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거칠게 쓰면 안 되는 이유
"수필문장에 언어를 거칠게 쓰면 왜 안 되느냐고 ? "
나에게 무언(無言)으로 수필을 지도해 주신 원로 수필가님께 따지듯 물은 적이 있다.
내 물음은 "전하고자 하는 본질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거친 표현을 차용해서 쓸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내 질문에 침묵하셨다. 그 후 나는 이 문제를 오래 고민했다.
어느날, 어릴 때 짧은 반바지를 입고 산에 소먹이로 갔다가 우연히 찔레 줄기에 종아리가 사정 없이 훌친일이 생각 났다. 체찍에 맞은 듯 상체기가 나고 따가웠다. 그런데 그 찔레 줄기를 들고 남을 사정없이 때려 보라! 맞은 사람이 얼마나 아프겠는가. 언어에 가시가 달리면 찔레가시보다 더 독하고 따갑다는 것을 그날 비로소 알게되었다.
우리나라 TV 연속극을 보면 장면장면이 거의다가 싸우는 장면 뿐이다. 사극이라는 사극은 전부가 권력 암투의 연속이다. 갈등을 조장하여 손쉽게 극의 긴장감을 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깔린 것이지만 그런 연속극을 매일 들여다 보는 우리의 영혼은 자신도 모르게 전투적이 되어가고 거친언어를 쓰게 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 간다.
꼭 상대방에게 욕을 해야 가시가 달린 것이 아니다, 가시를 숨겨서 전하는 말은 아무리 미끈해도 따갑고 아프다. 어저께 뉴스에 모항공사 부사장이란 분이 견과류를 손님에게 전하는 서비스 방법이 틀렸다고 비행기를 돌려세우고 사무장을 내리게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 항공사는 지금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손님에 대한 서비스 방법 교육" 이라는 장미 꽃 뒤에는 "가진자의 안하무인적 행동" 이라는 어마무시한 폭력이 가시 덤불로 뒤 덮여져 있기 때문이다. 직접 그 가시에 찔리지 않은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그 가시에 맞은 듯이 아프고 따갑기 때문이다.
작가들 부터 장미꽃을 주더라도 가시를 떼고 주고, 호박꽃을 주더라도 진심을 담아서 주도록 하자. 말을 꼬지말고 언어를 비틀지 말고 사람을 사랑하는 언어를 쓰자. 작가를 두고 언어의 연금술사라 부른다. 언어를 교묘하게 쓰는 자란 뜻이 아니고 언어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고 변화하는 가를 잘 알고 사람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희망적으로 서로 사랑하도록 유도해 갈 줄 아는 사람이란 뜻이다. 매화는 귀한 줄 알고 "보리"는 귀한 줄 모르면 흑구 같은 수필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20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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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운 말을 써야겠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혜원 선생님!
댓글 감사드립니다.
말끝마다 면박을 주는 게 습관이 된 사람도 있는데 그런 경우를 당하면 대놓고 같이 면박 주기도 뭐하고 참으로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요. 사람의 마음을 심금이라고 하는데 금을 연주할 줄도 모르니 금이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자기 멋대로 건반을 쾅쾅 두들기는 것이지요. "무현의 금"이란 수필을 올린 것도 모든 대인 관계에서 그 상대가 누구든 고운 말을 써야 한다는 회장의 간접적인 지시입니다. ^^
내가 사랑 받고 싶은 만큼 남을 먼저 사랑하라는 말은 아주 쉬운 말이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가난하게 살다가 돈 좀 벌었다고, 무식하던 것이 어찌어찌하여서 글 좀 읽었다고, 자기보다 약한 세상을 향해 마구잡이로 갑질 해 대는 천민 자본주의 사상에 쩔어 있는 내 속에 내재하고 있는 사악한 정신을 몰아내는 그때에 비로소 우리가 진짜 수필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