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리 난 아파트 단지들 해도 너무한다와 다 죽게 생겼다.
한국경제, 이현일 기자, 2022.08.26.
서울 강남에 분양가 3.3㎡ 당 1억원짜리 아파트가 잇따라 나온다. 고급 빌라나 오피스텔이 아닌 아파트가 1억원이 넘는 분양가로 나오는 것은 처음이다. 26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강남구청은 지난주 감정평가 기준 추정 분양가격이 3.3㎡ 당 8500만원대에 달하는 삼성동 98번지 가로주택정비사업 관리처분계획안을 인가했다. 재건축·재개발 조합은 보통 구청에 신고한 분양가보다 10~15% 가량 높은 가격을 책정한다. 오정혜 조합장은 "분양 시기는 확정하지 않았지만 일반 분양가를 3.3㎡ 당 1억~1억2000만원 가량으로 책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종전 최고가를 기록한 서울 송파동 '잠실 더샵 루벤'의 분양가 6500만원을 대폭 뛰어넘는 수준이다. 분양가 상한제 단지 중에선 지난해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의 분양가 3.3㎡ 당 5653만원이 최고였다. 고분양가 단지가 등장한 것은 정부의 인센티브로 인허가가 비교적 쉬운 소규모 개발이 그동안 활발하게 진행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업장에선 정부의 엄격한 대출규제로 인해 분양이 제대로 될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편으로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는 대형 재건축·재개발 단지들에선 ‘해도 너무한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1. 열심히 진행해온 소규모 정비사업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의 한강쪽 뒷편 노후 빌라들을 재개발해 분양가 3.3㎡당 1억원을 노리는 이 단지는 효성중공업이 공사를 맡아 총 118가구(전용면적 40~133㎡)의 '효성H 스케이프' 단지로 신축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27가구를 일반에 분양한다. 공급 가구수가 30가구 미만이라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 받지 않는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삼성동 청담동 등 강남 핵심지는 고급빌라나 오피스텔이 3.3㎡당 1억원을 훌쩍 넘긴 가격에 소화되는 시장"이라며 “핵심 입지에 들어서는 단지는 충분히 통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가로주택정비사업 등이 강남3구의 30여곳에서 추진되고 있다. 도로를 접한 최대 2만㎡ 규모 저층 주거지를 묶어 아파트로 짓는 소규모 재개발로 정부와 서울시가 지원하는 사업이다. 현대건설을 필두로 DL건설과 GS건설 등 대형건설사들도 적극적으로 소규모 주택정비 시장에 뛰어들면서 사업은 활발히 진행돼왔다. 현대건설이 하이앤드 브랜드 디에이치를 적용하는 대치동 선경3차 아파트는 서울 지하철 3호선 대치역 1번출구에서 불과 40m정도 거리의 역세권 단지다. 관리처분계획 수립을 위한 감정평가를 하고 있다. 일반 분양가는 1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 래미안대치팰리스 등 신축 시세가 3.3㎡당 1억원 내외고, 현대건설이 하이앤드 브랜드 디에이치를 사용한 고급화 단지로 기획해 공사비가 추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회사가 대치동 휘문고 옆 비취맨션 부지에 짓는 단지 역시 서울 지하철 2호선 삼성역, 코엑스, 현대차 신사옥(GBC) 현장 등이 걸어서 5~10분 거리다.
2. 활성화 전망 어두워, 대출 규제 때문에 다 죽게 생겼다.
그러나 서울 소규모 단지 분양이 본격 활성화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전망이 어둡다. 극도로 침체된 시장분위기 때문이다. 서울시 전체에서 상반기말 기준 141개 구역에서 가로주택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상당수가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서울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묶여, 분양가 9억원이 넘는 주택은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하고 15억 이상 주택의 담보 대출은 불가능한 탓이다.
대출금지 조치가 시행된 2020년 이후 분양이 급감했고 기존 주택 거래도 끊겼다. 2020년 1만5161가구를 기록한 서울 아파트 분양 가구 수는 지난해 3176가구로 급감했고 올해 상반기엔 1469에 그쳤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올들어 시장금리가 급등하자 서울에서도 미분양이 발생하고 부동산 시장이 말 그대로 멈춰섰다”며 “입지가 떨어지는 곳에선 주변 시세와 비슷하게 분양하면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로또 분양'이 아닌 대부분 주택정비 조합들은 사업이 진행돼 분양 시기가 다가올수록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강북에선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도 나왔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2가 `장안타운 소규모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은 지난달 조합을 해산하고 연립주택 39가구를 한 기업에 매각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분양은 얘기도 못 꺼낸다"며 "어떻게든 사업을 미뤄야 하고 현행 규제가 계속되면 재건축 재개발 조합들은 다 죽는다"고 말했다.
3. 분양가 상한제 단지들 ‘부글부글’
주변 시세와 비슷한 가격에 분양하는 소규모 개발 단지들과 달리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는 대형 재건축 단지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상한제 분양가와 주변 시세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불만이다. 반포동의 한 재건축 조합 임원은 “강남권에서 분양을 하면 대출 규제 때문에 사실상 현금 많은 부유층에 로또를 선물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뭘 위해 심하게 분양가를 억누르는지 모르겠다“고 불만 터트렸다. 국토부 관계자는 ”주변 시세가 급격하게 오른 탓이지 규제를 강화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상한제 분양가와 주변 시세의 차이가 너무 큰 탓에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분양한 래미안 원베일리(경남·신반포3차 재건축) 단지는 옆 단지의 반값 수준이었다.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59㎡가 26억원에 거래됐는데 원베일리 13억~14억원 수준에 분양돼 ‘로또 아파트 열풍’을 불러왔다. 내년 분양을 앞둔 반포주공1단지(1·2·4주구)와 둔촌주공 등에서도 로또 열풍이 재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분양가 상한제 등 부동산 규제가 주택 공급을 지연시킨다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로 수익성이 크게 낮아지는 탓에 서울 신천동 진주 아파트와 신반포15차 등 재건축 단지를 비롯해 은평구 대조1구역, 서대문구 홍은13구역 등 다수의 재개발조합이 분양을 미루고 있다. 둔촌주공 역시 후분양으로 사업을 진행하다 좌초 위기를 맞기도 했다. 오지윤 KDI 연구위원은 ”분양가 상한제는 전형적인 가격 통제 정책“이라며 ”경제학에서도 가격통제 정책은 시장에서 과소 공급이 발생하고 초과 수요를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기사 내용을 정리하여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