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 한 열흘 남았나요? 음력으로 쳐도 한 달 남짓. 열흘이 지나면 한 달이 지나면 이 해가 지나고 이 해가 지나면 저도
오십줄에 들어섭니다. 이 해와 저 해가 하루 차이고 사십대와 오십대 역시 고작 하루 차이일 텐데 마음은 벌써부터 무겁습니다.
나보다 몇 년 먼저 오십줄에 들어선 조형을 놀려먹은 죗값이겠지요.
벌써 오십! 믿기지도 않고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네요. 해 놓은 것도 없고 여직 나잇값도 못하고 살았는데 어찌 믿기고 어찌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런들 속수무책입니다. 쿵쿵 울리며
다가오는 나이를 어찌 물리치고 어찌 피하겠습니까. 믿어야겠지요. 받아들여야겠지요. 조형이 그랬듯. 먼저 산 사람이 그랬듯.
먼
저 산 사람이 그랬지요. 오십이 주는 편안함도 있다고. 무엇을 하겠다는 욕망을 털어버리고 무엇이 되겠다는 욕망을 털어버리는
편안함. 등짝에 배인 땀을 말리며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는 편안함. 그렇겠지요. 나이 오십이 다다른 지점은 오르막길이 끝나고
내리막을 앞둔 고갯마루겠지요. 고갯마루에 앉아서 걸어온 길을 봅니다. 손바닥으로 재면 한 뼘이 될까 말까 한 길. 그 길을
봅니다.
그 길에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밟힙니다. 다른 나무완 달리 유독 휘어져서 밟히는 소나무. 휘어진 소나무
같던 내 나이 서른 무렵. 조형은 기억하지요? 세상과 결별하고 나와 결별하려는 작정으로 들어갔던 그 무렵의 겨울 포구. 초겨울부터
늦봄까지 반년을 칩거하며 궁상떨던 갯마을 월전.
지금 돌아봐도 궁상은 궁상입니다. 연탄불은 꺼지기 예사였고 말 한
마디 않고 하루하루를 넘기기도 예사였지요. 밭에서 말리는 미역귀를 뜯어먹으며 속이 말라가던 서른 무렵. 속이 타들어가던 그
무렵이었지요. 달 월 밭 전 월전. 겨울 포구에 뜨는 달은 또 왜 그리 없어 보이던지요. 궁상이던지요. 나도 달도 한통속이 되어
서성이던 겨울밤이 겨울 포구가 지금도 나뭇가지를 늘어뜨린 채 휘어져 있습니다.
'포구를 따라 월전 간다// 얼마나
많은 달을 경작하길래/ 月田, 달밭이라고 하나// 밤마다 바닷길 몇 갈래 몰고 오는 달, 조개 굽는 연기에 꺼멓게 그을린
달,(중략)// 그렇구나, 저 많은 달을 돌보느라/ 휘영청 달빛도 허리 굽어/ 빈집처럼 쭈그리고 앉은 포구, 月田'
- 박선희 시 '月田에 가다'
조형! 오십을 앞둔 무거운 마음에 일전 월전을 찾았습니다. 수구지심이랄 건
없지만 내가 처음 살아봤던 시골이었고 포구였기에 수구지심이 아니랄 것도 없겠지요. 다시 찾은 월전은 바뀌기도 했고 바뀌지 않았기도
했습니다. 그게 벌써 이십 년 세월이니 바뀌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겠지요. 나도 그렇겠지요. 바뀌기도 하고 바뀌지 않았기도
하겠지요. 나는 오십 년 세월이니 바뀌었다면 더 바뀌었겠지요.
생각해 보면 나는 나를 지나치게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바뀌는 나는 바뀌어서 나를 괴롭혔고 바뀌지 않는 나는 바뀌지 않아서 나를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바뀌고 바뀌지 않고 그게 뭐라고
나를 괴롭혔는지요. 바뀔 때 바뀌고 바뀌지 않을 때 바뀌지 않으면 될 것을 그게 뭐라고 하나밖에 없는 나를 그토록 괴롭혔는지요.
생각이 여기에 닿으니 조금은 편안해집니다. 이것도 나이가 주는 편안함일는지요.
다시 찾은 월전은 반가웠습니다. 바뀐
월전은 바뀌어서 반갑고 바뀌지 않은 월전은 바뀌지 않아서 반가웠습니다. 세상과 결별하고 나와 결별하려는 나를 안아준 곳이었기에
어떤 월전이든 각별했겠지요. 궁촌이고 벽촌이던 포구가 땟자국을 벗겨낸 것도 반가웠고 시인의 시에서처럼 연기에 그을렸을 망정 휘영청
뜨는 달이 반가웠습니다. 하나뿐이던 슈퍼가 이층 양옥집으로 단장한 것도 반가웠고 그때처럼 막걸리를 파는 것도 반가웠습니다.
간
김에 갯바위로 가는 언덕배기 야산을 둘러보았지요. 아침나절에도 걷고 달밤에도 걷던 언덕이었지요. 독야청청 소나무 한 그루도
반가웠고 지붕이 떨어져 나간 군인초소도 반가웠습니다. 아침에도 보고 달밤에도 보던 나무였고 초소였지요. 갯바위 고인 물에 뿌리를
내린 갈대도 낯이 익었습니다. 바람이 불면 맞서지 않고 휘어지는 게 서른 무렵에 쓰다듬던 그 갈대였습니다.
갯바위
군데군데 박아놓은 유리병 조각은 여전히 조심스러웠습니다. 바다에서 이단자가 다가오면 발바닥을 찌르겠다는 병조각. 바다에서 다가오는
이단자만 찌르겠습니까. 바다로 다가가는 이단자도 찌르겠지요. 갯바위를 거쳐 바다로 가노라면 찔릴까 조심스럽던 유리병이었고 나는
여기서도 이단자임을 상기시키던 병조각이었지요. 그나마 모가 깎인 게 다행이었습니다. 나이 먹은 사람처럼요.
방파제
콘크리트 말뚝에도 앉아보았습니다. 성게를 까던 해녀들과 인사를 튼 방파제고 수평선 너머로 종적을 감추는 배를 진종일 지켜보던
말뚝이지요. 방파제를 떠받친 갯바위에 파도가 들이닥치더군요. 갯바위에 달라붙은 홍합과 해초와 굴껍질이 들이닥치는 파도를 어쩌지
못해 잠겼다가는 종내는 파도가 어쩌지 못해 물러나더군요. 잠기는 홍합과 해초와 굴껍질이 지혜로웠고 물러나는 파도도 지혜로웠습니다.
조형! 솔직히 말하면 저는 나이 오십이 되는 게 두렵습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다는 게 두렵고 나이에
걸맞은 처신을 하는 게 두렵습니다. 성이 동가라서 얼굴도 동안이라고 떠벌리고 다녔는데 나이 오십에 그 말은 어찌 하고 다니며 성이
동가라서 마음도 동심이라고 떠벌리고 다녔는데 그 말은 어찌 하고 다니겠습니까.
하지만 조형! 믿는 구석은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나에게 난 모도 한 풀 더 꺾이겠지요. 그것이 나를 한 살 이전보다 편하게 하고 지혜롭게 하겠지요.
나보다 뒤에 오는 사람에게 '어린 것이!' 놀려먹을 수도 있겠지요. 조형! 일간 시간 내어 월전에 다녀가 보세요. 방파제 낡아빠진
전봇대가 밝히는 불빛이 볼 만합니다. 그을렸을 망정 모 하나 나지 않은 보름달이 볼 만합니다.
dgs1116@hanmail.net
■ 기장 9포 -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 아홉 포구 숨은 풍광들
기
장은 포구가 많다. 국가어항인 대변을 포함해 열일곱 군데다. 어느 포구가 근사할까. 전화통화를 한 기장군청 공보계장은 망설이지
않고 기장 9포를 꼽는다. 기장의 아홉 포구. 유래도 있고 나름의 슬픈 가락도 있다. 물론 원래 모습은 상당부분 상실했지만 더
상실하기 전에 둘러보는 것도 괜찮을 듯. 혼자 둘러보기에는 마음이 싱숭생숭할 듯.
부산에서 시작은 가을포(加乙浦).
갈대가 우거진 갈포의 한자어이다. 송정의 옛말이기도하다. 송정천엔 지금도 갈대가 많다. 송정은 해운대구지만 전엔 기장. 가을포
다음은 공수포(사진). 나라에서 내린 밭 공수전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낚시꾼을 상대로 라면도 팔고 막걸리도 파는 가게에 쑥 들어가
보자. 쭉쭉쭉 더 가면 무지포. 대변항 월드컵등대가 있는 곳이다.
다음은 이을포. 일광천과 바다가 만난다. 나머지
포구다. 갯돌이 바둑돌처럼 반들거리는 기포. 거북등 수석으로 알려진 동백포. 문동으로 불리는 독이포. 달이 안에서 뜬다는
월내포. 마지막 코스가 화사을포. 고리원자력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겨울 바다 겨울 포구. 부산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곳. 부산사람이 복 받은 이유 중의 하나다. 개미가 보인다고 할 정도로 달이 밝은 포구다. 사진=박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