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과 고향에 대한 추억, 여행과 방랑에 대한 동경
1877년, 독일 소도시에서 개신교 목사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 1962년 스위스의 몬타뇰라에서 사망하기까지 헤르만 헤세는 삶의 여러 굴곡을 겪은 작가였다. 정원이 있는 작고 아담한 고향집을 그리워하면서도 늘 배낭을 메고 낯선 곳을 찾아 떠나는 방랑자의 삶을 동경하던 작가는 여러 산문과 시를 통해 유년의 기억을 들춰 보며 부모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의 감수성의 발자취를 따라나선다.
형식적이며 위선적이기까지 하던 어른들의 세계와, 어른이 되었지만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보던 작가의 시선이 어우러지면서 우리 모두 마음속에 똑같은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자연과 예술에 대한 사색, 떠남과 머묾에 대한 갈망
작가 헤세는 다양한 분야에서 그의 예술성을 드러냈다. 시와 소설은 물론이며,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고, 그림 솜씨 뛰어나 화가로서의 삶을 살기도 했다. 이 책에 실린 그림은 전부 헤세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솔직한 시선으로 화폭에 옮긴 것들이다.
나비, 구름, 가을 숲과 겨울 산 등 유독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은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자연이야말로 헤세가 느낀 모든 경이로움의 원천이며 그가 행복과 지혜를 느끼던 통로이자 유일한 친구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처럼 그의 삶 모든 것이 그의 작품 안에 녹아 있다. 늘 한곳에 정착하기 원했으면서도 낯설고 신비로운 세계를 더 깊이 알기 원했던 그의 예술가적 기질이 그의 글과 그림 곳곳에 남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감동을 준다.
정신과 향수에 대한 고뇌, 삶과 사람에 대한 애정
반전주의자로서 조국이 벌인 전쟁을 비판했던 그는 전쟁에 대한 그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로 인해 많은 비판을 듣기도 했다. 그런 어려움으로 인해 마음의 병을 얻기도 했으나 그는 삶과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그 어려움을 이겨냈다.
정치적 이해타산과 인간 대 인간의 폭력, 이익과 대립을 이유로 분열되어 그어진 여러 경계선,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기능마저 말살하려는 전쟁 앞에서 작가로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삶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일이었다. 현실을 떠나 낯선 세계를 갈망하는 그의 모습은 도피자의 행위로 이해될 수도 있었지만 그 이면에 담긴 그의 진심을 통해 그가 얼마나 조국을 사랑하고 인간의 인간다움을 꿈꾸었는지를, 그리하여 자연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삶을 위로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에 실린 57편의 작품은 헤세의 유년과 고향에 대한 추억, 여행과 방랑에 대한 동경, 자연과 예술에 대한 사색, 떠남과 머묾에 대한 갈망, 정신과 향수에 대한 고뇌, 삶과 사랑에 대한 애정까지 작가로서, 화가로서 그의 다양한 생각의 틈을 엿볼 수 있다.
산과 호수, 강, 그리고 태양은 나의 친구들이었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내가 자랄 수 있도록 도왔다. 오랫동안 나는 어떤 사람들이나 그들과 나눈 삶보다도 그것들을 더 다정하고 더 친숙하게 느꼈었다. 그러나 내가 반짝거리는 호수와 왠지 서글퍼 보이는 전나무, 햇볕이 내리쬐는 바위보다 더 좋아했던 것은 구름이다.
이 드넓은 세상에서 구름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나보다 더 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 세상에서 구름보다 더 아름다운 사물이 있으면 나에게 가르쳐다오! 구름은 즐거움을 주면서 위로도 해 주는 존재이다. 그것은 신이 구름에게 부여한 축복이자 재능이며, 분노이면서 동시에 죽음의 위력을 지녔다. 구름은 마치 갓 태어난 생명처럼 감미롭고 부드러우며 평화롭다. 그것들은 아름답고 풍요롭고 마치 착한 천사들처럼 너그럽다. 또한 그것들은 죽음의 사자처럼 어둡고 벗어날 수 없으며 또 인정사정 보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구름은 나에게 다정한 여자 친구이자 누이들이었다. 골목길을 지나가다가도 우리들은 마주치면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체했고 때로는 눈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또 그 당시 구름에게 배운 것 역시 나는 잊지 않았다. 구름의 모양과 색, 하늘에서 즐기는 유희, 함께 빙빙 돌며 추는 윤무, 이어지는 휴식. 그리고 그들이 흘러가면서 지상과 천국에 관해서 들려주는 이상야릇한 이야기들을…….
---「아름답고 우울한 구름」중에서
건강하고 씩씩하며 낙천적인 것, 모든 심각한 문제들도 웃으면서 대할 줄 아는 자세, 비난의 말은 거부하며, 순간을 즐기면서 얻는 생명력.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사는 시대가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이런 식으로 이 시대는 세계 대전에 대한 부담스러운 기억을 허위(虛僞) 속에 잊어버리려고 한다.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과장되게 행동하고, 지극히 미국적인 것을 따라 한다. 살찐 아기처럼, 분장한 배우처럼 일부러 과장되고 어리석게 굴면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행복해하고 환하게 웃는다.
영어로‘스마일링smiling’이라고 하던가. 그런 낙관주의가 팽배하다. 환하게 빛나는 꽃잎들로 매일 새로운 치장을 하고 새로운 영화배우의 사진들을 걸고, 신기록을 나타내는 숫자들을 보며 즐거워한다.
---「대립」중에서
우리가 어렸을 때는 슈바르츠발트에서 자란 전나무 둥치들이, 여름 내내 거대하고 튼튼한 뗏목 위에 실려 모든 강들을 지나 만하임으로, 때로는 저 멀리 네덜란드로까지 운반되었다. 뗏목 운반은 독특한 사업이었는데 강에 접한 모든 도시들에서는 봄이 되면, 처음 뗏목이 강 위에 나타나는 일이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마른 가지에서 꽃이 피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주목할 만한 일로 여겨졌다. 그런 뗏목(슈바벤 방언으로는 뗏목이라고 하지 않고 좀 둔탁하게 뎃목이라고 불렀다)들은 아주 키 큰 전나무와 가문비나무 둥치로 잘라 만든 것이었다. 껍질을 벗기기는 했지만 나무를 자르지는 않고 원형대로 짜 맞추었다.
뗏목은 여러 개의 마디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각 마디는 대개 여덟 개 내지 열두 개의 나무줄기로 짜 맞춰 그 끝을 모두 묶었다. 모든 마디와 마디 사이는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뗏목은 아무리 길어도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강의 굽은 곳을 무리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도 뗏목이 흘러가다가 갑자기 장애물에 부딪혀 정체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중략)
우리 어린아이들이 무엇보다도 좋아한 멋진 동화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한 소년에 관한 것이었다. 그 소년은 옛날 어느 때인가 금지 규정을 무시하고 강 위로 흘러가는 뗏목 하나에 몰래 올라탄 뒤 네덜란드까지 갔다. 그리고 마침내 바다에 이르렀다가 몇 달이 지난 후에야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그의 실종을 슬퍼하던 부모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수년 동안 내가 마음속 깊이 남몰래 간직한 소망은, 바로 그 동화 속의 소년과 똑같이 해보는 것이었다.
---「뗏목 여행」중에서
자연의 즐김
이른 봄의 태양을 보면 즐거워하고, 여름날의 태양에는 게을러지며, 공기가 후텁지근할 때는 나른해지고, 눈바람이 불면 다시 생생해진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그들은 자연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어디에서나 아름답거나 혹은 어디서도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 낯선 풍경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 어느 외국에 나가서도 따스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한번 찾아갔던 장소에 대해 훗날 아무런 동경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내면이 텅 빈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다른 낯선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들과 교류하거나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가치 있는 인간이라면 자기의 가족이나 주위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 자연의 삶에 친근함을 느낀다.
내가 무엇을 역겹게 생각한다 해서,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가치가 덜하거나 내게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거나 알 수 없는 것, 내가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것, 나와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 것, 나에게 아무런 호소를 하지 않는 것, 그런 것이야말로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 자신은 더 초라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