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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시와 똥 돼지
김 선 구
통시는 제주도농가에서 사용하던 전통적 화장실이다. 경상도와 강원도 일부에서도 화장실을 통시라고 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사뭇 달랐을 것이다. 제주도 통시는 돌담으로 우리를 만들어 돼지를 키우면서 화장실을 겸했다. 지금은 제주성읍민속마을에나 가서야 그 모습을 엿 볼 수 있다. 측간용 디딤돌이 나란히 놓여있고 그 옆에 돼지집이 있다. 측간에 볼일 보러 가면 제일 먼저 나와서 인사하는 것이 돼지였다. 사람의 기척은 돼지들에게는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신호로 생각했다. 돼지가 사람의 배설을 기다렸다. 사람은 배설의 시원함을, 돼지는 섭식의 즐거움을 같이 누렸으니 서로 궁합이 잘 맞는 관계였다.
이러한 습관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측간에 갔다가 돼지가 나타나면 기겁하여 일어서기 일 수였다. 나의 아내는 도시에서 성장하여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하였다. 시집온 다음 측간에 갔다가 놀래어 뛰쳐나오는 바람에 식구들 모두가 어리둥절하였다. 나의 부친께서 고심 끝에 실한 몽둥이를 준비하여 측간에 메달아 놓았다. 아내는 측간에 갈 때면 시아버지가 만들어준 몽둥이를 들고 돼지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이런 일로 신혼 초에 변비증이 생겨 한동안 고생했다.
육지 사람들이 제주도를 다녀가면서 특이한 화장실 문화를 경험하고 제주농가에 기르는 돼지를 똥 돼지라 불렀다. 식탁에 오를 돼지고기가 화장실에서 키워진 생산물이라는데 대한 거부감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고래가 토해 낸 퇴적물이 해변에 닿으면 그 악취가 지독하다고 한다. 그 악취가 어느 정도인지 가눔이 안 되지만 거기에서 최고급 향수를 축출하여 낸다고 하니 원료가 어떻든지 상품이 좋으면 되지 않겠는가! 육지 사람들도 제주에 와서 돼지고기를 먹어본 다음에는 그 맛을 이구동성으로 칭찬하곤 했다.
뿐만 아니라 제주에서는 돼지가 인분을 처리해 줌으로써 화장실이 훨씬 깨끗하게 유지되었다. 통시에 가면 인분냄새가 아니고 퇴비냄새가 대신하였으니 화장실에 대한 거부감이 훨씬 적었다. 따스한 가을볕을 받으며 측간에 앉아 있으면 세상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악어새들은 악어가 입을 크게 벌릴 때를 기다렸다가 입안으로 들어가서 이빨 틈에 끼인 음식물 찌꺼기를 쪼아 먹고 살아간다. 새들은 악어로부터 음식물을 제공받아서 좋고, 악어는 이빨을 청소해 주니 서로 공생하는 관계이다. 제주 인들과 똥 돼지도 이러한 공생관계를 이루어 살아갔다.
돼지에게는 쌀 씻은 물, 채소 다듬고 남은 찌꺼기, 보릿겨 등 온갖 농산부산물과 설거지한 구정물을 사료대신 제공하였다. 통시에는 돗도구리라는 사료통을 비치하여 두었다. 커다란 돌덩이를 징으로 움푹하게 파내서 만들었기 때문에 힘센 장정도 혼자서는 들을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돼지는 땅을 파는 성질이 있어서 가벼운 사료통은 뒤집어 버리지만 이것만은 움직일 수 없으니 제주 인들이 돼지를 다루는 기술이 탁월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통시는 돼지들의 요람이면서 퇴비와 구비(廏肥)를 만들어내는 작업장이었다. 퇴비는 농사짓는데 없어서는 안 될 거름이기 때문에 생산에 각별했다. 통시 밑바닥에 깔 짚으로 보릿짚을 넣어주면 돼지가 그 위에 똥을 싸고 섞어서 좋은 거름을 만들었다. 외양간의 구비도 일단 통시를 거쳐 돼지의 발길이 지나야 잘 부숙(腐熟) 되어 거름으로 진가를 발휘했다. 사람들이 돼지를 돌보아주는 만큼 돼지들은 통시에서 퇴비를 만들어 주었다.
가을이 되면 한 해 동안 만들어낸 퇴비를 밭으로 실어내어 보리를 파종했다. 청량한 가을 공기에 실려 퇴비냄새가 온 들판을 누볐다. 우리는 맨손으로 퇴비덩어리를 주물러 한 올 한 올 펴서 밭 전면에 골고루 뿌렸다. 퇴비가 묻은 손으로 숟가락질 하며 밥을 먹어도 거리낌이 없었다. 이내 밭을 갈고 씨앗을 뿌려 놓으면 실한 보리 싹들이 풍년을 예고하듯 들판을 푸르게 장식했다.
퇴비를 쳐내버린 통시는 깨끗이 정리되어 널찍하게 보였다. 바닥에 보릿짚이 새로 두둑하게 깔리면 비로소 아득한 보금자리로 변했다. 여기에서 돼지들은 신방을 꾸미고 사랑을 나누었다. 발정 온 암퇘지를 수퇘지 집으로 시집보내는 날 동내사람들이 모여들어 그들의 합방을 축하했다. 오락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돼지 접붙이는 모습은 농한기 시골사람들에게 유일한 볼거리였다.
돼지가 임신하면 각별한 보살핌을 받았다. 푸성귀며 보릿겨 등 먹을 것을 더 주고 깔 짚도 충분히 넣어 주었다. 그에 보답하듯 어미돼지는 새끼를 낳고 잘 키워내었다. 젖 뗄 때가 되면 돼지새끼들을 가마니 속에 담겨 오일 마다 서는 시장으로 옮겨갔다. 거기에서 새끼돼지들은 현금화되어 주인의 기분을 즐겁게 해주었다. 오랜만에 술도 한잔하고 아이들 먹을 군것질 거리도 사들고 돌아왔다.
때로 주인이 세상을 뜨게 되면 돼지도 함께 저승길에 동행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하여 돼지 한 마리는 희생해야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문상객과 상여꾼들을 접대해야 하였기 때문이다. 상주들이 곡하는 소리 속에 섞여 알 듯 말 듯, 돼지 목 따는 소리가 이승에 대한 마지막 작별인사였다. 뜨거운 물로 목욕한 돼지는 털이 다 벗겨지고 맨살만 드러냈다. 돼지의 내장은 꺼내어 순대를 만들고, 고기는 익혀서 제물이나 접대용으로 쓰였다.
돼지를 삶기 위하여 커다란 가마솥이 동원 되었다. 삶아진 고기를 건져 낸 후 가마솥에는 바다에서 채취해두었던 해초 <몸>을 넣어 국을 한 솥 가득 끓였다. 돼지 삶은 국물과 몸이 어우러져 맛이 일품이었다. 장례를 치르는 상여꾼들은 이 국 한 그릇을 얻어먹는 것으로 흡족했다. 지금 제주에서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몸국>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내가 장가가던 때도 돼지도 한 마리가 희생하였다. 그 덕에 친족들과 이웃사람들이 모여들어 몸국을 끓이고 순대를 만들고 돼지고기를 썰고 야단법석을 떨어 잔치집의 분위기를 돋우었다.
제주도에 화장실 문화가 바뀌고 개량종 돼지들이 들어오면서 똥 돼지의 존재도 사라져 버렸다. 통시를 지키던 토종 돼지의 명맥이 한동안 끊겼다. 오랜 노력 끝에 토종돼지를 추적하여 제주흑돼지란 이름으로 복원되었다. 제주흑돼지가 제주특산물로 전국에 팔려나가고 있다. 토속음식인 몸국, 아바이순대가 식도락가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통시와 똥 돼지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것들이 남긴 흔적은 문화유산으로 유지되고 있으니 다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첫댓글 제주도의 통시는 육지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돼지가 사람의 인분을 처리하고 돼지의 배설물은 퇴비로 쓸 수 있으니 일석 삼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잔치때 우리들에게 푸짐한 고기를 선사하니 참으로 유용한 동물입니다. 육지에서 온 사람들은 그러한 화장실 문화에 익숙해 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제주도의 특식, 돼지의 먹이용 도구들에 대한 지식도 얻어갑니다. 김천에도 지례 흙돼지가 유명합니다. 우리 지방에서는 잔치 때 돼지고기와 돼지의 피를 두부와 버무려 창자에 넣은 순대가 반드시 나왔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주도 똥돼지에 대하여 익히 알고는 있엇지만 글을 통해 자세하고 유익한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돼지를 키우고 배설물을 자연적으로 처리해온 선조들의 예지가 놀랍습니다. 그리고 그 배설물을 적이 활용 먹거리 재배에 비료로 사용한 일석 삼조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좋은 글 많고 유익한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몇 차례 제주도에 갈 때마다 흑돼지는 빠지지 않는 메뉴였지요. 그리고 민속 마을에서 통시의 모습을 보는 것도요. 육지에서도 토종개는 모두 똥을 먹는다고 똥개라 불렀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마당 구석에서 볼일을 보면 집에서 기르는 개가 그 근처에서 꼬리를 흔들곤 했지요. 그때 사람들은 그걸 최고의 보신탕 재료로 생각했습니다. 사는 게 모두 그렇지요. 그걸 미개하다 어쩌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되지요. 잘 읽었습니다.
옛 이야기 글 잼 있게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제주도 똥돼지 말로만 듣고 의문이 많았는데 실감하였습니다. 지난시절 이야기 지만 없어졌어 아쉽습니다. 다 우리의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몸국의 유래를 배웠으며 제주 흙돼지 맛은 일품이었으며 다시 먹고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통시와 똥 돼지 이야기 속에 제주 사람들의 정겹고 지혜로운 생활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공생하고 순환하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제주의 풍습은 문화유산으로 유지되기에 충분합니다. 유익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通屎間통시간이 순수한 경상도 사투리인줄만 알았습니다.요즈음 화장실을 옛날에는 이렇게 통시간이란 단어가 있었다고 생각하니 그 뜻도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제주도 통시간과 똥돼지,몇번 다녀왔습니다만 통시간은 못 보았습니다. 사모님 기겁한 일도 상상이 갑니다.우리의 옛날 통시간보다 훨씬 청결한 느낌이 듭니다. 인분냄새 보다는 퇴비냄새가 훨씬 나으니 돼지가 참 청소를 잘 해주는구나 과학적인 통시간 구경하고싶습니다.
제주 통시 문화에 대하여 새롭게 배우게 됩니다. 사람의 인분을 먹는 동물이 가장 인간과 밀접하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똥개가 가장 인기있고 주인과 가장 가깝게 살아가는 것 처럼 말입니다. 특이한 풍습이 사라져 아쉬움을 느끼게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