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오늘의 성인♡
==============
성 카롤루스 르왕가(Carolus Lwanga, 또는 가롤로)
성 요셉 무카사(Joseph Mukasa)
성 키지토(Kizito)
성 마티아 무룸바(Matthias Murumba)
성 안드레아 카그와(Andreas Kagwa)
축일 6월 3일
성 카롤루스 르왕가(Carolus Lwanga, 또는 가롤로)와
요셉 무카사(Joseph Mukasa)와 동료 순교자들은
일명 우간다의 순교자들이라고 불리는데,
이분들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은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는 참으로 감동적인 순교사이다.
중앙아프리카 내륙지방에 살던 미개한 부족들에게
처음으로 가톨릭 선교사를 파견한 것은 1879년의
일이다. 라비제리 추기경의 화이트 파더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리고 우간다에서는 극히 우호적이었던
무테사(Mutesa) 추장의 도움으로 약간의
진전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인 무왕가(Muwanga)는 자기 부족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뿌리 뽑으려고 하였다.
그들 중에는 열심한 부하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요셉 무카사였다.
추장은 그의 첫 희생자로 무카사를 참수하였다.
이때가 1885년 11월 15일이었다.
무카사의 지위를 승계한 카롤루스 르왕가는
추장 몰래 4명의 예비신자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그중에는 13세의 소년 성 키지토(Kizito)도 있었다.
추장은 또 다시 박해를 일으켜 모든 신자들을
색출하여 잡아들였다. 1886년 주님 승천 대축일인
6월 3일에 모든 신자들은 옷이 벗겨진 채 꽁꽁
묶였고, 사형 집행자들은 밤이 새도록 노래를 부르며
그들을 괴롭히다가 모두 살해하였다.
또 다른 순교자는
성 마티아 무룸바(Matthias Murumba)인데,
그는 처음에 프로테스탄트 선교사의 영향을 받았으나
끝내는 리빈하크 신부에게 영세를 받았다.
또 다른 사람은 키고와의 추장 성 안드레아 카그와
(Andreas Kagwa)인데, 그는 아내의 영향으로 개종하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영세시켰다.
카롤루스 르왕가와 마티아스 무룸바 등 19명의
순교자들은 1920년 6월 6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
(Benedictus XV)에 의해 성대하게 시복되었다.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란 말처럼,
그들의 순교 이후 즉시 500명 이상이 영세하고
3천 명 이상의 예비신자들이 쇄도하여 오늘의
우간다 교회를 꽃피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분들은 모두 1964년 10월 18일 교황 바오로 6세
(Paulus VI)에 의해 시성되었다.
================================
성 다비노(Davinus)
축일 6월 3일
성 다비누스(또는 다비노)는 아르메니아(Armenia)
출신으로 로마(Rome)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를 향한 순례여정을
출발하였다. 그러나 그는 위중한 병에 걸려
이탈리아의 루카에서 여정을 멈추었고 결국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루카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
성 루킬리아누스(Lucillianus)
성 클라우디우스(Claudius),
성 히파티우스(Hypatius),
성 바오로(Paulus),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 Dionysius)
축일 6월 3일
성 루킬리아누스(Lucillianus)는 원래 이방신을 믿던
사제였으나 연만한 나이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박해 때에 니코메디아
(Nicomedia)에서 체포되어 집정관 실바누스에게
끌려갔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를 배반하기는커녕
돌로써 그의 얼굴에 타박상을 입혔기 때문이다.
이 사건 때문에 그는 채찍으로 맞고 목이 달리는
고문을 받은 후 투옥되었다. 여기서 그는
4명의 소년 신자인 성 클라우디우스(Claudius),
히파티우스(Hypatius), 바오로(Paulus),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를 만나 서로를
격려하였다. 결국 그들은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
성녀 바울라(Paula)
축일 6월 3일
성녀 바울라는 감옥에 갇힌
성 루킬리아누스(Lucillianus, 6월 3일)와 그와 함께
순교한 네 명의 소년 순교자들을 도와주었다.
그 이유로 체포된 그녀는 고문을 당하고 마침내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보내져 참수되었다.
그녀와 다른 다섯 명의 순교자와의 연관은 후에
그녀는 성 루킬리아누스의 아내이며 다른
네 소년들의 어머니라는 이야기가 나온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
성 라우렌시노(Laurentinus)
성 페르겐티누스(Pergentinus)
축일 6월 3일
데키우스 황제 치하에서 큰 박해가 수차례 일어났을 때
아레초 지방에서는 수많은 희생자가 속출했다.
그들 가운데 성 라우렌티누스(또는 라우렌시노)와
성 페르겐티누스(Pergentinus) 순교자는
형제지간으로서 이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귀족 출신인 이 성인들은 학생 신분으로
체포되어 집정관 티부르시우스 앞으로 끌려갔다.
귀족 자제이고 또 어린 나이를 보아 쉽게 배교시킬 줄
알았던 관리는 그들의 굳은 믿음에 더욱 큰 분노를
느끼고 참수시켰다.
================================
성 리파르도(Liphardus)
축일 6월 3일
그 당시 유명한 변호사이던 성 리파르두스
(또는 리파르도)는 40세가 되었을 때에 세상을
등지고 수도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오를레앙(Orleans)에서 그는 처음으로 미씨에 있던
성 메스민 수도원을 찾았다.
그러나 은수생활을 더 꿈꾸던 그는 은둔소를 짓고
철저한 고행자의 삶을 살았다.
이리하여 주위에서 제자들이 몰려들므로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오를레앙의 주교는 그를
사제로 서품하고 성당과 수도원을 짓게 하였다.
그는 73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
성 모란도(Morandus)
축일 6월 3일
독일의 보름스(Worms) 교외에서 어느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성 모란두스(또는 모란도)는 보름스 대성당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사제로 서품된 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순례하였다. 그 후 그는 성 후고(Hugo)의 지도를
받으며 클뤼니에서 베네딕토 회원이 되었다.
그는 주로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의
클루니악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1100년에 알자스
(Alsace) 남부지방의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이 초청은 프레데릭 페르즈 백작의 요청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곧 그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성덕으로 뛰어났으며 신자들에 대한 관심이
지극하여 뭇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지냈다.
그가 포도 재배업자와 양조업자의 수호성인이
된 것은 그가 사순절을 지낼 때 음식물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나 포도 한 송이는
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성 안드레아 카치올리(Andrew Caccioli)
축일 6월 3일
안드레아 카치올리(Andreas Caccioli)는 원래
스폴레토(Spoleto) 교구의 사제였으나, 그의 모친과
누이가 죽고 난 뒤인 29세 때에 모든 재산을
교회에 헌납하고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로부터 수도복을 받았다.
그는 천사적 사부인 성 프란치스코의 72제자 중
한 분으로 사부 성 프란치스코의 임종 자리를
지켰고, 또 그분의 마지막 축복을 받은 덕스런
형제였다.
1223년에 프란치스코회의 유명한 총회가 개최될 때
그는 에스파냐에 있었는데, 기근으로 고생하는
주민들을 구제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 후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롬바르디아
(Lombardia) 지방을 순회하며 선교하였고,
성 프란치스코의 엄격한 규칙을 유지하려는
소위 ‘영적인 형제들’ 그룹에 속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그는 두 차례나 투옥된 바 있으며,
스펠로 클라라회의 지도를 맡기도 하였다.
만년에 그는 아시시 교외 카르체리에서 지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관상에 바쳤다.
================================
성녀 올리바(Oliva)
축일 6월 3일
성녀 올리바에 대해서는 그녀가 로마 근처
아나니의 수녀였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알려진 것이 없다.
================================
성 요한 그란데(John Grande)
축일 6월 3일
성 요한 그란데(Joannes Grande)는 에스파냐 남부
안달루시아(Andalusia)의 카르모나(Carmona) 소읍에서
태어났다. 15세 되던 해에 부친이 사별하자
세비야(Sevilla)로 가서 포목상을 하는 친척 가게에서
일을 거들며 지냈다. 그는 사업 수완이 뛰어났지만
세상 일이 그의 정신을 빼앗지는 못하였다.
그는 오히려 이런 일들에 조금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22세 때 그는 자신의 소유물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 뒤에 마르세나 교외의 은둔소로
잠적해 버렸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불우한 생활을 하였지만
그 자신은 좋은 성품을 지닌 사람으로 자처하면서
그늘진 구석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길가에 누워있는 두 사람의 부랑자를
보자마자 연민의 정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움막으로
데려와서 따뜻이 돌보아 주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그는 하느님의 뜻이
이런 데에 있음을 알고 은둔소를 떠났다.
그는 세레스(Xeres)로 가서 죄수들을 위해 봉사하기
시작하였다. 3년 동안 그는 비참한 환경 속에서
그들을 위해 구걸하고 봉사하다가 병원 일을 맡게
되었다. 이를 보고 감동한 어느 부유한 부부가
병원을 지어주자 그는 젊은이들을 모았다.
또한 그는 가난한 처녀에게는 결혼 지참금을 마련해
주었고, 영국과의 전투에서 상처를 입은
에스파냐 군인들을 치료하는데 헌신하였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의 영성생활은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죄수들을 위한 그의 헌신 때문에 그는 흔히
요한 죄수(John the Sinner)로도 불린다.
================================
성 이사악(Isaac)
축일 6월 3일
에스파냐 남부 코르도바 출신인 성 이사악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랍어에 능통하였고,
무어인들의 지배 하에서 공증인을 지냈다.
그러나 그는 코르도바 교외의 타바노스(Tabanos)에서
수도자가 되기 위해 직책을 사임하였다.
그 후 그는 직책을 사임한 죄로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
성 제네시오(Genesius)
축일 6월 3일
성 게네시우스(또는 제네시오)는 클레르몽의 좋은
가문 출신으로 그의 학식과 덕행 특히 그의 자비심이
뛰어났기 때문에 주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이 때문에 그곳의 주교가 서거하자 성직자와
주민들이 그를 주교로 천거하였다.
그러나 5년 후에 그는 스스로 사임하고
로마(Rome)로 순례를 떠났으나 교구 사람들의
강압에 못 이겨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교구를 마치 현명한 아버지처럼 지도하여
위대한 사목자란 이름을 들었다.
================================
체칠리오(Caecilius)
축일 6월 3일
로마 순교록에 보면
성 체칠리우스(Caecilius, 또는 체칠리오)는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에게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심어준 카르타고의 사제로서 이 날에
기억한다고 적혀있다. 체칠리우스 당시에는
그리스도교 종교가 대화 형식으로 전파되고 있었는데
어느 대화 모임에 미누치우스와 옥타비우스 그리고
체칠리우스가 참석하였고, 여기서 나온 결론은
그리스도교가 참 종교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아마도 이때부터 신자가 된 듯하다.
그러나 어떤 경로를 통하여 사제가 되었으며
활동하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그는 자존심과 오류들을 극복하여
진리를 얻었고 끝까지 지켜 승리를 거두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
성 케빈(Kevin)
축일 6월 3일
전설에 의하면 성 케빈은 고대 아일랜드 5부족 왕국의
하나인 렌스터(Leinster)의 화이트 파운틴
(White Fountain) 성채에서 태어난 왕손이다.
그는 성 크로난(Cronan)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성 페트록(Petroc)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러나 그는 곧 글렌달러프의 계곡에서
은수자로서 7년을 살다가 제자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해 수도원을 세웠다. 그는 로마(Rome)를 순례하였고,
성 키아란(Ciaran)의 친구였으며 국왕 콜만(Colman)의
아들을 교육시켰다. 그는 120세까지 장수하였다.
================================
성녀 클로틸다(Clotilde)
축일 6월 3일
성녀 클로틸다(Clotildis)는 부르고뉴(Burgundy)
공국의 국왕 칠페릭의 딸로서 프랑스의
리옹(Lyon)에서 태어나 492년에 프랑크 왕국의
초대 국왕 클로비스(Clovis)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국왕인 남편을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켰는데, 이 일은 왕이
‘클로틸다의 하느님’께 기도하여 패할 듯한
전쟁을 승리로 이끈 496년 성탄절을 기하여
일어났다. 클로비스 국왕이 511년 사망하자
그녀는 네 아들과 함께 살다가 투르(Tours)로 가서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다가 여생을
조용히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