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청룡 영화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봄날은 간다'는 연상의 여자를 사랑한 남자를 그린 영화다. 상우(유지태 분)와 은수(이영애 분)는 어느 겨울 만나 달콤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잦은 오해와 말다툼이 이어지고, 이듬해 봄날 은수는 상우를 버리고 새 남자를 만난다. 상우의 애원도 소용없었다. 상우의 봄날은 그렇게 끝이 나고 있었다.
야구 선수에게도 봄날은 있다. 팀의 주전으로 뛰며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다. 종종 스포츠지 1면을 장식한다. 돈도 많이 벌고 상도 많이 받는다. 그 시절이 '봄날'이다. 그러나 거스를 수 없는 세월과 부상은 그런 봄날을 더 이상 만끽하지 못하게 만든다. 팬들의 사랑은 멀어져 가며 봄날의 따뜻함이 그립게 된다. 그대로 주저앉거나 다시 올 봄날을 위해 몸부림칠 수 밖에 없다.-
★'싸움닭'의 봄날은 그렇게 가나?
'싸움닭' 조계현의 봄날은 이렇게 가버릴 것인가? 89년 해태에서 프로에 입문한 조계현은 최고의 승부사였다. 93년과 94년에 2년 연속 다승왕을 차지하며 '싸움닭'의 명성을 드높였다. 그러나 그렇게 잘 나가던 그도 97시즌후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99년에는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채 방출당하고 말았다. 삼성은 더 이상 '단물'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그에게 냉정했다.
그러나 옛 스승 김인식 감독의 부름을 받아 두산으로 적을 옮기고 다시 봄날을 맞는 듯 했다. 2000시즌엔 7승3패에 방어율 3.74로 맏형 노릇을 톡톡히 했고 포스트시즌에서도 맹활약,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진출시켰다. 그러나 올해 조계현은 37세의 나이를 극복하지 못고 3승만 올린 채 방출의 아픔을 맛봐야 했다.
★FA 선언하면 봄날은 간다?
지난 99년에 도입된 FA(자유계약선수) 제도는 선수들에겐 큰 돈을 안겨줬지만, 그 못지않은 폐해를 낳았다. FA를 선언하자마자 봄날은 가버리는 것.
김동수는 90년 신인왕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인기구단 LG의 간판 포수로서 90년과 94년 두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개인 최고 영광인 골든글러브상도 6번이나 수상했다. 99시즌후 FA를 선언한 뒤 거액을 받고 삼성으로 이적했으나, 첫 해에 타율 2할5리에 그쳤으며 후배 진갑용과의 주전싸움에서도 밀렸다. 올해도 타율 2할7푼6리로 부진했다. 결국 지난 16일 사상 최대의 빅딜 와중에 SK행 열차를 탔다.
FA 1세대 이강철도 화려한 봄날은 간 듯하다. 89년 데뷔해 10년 연속 두자리 승수와 세자리 탈삼진을 기록하며 '최강'의 잠수함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그도 99시즌 후 삼성의 러브콜을 받았으나 지난해 단 1승만을 거두고 다시 해태로 돌아와야 했다. 올시즌 14경기에 나왔을 뿐, 전광판에서 이름조차 보기 힘들었다.
지난해 FA의 간판이었던 홍현우, 김기태도 마찬가지. 홍현우는 99년 3할의 타율에 30(홈런)-30(도루)에 가입하는 등 해태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나 올해 LG로 이적하자마자 부상으로 '먹튀' 소리를 들어야 했다. 김기태도 지난해 FA를 선언하고 삼성에 잔류했지만 올시즌 코칭스태프와의 불화설 등이 터지며 부진을 겪다가 김동수와 함께 SK로 트레이드됐다.
★퍼펙트게임 연출하면 봄날은 간다?
메이저리그 얘기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는 일생에 한번 세울까말까한 대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그야말로 '봄날'이 가버린 투수가 2명 있다. 90년대를 대표하던 투수인 데이비드 웰스와 데이비드 콘이 그들.
웰스는 지난 98년 5월 미네소타를 상대로 퍼펙트게임을 작성한 뒤 이듬해 17승, 20승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보냈으나 올시즌 어깨 고장으로 단 5승에 머물렀다. 소속팀 화이트삭스마저도 웰스의 내년 옵션을 포기하는 등 아픔이 계속될 전망이다.
콘은 99년 7월 몬트리올과의 인터리그 경기에서 퍼펙트게임을 연출한 직후부터 급격히 추락했다. 올해 양키스에서 방출당하다시피 보스턴으로 옮겼고, 시즌후 FA를 선언했지만 아직 불러주는 구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