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아멘: 교황에게 묻다》 (The Pope: Answers, 2023) 어떤 종교든 그 종교의 수장을 떠올릴 때마다 기대하게 되는 상이 있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이라도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을 갖추고 언제나 온화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지만 지켜야 할 것에 대해서는 단호한 모습을 보이는, 친근하고 다가가기 쉬우나 위엄과 품격을 잃지 않는 사람. 최소한 한 종교의 수장쯤 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런 모습을 지녀야 할 것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현실에서는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 수장으로 있는 교회와 교단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교단의 수장을 선출하는 자리에서조차 더러운 잡음이 끊이지 않고, 성직자의 범죄에 대해 제 편 감싸주기식 치리가 난무하며, 교단의 수장이 칭찬과 존경보다는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나 자주 경험하니 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영화 《아멘: 교황에게 묻다》는 종교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2023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아멘: 교황에게 묻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 각지에서 초청된 각양각색의 청년 10명과 자유롭게 대담한 내용을 담은 영화다. 대부분 20대 초반인 청년들 중에는 신실한 교인뿐 아니라 무신론자도 있고, 심지어 무슬림도 있으며, 페미니스트도 있고, 성소수자도 있으며, 신앙을 떠난 전직 수녀도 있다. 첫 인사와 더불어 교황님은 봉급을 얼마나 받으시냐는 가벼운 질문을 시작으로 화기애애하게 조성된 분위기도 잠시, 청년들은 이내 진지하고 날카로울 뿐 아니라 교회에서 금기시될 법한 질문까지 과감하고 공격적으로 교황에게 던진다. 무신론자요 불가지론자로 자칭한 청년은 교회를 시대착오적이고 구식이라 비난하면서 교회의 존재 의미를 묻고, 한 남자청년은 가톨릭계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교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교황에게 말하면서 가해자가 성직자인 경우 교회의 치리가 너무나 형편없다고 비판한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칭한 한 여자청년은 낙태 문제에 보수적이며 여성에게는 사제직을 허락하지 않는 교회의 입장을 비판한다. 더 나아가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밝힌 청년은 교회 내에 성소수자를 위한 공간이 있는지를 묻는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교황은 교회가 낡게 된 본질적인 원인은 교회가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인 주변부 또는 변방에 있지 않고 안락한 중심부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중심부의 안락함 속에서 성직자는 자신이 사람들의 보호자라는 걸 잊고 조직의 성직자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날카롭기 짝이 없는 질문들에 맞서는 교황의 대답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그의 대답의 내용이 아니라 대답의 태도다. 어쩌면 불쾌하기까지 할 금기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교황은 시종일관 포용과 사랑의 태도를 잃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낙태 금지로 인한 여성들의 고통을 눈물로 호소하면서 “합법적으로, 안전하게, 무상으로”라는 낙태 찬성 구호가 적힌 스카프를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드리고 싶다는 청년의 제의에 교황은 환한 미소로 화답하며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스카프 선물을 받아들인다. 낙태에 대해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단호하게 설명하면서도 기꺼이 스카프를 받아주는 교황의 태도는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해준다. 교회에 성소수자를 위한 공간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교황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식이죠. 모두가요. 하나님께선 누구도 거부하지 않으세요, 아버지시죠. 누구든 교회에서 쫓아낼 권리가 저한텐 없어요. 늘 환영하는 게 제 임무예요. 교회는 누구에게도 문을 닫을 수 없어요, 누구에게도요.” 교회의 기능과 존재 의미를 넘어 성직자의 성폭력, 인종차별, 이민자, 성소수자, 섹스 등 다양한 교회와 사회적 문제와 관련된 청년들의 질문들에 대해 격의 없이, 온화함을 유지하며, 때로는 단호하게, 하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과 애정만큼은 끝까지 잃지 않는 교황의 태도는 대답의 내용을 떠나 부러움과 존경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사람을 묘사하는 형용사와 형용사의 꾸밈을 받는 명사로서의 사람을 구분하는 교황의 말은 아직도 여운이 남는다. “우린 형용사 문화에 빠져 있죠. 우린 형용사를 통해 모든 걸 상대적으로 만들고 그걸 쌓아 올려요. 형용사는 세례를 받지 않죠. 명사는 받고, 사람들은 받아요. 전 사람들을 믿어요.” 우리는 얼마나 많은 형용사로 자신과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는지. 진실로 중요한 것은 세례를 받지 않는 형용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명사인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