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빛깔을 잃지 않는다
붉은 한복을 입는다. 거울 앞에 서니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옷의 빛깔이다. 불꽃처럼 선명한 붉음이 치맛자락을 타고 흐른다. 흰빛이 스며든 치마폭은 한지 위에 물감을 풀어놓은 듯 번지고, 그 위로 시간이 한 겹씩 포개진다. 머리에는 한복과 조금은 낯선 베레모를 얹었다. 전통과 현대가 한 사람 안에서 만난다.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자연스럽다. 사람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어제의 시간을 품은 채 오늘의 옷을 입고 내일을 향해 걷는 존재가 사람이다.
젊은 날에는 아름다움에도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피부는 팽팽해야 하고 머리카락은 윤기가 나야 하며 옷은 유행을 따라야 한다고 여겼다. 남보다 조금 더 아름답게 보이는 일이 중요했고 거울 속 모습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아름다움은 타인의 시선으로 완성되는 것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거울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얼굴에 작은 선 하나가 생기고 웃을 때마다 눈가에 주름이 포개진다. 어느 날에는 흰머리 한 올이 낯설게 반짝인다. 처음에는 그것들이 잃어가는 것의 흔적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래 바라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주름은 시간이 남기고 간 흠집이 아니라 살아낸 날들의 필체인지도 모른다. 웃어서 생긴 선이 있고 견뎌서 깊어진 선이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생긴 흔적도 있고 마음껏 행복했던 날이 새겨놓은 자국도 있을 것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빛깔을 잃어가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빛깔을 찾아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젊음에는 젊음만이 가진 찬란한 색이 있다. 봄날 막 피어난 꽃처럼 싱싱하고 눈부시다. 그러나 모든 계절이 봄일 수는 없다. 여름에는 짙어진 초록이 있고 가을에는 단풍이 있다. 겨울의 나무조차 색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잎을 모두 내려놓은 뒤에야 드러나는 나무껍질의 깊은 갈색과 가지의 선이 있다. 계절마다 아름다움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사람도 그러하다. 젊은 날의 빛깔을 평생 붙잡으려 하면 세월은 두려움이 된다. 하지만 지금의 나이에서만 가질 수 있는 색을 발견하면 세월은 선물이 된다. 서른의 나에게 없었던 색이 마흔에 생기고, 마흔에는 알지 못했던 빛이 쉰과 예순을 지나며 깊어진다. 어떤 색은 시간이 오래 지나야 비로소 제 빛을 낸다.
붉은색을 가만히 바라본다. 빨강은 젊음만의 색이라고 누가 정했을까. 나이가 들면 차분한 색을 입어야 한다는 말도 우리는 너무 쉽게 받아들여 왔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이에 맞는 옷, 나이에 맞는 행동, 나이에 맞는 꿈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이에는 정해진 색깔표가 없다. 오늘 붉은 옷이 입고 싶다면 붉은 옷을 입으면 된다. 노란 꽃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면 환하게 웃으면 된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면 시작하면 된다. 마음이 설레는 데 나이를 먼저 물을 필요는 없다.
옷은 몸을 가리지만 때로는 마음을 드러낸다. 오늘 선택한 색깔 하나에도 그 사람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담긴다. 검은색을 입었다고 마음까지 어두운 것은 아니며 붉은색을 입었다고 언제나 열정적인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삶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작은 선언이다.
한복 위에 베레모를 쓴 모습도 그렇다. 한복에는 반드시 전통적인 머리 모양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조금 비켜선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한자리에서 어울린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그런 조합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배운 말투가 남아 있고 젊은 날 읽었던 책의 문장이 마음 한쪽에 자리한다. 오래전 친구의 웃음소리가 기억 속에 살아 있으면서도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이야기를 나눈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오늘의 한 사람을 만든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래된 아름다움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살아 있게 만드는 것 또한 계승이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지나온 세월을 버릴 필요도 없고 거기에 갇힐 필요도 없다. 과거를 품되 오늘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나이 듦의 지혜일지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하나씩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욕심을 내려놓고 집착을 내려놓고 경쟁심도 내려놓으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려놓을 필요는 없다. 호기심은 오래 품어도 좋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설레는 마음도 버리지 않아도 된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 좋은 옷을 입고 싶은 마음, 사랑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도 굳이 접어둘 이유가 없다. 꿈에는 정년이 없다.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이 가져야 할 것도 있다. 사람을 이해하는 너그러움, 쉽게 판단하지 않는 여백, 작은 것에도 웃을 줄 아는 마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젊은 날에는 타인의 칭찬으로 자신을 확인했다면 이제는 스스로에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다시 일어났고, 잃은 것도 있지만 끝내 지켜낸 것도 있다고.
사진 속 여인은 웃고 있다. 붉은 입술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웃음의 온도다. 젊음의 웃음이 꽃이 피어나는 순간이라면 세월을 지난 사람의 웃음은 열매가 익어가는 모습과 닮았다. 그 안에는 기쁨만 있지 않다. 눈물도 있고 이별도 있으며 실패와 기다림도 들어 있다. 그것들을 지나고도 웃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 미소는 더욱 깊다.
아름다움은 완벽함에서 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살아온 시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에서 온다. 자신의 나이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나이 때문에 자신을 제한하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묘한 빛이 난다. 그것은 화장품으로 만들 수도 없고 값비싼 옷으로 살 수도 없다. 오래 살아낸 사람에게 세월이 조금씩 건네주는 빛이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젊음을 지나온 사람이 된다. 꽃잎은 떨어지고 계절은 바뀐다. 그러나 꽃이 졌다고 나무의 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꽃이 진 자리에서 열매가 맺히고 열매가 떨어진 자리에서 다시 씨앗이 시작된다. 삶의 아름다움도 한 시절에 머물지 않는다. 모습만 바꾸어 계속된다.
그러므로 나이를 먹는다는 말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고 싶다. 나이는 먹는 것이 아니라 색을 더하는 것이라고. 한 해를 건널 때마다 삶의 팔레트에 새로운 색 하나가 놓이는 것이라고. 기쁨은 밝은 색이 되고 슬픔은 깊은 색이 된다. 사랑은 따뜻한 색으로 남고 이별은 한동안 어두운 빛을 드리운다. 그렇게 수많은 색이 겹치면서 한 사람만의 색깔이 만들어진다.
오늘 붉은 한복을 입은 여인은 어제보다 젊어지려고 웃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자신으로 충분히 아름답기에 웃는다. 그래서 붉은 치맛자락은 젊음을 흉내 내는 색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색으로 보인다.
세월은 얼굴의 빛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그러나 마음속까지 빛깔을 거두어 갈 수는 없다. 오히려 오래 살아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색이 있다. 여러 계절을 지나온 나무의 결처럼 깊고, 오래 숙성된 차의 향처럼 은근하며, 해 질 무렵 하늘처럼 쉽게 이름 붙일 수 없는 색이다.
거울 앞에서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민다. 붉은 치마가 환하게 펼쳐진다. 이제 거울 속에서 젊었던 나를 찾지 않는다. 그곳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서 있다. 지나온 날을 품고도 여전히 새로운 하루를 기대하는 사람, 아직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작은 설렘에 웃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꽃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피어난다. 사람도 그렇다. 스무 살에는 스무 살의 색으로, 마흔에는 마흔의 색으로, 예순에는 예순의 색으로 피어난다. 어느 한때만이 인생의 절정인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계절을 사랑하는 순간, 바로 그때가 가장 찬란한 때일 수 있다.
오늘은 조금 더 선명한 색을 입어도 좋겠다. 마음속에 오래 접어두었던 꿈 하나를 다시 펼쳐도 좋겠다. 거울 앞에서 이유 없이 한번 웃어도 좋겠다. 세월은 우리의 젊음을 데려갈 수는 있어도 삶의 빛깔까지 가져가지는 못한다. 나이는 빛깔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살아온 만큼, 자신만의 색으로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