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이미산
몹시 아팠던 여섯 살
슬픔이 초대한 매미 한 마리
내 오른쪽 귓속에 눌러앉았지
누군가 내 국어책 숨겼을 때
매미는 나 대신 골목을 헤매며
돌려줘
돌려줘
직장에 다닐 땐 피곤해 피곤해
그래서 결혼이나 하고
일기장에 이상한 남편을 일러바칠 때도
매미는 나보다 더 슬피 울었지
매미가 떠나면 나는 행복해질까
보약을 먹고 명상음악을 듣고
그러나 점점 힘이 세진 매미는
원고 마감일
고치고 또 고치다 문장의 뼈대마저 허물어졌을 때
두 마리였다가 세 마리였다가 죽음의 칸타타 레퀴엠
나는 살려줘 살려줘
매미는 나를 삼키고 떠나겠다는 듯이
그래서 그날까지
우리는 서로를 묵묵히 견딘다
---애지 2025년 봄호에서
알렉산더대왕은 ‘천하는 다 내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그의 전재산을 다 나누어주었고, 카네기는 ‘부자로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그의 전 재산을 다 사회에 환원했다. 자야 여사는 그의 전재산을 조계종단에 헌납하면서 ‘이까짓 재산 따위는 백석의 시 한 편만도 못하다’라는 말을 남겼고, 몽테뉴는 일찍이 은퇴하여 ‘건강에 이로운 숲’을 거닐면서 그의 {수상록}을 남겼다. 알렉산더 대왕은 권력의 호머였고, 카네기는 경제의 호머였다. 자야 여사는 기생으로서의 호머였고, 몽테뉴는 철학자로서의 호머였다. 인류의 역사상 호머가 최초의 시인이자 최후의 시인이라면 진정한 시인은 언제, 어느 때나 자유분방하고 호탕하며, 그가 가진 모든 재화들을 아낌없이 다 나누어 주고 간다.
공자와 맹자와 노자와 장자, 또는 부처와 예수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언제, 어느 때나 시신詩神과 함께 살며, “시를 써라! 붉디붉은 피로 시를 쓰며 전인류의 마음을 사로잡아라”라고 역설했다면, 좀 더 깊이 있는 안목과 성찰을 지닌 나는 “진짜 시인의 삶을 살아라! 너의 삶 자체가 시가 되고 행복이 되는 그런 삶을 살아라!”라고 말하고자 한다. 시인의 길에는 수많은 샛길과 오솔길도 있고, 시인의 길에는 수많은 바닷길과 하늘길도 있다. 시를 쓰는 것은 시인의 삶을 사는 것만 못하고, 시인의 삶을 사는 것은 시신詩神의 등에 올라타 자유 자재롭게 천하를 주유하는 것과도 같다.
이미산 시인은 진짜 시인이며, 그는 시를 쓰는 삶이 아닌 진짜 시인의 삶을 산다. 그의 [이명]은 매미 한 마리가 되고, 이 매미 한 마리는 시신詩神이 되어 그의 영혼과 육체가 되어 준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끊임없이 시를 찾아 헤매는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다면 그는 매미 한 마리, 아니, 그의 시신詩神을 거느리고 시인의 삶을 산다. “몹시 아팠던 여섯 살”은 유난하고도 특별했던 그의 출생의 고통을 말하고, “슬픔이 초대한 매미 한 마리/ 내 오른쪽 귓속에 눌러앉았지”는 그의 남다른 출신성분, 즉, 진짜 시인으로서의 그의 은총과 축복을 말해준다. 어차피 이 세상의 삶은 슬픈 것이고, 따라서 그는 슬픔 속에서 살며, 그 슬픔을 만인들의 노래로서 승화시키며 살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내 국어책 숨겼을 때/ 매미는 나 대신 골목을 헤매며/ 돌려줘/ 돌려줘”라고 울었다는 것이 그것을 말해주고, “직장에 다닐 땐 피곤해 피곤해/ 그래서 결혼이나 하고/ 일기장에 이상한 남편을 일러바칠 때도/ 매미는 나보다 더 슬피 울었지”가 그것을 말해준다.
술꾼에게는 금주가 제일 어렵고, 학자에게는 학문 연구가 제일 어렵다. 정치 건달들에게는 성인군자의 탈이 가장 어렵고, 면벽수도승에게는 금욕적인 계율이 가장 어렵다. 아무튼, 어쨌든, 이미산 시인은 때때로, 시도 때도 없이 슬픔의 징후를 알려주고 그 슬픔을 승화시켜주는 매미의 울음 소리가 지겹고 귀찮아 “매미가 떠나면 나는 행복해질까”라고 “보약을 먹고 명상음악을” 들어도 보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미는 점점 더 힘이 세어졌고, “원고 마감일/ 고치고 또 고치다 문장의 뼈대마저 허물어졌을 때/ 두 마리였다가 세 마리였다가 죽음의 칸타타 레퀴엠”이 나를 지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시는 이명이고, 이명은 매미이고, 매미는 시인이다. [이명]은 독창, 이중창, 삼중창으로 이미산 시인의 슬픔을 승화시켜주고, 그리고 끝끝내는 이미산 시인의 영혼을 위한 ‘레퀴엠’을 준비한다. 이명, 즉, 매미의 노래는 “살려줘 살려줘”라는 시구에서처럼 이 세상의 삶의 찬가이고, “그래서 그날까지” 시인과 매미는 ‘한마음- 한뜻’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주지하다시피 ‘이명耳鳴’은 바깥 세계의 소리가 없는데도 귀에 소리가 들리는 질병이지만, 그러나 이 질병은 소크라테스에게는 ‘다이몬’, 수많은 점술사에게는 ‘전지전능한 신’의 소리라고 할 수가 있다. 이명은 매미이고, 매미는 시신詩神이고, 시신詩神은 이미산 시인의 충신忠臣이다. 시인과 이명, 이명과 매미, 아니, 시인과 시신詩神이 ‘한마음-한뜻’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산 시인이 공자, 맹자, 장자, 노자, 부처, 예수, 소크라테스, 플라톤처럼 천하제일의 시인의 경지에 올라섰다는 것을 뜻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으로 추천하자 인류의 역사상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천체물리학자인 아인시타인은 이렇게 거절했다고 한다. ‘대권은 순간이지만, 물리학은 영원하다’라고----.
인생은 시이고 예술이며, 인간은 모두가 다같이 시인이다. 슬픔(고통)을 살며 슬픔을 승화시키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다가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시는 천하제일의 궁전이고 천하제일의 권력이다. 시는 천하제일의 금은보화이고, 천하제일의 행복이다.
모든 것은 순간이지만, 시는 영원하다. 시인은 언제, 어느 때나 자유분방하고 호탕하며, 전지전능한 ‘시신詩神’을 그의 충신으로 거느리고 산다.
모든 신들의 창조주는 시인이며, 우리 시인들이 없었다면 그 모든 신들과 종교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