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온통 둥근 것들의 세상. 얼마나 서로 부대끼며 깎아내야 저렇게 둥그러질까. 얼마나 오랜 시간을 파도에 휩쓸려야 저렇듯 반들반들 윤이 날까. 전남 완도군 정도리 해안. 돌밭이 물속으로 아홉 계단을 이뤘다 해서 이름 붙은 ‘구계등(九階燈)’이다. 수박만 한 둥글둥글한 갯돌 앞에 상처입어 모난 마음을 내려놓는다. 이렇게 평화롭게 둥글어진 돌들도 모두 모난 과거를 갖고 있으리라. 상처 없이 완성되는 희망은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뒹굴면서 둥글어진다는 것을, 구계등의 밤바다에서 배운다. 이곳 구계등은 한반도의 땅끝이다. 일찍이 알려지기로 한반도의 남쪽 땅끝은 기념비와 조망타워가 들어선 전남 해남군 송지면 땅끝리다. 해남군이 땅끝마을을 일찌감치 관광지로 개발했고, ‘갈두리’였던 지명까지 수년 전 ‘땅끝리’로 바꾸었을 정도다. 그러나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두 발을 딛고 갈 수 있는 진짜 땅끝은 이곳 완도의 정도리다. 완도는 섬이긴 하되 육지와 다리로 연결돼 있어 차로 혹은 도보로 가 닿을 수 있으니 육지와 다를 게 없다. 땅끝인 완도의 정도리 해안에 둥근 갯돌들이 뒹굴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오랜 세월을 지내며 둥글어진 갯돌들은 세상의 끝, 벼랑까지 밀려온 사람들을 다독거려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게 해줄 것 같았다. 모나고 각이 선 마음들을 모두 둥글게 다듬어 평화로워지는 법을 가르쳐 줄 것만 같았다. 사실 땅끝이 어디면 어떨까. 애초에 땅끝이란 것이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그곳에 서서 지난 시간에 대한 매듭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을 갖는 상징적인 장소이니, 진짜 땅끝이 어딘지 다투는 일은 애초부터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르겠다.
수박만 한 돌부터 탁구공만 한 돌까지… 구계등 갯돌에 비친 달빛
완도군과 해남군은 한때 ‘진짜 땅끝’을 두고 한바탕 다툼을 벌였다. 완도군은 “완도가 섬이라지만, 일찌감치 다리가 놓여 육지와 다름없으니 육로로 갈 수 있는 한반도 최남단의 땅은 바로 완도군 완도읍 정도리 일대”라고 주장했다. 정도리의 일명 ‘넉구지’가 해남의 땅끝마을보다 1.8km 더 남쪽으로 나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남군은 “그런 식이라면 제주까지 다리가 놓이게 되면 제주가 땅끝인 거냐”고 반발했다. 이 다툼은 해남군의 ‘KO승’으로 결론났다. 완도의 정도리 일대를 아는 이들은 거의 없는 반면, 해남의 땅끝마을은 여전히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완도가 땅끝으로 꼽았던 완도읍 정도리에는 둥근 갯돌들이 지천으로 깔린 해변 구계등이 있다. 갯돌들은 커다란 수박만 한 것부터 참외만 한 것, 사과만 한 것, 탁구공만 한 것으로 줄어들다가 차그락차그락 조약돌이 된 것까지 차례로 늘어서 있다. 돌의 크기에 따라서 밟는 소리도 다르다. 발걸음을 따라 수박만 한 것들은 덜그럭거리고, 참외만 한 것들은 자그락거리고, 조약돌은 차르르 무너진다. 구계등의 갯돌들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달빛 밝은 밤이다. 휘영청 밤바다에 내걸린 달빛에 수박만 한 둥근 갯돌들이 반짝인다. 반사된 달빛이 너무도 선명해 갯가 가득 반딧불이가 떠 있는 것 같다. 활처럼 휘어진 해안 저쪽에서는 잔 갯돌들이 파도에 구르며 내는 음악소리도 어둠이 짙을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구계등 해안을 뒤덮은 갯돌들은 다 어디서 온 것일까. 구계등에 갯돌들이 생겨난 것은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얼음이 녹으면서 산자락까지 올라온 바다가 바위들을 쪼개고 굴리면서 이렇듯 둥글게 빚어냈다. 갯돌들은 한때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했다. 2004년 태풍 매미 때는 갯돌이 다 사라지고 해안은 모래로 뒤덮였다. 하루아침에 갯돌이 다 사라져버리는 믿기지 않는 변고가 생긴 셈이었다. 그러나 바다는 꼭 열흘 만에 다시 구계등의 갯돌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이렇게 파도가 갯돌을 구계등으로 몰아와서 굴린 시간이 자그마치 1만 년이다.
완도의 따뜻한 바다가 길러낸 진초록 상록수림을 걷는 맛
완도의 바다는 따뜻하다. 찰랑찰랑거리는 바닷물에 손을 담가보면 알 수 있다. 이런 난류의 바다는 겨울에도 짙은 초록으로 빛나는 완도의 상록활엽수들을 키워낸다. 구계등 해안 뒤편의 방풍림도 그렇게 따뜻한 바다가 키워낸 것이다. 붉가시나무, 줄참나무, 굴참나무, 서어나무, 동백들이 빼곡한 방풍림에 들어 숲길을 걷는다. 햇빛이 진초록의 상록활엽수들의 이파리들이 투과해 숲은 온통 신비로운 초록색으로 가득하다. 봄볕이 나른한 숲에 새들이 깃들어 청아하게 울어댄다. 숲길을 지키고 선 나무마다 나붙은 이름표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걷는다. 이름만 알고 있던 나무도 있고, 모양은 아는데 이름을 몰랐던 나무도 있고, 이름도 모양도 몰랐던 나무들도 있다. 1.5km 남짓의 잘 다듬어진 폭신한 산책로를 타박타박 걷는다. 무채색으로 무뎌진 마음에 초록색을 수혈받는 기분이다. 구계등의 숲도 좋지만 완도 난대상록수림의 진면목은 완도수목원에 있다. 국내 유일의 난대수목원인 완도수목원은 규모만으로도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긴 능선을 거느리고 있는 오봉산 전체가 수목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은 다른 수목원과는 달리 겨울과 이른 봄에 가장 입장객들이 많다. 원시림에 가까운 수목원의 상록수림은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것도, 멀찌감치 녹음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부드러운 능선의 산책로를 따라 갓 피어난 동백꽃을 감상하면서 40분쯤 오르면 수목원의 정상 전망대다. 전망대에서는 수목원의 짙푸른 숲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완도는 한때 ‘비워 뒀던 섬’이다. 동북아시아의 해상무역을 장악하던 장보고가 사망한 뒤 청해진은 폐쇄됐고 완도 사람들은 모두 지금의 전북 김제 땅으로 강제이주 당했다. 그렇게 500년이 지난 뒤 고려 공민왕 때가 돼서야 완도에 사람들이 다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지금 완도의 상록수림은 500년 동안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은 채 저 홀로 울창했던 수목들의 후손인 셈이다.
완도에서 점점이 떠 있는 섬을 징검다리 삼아 강진으로 나가는 길
완도군은 완도의 본섬을 비롯해 일대의 섬들을 죄다 품고 있다. 해남군의 아래쪽 섬인 노화도와 보길도, 소안도를 비롯해 전남 강진군 아래 떠 있는 고금도와 조약도를 비롯해 장흥군 아랫자락인 금당도, 평일도, 생일도 등도 죄다 완도군에 속한다. 일대 바다의 섬들을 다 완도군에 몰아줬기 때문이다. 완도에서 최고의 섬으로 꼽히는 곳이 바로 고산 윤선도가 머물렀던 보길도와 보리밭이 펼쳐진 청산도. 이곳들이야 여행명소로 익히 알려진 곳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보석처럼 숨어 있는 곳이 완도와 연륙교로 이어진 신지도와 강진 앞바다에 떠 있는 고금도와 조약도. 완도에서 신지대교를 넘어 신지도로 들면 강진으로 나가는 코스를 따라 이들 섬을 다 돌아볼 수 있다. 완도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가 닿는 신지도에는 ‘명사십리(鳴沙十里)’가 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해수욕장 중에서 ‘명사십리(明沙十里)’란 이름을 갖고 있는 곳들이 많다. 함경도 원산의 송도원해수욕장이 그 원조격이며 전남 신안의 비금도에도 명사십리가 있고, 군산 고군산열도의 선유도 일대의 해수욕장도 명사십리로 불린다. 완도의 신지도에도 명사십리는 밝을 명(明) 자가 아니라 울 명(鳴) 자를 쓴다. ‘밝은 모래(明沙)’ 대신 ‘우는 모래(鳴沙)’가 10리에 펼쳐져 있다는 뜻이다. 신지도의 명사십리가 ‘우는 모래’란 이름을 갖게 된 사연은 이렇다. 조선시대 왕족 사대부로 관료사회의 부정부패와 시국의 참상을 과감하게 비판했던 이세보. 그가 철종 때 외척 세도일가의 전횡을 논하다가 이곳 신지도로 유배를 오게 됐다. 신지도는 지금도 먼 곳이니, 그때야 오죽했을까. 절해고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그는 밤이면 해변에 나가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유배의 설움과 울분을 실어 손가락이 닳도록 모래톱에 시를 쓰고 읊었다고 전해진다. 그 소리가 마치 울음소리 같았으며, 그가 돌아간 뒤에도 비바람이 치는 날이면 우는 소리가 십리 밖까지 들렸다던가. 신지도에서 또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신지면 소재지에서 동고리로 가는 길목의 가인마을 뒤편의 왜가리 서식지다. 봉긋한 동산의 소나무숲에는 온통 흰 깃의 왜가리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다. 이즈음에는 왜가리들이 새로 둥지를 짓기 위해 분주하게 나뭇가지를 물어 나르고 있다.
조약도에 숨겨진 가사해수욕장의 빼어난 정취
신지도에서 고금도로 가려면 신지도 송곡항에서 빤히 건너다보이는 고금도 상정항까지 철부선을 타고 가야 한다. 차를 싣고 오가는 철부선들이 분주하다. 뱃길은 10분 남짓. 고금도는 섬 주위로 온통 매생이와 김, 굴 양식장이 펼쳐져 있다. 고금도에는 섬답지 않게 제법 너른 들이 있다. 한겨울에는 진초록 보리밭들이 곳곳에 펼쳐진다. 고금도에는 충무사가 있다. 이름에서 짐작되듯 이곳은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임진왜란 당시 승전지마다 충무공을 모신 사당이 있지만, 이곳 고금도의 충무사가 보다 각별한 것은 이곳이 바로 정유재란 때 수군본영을 설치한 곳인 데다, 노량해전에서 유탄을 맞고 전사한 이순신장군을 안장한 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의 유해는 충무사 앞 소나무숲으로 이뤄진 봉긋한 언덕에 안장됐다가 80여 일 뒤에 충남 아산의 선영으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충무사는 충무공의 시퍼런 기개와 기운으로 지금도 풀이 자라지 않는다는 가묘 자리는 둘러봄직하다. 고금도에는 또 곳곳에 유자나무가 있다. 집집마다 심어진 유자나무 가지에 남은 유자들이 향긋한 내음을 뿜고 있다. 고금도에서 조약도로 건너가는 길. 조약도(약산도)까지는 1999년 놓인 약산대교로 이어져 있다. 조약도는 섬 안에서 100가지 약초가 나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산이 깊어서 약초가 많다고 해서 약산도라고도 불린다. 조약도에는 섬 한가운데 솟은 삼문산의 위용이 자못 장대하다. 삼문산의 가파른 사면은 암봉들이 무너져 내린 너덜겅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조약도는 흑염소 방목지로 유명하다. 흑염소를 방목하는 마을에는 어찌나 바위가 많았던지 마을이름도 바위를 얻는다는 뜻의 득암리다. 조약도의 최고 절경은 단연 가사해수욕장. 해변의 길이가 300m도 채 안 돼 보이는 자그마한 해수욕장인데 모래사장 뒤편에 울울창창한 상록활엽수들이 빼어나게 아름답다. 낮은 동백나무들은 일제히 꽃을 피워 올렸고, 큰 나무들은 해변에 초록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대개 해수욕장들이 해변 뒤쪽으로 민박집이나 상가들이 들어서 경관을 해치는데, 이곳은 민박집과 상가는 해변 양옆으로 물러나 앉았고 대신 해변에는 바다와 모래사장과 상록림뿐이다.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산자락에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원시림을 이룬 동백나무들이 성성하다.
Tip
완도 가는 길
완도의 섬들을 돌아보는 섬 일주 코스를 택한다면 해남에서 완도로 들어서 신지도, 고금도, 약산도를 돌아본 뒤 강진으로 빠져나오거나, 반대로 강진에서 고금도, 약산도, 신지도를 거쳐 완도로 나오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방향만 다를 뿐 똑같은 길이니 해남에서 돌든, 강진에서 돌든 소요시간은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완도까지 가려면 해남 쪽보다 강진 쪽으로 가는 것이 더 빠르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산월나들목으로 나가서 광주 제2순환도로를 타고 무안-광주고속도로에 올라선다. 고속도로에서 내려서 13번 국도를 타고 가다 2번 국도로 갈아타면 강진이다. 강진에서 23번 국도를 타면 마량을 지나 고금도로 올라서게 된다. 해남 쪽에서 완도로 드는 길은 좀 더 멀지만 간명하다. 서해안고속도로로 종점인 목포까지 가서 다시 영암방조제를 지나 806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해남이다. 해남에서 13번 국도를 타면 완도까지 이어진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완도 읍내에는 씨월드관광호텔(061-554-0225) 등 장급여관들이 즐비하다. 이즈음은 관광객들이 그다지 몰리지 않아서 숙소에 여유가 있는 편이다. 완도항의 밤 정취도 좋긴 하지만, 해변가의 운치 있는 숙소를 찾는다면 신지도로 들어가는 편이 낫다.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에는 펜션이며 민박들이 즐비하다. 여름 시즌에는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지만 요즘은 예약 없이도 쉽게 숙소를 골라 들어갈 수 있다. 조약도의 가사해수욕장에는 시설은 좀 떨어지지만 운치 있는 민박집들이 많다. 광신모텔 등 장급 숙소도 있지만, 그보다는 한적한 민박집에 들어 어촌마을의 인심을 느껴 보는 것이 더 낫겠다. 완도는 해남이나 강진처럼 상다리가 휘어지게 내오는 한정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전복 양식이 성한 만큼 전복을 내오는 식당들이 많다. 완도항에서 바다를 끼고 신지대교 쪽으로 향하다보면 음식특화거리가 있다. 이곳에 즐비한 횟집들은 회와 함께 전복을 내온다. 살짝 쪄내서 참기름을 뿌려 내오는 부드러운 전복 맛이 괜찮은 편. 전복정식(1만원)이란 이름으로 백반과 함께 자잘한 전복 서너 마리를 쪄서 내주기도 한다. 완도에서는 해남이나 강진의 이름난 한정식집에서 맛보는 감동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
첫댓글 3~4년 전 완도읍 횟집거리에서 7만원짜리 돔을 하나 시켰더니
고구마 하나 달랑 나오드만요 ㅋㅋ 둘이 손바닥만 회 먹으면서 좀 있으면
나오겠지 나오겠지 했던 기억이 .....
옛날 완도는 상다리가 휘어지게 내오는 한정식이 정말 좋아였는데
요즘 해남, 강진, 장흥, 고흥, 여수쪽으로 다 빼앗긴 것 같네요 ... 다시 부활하면 안되나...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