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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의령(왼쪽)과 함안 사이를 흐르는 남강변의 모습. 강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바위가 솥뚜껑과 닮았다고 해서 솥바위, 한자로는 정암(鼎岩)이다. 이런 연유로 이곳의 지명도 정암진이다. 의령 출신의 곽재우 장군이 이끄는 의병들은 임진왜란 당시 곡창지대인 호남으로 진출하려던 왜군들을 맞아 이곳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최정현 기자 cjh@kookje.co.kr |
- 솥뚜껑 닮은 바위 일대 정암진
- 장군 매복·기습에 수많은 왜병 수장
- 임진왜란 전세 반전의 기회 잡아
- 서부경남·북부호남 잇는 의령관문
- 서울 숭례문과 같은 건축양식
- 충익사·의병박물관 역사교육의 장
한 방송사의 주말극 '징비록'이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을 몸소 겪은 서애 유성룡이 그야말로 피로 쓴 반성문이자 역사기록이다. 일본군의 갑작스러운 침략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임금(선조)마저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모습을 드라마를 통해 지켜보면서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안타까움을 쏟아내고 있을 것이다.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기는커녕 당쟁에 몰두하는 조정 대신들, 피란길에서마저도 서로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모습, 거기에 대신들의 의견을 조정·통할하기는커녕 우유부단하기까지 한 임금,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의 연속이다.
이런 와중에 시청자들에게 잠시나마 통쾌함을 느끼게 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순신 곽재우 두 장군의 잇단 승전보다. 그나마 이들의 활약으로 조선은 풍전등화의 위기를 벗어나 반전의 기회를 잡는다. 반면 적장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예상치 못한 두 장군의 등장에 적잖이 당황한다. 곽재우 장군의 고향 경남 의령을 찾아 그의 흔적과 임진왜란 당시의 활약상을 더듬어봤다.
■정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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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암루 |
남해고속도로 군북IC를 빠져나온 후 국도 79호선 도로를 10분 정도 달려 경남 의령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남강을 건너야 한다. 함안에서 의령으로 넘어가는 다리는 정암교와 정암철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정암철교는 차량 통행이 금지돼 있다. 정암철교에서 가까운 강물 위에는 바위 하나가 자리 잡고 있는데 솥뚜껑을 닮았다고 하여 솥바위, 한자로는 정암(鼎岩)이다. 이곳의 지명이 정암진 혹은 정암나루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정암바위 반경 8㎞ 이내에는 큰 부자와 높은 벼슬아치가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얘기도 전하고 있다.
취재진이 이곳 정암진을 찾았을 때는 몇몇 낚시꾼이 강물에 낚싯대를 던져놓고 망중한을 즐기는 등 마냥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곳은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왜군이 수장됐던 역사적 현장이다. 왜군들이 전라도의 곡창지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을 거쳐 가야 했으나 곽재우 장군이 이끄는 의병들이 잠복 끝에 저지한 것이다. 임진왜란의 전세가 변하는 단초를 제공한 사건이기도 하다. 정암철교 옆 정암바위가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조그만 정자 하나가 서 있다. 정암진 전투에서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정암루다. 정암루에 앉아 남강을 내려다보면 400여 년 전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의병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의병광장과 의령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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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병광장 |
정암루 근처에는 아담한 규모의 공원처럼 생긴 공간이 있는데 의병광장이다.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의 정신을 기리고 의병의 고장으로서 의령을 널리 알리기 위한 상징물이다. 광장 중앙부의 홍의장군(곽재우) 동상은 기단을 합쳐 높이 17m로 붉은 옷을 입은 장군이 백마에 올라 적진을 향해 호령하는 형상이다. 또 벽면 전시대 2곳에는 왜군들과의 전투에 임하는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18장령의 비장한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정암교를 건너 의령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와지붕 모양의 건물을 통과해야 하는데 의령관문이다. 의병광장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서부경남과 북부호남을 연결하는 의령관문은 남강변의 자연경관과 잘 어우러진 모습이다. 밤이면 조명불빛으로 자태가 더욱 화려하게 빛난다.
이 관문은 길이 45.17m, 높이 12.87m(차량통과 높이 5.4m)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붕은 전통 한옥지붕 형태의 서울 남대문(숭례문)과 같은 양식이다. 관문의 내부에는 정암진 승전도와 의병창의도, 기네스북에 등재된 의령큰줄댕기기, 우리 민족의 전통 농경문화인 소싸움, 곽재우 장군 등 18장령들의 호국 충정의 넋을 기리는 의병탑 등 의령 명소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충익사와 의병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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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익사 |
정암루와 의병관문을 지나,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의령읍 내 남산 자락에서 곽재우 장군과 그 휘하 장병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만나는데 충익사다. 충익사 내부는 정원이 잘 가꿔져 있는 등 깔끔하고 경건한 분위기다. 정원에는 유독 눈길을 끄는 모과나무 한 그루가 있다. 높이 8.5m,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3m에 이르며 수령이 500년 된 것으로 추산된다. 가례면 수성마을의 하천변에 있던 것을 1978년 이곳 충익사로 옮겨 심은 것이다. 곽재우 장군 등 18장령 및 수많은 무명용사의 공적을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한 정화기념비도 정원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충익사 바로 옆에는 의병탑도 우뚝 솟아 있다. 탑의 높이는 27m이며, 가운데 둥근 18개의 백색환은 곽재우 장군 등 18장령을 뜻하고 양쪽 기둥의 팔자형은 횃불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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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병박물관 |
의병박물관도 충익사 근처에 있다. 2012년 문을 연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의병박물관은 ▷고고역사실 ▷의병유물전시실 ▷특별전시실 ▷영상실 ▷수장고 등으로 꾸며져 있다.
고고역사실에는 대의면 마쌍리 출토 파수부호 등 선사시대 유물과 용덕면 운곡리 고분군, 부림면 경산리 고분군 등 가야시대 유물이 전시돼 있다. 의병유물전시실에는 보물 671호로 지정된 장검 말안장 팔각대접 등 곽재우 장군 유물 등이 보관돼 있다. 의병박물관은 단순히 유물 나열형의 보여주기식 전시가 아닌 각종 관련 영상이나 모형, 디오라마 등을 통해 관람객들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도록 꾸며졌다.
이와 함께 큰북을 매달아 의병을 모았던 현고수 뒤편의 망우당 곽재우 생가터에는 최근 조선 초기 건축양식으로 안채 등 7동의 건물과 부대시설을 갖춘 정겹고 아담한 생가가 복원돼 있기도 하다.
한편 의령군은 1972년부터 매년 의병창의일인 4월 22일 의병제전을 개최하고 있다. 추모제향과 기념식을 비롯한 문화행사 체육행사 민속행사 등으로 꾸며진다. 2010년 5월 25일 국가기념일인 '의병의 날'이 6월 1일로 제정·공포됨에 따라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회에 걸쳐 '의병의 날' 기념축제로 개편해 개최했으나, 올해부터 다시 의병창의일인 4월 22일에 의병제전을 연다.
# 곽재우 장군은 누구
- 붉은 옷 입고 백전백승…왜병 전라도 진격 막아
곽재우(그림) 장군은 명종 7년(1552년) 경상남도 의령 유곡면 세간리에서 출생했다. 1585년(선조 18년) 별시 문과에 급제했으나 답안지의 내용이 왕의 뜻을 거스른다하여 파방되었다. 이 일로 과거를 포기하고 은거하다가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이 의주로 피란하자 4월 22일 전국에서 제일 먼저 의병을 일으켰다. 장군은 홍의에 백마를 타고 휘하에 17명의 장수와 수천의 의병을 거느리면서 정암진 기강 현풍 창녕 화왕산성 진주성 등의 전투에서 실로 신출귀몰하는 전략·전술로 적을 크게 무찌르고 백전백승함으로써 왜병의 전라도 진격을 저지했다. 이때 붉은 옷을 입고 많은 왜적을 무찔렀으므로 홍의장군이라고도 불렸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진주목사를 지냈고 한성부 우윤, 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했다.
# 주변 볼거리
- 의령천 수변공원, 피크닉에 딱
충익사와 의병박물관 바로 앞에는 의령천이 흐른다. 한눈에 보기에도 강 주변이 잘 정비돼 깔끔하다. 의령읍과 남산을 가로지르는 의령천(사진)은 사계절 물이 맑고 깨끗해 민물 토종어류들이 많이 서식하며 자연 생태계가 그런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충익사와 의병박물관을 나서면 의령천에서 한가롭게 보트를 타고 즐기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의병 유적지를 둘러본 후 멀리 갈 것 없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편히 쉴 수 있다. 수변공원과 구름다리 인공폭포 분수 등이 의령천의 자연경관과 조화롭게 잘 조성돼 있으며, 밤이면 화려한 야간경관과 함께 새로운 관광지로 변모한다. 수변공원 위로 우뚝 솟은 구름다리가 마치 그림처럼 아름답다.
근처의 덕곡서원도 둘러볼 만하다. 덕곡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퇴계 선생이 의령을 방문하게 된 동기는 선생의 장인인 허찬 진사가 30여 년간 경북 영천 초곡동(영주 문정동)에서 우거하다가 출생 고향인 가례촌으로 낙향하면서 이곳 처가댁을 방문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선생 사후 1654년(효종 5년) 선생의 유학사상과 덕행을 추앙하고 후대에 전해야 한다는 유림들의 건의에 따라 의령현감 윤순거가 덕곡촌 입구에 덕곡서원을 건립하였다.
# 가볼 만한 맛집
- 소고기국밥 한 그릇 때문에 의령 찾는 이도 있다는데…
의령에 갔으면 소고기국밥(사진)을 한 번 먹어보길 권한다. 충익사 건너편 의령군청 주변에는 종로식당 중동식당 등 소고기국밥을 주 메뉴로 하는 식당이 많다. 큼직하게 썬 소고기를 넣은 국밥은 옛날 어머니가 끓여주던 맛이다. 일부러 소고기국밥을 먹기 위해 인근 도시에서 오는 관광객도 꽤 있다. 가격은 한 그릇에 7000원 정도다. 의령은 또한 수박과 망개떡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