아 잘 마르게 고르게 펼쳐서 햇볕이 좋은 곳으로
옮겨 널어놓는다. 이따금씩 한번씩 뒤집어 주기도
한다. 요즘은 햇볕이 좋아 이틀쯤 말리면 다 마른다.
산나물을 뜯는 것부터 시작하여 묵나물로 말리는
이 일련의 과정은 힘들지 않아서 그런지 참 재밌다.
먹거리, 식재료를 만드는 것을 즐긴다고나 할까?
그랬는데...
나물 데치던 아내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
아닌가? 금방 눈치를 챘다. 나물을 말리려고 보니
채반이 모자랄 것 같아서 엄마네에서 가져왔는데
나물을 데치다말고 병원에 계신 엄마 생각이 났던
것이다. 이곳 산골집에서 엄마를 모시고 세 자매가
함께 모여 살던 때 산나물을 뜯어오면 서로 나눠서
데치고 말리곤 했던 그때의 엄마 생각에 울컥했던
모양이다. 2년 반쯤인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에 엄마를 요양원에 모셔두고 온 그날 이후로
아내는 쇳덩이 하나를 가슴에 얹고있는 것 같다며
늘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집에서는 모실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시설에 모셔야 엄마가 더 편하게
계실 수가 있는 것인데 아내는 자식된 도리를 못한
것이 늘 죄스럽고 불효하는 것으로 생각해 지금껏
마음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착한 치매인데
왜 이렇게 갑작스레, 급격히 안좋으신지 모르겠다.
처남 큰아들이 할머니 보고싶다며 다녀갔다 하고
작은아들도 큰고모인 아내에게 할머니 보러간다고
전화를 했더란다. 오늘은 영주의 막내네가 올라와
조카 딸내미를 데리고 엄마 면회를 한다고 했다.
우리도 아들 녀석이 쉬는 다가오는 월요일에 함께
엄마를 뵈러가려고 한다. 집안의 가장 큰 어르신이
많이 편찮으셔서 우리 집안은 지금 비상사태이다.
80이 넘어서까지 외출시에는 마스카라를 하시고
"큰 이서방!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가자! 내가
사줄께!"하셨던 멋쟁이 엄마였는데... 그랬던 엄마
생각에 이 아침, 가슴이 먹먹하여 나도 모르게 그냥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첫댓글 추억이란
때때로 가슴 아릿하도록
다가와서 너무나 선명하게
마음을 흔들지요......
좋은 소식을 기다려 봅니다.
그러네요.
지금의 고비를 넘겨 다시금 엄마와 다정한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래전 저의 첫째 시누님께서
강원도 하장에 사셨는데
그때는 어머님이 계실때라
묵나물을 만들어 오셨었는데
된장찌게에 넣어도 맛있고
무쳐먹으면 더 맛있고
까질 이라는 찹쌀산자도 한박스씩
이고지고 오시던때가 생각 나네요.
지금은 모두 하늘을 지키고 계시는데...
살아가는데 어머님의 흔적이
닿지않은곳이 있으리요
늘 보일 빈자리에 가슴아파할
아내분의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아파도 추억이니...
힘 내세요~~~
그러셨군요.
강원도 산골에서 사는 촌부와 같은 주민들은 산나물로 묵나물을 많이 말려두곤 합니다. 나눔도 하면서...
요즘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엄마가 옆에 계신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그만큼 아내도, 촌부도 엄마 생각을 하고 있어 그렇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살아가면서 언제나
어머님은 가슴속에 간직한 아픔이지요.
산나물이 집에서 자라니 집나물이지요.
오늘도 건강한 날 되시고, 어머님이 쾌유를 빕니다.
이미 장인 어르신, 아버님, 어머님을 보내드린 아픔을 겪었지만 한 분 남은 엄마는 많은 세월 함께했기에 더 마음이 아픕니다. 이 상태로라도 더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망초순을 가장 좋아하는 나물입니다.
다른 나물도 좋아하는데 망초는 이상하게 특유의 맛이 있더라구요.
봄에 삶아서 말려두었다가 겨울에 두고두고 먹는데요.
마당에 제일많은 잡초가 망초라서 별 품이 안들어서 좋네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망초순 묵나물을 좋아하시는군요.
저희는 말만 들었지 아직 먹어보지는 않아 맛이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