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나무
이여진
푸른 생명을 안고
몸을 말아 숨죽이는
고무나무 아기 잎들이
기지개를 켜며 팔을 벌리는 아침
매일 창가에서 눈인사 나눴던
그 윤기 나고 싱싱했던 잎들이
거뭇거뭇 알지 못한 병에 걸렸다
생명을 잃어가는 잎들을 잘라낸다
절규하듯 끈적한 진액을 쏟아내며
아파하는 고무나무
병을 앓고 앙상하게 남아있는
가지 끝의 몇 잎이 고귀하고 장하다
푸르렀던 잎들을 아프게 떨쳐내고
파릇이 돋아나는 새순을 기다리듯
문득, 길 잃은 내 영혼의 상처를 보듬어본다
살다 보면, 삶의 무게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아파도 새순을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김포문학 37호, 2020년 280 쪽)
[작가소개]
이여진 한국문인협회 회원, 김포문인협회 회원. 시집『바느질 하는 남자』(공저) 출간,
신석초 전국시낭송대회 대상 수상, 숙명여대, 경희대 시낭송 과정 출강
[시향]
창가 고무나무 잎들이 거뭇거뭇 병에 걸렸다 매일 아침 기지개 켜듯 팔 벌린 채 눈인사 나눴던 시인의 반려식물이다 생명을 잃어가는 잎들을 잘라내니, 나무는 절규하듯 끈적한 진액을 쏟아내며 아파한다고 느낀다 가지 끝에 남아있는 어린잎들을 보니 전에 없이 고귀하고 장해 보인다 여기서 시인은 문득, 길 잃은 내 영혼의 상처를 보듬어보게 된다 병든 고무나무도 깨진 마음도 모두 잘라내야 새순이 돋아난다는 것을. 믿음으로 용서하거나, 망각의 장치를 발동시켜 잊어버리거나, 의지로써 상처를 도려내거나, 어떤 식으로든 한 번은 아파야 새살이 돋아나기 마련이다 꽃과 열매를 맺는 초목들도 연 중 한차례는 스스로 잎을 떨궈낸다 그때 그들이 아프지 않으리란 생각은 무리다 심지어는 싱싱하더라도 방향을 잘못 뻗은 나뭇가지는 잘라내야 보기 좋은 수형을 갖출 수가 있다 살아 생장하고 있는데도 소리 하나 내지 않는 식물의 말에도 귀를 귀울인다
“살다 보면, 삶의 무게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아파도 새순을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는 마지막 결구에서 시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글 : 박정인(시인)
첫댓글 졸시를 추천해 주시고 평론 해 주심에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댓글을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때론 바람처럼 지나가는 일에도 마음이 유난히 아플 때가 있지요
선생님의 시를 감상하며 저도 최근의 아픔에 힐링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