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독일 월드컵의 성공을 위해 긴급히 수혈된 위르겐 클린스만 신임 독일 대표팀 감독이, 팀의 주장을 교체하였다. '초보 감독'으로서 대표팀 자존심 회복에 강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는 클린스만은 지난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독일 대표팀을 이끌며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예상치 못한 업적을 쌓은 올리버 칸 골키퍼 대신, 독일 대표팀 미드필드의 간판 스타 미카엘 발락(27, Michael Ballack)을 새로운 '나치오날 엘프'의 주장으로 임명하였다.
지난 2001년 6월, 기량 저하로 인해 언론의 비난을 받았던 올리버 비어호프(현 독일 대표팀 매니저)는 자진해서 주장 완장을 반납하였다. 주장이라는 심리적 부담을 떨쳐내고, 경기력 향상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이를 물려 받은 선수가 바로 당시 바이에른 뮌헨에서 놀라운 활약을 이어가고 있었던 칸이었다. 골키퍼라는 단점이 있기는 하였으나, 칸은 2002 한-일 월드컵 준우승을 이끌어 냈음은 물론, 대표팀에 대한 비난 여론을 쏟아내고 있었던 언론에 정면으로 대항하며 경기 내외적으로 '주장'의 몫을 톡톡히 했던 바 있다.
그러나 칸은 골키퍼라는 포지션의 특성상, 전 그라운드에 걸쳐 자신의 힘을 발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또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기량 저하, 그리고 독일 언론들에게 무수히 '1면 거리' 가쉽을 만들어 준 좋지 못한 사생활 등이 겹쳐 대표팀 주장으로의 부담감 또한 컸던 것이 사실. 독일 언론은 칸의 사생활을 도마 위에 올려 놓으며 "대표팀 주장으로서의 도덕성이 의심된다"라고 직격탄을 날렸고 이에 칸은 루디 푈러 감독 재임 시절부터 "주장 완장에 연연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사퇴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칸은 슈테판 에펜베르크의 이적 이후 물려받은 바이에른 뮌헨의 주장 자리 역시 이번 시즌을 앞두고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펠릭스 마가트 신임 감독의 임명으로 인해 소속팀에서는 여전히 주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마가트와는 달리, 클린스만은 발락을 새로운 주장으로 임명함으로서 칸의 부담감을 덜어주는 동시에, 발락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세대의 대표팀으로 탈바꿈 하겠다는 의중을 그대로 드러냈다.
위르겐 클린스만 - "그라운드 전반에서 선수들을 연결시켜줄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다. 칸은 골키퍼라는 특성상 그러한 임무를 다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발락이 부상을 당하지 않는 한, 그는 계속해서 암스밴드(주장 완장)를 착용하게 될 것이다."
지난 유로 2004에서 '고군 분투'하며 독일 대표팀의 간판으로 떠오른 발락은, 이번 결정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사실 "대표팀에 코만도가 없다"라며 신세를 한탄했던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우어의 말대로, 독일 대표팀은 필드에서 선수들을 지휘할 수 있는 선수의 부재로 오랫동안 고민을 안고 있었던 팀.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컨트롤 타워' 디트마 하만과 발락은 필드에서 너무 '조용한' 선수들로 낙인이 찍혀 대표팀을 이끌어 나갈만한 리더쉽이 있는지에 대해 오래전부터 논쟁 거리가 되어 왔던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그러나 발락은 이러한 세간의 평가를 정면으로 부인하며, 대표팀 주장직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미카엘 발락 - "지난 기간, 난 필드에서 너무 조용하다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난 중앙 미드필드에서 뛰는 선수이고, 그래서 전 포지션의 선수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선수이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감을 극복할 자신이 있다."
물론 현재도 그렇지만, 2006 독일 월드컵의 선봉장으로 나설 발락의 주장 완장 '계승'은 별다른 이의가 없는 상황. 그렇다면, 주목되는 것은 칸의 미래이다. 이번 주장 완장의 반납으로 인해, 칸의 대표팀 위상이 흔들릴 것이라는 의견이 많기 때문. 아스날의 '동갑내기 골키퍼' 옌스 레만과 경쟁할 당시에도, 칸이 대표팀 주장이기 때문에 선발 출장에 있어 좀 더 유리한 점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이러한 프리미엄이 없어진 상황에서 과연 칸이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뛸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상황. 그러나, 클린스만은 칸을 부주장으로 임명하는 동시에 여전히 '넘버 원'으로서 신뢰할 것이라 밝혔다.
위르겐 클린스만 - "(오스트리아와의 평가전에) 로테이션으로 선수들을 사용하겠지만, 모든 선수들은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보일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칸이 No.1이고, 레만이 No.2이며, 힐데브란트가 No.3라는 사실 말이다."
칸은 주장 완장을 소속팀 후배인 발락에게 물려줌으로 인해, 주장이라는 부담감에서 탈출할 수 있을 전망. 경기 내적인 면은 물론, 외적으로 언론과의 인터뷰, 언론 기사에 대한 반박 등으로 칸은 경기 외적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아왔음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소속팀 바이에른에서의 칸-발락의 관계가 말해주듯이, 칸이 당분간 발락의 역할을 상당 부분 도와주면서 여전히 라커룸의 분위기를 지배할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으나 어쨌든 홀가분한 마음으로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어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칸 역시 이번 주장직 사임이 길어야 2년 정도 남은 자신의 커리어 말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칸은 2001년 주장이 된 이후, 총 38경기를 독일 대표팀의 주장으로서 출전했다.
올리버 칸 - "(발락의 주장 선임에 대해) 이렇게 된 것을 환영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사이드 쇼(부수적인 인터뷰 등 대표팀 주장에게 요구되는 경기 외적인 요소를 총칭)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앞으로 두 시즌간 스포츠적인 면에만 포커스를 맞추기로 했기 때문에, 어떤 것이라도 주장과 같은 유형의 직책은 맡지 않을 것이다."
미카엘 발락의 주장 데뷔전은 현지 시간으로 8월 18일 오후에 벌어지는 오스트리아와의 친선전이다. 클린스만은 팀을 빠른 템포와 강한 공격을 구사하는 팀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는데, '초보 감독' 클린스만이 첫 경기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사커라인 김태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