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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의 제네바 학살에 대한 반박글>을 읽고/유창윤
이성민추천 0조회 815.11.12 13:34댓글 0
<칼뱅의 제네바 학살에 대한 반박글>을 읽고 *이 글은 <칼뱅의 제네바 학살에 대한 반박글>을 읽고 댓글로 올리려고 했으나 쓰다 보니 두서없고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장문이 되었습니다. 글 읽는 여러분께 죄송합니다.(필자 주) 인간이 다른 사람을 불태워서 자기 신앙을 고백할 수는 없습니다 김무성 아버지와 칼뱅: 김무성씨의 아버지가 한겨레신문의 한 기자의 폭로로 일제시대 때의 행적이 드러나자, 그는 자식되는 도리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겠지죠. 그게 뭔 소리냐 우리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고 반론을 펴며 좋은 아버지 만들기 운동에 나섰습니다. 그래서 그 기사를 쓴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당신이 쓴 기사가 오히려 김무성 아버지의 죄과를 사면해주는 단초만 제공해주지 않았느냐. 기사를 쓰려거든 끝장을 보든지 목매달아 죽든지 해라 했습니다. 몇 일 후 발송한 이메일을 학인해 보니 메일은 열어봤는데 답이 없더군요. 다행히 김무성의 아저지의 행적이 과거 신문기사를 통해서 드러났지만, 그 증거 사료를 찾지 못했다면 죄인이 의인으로 둥갑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진짜 의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죠. 만약에 김무성이 아버지를 위해서 변명하기보다는 ‘미안하다’ 용서를 빌었다면 깨끗이 정리될 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칼뱅의 후예들이 그의 만행을 변명하기보다는 ‘미안하다'고 인정하고 가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차라리 칼뱅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칼뱅이 조직신학을 주도하고 체계화했으며......칼뱅의 신학적 업적과 종교개혁사에 남긴 선도적 역활은 가히 지대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칼뱅은 장로교의 아버지가 아니라 오늘날 개신교에 많은 영향을 미친 우리가 보호해야 할 소중한 개혁자임을 이 기회를 통해 말하고 싶다.” 그러기에 칼뱅의 출현은 인류에게 재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거짓된 교리가 인류를 감염시켰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개신교는 카톨릭의 교리를 거의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성공회는 천주교에 더 가까우며, 침례교는 회중교회로 칼뱅신학과 무관합니다. 칼뱅의 교리나 초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독선적이고 냉혈적인 동물인지 시공간을 초월해서 직감할 수 있습니다. “알프스산맥의 석회암 지형과 닮았다”고 한 저자의 말처럼 그의 교리나 얼굴에서는 섬뜩한 살기가 느껴지거든요. 카스텔리오를 옹호하며 칼뱅을 비판한 슈테판 츠바이크는 평가하기를, “종교개혁은 본래 영적, 종교적인 자유를 위한 운동이었다. 모든 사람의 손에 성서를 자유롭게 해석할 권리를 돌려주려는 것이었다......그런데 칼뱅은 루터가 가져온 ‘기독교도의 자유’라는 이념을 다른 모든 정신적 자유와 함께 사람들에게서 가차 없이 빼앗아버렸다. 그는 자신만이 신의 말씀을 제대로 해석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성서 해석을 폭군처럼 막아버렸다.” 마음이 아프네요. 카스텔리오의 이런 진술이 정직하고 옳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칼뱅의 교리는 이전의 천주교 해석보다 더 가혹하고 살벌하며 기쁨이나 그 어떤 인간적인 감정도 자리 잡을 수 없는 강퍅하고 완악한 자였음을 짐작케 합니다. 그런 그가 설교자로 제네바에 들어섰을 때, 제네바에서의 기독교인의 자유가 종말을 고했던 거겠죠. 차라리 칼뱅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 땅이 더 평온했을 것이라는 게 저의 견해입니다. 칼뱅이 범죄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 칼뱅이 범한 악행들이 악의적으로 왜곡된 서술로, “칼뱅이 살상을 저지를 수 없었던 것은 그에게 그런 권력이나 그 일을 집행하기에 합당한 직임을 시의회가 부여하지도 않았"고 “이 권한조차도 빼앗기 위하여 칼뱅을 여러 번 코너로 몰아 넣었”다고 변호하셨군요. 필자가 학자들의 리서치를 종합해 본 결과는 이렇습니다. 첫째, 칼뱅이 그의 처형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칼뱅을 변호하거나 옹호하는 사람들의 배경을 확인해보면 한결같이 칼뱅의 교리와 이해관계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같은 교단소속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역사나 학문에 이해관계가 개입되면 그것은 이미 타락한 학문입니다. 그래서 독립된 리서치가 요구되는 것이죠. 둘째, 그의 화형을 (a) 칼뱅이 선동했다(instigation), 또는 (b) 칼뱅이 승인(approbation)했다는 주장입니다. ‘선동’이든 ‘승인’이든 남을 사주하여 어떤 행동을 하도록 조장하거나 특정한 행위에 대한 허가의 뜻이라면 칼뱅이 그 사건의 주도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캠브리지 저널인 [교회역사: 기독교와 문화연구] - “칼뱅의 민주주의 요소”에서는 유럽의 마녀사냥을 주도한 지도자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그중에 칼뱅도 포함되어 있으며, (CHURCH History : Studies in Christianity and Culture, vol 18 - Issue 03/ 9월 1949, pp 153 - 171, <The Democratic Element in Calvin's Thought by John T. McNeill> [캠브리지 칼뱅의 자매판] The Cambridge Companion to John Calvin by Donald K. McKim(ed)에서는 세르베투스의 화형에 칼뱅이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노력과, 자신의 교리에 반대하는 주위의 엘리트들을 찾아 추적하고 징벌하는 행위와 그의 교리적 입장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The death penalty for the 'herecy' of Servetus was, indeed, pronounced and carried out in 1553 in the city of Calvin and at his urging. The reformer did not want to bear alone the responsibility for this act. He requested verdicts from the sister communities of Zurich, Berne, Basle, and Schaffhausen: all supported the sentence. Bullinger and Haller emphatically sanctioned the death penalty. p.18. 마리안 힐러 교수는 그의 논문 [미카엘 세르베투스의 유산]에서 칼뱅의 정통신학옹호Defensio orthodoxae fidei in Calvini (Geneva 1554) Vol. VIII, pp. 478-479; 480-481를 인용하여 카톨릭의 기준에서 보면 칼뱅 자신이 이단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만든 교리를 기준으로 세루베투스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의 죽음을 정당화 하였다고 말합니다: Calvin himself, being a “"heretic”" by Catholic standards, strongly supported capital punishment for those who deviated from imposed doctrines—-his own doctrines in the region under his control. He later defended the punishment of Servetus in his Defensio orthodoxae fidei (Geneva 1554) where he attacked freedom of conscience and justified the right to condemn to death the so-called heretic based on his own doctrine of persecution “"by the mandate of God.” p. 13 참고: The Legacy of Michael Servetus: Radical Changein the Thought Pattern, Freedom of Conscience, and the Switch to the Humanistic Social Moral Paradigm by Prof. Marian Hillar -citeseerx.ist.psu.edu/viewdoc/download?doi=10.1.1.432.475&rep=rep1&type=pdf SEBASTIAN CASTELLIO AND THE STRUGGLE FOR FREEDOM OF CONSCIENCE Paper published in the Essays in the Philosophy of Humanism, eds, D. R. Finch and M. Hillar, Vol. 10, 2002, pp. 31-56. -socinian.org/files/castellio.pdf 시몽-마구스 : 갈뱅의 적개심: 칼뱅은 그의 편지에서 자신의 교리를 비판한 세르베투스에게, “만약 그가 내 눈앞에 나타나면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선언합니다. 출처: Letters of John. ed. J. Bonnet; Philalephia: Presbyterian Boar of Publication, 1858) 2. 33. 이 발언에서는 적개심을 품은 칼뱅의 살기가 느껴지며, 세르베투스의 생사가 칼뱅의 손에 달렸음을 암시해 줍니다. 아마 칼뱅은 세루베투스의 ‘시몽 마구스’(사기꾼)라는 무자비한 공격에 인격적인 모멸감을 느끼고 참는데 한계를 느꼈을 것입니다. 다만 사형방법에 있어서 시의회와 칼뱅사이에 불일치가 나타나는데 칼뱅은 참수형을, 시의회에서는 화형이었던 것 같습니다. 칼뱅이 세르베투스가 화형당하는 형장에 없었다고 해서 그 사건과 무관한 것처럼 논거를 펴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죄수에게 사형을 언도한 판사가 사형장에 출석하든 안하든 그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그 당시 기록됐던 제네바 종교법정 기록부(Registres du Consistoire de Genève)만 참고해도, “칼뱅의 위세가 떨칠 때의 제네바 시민들은 삶의 소소한 재미조차도 마음 놓고 누릴 수가 없었다“니 충분히 그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케 합니다. 아래 방문하시면, 신정정치 체제하에서의 정치.사회.문화생할이 어떠했는지 그 진면목을 엿볼 수 있습니다. 흥미롭습니다. -droz(dot)org/eur/en/74-registres-du-consistoire-de-genève(불어). -books(dot)google(dot)co(dot)uk에서 Registers Geneva Consistory를 치면 영어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츠바이크가 이름을 밝히지 않고 책을 펴낸 이유: 중세 유럽에서는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성육신등을 부정하면 신성모독죄와 이단으로 규정되어 사형에 처해졌으며, 이 시기에 유럽학자들은 책을 무명으로 비밀리에 발행하는 관습이 생겼습니다. 다윈의 저서에서 성서와 기독교적 단어가 결여된 것도 이런 위험을 피해가기 위한 수고였으니까요. 영국에서도 1612년도에 삼위일체를 부인한 죄로 2명이 사형에 처해졌으며, 그 후에도 수많은 교수들이 교단에서 퇴출당하는 일은 19세기까지도 이어집니다. 츠바이크의 기록과 성서: “사료적 가치도 없는---악의적으로 왜곡한 카스텔리옹과 그의 책을 편역한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표현은 겸손하지 못한 것 태도입니다. 이들의 인물학적 소양과 인격은 거짓으로 남을 모함할만한 소인배들이 결코 아닙니다. 칼뱅은 신앙외골수인데 반해 세르베투스는 수학.지리.점성술.의학.신학등 다학문적 훈련을 받은 박식한 학자로 오늘날도 그는 의학계에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칼뱅의 교리뿐만 아니라 천주교 교리까지도 싸잡아 이단이라 선포하고 맞서 싸운 사람입니다. 억압에서 자유를 외친 민주운동가요 자유사상가로 칼뱅보다 더 가까이 예수정신에 접근한 사람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캠브리지 저널 [교회역사: 기독교와 문화연구]에서, 칼뱅에 의해서 죽은 숫자를 소구룹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숫자는 말하고 있지 않지만, 츠바이크가 언급한 숫자가 정확할 수 있으며, 그것을 증명할 만한 사료를 찾지 못했다고 해서 그의 범죄가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칼뱅의 범죄성이 드러나는 내용의 사료는 측근들에 의하여 감춰지거나 폐기되고 처음부터 공개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세르베투스를 화형시킬 때 그의 모든 자료가 함께 불태워진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츠바이크는 고전 문헌의 수집광으로 충분히 과거 역사적 문서와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으며, 또한 작가로서 40여권에 달하는 소설은 물론 역사적 기록물도 15권이나 남겼습니다 (영국대영박물관 그의 유물 소장). 참고: -bl(dot)uk/subjects/music 그는 특히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역사적 인물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로 전기등을 집필, 세계 3대 전기 작가 중 한 사람이 된 것을 감안하면 우리가 그의 말을 못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신구약성서를 통하여 저자들이 인용한 자료들은 수백에 이릅니다. 그 인용된 원자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분실.소실되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원자료가 없으니 성저저자들이 인용한 구절들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586BCE 유다가 망하여 바빌론으로 유배된 사실은 성서외의 어떤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역사적 사실을 믿고 확신하는 것은 그 사건이 전개되는 앞뒤의 맥락이나 행적을 알기 때문입니다. 칼뱅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한국에도 알려진 츠바이크가 남긴 역사적 기록물은 [폭력에 대항한 양심]이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Castellio gegen Calvin oder Ein Gewissen Gegen die]등은 소설과 구별됩니다. 그의 글은 Project Gutenberg 혹은 Internet Archive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의 츠바이크 V 칼뱅 구글학술에서 스테펜 츠바이크를 검색하면 28,000여개의 자료가 나타나며, 그가 쓴 책의 북리뷰나 학자들의 인용구 등의 자료에서 그의 책이 사료적 가치도 없으며 악의적으로 왜곡한 근거없는 진술이라는 학자들의 견해는 찾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구굴링에서 칼뱅의 이단사상 <John Calvin exposed 혹은 Heresies of Calvinism>은 무려 20여만 건 + 학술검색에서만도 2만여 건이 넘는 인용구나 학자들의 아티클이 나타납니다. 참고로, 세계 학술자료의 60% 이상이 구굴링에서는 검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참작 하셔야 합니다. 최근 들어 학계에서 장 칼뱅의 오류.무지.오해.부조리를 공개 고발한, John Calvin: His Errors, Ignorance, Misconceptions, and Absurdities (2015)가 나와 있습니다. 독일어 하시는 분들에게는 유럽신학자들의 관점에서 본 칼뱅주의 이단성(Häresien des Calvinismus by Irene Dingel, Herman Selderhuis(공저)도 추천해 드립니다. 칼뱅의 만행이나 이단사상을 연구한 아티클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칼뱅과 예후 : 한국에 둥지를 튼 칼뱅사상 이처럼 칼뱅에게 주어진 권력과 제도, 그리고 종교적 열심을 고려해 볼 때 충분히 그의 행적이 어떠했는가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극도의 열심주의는 칼뱅의 사후에 영국으로 계승되었고, 청교도들에 의하여 미국에 정착된 후, 선교사들을 통하여 한국 땅에 유입되고 둥지를 틀게 됩니다. 칼뱅을 생각하면 예후가 떠오릅니다. 예후의 열심은 아합의 70인자녀들과 (아합왕과 동맹을 맺었던)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 42명까지도 몰살시켜버립니다. 야훼를 위한 열심 때문이었습니다. 종교적 열심과 확신은 범죄를 생산할 뿐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절대로 교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이 다른 사람을 불태워서 자기 신앙을 고백할 수는 없습니다.” 성서학과 교리: 축자영감.삼위일체.예수의신성.예정론.원죄설.등 중세 유럽에서는 삼위일체를 부인하면 신성모독죄로 사형에 처해졌기 때문에, 칼뱅과 세루베투스의 사건은 근본적으로 교리의 문제로부터 접근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 당시 문화로 봐서 세르베투스는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앞서가는 그의 지성은 순교자의 자세로 거짓되고 부당한 교리와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삼위일체를 부정한 그의 논리가 정당한 것이었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이 지면에서 풀어놓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그가 간지 5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의 주장이 옳았다는 데는 성서학계의 이견이 없습니다. 칼뱅이 주장한 축자영감.삼위일체.예수의신성.예정론.원죄설.등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된 교리들이만 교회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아래참조).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우세해진 것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로 카톨릭에 대항한 신교세력들이 교황이 아닌 성서를 절대적인 권위로 내세우려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와서 오늘날 개신교지도자들의 타락은 물론 인류를 속이는 교리가 되었습니다. 초대.중세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교리가 신학을 장악하여, 성서해석이 교리에 맞춰서 행해졌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성서학이 모든 신학으로부터 분리되어 마침내 교리적 요구에 구애받지 않고 연구를 전개, 독립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성서학의 발전은 다학문적 훈련을 수용하고 비평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저 앞에 달려가고 있는데, 신학.교리는 아직도 천주교나 16세기 칼뱅이 만들어 놓은 낡고 거짓된 교리에 묶여 있는 형국입니다. 예를 들면, 교리는 성서를 알기 쉽고 조직적으로 정리한 기본 이론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성서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서에 삼위일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구절이 없자 사제들의 검은 손은 성서의 두 세 곳에 삼위일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구절들을 변개하거나 삽입합니다. 그러나 성서의 원본을 지켜내기 위한 성서학자들의 노력은 사제들에 의해서 후대에 삽입.변개된 구절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수행합니다. 이제 성서에서 더 이상 삼위일체를 뒷받침하는 구절은 찾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교리에는 아직도 삼위일체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교리나 신학이 성서학을 따라잡지 못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죠. (참고로, 성서학과 신학은 다름) 오늘날 칼뱅이 주장한 축자영감.삼위일체.예수의신성.예정론.원죄설 등의 교리들을 믿는 성서학자들은 (근본주의가 아니면)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유럽에서는 교리학이 사라진지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교회가 극도로 타락한 이유도 알고 보면 칼뱅이 만들어 놓은 제도들 때문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객관성 - 책을 선택하는 팁 한 가지: 끝으로, ‘객관성’의 문제를 이야기 해봅시다. 글을 읽거나 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팁 한 가지 드리죠. 그 책이나 글을 쓴 저자의 삶의 방식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의 월급이 교회.교단에서 제공된다면 그 교단의 교리내에서만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개관성.비평성.학문성을 학보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동료평가 된 학술저널이라도 보수교단 내에서 발행되는 잡지들은 같은 물에서 놀아야하기 때문에 내용이 없거나 학문적으로 믿을 게 못됩니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 교단.교파에 소속되지 않는 국.공립대학에서 가르치면서 객관적이고 비평적이며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발언을 해도 퇴출되거나 삶에 지장이 없는 환경이나 제도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진짜 진국입니다. 당당에서 글을 쓰시는 주요 칼럼니스트들을 주목해 보세요. 이들이 바른말하며 개혁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원동력도 교회.교단에서 월급을 받지 않고 있기 때문(필자의 생각)에 가능합니다. 교회.교단에 기생하며 서식하는 어떤 후예들은 숨기고 속이고 변명하고 찬미하기에 급급할 뿐입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헌금으로 먹고사는 목사나 한국의 신학교교수들이 쓴 책들이 (칼뱅의 예정론처럼) 제아무리 꿀처럼 달콤해도 순간의 안위를 주는 아편에 불과할 뿐 그것들은 학문성 객관성이 결여된 내용으로 돈낭비.시간낭비.인생낭비입니다. 유창윤 목사 -영국에서 조직신학(ThM), 아시리아학:고전(MPhil), 성서학(PhD) 전공하고 한국(호남신학대학교)에서 5년간 구약학 교수를 지냈다. 현재 런던의 영국성공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참료자료: 미카엘 세르베투스 연구사이트 -michaelservetusresearch(ddot)com/ENGLISH 미카엘 세르베투스의 [삼위일체의 오류 De Trinitatis erroribus libri vii] -servetus(dot)org/en/miguel-servet/writings/56-de-trinitatis-erroribus-1531(dot)html -stefanzweig(dot)org Center for Socinian Philosophical & Religious Studies -socinian(dot)org -repository(dot)up(dot)ac(dot)za/bitstream/handle/2263/10959/Ra_Question(2002).pdf?sequence=1 Bibliography: -R. Bainton, Hunted Heretic (Boston: Beacon, 1953) -J. Friedman, Michel Servetus, A Case Study in Total Heresy (Geneva: Libraire Drox S.A., 1978) -Adapted from an earlier Christian History Institute story by Diana Severance, Ph.D. -Bainton, Roland. Hunted Heretic; the life and death of Michael Servetus. Boston: Beacon Press, 1953. -Fulton, John F. Michael Servetus, Humanist and Martyr. New York: Herbert Reichner, 1953. -Hunt, Dave. What Love Is This? : Calvinism's misrepresentation of God. Bend, Oregon: Berean Call, c2004. -"Servetus, Michael."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edited by F. L. Cross and E. A. Livingstone. Oxford, 1997. -"Servetus, Michael." Encyclopedia Americana. Chicago: American Corp., 1956.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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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단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칼빈이죠
칼빈이 쓴 기독교 강요는 많은 오류들이 있습니다.
그 당시 신학이 발전하지 못하던 시기였는데 30대 칼빈이 신학을 알면 얼마나 알았을까요?
현대 교회가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교단 교리의 표준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은하수 님 30대에 칼빈만큼 했어요?
무리수 심하네요
@츄르킹 신학이 발전한 현대 신학으로 칼빈이 쓴 기독교강요의 오류들을 밝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기록된 오류들 중에서 가장 큰 오류는 십계명을 도덕법이라고 분류하고 이것은 폐지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서신과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언약(돌판에 문자로 쓴 율법(십계명)(고후 3:6~7))을 폐지하시고 새 언약을 세우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히 8:13, 히 7:18, 롬 7:6, 롬 8:1~2, 골 2:14~15, 엡 2:14~15).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들의 의를 위하여(의롭게 하기 위하여, 구원하시려고) 율법의 마침이 되십니다(롬 10:4),
@츄르킹 칼빈이 기독교강요를 쓴 나이는 26세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을 계속 수정해서 지금의 기독교강요를 완성했죠?
칼빈이 인생의 마지막 시기까지 기독교 강요를 수정해서 지금의 기독교강요가 완성된 것이지만
대부분의 핵심적인 내용은 30대에 완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언급한 것입니다.
"칼빈이 쓴 기독교 강요는 많은 오류들이 있습니다.
그 당시 신학이 발전하지 못하던 시기였는데 30대 칼빈이 신학을 알면 얼마나 알았을까요?
현대 교회가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교단 교리의 표준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은하수 칼빈에 대해 아는게 1도 없는 분이 맞군요.
칼빈은 율법의 용도를 3가지로 분류했고
제사법, 정치시민법, 제3용도인 도덕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율법의 3용도인 도덕법은 사람 안에 자연스럽게 내재한 자연법과 같은 겁니다.
님은 도덕심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믿는 이단입니까?^^
@은하수 기독교강요를 수정하다니 나원참 ㅋㅋㅋ
증보해나갔지 본질적인 부분을 수정한게 아닙니다. 인터넷 폐인들이 아무케나 써갈긴거 줏어듣지 말고 본인이 제대로 공부하고 찾아서 확인된것으로 글을 쓰시죠~~
@은하수 님은 26세에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포함 모국어까지 자기 언어처럼 읽고 쓰고 할 수 있어요? ㅋㅋㅋ 칼빈을 21세기 게임 중독된 20대로 착각하는가보네 ㅋㅋㅋ
@Neptune 바울서신과 히브리서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율법을 폐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칼빈이 십계명을 도덕법이라고 분류하고 기독교강요에 영원히 폐지되지 않았다고 기록해 놓은 것은 이단적인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울서신과 히브리서의 기록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하수 이 구절 '성경' 이 어떤 성경을 가리키는건지 대답해보세요.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16~17
@Neptune 딤후 3:16의 모든 성경은 구약성경을 말하죠?
바울서신과 히브리서에 기록된 율법의 폐지와 완성 그리고 새 언약은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은하수 모든 성경은 교훈, 책망, 바르게함,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율법서까지도 칼빈이 말한 제3용도, 딤후3장16,17절 말씀대로 유익하게 사용될수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 갖추게.
구약시대도 율법지켜서 구원받으
라고 준거 아님.
그리고 지금도 율법이 그런 용도로 쓰이지않습니다. 딤후3장16,17절의 말씀에서 율법만 빼낼 자신있음 빼보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