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나무
너도밤나무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
밤나무 그리고 너도밤나무와 나도밤나무
여러 가지 나무이름의 어원을 찾아보면 들어있는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자연과 더불어 산 옛사람들의 바로 곁을 한결같이 지켜온 나무 하나하나에는 삶의 일부가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배고픔에 시달려온 우리의 선조들은 특히 먹을거리와 관계된 이름을 붙여 두기를 즐겨하였다. 국수발처럼 하얀 줄기가 길게 늘어지는 국수나무, 꽃 필 때 모양이 흰 쌀밥을 담아둔 것 같아 조선왕조 성씨인 이씨의 벼슬을 살아야 먹을 수 있는 쌀밥과 같은 의미로 ‘이밥’을 나타내는 이팝나무, 조그마한 꽃이 조밥과 같다는 조팝나무 등은 모두 힘든 삶의 언저리에 남아있는 이름들이다.
과일 나무들도 오늘날처럼 간식거리만이 아니라 배고픔에 허덕일 때 대용식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니 대표 자리에 밤나무가 있다. 직접적인 증거로는 약 2천년 전의 가야 고분에서 밤이 나오고 있으며, 기록으로는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여러 옛 문헌에 밤에 관련된 내용이 수 없이 등장한다. 밤은 전분과 당분이 풍부하게 들어있는 영양분의 보고이면서 산 속 어디에서나 쉽게 얻을 수 있어서다. 밤나무란 이름도 작은 밤밥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는 뜻으로 처음에는 ‘밥나무’로 부르다가 밤나무가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숲 속의 여러 나무들 중 조금이라도 닮기만 하면 밤나무 이름이 붙은 가짜밤나무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나무 중에는 ‘너도밤나무’가 있는가 하면 이에 뒤질세라 ‘나도밤나무’도 있다. 너도 나도 사이좋게 흉내만 조금 내었어도 모두 밤나무를 만들어 주린 배를 채워보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너도밤나무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도 없고 오직 울릉도 성인봉의 높은 곳에만 자라는 특별한 나무다. 우리 땅에서야 울릉도로 밀려나 버린 비운의 나무이지만 세계적으로는 널리 자라고 쓰임새가 많아 이름을 날리는 영광의 나무다. 조그마한 세모꼴의 도토리를 달고 있어서 상수리나무나 떡갈나무와는 같은 집안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며 비슷한 열매를 달고 있는 밤나무와는 먼 친척뻘이다. 잎은 밤나무 보다 약간 작고 더 통통하게 생겼으니 전체적으로 밤나무와 매우 닮은 셈이다.
이 나무를 처음 본 사람들은 ‘너도 밤나무처럼 생겼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울릉도 사람들은 하나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나무에 자연스럽게 너도밤나무란 이름을 붙였을 터이다. 너도밤나무는 잎뿐만 아니라 열매의 특징으로도 밤나무 무리의 유전자가 조금 섞였으니, 출세한 친척의 이름을 빌려 쓴 것에 대하여 이해해 줄만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나도밤나무는 사정이 다르다. 비슷한 이름을 빌려 쓰고 있지만 족보를 따지고 들어가면 밤나무와는 옷깃한번 스치지 않은 완전한 남남이다. 우선 콩알만한 새빨간 열매가 줄줄이 매달리는 점에서도 밤과의 인연을 더욱 상상할 수 없게 한다. 자라는 곳도 밤나무가 전국의 어디에나 가리지 않은 것과는 다르다. 나도밤나무는 남해안에서 섬으로 이어지는 따뜻한 지방에 만 가끔 볼 수 있을 뿐 조금만 추운 곳으로 올라와도 만날 수 없다. 다만 잎 모양으로는 진짜 밤나무보다 잎이 약간 크고 잎맥의 숫자가 조금 많아 언뜻 보아서는 또한 밤나무로 착각할 수 있을 따름이다. 한마디로 나도밤나무는 밤나무와 잎의 생김새가 닮아있기는 하나 실제적으로는 전혀 다른 나무다.
그러나 나도밤나무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옛날 깊은 산골에 가난한 부부가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몇 월 며칠까지 밤나무 1천 그루를 심지 않으면 호랑이한테 물려 가는 화를 당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는다. 그 날부터 부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위에 자라는 밤나무는 모조리 캐다가 열심히 심었다.
그러나 999그루를 심고 마지막 한 그루는 아무래도 채울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산신령이 말씀하신 운명의 시간은 다가오는데 어떻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이런 이야기에 조금은 엉뚱하게 율곡 선생이 밤나무 지팡이 하나를 들고 나타난다. 밤나무 골이라는 그의 호 율곡(栗谷) 덕분에 밤나무와 관련된 여러 전설에 그는 단골손님이시다. 선생이 가까이 있는 한 나무를 지팡이로 가리키면서 네가 밤나무를 대신하라고 이르시자, 이 나무는 냉큼 ‘나도 밤나무요!‘하고 나선다. 호랑이 눈으로서야 ’그게 그것‘일 가짜 밤나무 한 그루를 마지막으로 채워 1천 주의 밤나무 심기는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그때까지 제대로 이름을 갖고 있지 않던 이 나무를 사람들은 나도밤나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한다.
이처럼 나무마다 자기 이름을 갖게 된 갖가지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그 내력이 아픔이던 기쁨이던 세월에 묻혀버린 옛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나무이름에서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박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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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도 밤나무에 대한 전설이 아롱아롱하였는데.. 새삼되새기고 갑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