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역에 정차한 열차는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열차의 창문 저편으로 운용대기중인 새마을호 객차가 잔뜩 있는 것을 보았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렇게 썩히느니, 수요가 없더라도 안동 - 동대구나 안동 - 대구 사이에 새마을호 열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안동 - 의성 - 북영천 - 동대구 - 대구면 될러나...? 하지만 수요는?’
1) 안동역 진입 및 안동역 구내에 유치되어 있던 새마을호 객차
무심코 눈길을 돌려 안내판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무언가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역 안내판에 표기된 바로는 다음 역은 곧바로 운산이었고 이전에 통과한 역은 이하역이었다. 무릉역과 서지역은 어디로 간 걸까….
안동역을 발차한 열차는 계속 달리고 달렸다. 얼마 못 가 무릉역이 나왔지만 무정차로 그냥 통과하였다. 도담역, 평은역과 마찬가지로 시멘트 회사가 있는 듯 벌크 화차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화차들이 가득했던 무릉역은 제천역으로부터 약 2시간 거리였다. 이제 약 2시간만 더 가면 된다.
2) 무릉역
디지털 카메라의 시계가 오전 8시 55분을 가리킬 무렵 운산역 역시 통과했다. 안동역을 제외한 영주 이남의 역들과는 거의 다르게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다른 곳의 플랫폼이 흙이었다면 운산역은 보도블록을 이용하여 플랫폼을 구성하고 있었다. 운산역도 여객 영업을 하는 듯하였다. 어느 역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 때 어떤 여자분께서 본인의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그 여자분은 의성인지 화본인지 모르겠지만 그 부근에서 내렸다. 내심 부끄러웠다. 수첩에 일일이 내가 지나온 과정을 적어가고 있는데 옆에서 사람이 그걸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은 심히 거북했다.
단촌역 역시 무정차로 통과했다. 그럭저럭의 속도로 통과하였지만 단촌역 다음의 역은 엄청 빠르게 통과해서 어떤 역인지 몰랐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업보(혹은 업동)역이 아니었을까.
9시를 좀 넘겨서 의성역에 정차하였다. 한적한 시골역 비슷했지만 나는 관심을 갖고 친구가 살았다던 그 친구네의 옛 집을 찾아보았다. 당연히 못 찾았다. (-_-) 오전시간대였지만 대구로 통근하거나 통학하는 경우가 많았나보다. 승객이 많았다. 지금까지의 일정은 비교적 순조롭다. 의성역에 도착하니 벌써 대구에 가까워진 듯 마음이 가벼웠다.
의성역을 발차한 열차는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된 듯한 비봉역을 빠르게 지나쳤다. 그 역은 출입문은 물론이고 창문까지 봉쇄되었고 심지어 그 주위에 철망까지 쳐 놨다. 단단히 경비막을 에워쌌다.
열차는 다시 탑리역에 정차했다. 역 건물 모양이 탑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이 근처에 탑이 있나? 궁금했지만 그보다 지루함이 앞섰다. 여객 열차는 그 시간대에 내가 타고 가는 열차밖에 없었기에. 디지털 카메라 시계 기준으로 오전 9시 21분 탑리역 발차. 빠아앙~
3) 탑리역
이제 속도를 낼 듯 우보역을 무정차한 채로 통과했다. 설마 다음역에서 정차하는 건 아니겠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음악을 들으며 달랬다. 마침 센티멘탈 그래피티 2의 엔딩곡 중 아야사키 와카나 엔딩곡인 ‘실크빛의 한숨’의 미려하고도 절제된 가락이 마음을 진정시켜주었다.
열차는 속도를 낼 듯 말 듯 달리다가 화본역에 정차했다. 풍기역에서 보던 증기기관차 급수탑이 무색 콘크리트로, 담쟁이덩굴에 잠식당한 채 세워져 있었다. 하품을 하다가 역 플랫폼에 한두 개쯤은 반드시 세워져 있는 안내판에 눈길을 돌렸다. 화본이라 되어있었고 그 밑에 한자로 花本이라 적혀 있었다. 큰 꽃일까 아님 꽃의 근원일까. 역 이름에 담긴 뜻이 궁금해졌다. ^^
4) 화본역 소재 증기기관차 급수탑
화본역에서 승객을 태운 열차는 37분경에 발차해서 계속 대구로 향했다. 도중에 봉림역을 무정차 통과했는데 교행열차로 부전발 안동행 열차가 있었다. 처음 본 열차였다. 주말 임시열차일까? 아니면 정규열차일까. 사뭇 궁금했다.
점점 속도를 낸 열차는 갑현역을 빠르게 통과했다. 플랫폼은 보이지 않았기에 다음 역이 어떤 역인지, 무슨 역인지는 파악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곧바로 신녕역이 나왔다. 속도를 조금 줄여서 통과했는데 다음역이 화산역이란다. 화산(火山)? 화산(花山)? 역시 궁금하다. ^^ 점점 동대구에 가까워져 간다.
궁금증을 풀었다. 불 뿜는 화산이 아니라 꽃이 만발한 화산이었다. ^^;;
다음역이 바로 북영천이다. 거기서 삼각선을 타거나 해서 대구선으로 빠지고 나면 동대구까지는 그럭저럭 가까운 거리다.
시간은 어느덧 9시 대를 넘어 10시가 되었고 10시를 조금 넘어 북영천역에 진입하여 정차했다. 역은 소규모인 듯 하였지만 타는 사람은 그럭저럭 있었다. 헌데 거리계가 이상했다. 창 밖에 보이는 거리계는 2.2km를 나타내고 있었다. 기점이 영천역이었을까.
5) 촬영장소 미상. 북영천 - 하양 구간으로 추정(배터리 부족 경고 전 촬영)
열차는 가속해서 10시 10분을 넘어 봉정역을 통과했다. 어렴풋이 다음역이 금호였는데, 그렇다면 대구선에 진입한 것이 확실하다. 금호역 역시 무정차로 고속으로 통과했다. 여기서부터는 그럭저럭 예상이 갔다. 봉정 - 금호 - 하양 - 청천 - 동촌? - 반야월? - 동대구. 히힛. 이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
열차는 속도를 줄이더니 하양역에 정차하고는 승객을 실어나르기 시작했다. 아뿔싸! 이때부터 본인은 지금껏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온 것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배터리 잔량이 얼마 없었다. 카메라 자체가 빨간색으로 부족 경고를 표시하고 있었고 나는 뜻밖의 상황에 처했다. 설마 했는데 그 ‘설마’가 현실로 되어 나타난 것. 어이쿠…. 배터리 절약의 일환으로 사진을 일절 찍지 않기 시작했다. ㅠ_ㅠ 그런데 앉아만 있으려니 답답하다. 움직였으면 좋겠다.
하양역에서 잠시 쉬던 열차는 출입문을 닫고 다시 속도를 올렸다. 속도가 올라간 열차는 계속 달려서 청천역을 무정차 통과했다. 청천역은 첫 진입부터 심상치 않은 느낌이 났다. 철도가 뜯긴 흔적이 남아 있었고 새로 깔린 듯한 노선도 있었다. 알고 보니 대구선 이설 노선. 역을 통과한 후 대구지하철 차량기지까지 볼 수 있는 행운(?)을 입었다. 그런데 역 구조가 약간 틀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나간 노선은 청천역에서도 직선거리로 한 100m나 150m 정도 떨어진 곳이었고 청천역 건물 주변의 가까운 선로들은 거의 딴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상했지만 그저 그러려니 했다.
여담이지만 중앙선 이설 이전에 망우역 이전의 구간을 통과하다 보면 서울지하철 6호선 차량기지를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예상대로라면 동촌역이나 반야월역이 나와야 하는데 뜻밖에 금강역을 통과하고는 다시 달리고 달려서 가천역을 통과했다. 대구선이 이설되면서 동촌역과 반야월역이 없어진 것일까.
가천역을 통과하여 오면서 한국철도시설공단 쪽의 소유인 듯한 땅을 지나쳤다. 입간판으로 KR이 박혀 있었고 선로를 깔다 만 흔적도 많았다.
운이 좋게도 충북 지방에서는 못 봤던, 인터넷에서 사진으로나마 관람할 수 있었던 CDC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꽃동산 도색은 소멸한 듯 초록과 파랑, 바탕의 흰 색인 삼색이 CDC 도색으로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꽃동산 도색은 왜 지운 걸까. 만약 그렇다면 돌고래도색도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
열차는 드디어 속도를 줄이기 시작해서 동대구역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열차의 끝은 대구였지만 본인이 내릴 곳은 그보다 한 역 이전인 동대구역이었기에 하차 준비를 했다. 주섬주섬 내가 쓰던 수첩을 집어넣고 볼펜도 집어넣고 디지털 카메라도 집어넣고, MP3로 집어넣고….
열차는 동대구역 플랫폼에 완전히 멈춰섰고 본인은 출입문을 통해 플랫폼으로 나왔다. 거의 4시간 동안 열차에 시달린 본인에게 밖의 공기는 그 무엇보다 신선하고 상쾌했다. 오전 10시 44분. 한창 달궈질 무렵의 공기였지만…. 동대구 도착 기념 및 나를 태우고 그렇게 수고해준 열차를 기리는(?) 마음에서 배터리 부족 경고를 무릅쓰고 몇 방의 사진을 찍었다. 집으로 전화를 걸어보니 제천은 비가 온다지만 내가 발을 디딘 동대구는 해가 쨍하고 솟아있었다.
6) 동대구역에서. 장장 4시간 동안 달려준 열차 및 동대구 도착 기념 촬영. 생각지도 못하게 KTX까지 카메라에 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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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계속 5편으로 이어집니다. ^^
그런데 거의 여행기 수준이 되었네요. ^^;;[사살당함]
첫댓글 부전발 안동행은 전신 #1222 통일호 부전-청량리 열차를 부전-안동,안동-청량리 나눠서 운행하는 관계로 탄생했습니다. 전신 #1221의 경우 그 반대가 되죠 청량리-안동,안동-부전.. 통일호에서 승급된거라 역시 전역정차구요.
의성전에 있는 역은 업동신호장입니다.(비봉역도 역시 신호장입니다.) 그리고 탑리역이 있는 마을에는 탑리5층석탑이라는 국보문화재가 면소재지내에 있습니다.
여행기 잘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구선은 이설 후 안심 부근에서 남쪽으로 꺾여(이 과정에서 금강역이 신설되었습니다) 경부선과 합류해 동대구역에 도착하게 되었지만 화물 처리 문제로 구 선로의 반야월역과 동촌역은 아직 살아 있기는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도중에 보신 공사현장은 K2 군비행장 인입선 이설현장일텐데, 개인적으로 완전낭비라고 생각합니다... ㅡㅡ;;;(하루 한대 지나갈까 말까한 곳에 몇 백미터 길이의 고가철로를 열심히 짓고 있는 중이지요) 이 공사가 조만간 마무리되면 대구선 이설은 완전히 끝나고 동대구-동촌-반야월-청천까지의 선로는 걷히게 되며 마침내 동촌역과 반야월역도 사라지게 될 겁니다.
참고로 이미 반야월-청천 구간의 선로는 걷혀나갔지요.
잘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0^//
저도 잘보고있습니다^^. 근대.. 돌고래도색이 남아있기를 .걱정을 하셨는데..이미 사라졌습니다..^^;; 현재 전CDC가 신CI도색이지요..
안동역에 있는 새마을은 유치되어 있는 새마을이 아니고 안동 오전 10시발 청량리행 새마을호 #1092열차입니다. 안동 이남구간으로 새마을호 투입하면... 난리가...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