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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라는 단어를 접하면 십여 년 전 읽은 주한 프랑스 특파원의 글이 떠오릅니다. 그 특파원은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게 건널목을 건너는 사람들의 걷는 속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미 삼아 서유럽 사람들과 비교해 봤더니 한국사람들이 두 배는 더 빠르더랍니다. 글을 읽으며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우리들의 ‘빠름’에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빠르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요?
우리는 봉건적 잔재들이 일소되지 않은 채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을 압축해서 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무조건 빨라야 한다는 ‘빨리빨리주의’가 우리 삶의 자연스런 모습으로, 절대 선이요 신화로까지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외국인들도 한국에 와서 처음 배우는 말이 육두문자를 빼면 ‘빨리빨리’라고 합니다. 대단한 ‘빨리빨리주의’요 문화지요. 그 결과로 한국사람들의 스트레스 강도는 세계에게 둘째라면 서러워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아주 먼 옛날에도 우리 한민족이 그랬을까요?
쌀 미(米)자를 풀어 보면 팔십팔(八十八)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88세를 미수(米壽)라 해서 잔치도 열었지요. 하지만 농경시대의 중심이던 농민들은 이를 달리 해석했다고 합니다. 쌀 농사를 지으려면 여든여덟 번 손이 간다고 해서 팔십팔이라는 겁니다. 쌀은 원래 아열대 식물이라 한반도에서는 기후가 잘 맞지 않는데, 이를 극복하고 쌀농사를 지어야 하니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품이 많이 가는 벼농사를 짓다 보니 일년 내내 잠시도 쉴 틈 없이 움직여야 먹을 것, 입을 것, 자식 돌보기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합니다. 그래서 농경시대부터 이미 우리 선조들에게 ‘빨리빨리’가 체화되었다지요. (정말로 유구한 빨리빨리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왜 이렇게 힘든 쌀을 주식으로 삼은 것일까요? 농학자들에 따르면 쌀은 단위면적 당 소출량의 열량이 밀에 비해 3배, 보리에 비해 5-10배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좁은 땅 많은 인구의 주식으로는 쌀이 적당하다고 합니다.
아무튼 오늘은 스트레스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스트레스를 푸는 해결책의 하나로 ‘웃음’에 대해 알아보지요.
동양의학자들은 흔히 기(氣)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막상 기를 쉽게 설명하라면 막막해 합니다. 마찬가지로 서양의학에서 스트레스를 정의하기는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굳이 넓게 정의한다면, 스트레스는 개체의 존립에 위협을 주는 모든 내부적, 외부적 자극을 의미하고, 다른 한 편으로 신체를 전투준비 태세로 만드는 심리적 중압감이나 긴장감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위협적인 자극(스트레스)이 가해지면 우리는 ‘싸울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fight or flight)를 고민하게 됩니다. 스트레스는 교감신경을 자극해 신체를 싸우라고 내몹니다. 교감신경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후에는 신체의 안정성(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부교감신경이 작동해 도망치도록 만듭니다.
스트레스에 의해 교감신경이 자극되면 우리 몸은 전투준비 태세로 들어갑니다. 우선 눈의 동공이 확대되면서 외부로부터 보다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두뇌가 빨리빨리 돌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근육과 두뇌가 긴장하면 에너지 소모가 급격히 늘어납니다. 이제 체내의 모든 상태는 근육과 두뇌로 적절히 군수품을 보급하는 체제로 재편됩니다.
교감신경은 콩팥(신장) 위에 위치한 부신을 자극해서 ‘스트레스 호르몬(아드레날린)’이 분비되도록 만듭니다. 이 때 스트레스 호르몬은 체내의 혈액분포에 변화를 일으키는데, 피부와 내장의 혈액이 근육과 두뇌로 향하도록 해서 혈액 속의 영양분이 더 많이 근육과 두뇌로 가도록 해 줍니다. 혈액 이동의 변화 때문에 침 분비가 억제되고, 내장에서 음식을 소화하고 흡수 저장하는 기능도 중단됩니다. 또 이런 혈액이동이 빨라지도록 혈압을 상승시키고, 비상사태를 대비해 체내(주로 간에)에 저장된 포도당이 대량으로 피 속으로 나와서 두뇌와 근육의 에너지원으로 쓰이도록 해 줍니다.
팽팽하게 긴장된 근육과 두뇌는 포도당과 산소를 소모하고,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냅니다. 또한 스트레스 호르몬은 기관지를 축소시키고 호흡활동을 빨라지게 해서 산소공급을 최대화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이 잘 되도록 해 줍니다. 그리고 산소운반능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비장에서 적혈구의 생산 속도가 빨라지도록 자극합니다.
근육이 긴장해서 움직이고 나면 체내에서는 과잉으로 열이 생산되어 체온이 상승하게 됩니다. 그러면 높아진 체온을 식히기 위해 털이 곤두서서 체표면이 대기와 접촉하는 면적을 넓히고, 땀을 나게 해 체온을 내리게 합니다. (우리 몸에는 이와는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체온을 올려줄 필요가 있을 때, 예를 들어 추운 날씨나 화장실에서 소변을 본 후에 체온이 내려가면 몸을 떨어-근육을 운동시켜- 체온을 높이게 됩니다. 오줌을 싸면 약 11 칼로리의 열량이 몸밖으로 빠져나가는데, 그러면 순간적으로 체온이 내려가고 우리 몸은 근육을 운동-떨기-시킴으로써 열을 발생시켜 체온을 높이게 됩니다.)
스트레스 호르몬 중에 코티졸이 있습니다. 코티졸은 일종의 스테로이드입니다. 근육의 힘을 강화시켜 주는 작용 때문에 운동선수들은 자주 스테로이드를 이용합니다. 올림픽에서 도핑테스트에 걸려 메달이 취소되게 만드는 주범도 바로 스테로이드입니다. 이처럼 코티졸은 근육의 힘을 강화시켜 줍니다. 개고기 애식가들은 ‘개고기는 패서 잡아야 고기가 연하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죽음에 대한!)를 받으면 근육의 힘이 좋아지고 딱딱해 집니다. 이 때 그냥 먹으면 고기가 질기게 되지요. 그래서 아마도 '패서 잡으라'는 경험적인 지혜가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스트레스는 왜 우리 몸에 좋지 않을까요? 우선 스트레스가 오랜 동안 지속되어 만성화되면 피부와 내장이 나빠집니다. 피부의 혈액순환이 좋지 않아 머리털 등이 잘 빠지고(탈모증), 내장의 혈액공급 악화로 소화기능이 떨어지고, 변비나 위궤양 등의 소화기질환이 잘 생깁니다.
또 만성적 스트레스는 계속 혈압과 혈당을 높은 상태로 만들어 고혈압이나 심장병, 편두통, 당뇨병을 만드는 위험요인이 됩니다. 스트레스는 기관지를 수축시키고 호흡활동을 빨라지게 만들기 때문에 천식이 있는 사람은 더욱 악화시키고(천식발작), 없던 사람에게도 천식이 생기게 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코티졸)은 우리 몸의 면역력도 저하시킵니다. 그래서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면 감기를 비롯한 온갖 감염에 잘 걸리게 되고, 항상 피곤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면역력이 떨어지면 우리 인체가 발암물질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암세포도 효과적으로 없애지 못해 암이 잘 생기고 전이(확산)도 잘 되게 만듭니다.
또한 만성 스트레스는 여성들에게 생리불순을 일으키고 저체중아를 출산할 위험성도 높입니다. 남성들에게는 발기부전을 일으킵니다. 30대나 40대의 나이에 발기부전인 경우는 절반 정도가 스트레스와 관계된 심인성 발기부전(음경에 작용하는 신경, 호르몬, 음경의 혈관 등에 이상이 없으면서 정신적 이유로 생기는 발기부전)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몸에 해로운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우리가 사는 환경을 스트레스가 없는 곳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회보장을 잘 갖추어 생노병사와 관련된 스트레스를 줄이고, 맞지 않는 직업이나 작업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도 직업이나 작업을 쉽게 전환시켜 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최선입니다. 또 사회문화를 평온하고 따뜻하게 하고 차별과 소외가 없도록 해야 스트레스는 적어집니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단박에 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그래서 주어진 스트레스를 그때그때 풀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갖는 게 좋습니다. 스포츠나 등산, 낚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듣는 등 취미생활을 통해 해소하는 게 좋습니다. (그저 담배나 뻑뻑 피우지 마시고요!) 그렇지만 이 바쁜 세상에 취미생활을 하기도 힘든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런 분들에게는 ‘큰소리로 웃어보기’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하루에 평균 400번을 웃는데 어른은 평균 15번을 웃는다고 합니다. 그 만큼 어른이 될수록 웃음을 잃어가며 삽니다. 그래서 우리는 빨리 늙는지도 모릅니다. 옛 말에 일노일노(一怒一老) 일소일소(一笑一少)가 있습니다. 한 번 화내면 한 번 늙어지고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진다는 얘기인데, 정말 웃음이 보약입니다. 웃음이 주는 보약효과는 하나 둘이 아닙니다.
우선, 우리 몸은 총 650개 근육으로 되어 있는데, 한 번 큰 소리로 웃으면 이중 231개의 근육이 운동을 하게 되고 얼굴의 근육만도 15개가 운동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큰 소리로 1분 동안 웃으면 10분간 조깅을 한 것과 같습니다. 골프광들은 골프가 평소 생활에서는 잘 쓰지 않던 근육을 운동시켜준다고 예찬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골프가 웃음만 하겠습니까!
또 한 번 큰 소리로 웃으면 면역에 관여하는 임파구들(T세포, B세포)을 자극하는 감마인터페론이 체내에서 200배나 증가해 면역력을 높여 줍니다. 우리 몸의 호흡기와 소화기에 있는 면역글로불린A도 증가해서 호흡기와 소화기 질환을 예방해 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몰핀(아편)보다 200배나 효과가 강하다는 엔돌핀(생체내 몰핀)도 증가해 통증과 근심 걱정도 감소시키고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줍니다. 게다가 심장의 힘도 좋게 하고, 플라스미노겐을 증가시켜 혈전(혈액응고물, 혈관을 막히게 하는 원인)생성도 막아 줍니다.
끝으로 우리는 이렇게 좋은 웃음을 어떻게 웃어야 할까요? 하루에 15분만 투자하십시오. 앞의 5분은 긴장된 몸을 스트레칭을 통해 풀어주고, 다음 5분은 무조건 큰 소리로 웃으십시오. 남이야 뭐라 하건! 아니, 남들도 그런 나를 보면서 웃긴다고 웃을 테니 남에게도 좋은 일이라 생각하시지오. 나머지 5분은 조용히 눈을 감고 과거의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하면서 명상을 하십시오. 그러면 잔잔한 미소가 얼굴에 퍼지고 마음도 편안해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엉뚱한 짓으로 다른 사람을 웃기시지오.
웃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아니, 웃기는 자에게 더 많은 복이 있나니!...
첫댓글 유익한 건강상식.농경사회를 지나 복잡한 산업사회로 갈수록 스트레스는 피할수없는 숙명인가봅니다.이 글 다 읽는것도 스트레스입니다.ㅎㅎ..허나 지식도 스트레스를 댓가로 지불해야 얻을수가 있겠지요.유익하게 읽었습니다.
읽는 것도 스트레스! ㅎㅎㅎ 스트레스 드려서 죄송합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