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날에 부쳐
이사 40,1-11; 마태 18,12-14 / 대림 제2주간 화요일; 2024.12.10.
자연 상태에서는 진공이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기압이 낮아 공기가 희박해지면 기압이 높은 곳에서부터 공기가 이동하여 지구 대기권 안에서 평형을 이루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람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적도 근처 바다에서 뜨거운 태양열 때문에 막대한 양의 수증기가 발생하여 증발하면 그 바다 위에서는 순간적으로 반진공 상태가 발생하기 때문에 주변의 찬 공기가 몰려들어서 기압이 높아지면, 이 때문에 뜨거워진 수증기를 머금은 공기는 상대적으로 찬 공기가 많은 저기압 지역으로 공기가 이동하는데, 이것이 바로 태풍입니다.
인권, 즉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권리 역시 이와 비슷합니다. 진공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라면 그 누구라도 예외 없이 또 어떤 상황에서도 인권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이를 인권의 보편성이자 절대성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인권이 침해당하기 쉬운 상황에서나 일상적으로 인권이 유린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에 있어서는 사회 구성원들과 특히 국가 공권력이 인권의 보편성과 절대성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우리 사회가 인권 의식을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고 운영되고 있는지 상시적으로 감시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교리 주간으로 지내는 대림 제2주간의 첫 째날이었던 어제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어서 무염시태와 강생의 신비에 입각하여 살펴본 바는 인간 존엄성이라는 진리였습니다. 과연 인간은 하느님이 인간 세상에 오시어 되고 싶어 하실 만큼 존귀한 존재이며, 또 이렇게 인간이 되고자 오시는 구세주의 어머니를 세상의 죄에 물들지 않도록 보호하실 만큼 존귀한 존재라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은 재화의 보편 목적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사회교리 명제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사회교리 주간의 두 번째 날인 오늘은 인권의 날입니다. 지난 대림 제2주일이 인권 주일로 정해지게 된 이유도 모든 나라에서 12월 10일인 오늘을 세계 인권의 날로 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권의 날(人權-, Human Rights Day)은 1948년 12월 10일에 열린 국제 연합 총회에서 세계 인권 선언이 채택된 것을 기념하는 날로, 1950년 12월 4일에 열린 국제 연합 총회에서 매년 12월 10일을 세계 인권 선언일로 기념하는 결의안이 채택된 이후부터 전 세계 각국에서는 이 날을 세계 인권 선언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국제인권기념일'이라고도 합니다. 세계인권선언은 전문(前文)과 본문(本文) 30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인간으로서 시민적·정치적 자유 및 사회보장·노동권, 공정한 보수를 받을 권리, 노동자의 단결권, 노동시간의 제한과 휴식, 교육에 관한 권리,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등 사회적·경제적 권리에 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권리들이 기본적인 인권으로 법적인 보장을 받게 되기까지 인류는 역사적으로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강생의 신비가 보편적인 사회현실로 나타나는 과정이 그리도 오래 걸리고 험난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목적은 사람을 하느님처럼 존귀하게 대하라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천주교가 들어와서 인간 존엄성이라는 진리가 사회적으로 정착되기가지에는 오묘한 섭리가 작용하였습니다.
19세기 초엽에 신유박해로 말미암아 전라도 강진 땅으로 유배되어 내려간 정약용은 유배를 당한 덕분에 무려 18년 동안이나 학문에 전념할 수 있었는데, 5백여 권에 이르는 책을 저술할 수 있었고 또 찾아오는 학인들을 받아서는 학문을 전수하기도 했습니다. 개중에는 저술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운 학문을 종교적 신념으로까지 승화시킨 경우도 있는데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그런 인물입니다. 동학을 거쳐 천도교로 간판을 내건 최제우와 최시형, 전봉준 등 그 제자들은 정약용의 저술을 통해 강생의 신비를 배운 이 천주교 교리를 ‘사인여천(事人如天)’, ‘시천주(侍天主)’, ‘인내천(人乃天)’ 등의 토착화된 명제로 알아듣기도 했지요. 이 모든 명제를 집약한 깨달음이 바로 ‘후천개벽(後天開闢)’입니다. 예수님께서 “때가 다 되어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신 진리를 한국의 전통 사상에 비추어 알아들은 것이지요. 예수님이야말로 ‘새 하늘’이셨고, 그분 덕분에 ‘새 땅’이 열렸음을 우리 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묵시 21,1 참조)
인권 의식이 보편화되어가는 오늘날 바람과 태풍의 이치처럼 특히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현상이 있습니다. 바로, 인권을 무시당하기 쉬운 사람들에 대한 관심입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비롯하여 난민, 이주노동자, 성 소수자, 노숙자나 부랑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인간 존엄성을 보장받고 그를 바탕으로 행복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그들도 사회의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을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특히 가부장 문화 속에서 남성의 권리가 여성의 권리를 압도해 온 우리네 전통 문화와 가톨릭교회의 문화 속에서 여권의 보장과 신장은 인간 존엄성 진리가 살아 있느냐의 여부를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기능합니다. 이 모두가 인간 존엄성 진리를 통해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정치적 자유에 관한 인권이 어렵사리 민주화 투쟁을 통해 어느 정도 정착된 것에 비해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인권에 대한 의식이나 제도적 보장 정도는 대단히 약합니다. 보육이나 교육에 있어서, 또 고령화 추세에 비추어 절박해 진 돌봄에 있어서도 그렇고, 주거와 의료 등 필수적인 사회적 조건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듭니다. 그래서 저마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노쇠한 부모를 요양원에 맡겨 노후를 보내게 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자기 집을 장만하는 데 십수 년이나 그 이상의 세월이 걸립니다. 이 때문에 경제적 능력의 차이에 따른 주거의 불평등이 심각합니다. 국민의료보험 제도가 마련된 덕분에 그나마 의료 복지는 그 어느 선진국보다도 나은 형편이기는 합니다. 머지 않아 마련될 제7공화국의 헌법에서는 사회적 인권이 국가가 보장해 주어야 할 기본 인권으로 명문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우리와 경제적 형편이 비슷한 여러 나라들에서는 당연한 현실로 시행되고 있는 일들입니다. 이 나라들에서는 우리 사회와 달리, 자녀를 낳아 기르고 대학까지 교육시키는 비용을 국가가 부담합니다. 여러 수준의 공공임대주택을 국가가 마련해 주기 때문에 자기 집을 마련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아도 됩니다. 당연히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사회권 보장이 사회적 복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의 창조주이시고 아버지이시며 어머니이십니다. 이를 성경에서는 양을 비롯한 가축을 치는 목자에 비유하곤 합니다. 목자가 자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끌 듯이 하느님께서 인류를 먹이시고 돌보아 주시며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키우는 양이 한 마리라도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즉시 찾아 나서는 목자처럼, 인권이 취약한 이들이 행복을 추구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소외되어 있음을 아는 즉시 하느님께서는 이들을 찾아 나서십니다. 가난하고 고통받으려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라는 진리 명제는 이렇듯 목자로서 행동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순명이요 하느님을 위한 우선적 선택의 결과입니다.
이 선택은 물질적 나눔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면 나눔의 재료가 되는 재화가 근본적으로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인류에게 주신 선물임을 전제해야 합니다. 사실 모든 재화는 땅에서 나왔고 인간의 육체적 노동과 정신적 노력으로 이룩된 것입니다. 모든 재화의 원천이 된 땅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으며 모든 사람에게 무상으로 주신 은총입니다. 따라서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소유가 된 재화를 절대적으로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 사회의 재산 소유권이란 사실상 관리권에 불과합니다. 주어진 재화를 하느님의 뜻대로 사용하라고 주어진 관리권이기 때문에 재산 소유권은 나눔을 위한 사회적 의무와 동일한 뜻으로 새겨야 할 용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재화를 통해, 나눔을 통해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재화 그 자체를 섬기게 되고, 이것이 현대판 우상숭배로 이어집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은, 재화뿐만 아니라 시간이나 재능, 기회나 경험 모두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사용할 때 그분은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고 우리는 구원될 것입니다. 재화의 보편 목적 원리와 그에 따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명제를 실천하는 일은 문명의 신세계를 개척하는 것과도 같아서 피터지게 싸워야 하는 Red Ocean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과 싸워야 하는 Blue Ocean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