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을 가다-산행
야마나시 현 호오잔 鳳凰山
야사진도우게~아오키코센 종주…약 17km 13시간
운무에 어우러진 남알프스 선경이여
글·사진 우제붕 (주)한진관광 차장
<일본 100 명산>은 1964년 후카다 규야씨가 일본 산들 중에 산의 품격, 역사, 개성 등을 고려하여 100개의 명산을 뽑아 소개해 쓴 것이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 하면서 일반인들에게 읽혀지게 되었으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연간 목표를 세워 평생에 걸쳐 완주하고자 노력한다. 일본 100 명산은 북해도에 9개, 본토에 83개, 시코쿠에 2개, 규슈에 6개가 있으며 3000m급 이상의 산이 후지산을 비롯하여 13개가 있고 2000m급은 50개가 있다.
일본의 산은 히말라야의 산들과는 규모면에서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필자가 느끼기엔 아기자기함과 웅대함을 모두 갖추고 있다. 또한 활화산과 휴화산들이 많으며 한라산의 분화구보다 몇 배나 큰 것도 많이 있다. 산 정상 부분에 습지대와 호수가 많은 것이 특징이며 숲 속은 밀림의 상태로 보존되며 야생화가 만발 하는 산이 많다. 일본인들은 자연보호가 몸에 배어 있어 산행 길에 쓰레기 하나 볼 수 없다. 주말이라도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자연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산행하는 즐거움이 있다.
일본의 산들은 아무리 험하더라도 산에다 쇠말뚝이나 난간 등의 안전장치를 만들지 않으며 등산객들도 알아서 위험한 구간은 가지 않는다. 1년 전 북알프스에서 오쿠호다카를 지나 마에호다카를 가는 도중이었는데 우리나라 등산객이 등산로가 아닌 바위에서 리지를 한다고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일본 등산객들이 위험하다고 저지를 했지만 그들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우리와 일본의 등산 문화를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 산악 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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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구름위의 후지산이 보인다.
빗길 속 오르막은 끝없이 이어지고
8월 21일 “탤런트 임호와 함께하는 대설산 트레킹”에 참가했던 여대학생이 갑자기 후지산을 가고 싶다고 전화가 왔다. 그 당시 산행은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했지만 뒤처지지 않고 곧잘 따라와 굉장히 놀랬던 학생이었다. 산행 후 그때의 감흥을 잊지 못해 또 가고 싶어 전화를 건 것이다. 성진금속의 박성춘 사장에게 동행을 요청하였는데 흔쾌히 응해주었다. 필자와는 3차례 정도 일본 산행을 같이 한 적이 있다.
시기는 8월 말로 마땅한 상품이 없어 주말을 이용해 동경 밤 도깨비로 저렴하게 동경 근교 산행을 하자고 하여 추진을 했다. 그러나 그즈음 일주일 내내 기상이 좋지가 않았다. 남알프스는 하루에 50mm정도 비가 내리면 통행금지가 되는 곳인데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남알프스 기타다케 맞은편에 있는 호오잔과 사이타마현에 있는 료가미산 두 곳을 물색해 놓았다가 동경에 도착하면 결정하기로 하였다.
금요일 밤 퇴근 무렵 남대문 시장에서 족발을 사서 공항으로 출발했다. 새벽 2시에 비행기가 인천 공항을 출발해 4시에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리지만 심하지가 않다. 우선은 고후시에 있는 버스회사에 전화를 했다. 전날까지는 우천으로 운행을 하지 않았지만 9시 버스는 운행 한다고 한다. 일행과 호오잔 산행을 가기로 하고 신주쿠로 이동해 7시 쾌속열차를 탔다. 8시 30분에 고후역에 도착 하니 비가 오다 말다 한다. 버스가 운행을 하긴 하지만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 버스라고 한다. 전날 비가 많이 내려 고후시 9시 출발 편과 히로가와라에서 12시 출발하는 버스가 마지막이다.
우리는 점심과 다음날 먹을 식량들을 준비해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심한 빗줄기가 내려 일행들 모두 당황했다. 버스가 가는 도중에 중단이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는 목적지인 야샤진도우게(夜叉神峠 1380m) 등산로 입구에서 내렸다. 10시 20분부터 산행 시작이다. 버스에서 내렸지만 날씨가 심상치 않다. 온통 흐려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 돌아갈 상황도 되지 않으니 어쨌거나 출발하기로 했다. GPS에 산행 루트를 작성해 왔으므로 어느 정도 악천후라도 걱정은 없었다. 출발하자 지그재그로 된 오르막길이 온통 낙엽송 나무이고 숲이 크다. 1시간을 걷고서 야샤진도우게에 도착했다. 1760m에 위치하고 있지만 맞은편에 기타다케와 아이노다케도 볼 수 있어 경치가 훌륭하다. 우리는 아침도 변변치 않게 먹었으므로 11시경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하고 준비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 한다. 산장에 들어가 식사를 하려 했지만 아무리 불러보아도 산장지기의 인기척이 없어 처마 밑에 서서 점심을 해결했다.
비가 점점 심해져 복장을 재정비 하고 출발. 다시 낙엽송과 전나무 숲이 이어지며 경사가 점점 가팔라진다. 오늘 1300m정도의 표고를 올라가야 하니 경사가 급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계속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선지 속도가 나질 않아 심신을 지치게 했다. 몇 번이나 쉬어가며 올라갔다. 계속 오르막길만 이어지다 5시간 30분 걸려 미나미오무로고야(南御室小屋)에 도착했다. 비가 더욱 더 심해진다. 우리가 잠자는 야쿠시다케고야의 운영자는 같은 곳이라 오늘 잠자리와 식사를 예약하고 물을 보충하여 다시 출발한다. 이곳이 삼림 한계선으로 지금까지 온 경사보다도 더 심한 등산길을 30분여 올라가면 그 다음부터 산장까지는 완만하게 이어진다. 나무의 키도 점점 작아지더니 마사토의 하얀 모래 길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드문드문 커다란 화강암 바위들이 있고 잠깐 숲을 지나니 오후 4시경에 야쿠시다케고야(2710m)에 도착했다.
150여명이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지만 날씨가 나빠 숙박객이 우리를 합쳐 7명 밖에 되지 않는다. 저녁 식사하기 전에 사온 족발과 소주를 일본인 등산객들과 함께 먹었다. 일본은 족발을 우리와 다르게 그냥 삶아서 먹기 때문에 일본인 등산객들은 우리가 가져간 족발을 신기해하며 맛있게 먹는다. 저녁 식사 후 나는 산장지기와 2시간여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치바 시게키라는 산장지기는 한국에도 친구가 여러 명 있는데 해외여행을 갔을 때 만났다고 한다. “산이 좋아 결혼도 안하고 7개월은 일하고 5개월은 해외로 여행을 갑니다. 주로 배낭여행을 하는데 인생 자체가 즐겁습니다”라며 세상에서 탈피하여 자연과 함께 사는 모습이 참으로 부럽다. 잠자리를 청하려는데 바깥에 폭우가 내린다. 날씨가 좋아진다는 예보를 보고 왔건만 기대가 어긋나 다음날 걱정으로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새벽에 눈을 떠보니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바깥을 나가 보니 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 예감이 좋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최고의 날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전날 비가 많이 와준 덕분에 공기가 아주 맑은 상태로 시야까지 넓어 기분이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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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진도우게 등산입구에서 출발하면 낙엽송 나무로 우거진 숲길이다.
자연이 만든 일본정원 같은 산길
야쿠시다케(2780m)에서 지죠다케(2764m)까지는 자연이 만든 일본정원 그 자체이다. 화강암이 풍화하여 하얗고 굵은 모래가 능선에 펼쳐져 있고 그 위에는 바위나 나무들을 인공적으로 꾸며 놓은 듯 한 모습으로 매우 아름답다. 2년 전 기타다케에 갔었을 때 맞은편에 있던 이 호오잔이 눈으로 뒤덮여 있어 꼭 가고 싶어 마음이 설레었다. 기타다케 보다도 350m 정도 낮은데도 불구하고 한 여름에도 산 정상이 눈으로 덮여 있으니 신기한 일이었다. 9월 추석에 기타다케에 갔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저 산 정상이 눈인가요?” 질문을 했더니 “눈이 당연하죠” 라고 대답했다. 야쿠시다케에 오르니 넓게 시야가 확보된다. 동쪽으로는 후지산이 바로 보이고 날씨가 청명해 기타다케는 바로 코앞에 있는 듯하다. 저 멀리 히로가와라에서 하라다까지 이어지는 2박 3일 일정의 기타다케 종주 코스도 선명하게 보인다. 30차례 넘게 일본 100명산 산행을 하고 지금까지 수많은 산을 가보았지만 가장 청명한 날씨인데다 주변의 경치 또한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아름답다. 정말 환상적이었다. 함께 간 여대생은 흥분 그 자체였다. 2번째 해외 산행 만에 이렇게 훌륭한 산과 경치를 보고 감격에 감격을 했다.
호오잔(鳳凰山)정상인 간논다케(2780m)는 커다란 바위가 겹겹이 쌓여진 산정으로 고부시가다케(2967m)와 지죠다케(2764m)가 선명하게 보인다. 뒤돌아보면 구름 위에 떠있는 후지산의 위용이 야쿠시다케를 배경으로 더욱 더 아름답다.
급경사의 간논다케를 내려오면 지죠다케로 가기 위해 다시 능선을 올라간다. 아카누케사와노 가시라(2750m)에 도착하면 호오잔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죠다케의 오벨리스크(방첨주)의 위용이 보인다. 5분여 지죠다케쪽으로 내려가면 약간의 평지가 나오는데 지장다케의 어원과 같이 소원을 빌기 위해 가져온 작은 불상들이 100여개 놓여 있다.
지죠다케를 등지고 하얀 모래 길을 15분여 내려오면 다시 전나무 숲이 시작 된다. 지그재그로 50여분 내려가면 아버지와 아들이 운영 하는 자그마한 호오고야(鳳凰小屋)가 나타난다. 주위의 풍경과 너무 조화가 어울리는 조그마한 산장이다. 이곳을 지나면 하산점까지 물이 없으므로 이곳에서 물을 보충해 가는 것이 좋다.
이 산장에서 1시간 30분정도는 평탄하고 전나무로 울창한 숲을 지난다. 도중에는 전망이 좋은 곳이 자주 나타나는데 고부시가다케와 저 멀리 야츠가다케가 보인다. 발아래로는 야마나시의 분지가 펼쳐져 있다. 츠바쿠라야마(燕頭山·2105m)부터는 아주 심한 급경사가 1시간 30분이나 지속된다. 전날 비가 온 탓에 나무뿌리가 젖어 몇 번이나 미끄러 넘어지며 하산을 한다. 니시노다이라(西ノ平)분기점부터는 비교적 길이 완만해지고 이곳부터는 숲이 한층 우거져 200년 이상 된 너도밤나무 숲을 지그재그로 40분 정도 내려가 아오키코센에 도착했다.
미끄러운 산행을 무사히 끝냈지만 교통이 문제였다. 1시경에 출발할 버스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비가 내려 등산객들이나 손님들이 일주일 동안 없었고, 길이 많이 유실되어 버스가 언제부터 다닐지 미지수라 한다. 다행히 고자이시 온천여관의 아들이 버스요금으로 기차역까지 운행을 해준다고 했다. 차량이 시내에서 오는 동안 온천욕을 하고 시내로 출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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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논다케 올라가는 길. 일본 정원과도 같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