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8월의 끝날, 사도행전 묵상도 마무리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받은 그 은혜가 너무도 큽니다.
성령께서 주의 백성들을 통해 행하시는 일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그 행렬에 충성스러운 자로 저도 있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없음)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본문 주해)
23~25a절 : 바울이 유대지도자들과 상견례를 한 후에 다시 만나기로 정한 날짜에 바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을 계속했다는 말은, 처음 왔던 사람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들었다라기보다, 사람들이 계속 오가는 상황 속에서 바울이 강론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한 내용을 저자 누가는 딱 두 마디로 요약한다.
‘하나님 나라와 예수그리스도’였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선포하신 말씀이다. 세례 요한 역시 ‘하나님 나라(천국)’을 선포했다.
하나님 나라는 복음의 핵심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 땅에 참된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시키고 거짓과 타락 가운데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천국 시민권을 발부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한편 바울이 구약 성경으로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자 두 가지 반응이 나온다.
믿는 자들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도 있었던 것이다.
학자들은 이 때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고 말한다.
25b~28절 : 엇갈린 두 가지 반응으로 분쟁하며 특히 믿지 않아 떠나는 사람들을 보고 바울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들을 책망한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너희가 듣기는 늘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못한다.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못한다' 하고 일러라.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라. 그 귀가 막히고, 그 눈이 감기게 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또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게 하여라. 그들이 보고 듣고 깨달았다가는 내게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사6:9~10, 새번역)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완악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믿지 아니하는 사람을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복음으로 찾아내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 말씀을 인용한 것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한 관계로 복음이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29~31절 : 그 후 바울은 셋집에서 2년을 보내면서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셋집에 2년이나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의 재판이 2년 동안이나 연기되었거나 판결이 유보된 상태로 있었음을 말한다.
원래 바울을 고소했던 유대인들은 재판의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재판 과정에서 구체적인 증거 없이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고소로 여겨질 때는 그에 대한 벌도 받아야 했다. 그래서 법정 고소 만료일인 18개월이 지나도록 유대인들이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결석(缺席) 재판으로 진행되었고, 바울은 무죄 판결을 받아 석방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바울은 이 2년 동안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을 모두 맞아들여,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아주 대담하게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
(나의 묵상)
‘이전에 없었던 노래로 주님을 경배해~’
<만 가지 이유>라는 찬양의 가사가 막 떠오르면서, 이전에 없었던 감사와 감격이 사도행전 묵상을 마무리하는 오늘 새롭게 터져나온다.
오순절 이후 사도들이 권능을 받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베드로와 요한의 전도, 스데반의 순교,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 바울의 회심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넘어가는 모든 과정이 역동적으로 기록된 사도행전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시는 것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그 도구로 쓰임 받는 바울, 오직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며 주님을 위해 살아간 바울의 일생이 가슴에 깊이 와 닿는다.
오늘도 바울은 한결같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
죄수의 신분이지만 거리낌이 없다.
어느 정도 주어진 자유를 이용하여 유대인 지도자들을 셋집으로 초청하여 종일토록 복음을 전한다. 그리고 2년 동안 유대인, 이방인 할 것 없이 바울의 소문을 들은 자들이 바울의 그 셋집을 들락거리며 복음을 들었을 것이고.....그렇게 로마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간 것이었다.
바울이 죽도록 고생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문득 ‘그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자신을 온통 사로잡고 있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그분을 자랑하고 증거하는 그 삶이 너무도 부럽다.
하지만 이것은 호랑이 굴은 무서워하면서 호랑이 가죽은 탐내는 얄팍한 내 심사이기도 하다. 또는 일시적인 흥분에 사로잡힌 내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어 브레이크가 걸린다.
바울의 고난의 1/1000만 와도 천리만리 도망칠 것이 뻔한 내 모습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과거에는 이런 은혜에 대한 사모함이 없었다. 자기 주제를 잘 알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즈음은 감히 이런 은혜가 사모가 된다.
복음을 전하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맛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내 실상이 어떤지는 알지만, 성령님의 두르심과 행하심 또한 알기에 담대함이 생기는 것이다. 왜냐 하면 복음은 내가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루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내게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슴 북받치게 할 말을 많게 하셨다.
그래서 바울처럼 사람에게 핍박받는 곳이든, 상황이나 환경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곳이든, 아니면 꽃밭처럼 행복한 곳이든.... 어디서든 복음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경대 병원 전도 연주는 못하게 되었다고 어제 병원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병원 사정상 무기한 연기되었다.
그러는 중 9월부터 소공원 전도 연주는 다시 시작된다.
내게 주어진 짬짬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한쪽 문이 닫히면 또 다른 쪽을 열어주시는 주님을 기대하면서 복음을 전하리라 생각한다.
사도행전을 마무리할 때마다 자주 듣는 말, ‘사도행전은 28장으로 끝나지만 성도들을 통한 성령의 역사, 29장을 이어 쓰시는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령행전이요, 또한 성도행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사도행전이라는 성경을 보게 하시는 것은, 성령께서 사도들과 어떻게 함께 하시는가를 보여주신 것이니, 내 남은 생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 성령님과 함께 그 행전의 한 페이지를 써서 주님 앞에 올려드리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
주님,
전에는 그저 그랬던 말씀이었는데
이제는 이 말씀이 가슴을 뛰게 합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저처럼 이 복음을 통하여 영생을 누리는 자가 많아지게 하옵소서.
창세전의 약속을 이루시는 참 하나님을 보게 될 뿐 아니라,
십자가를 붙드는 영혼들이 많게 하옵소서.
이렇게 주님께 연합되기를 원하므로
날마다 말씀 앞에 나아가는 영혼을 많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