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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은 여덟 가지가 따로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고 전체가 연결된 복입니다. 첫 번째 복은 두 번째로, 또 세 번째로 계속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온유라는 것은 첫째 복인 가난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볼 때 "나는 더러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애통하게 됩니다. 이것이 두 번째 복입니다.
이처럼 온유는 가난한 마음과 애통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애통하게 되고, 또 애통한 자는 온유한 자가 됩니다. 그렇게 마음이 겸손하고 낮아지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통회할 때 온유의 성품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자기 죄에 대해서 절망해 보지 않은 사람, 세상의 죄악 때문에 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사람은 온유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가난한 마음이 애통을 낳고, 또 애통하는 마음이 온유를 낳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온유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온유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으면 사람의 표정이나 성질이 온화하고 부드러움이라고 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온유를 천성이 부드럽고 소심한 성격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심성이 좋아서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는 사람, 무기력하고 우유부단해서 무슨 일을 맡겨도 안심이 안 되는 사람, 지칠 정도로 비굴하게 굽실거리는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온유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팔복은 모두 타고난 성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거듭난 성품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3절에 온유를 성령의 열매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의 온유는 헬라어로 '프라우스'인데, 이 말은 통제된 인격, 훈련된 인격, 균형 잡힌 인격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는 흥분을 진정시킨다는 의미가 있어서 진정제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헬라어 학자는 온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온유란 인간에게 주어진 물리적이거나 정신적인 힘이 잘 조절되어 그의 인격 속에 구현되는 덕이다."
예수님 당시에 '프라우스'의 용례를 살펴보면 다음 세 가지 경우에 이 말이 쓰였습니다.
첫째, 사람이 고열로 고생하다가 치료를 받고 열이 뚝 떨어졌을 때, 이때 열이 온유해요.
둘째, 돌풍으로 큰 피해를 보다가 어느 순간 바람이 잦아들었을 때, 이때 돌풍이 온유해요.
셋째, 야생마가 오랜 훈련을 통해서 순하게 길들여졌을 때, 이때 야생마가 온유해요.
이처럼 성경에 온유라는 말은 힘이 잘 조절된 상태, 자기 절제가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런 온유를 체득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그러나 젊은 시절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동족을 때리는 관리를 쳐죽이고 모래로 덮어버릴 정도로 혈기와 분노가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 훈련을 통해 성품으로 변함을 받고 그는 가장 온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200만 명 이상의 많은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온 지도자로서는 모세는 수많은 비방의 화살을 맞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친형제인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가 구수 여자를 취했다고 공개적으로 비방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민수기 12:2절). 이것은 모세의 권위를 대놓고 부정하는 선언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의 독침을 맞은 모세는 놀랍게도 별 대응을 하지 않습니다. 싸우거나 변명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묵묵히 참으며 인내합니다. 그리고 병이든 미리암을 위해 중보기도를 합니다. 이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민수기 12:3절). 그 모세를 하나님은 들어 크게 쓰셨습니다.
성경에서 온유의 최고 모델은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님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태복음 11:29절). 예수님은 자신을 조롱하고 핍박하는 원수들을 천군천사를 동원해서 당장 보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되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베드로전서 2:22~23절). 그렇게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온유한 자에게 약속한 복은 무엇입니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5절). 이 땅이란 구약 성경에서는 가나안 땅을 의미하고, 신약 성경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 즉 천국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땅은 단순히 토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누리는 풍성한 삶을 의미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로 인해 에덴동산의 땅과 하나님과 교제하는 특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셨을 때 당시 유대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줄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적인 무력이나 권력이 아니라 온유라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섬기는 곳이며, 하나님의 백성은 강한 힘을 과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를 아브라함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재산 분쟁이 생겼을 때 그는 조카에게 먼저 선택권을 줍니다. 롯이 자기의 것을 먼저 챙기고 기름진 땅을 다 차지했지만, 아브라함은 거기에 대해 아무런 불평이나 불만을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갔을 때 아브라함은 용사들을 데리고 가서 롯의 가족을 구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누가 약속의 땅을 차지했습니까? 바로 온유한 아브라함이 그 땅을 차지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된 구약의 본문은 시편 37편에 있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악을 행하는 자들과 온유한 자들의 생활 양식과 그 결과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시편 37:9절).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시편 37:10~11절). 여기서 9절과 11절을 비교하면 온유한 자는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온유한 자는 모세가 미리암과 아론에게 그랬듯이, 그리고 예수님이 그를 모욕하는 자들에게 그랬듯이 하나님의 신원하심을 바라고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결국 그런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게 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온유를 뜻하는 히브리어 '아나브'는 힘이 없어서 짓밟히고 고통을 당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대항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신원하심을 기다리며 고통을 참고 견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권력과 폭력이 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보다 더 강한 힘이 온유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변화된 성품인 온유만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보면 알렉산더와 나폴레온 같은 힘 있는 장군들은 다 사라졌지만, 온유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온 세상을 다스리며 또 통치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의 능력이고 온유의 축복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온유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주님이 인정하실 때까지 참으라.
우리 야고보서 1장 12절에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험이 없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마귀가 던지는 시험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겪는 독특한 경험입니다. 우리는 시험을 참아야 하는데,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요? 오늘 야고보는 주님이 인정하실 때까지 참으라고 권면합니다.
저는 아침마다 인생의 지혜서인 잠언을 한 장씩 읽는데, 여기에는 오래 참으라는 권면이 많이 나옵니다. 제가 몇 구절만 보겠습니다.
"노하기를 급하게 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물음이니라" (전도서 7:9절).
"미련한 자는 당장 노를 드러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잠언 12:16절).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잠언 14:29절).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16:32절).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잠언 19:11절).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라" (잠언 25:15절).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잠언 29:11절).
이처럼 분노는 온유의 적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고 싶을 때 주님이 인정하실 때까지 참고 기다려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지금 내 주변에 혹시 화날 일이 많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이라도 화내는 일을 포기한다고 선언해 보십시오. 그때 온유가 우리 안에 승리를 가져옵니다. 시험을 당할 때, 억울한 일을 당해 화가 치밀어 올 때 주님을 의지하고 오래 참으면 온유의 열매가 삶에 맺히게 될 것입니다.
"원수진 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보다는 무고를 견디는 쪽이 훨씬 낫다" (산상보훈 17페이지).
"우리는 다른 사람의 허물과 불완전함을 보지 않을 수 없을지라도 서로 사랑하고 존경해야 한다. 겸손하고 자기를 의지하지 않는 정신을 길러야 하며, 다른 사람의 허물에 대하여 참으며 동정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 모든 인색한 이기심을 없이하고 우리로 하여금 관대하고 너그럽게 할 것이다" (정로의 계단 121페이지).
이처럼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남을 동정하며 참을 때, 주님은 우리를 관대하고 너그러운 온유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온유의 미덕을 우리 삶에 체득하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자기를 부인하고 남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이 죄된 자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 자아가 머리를 들지 못하도록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시대의 소망>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를 포기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요지다" (시대의 소망 523페이지). 이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모본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산상보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비우셨다. 그래서 그분이 하시는 일에는 어디에도 자아가 나타나지 않았다" (산상보훈 14페이지).
사람의 죄된 본성은 언제나 자기를 과시하고 남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산상보훈에는 이런 자아를 물리치고 이것이 더는 영혼의 중심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우리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자아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그것이 수치와 모욕을 당하지 않게 하도록 방어 태세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죽고 우리의 생애가 그리스도로 더불어 하나님 안에 감추어질 때에는 무시나 경멸을 조금도 느끼지 않게 될 것입니다. 비난에 대하여 귀머거리가 되고 조소와 모욕에 대하여 소경이 될 것입니다" (산상보훈 16페이지).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명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태복음 11:29절).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 (마태복음 16:24절). 이 명령을 받은 우리는 날마다 이 죄된 자아를 물리치고 그 대신 남을 축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로마서 12:14절).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4절). 이 두 말씀을 합치면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고 기도하라"가 됩니다. 그래서 축복 기도는 세상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신앙인의 특권입니다. 우리는 축복 기도를 통해 주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고, 가정과 직장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힘든 인간관계를 해결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직접 말로 하기 어려운 형편일 때 축복 기도는 아주 요긴한 방편이 됩니다.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남을 축복하다 보면 우리의 품성은 예수님의 온유를 닮아가게 됩니다. 온유는 모든 인간관계의 최상의 도구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힘입어 온유의 열매가 우리 삶에 풍성히 맺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가정에, 직장에, 교회에 온유의 미덕이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통해 세상에 널리 전해지기를 기원합니다. 이것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마태복음 5장 16절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이 위대한 지도력은 온유함에 나옵니다. 그리고 진정한 용기도 온유에서 나옵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에게는 친구도 많았지만 적도 많았습니다. 링컨을 지독하게 괴롭힌 사람 중에 에드윈 스탠턴이라는 정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대놓고 링컨을 비난하며 아주 심한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는 링컨을 교활한 광대라고 비난했습니다. 또 공식 석상에서 링컨의 얼굴을 고릴라에 비유하며 링컨을 "오리지널 고릴라"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고릴라를 보러 아프리카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일리노이주의 스프링필드에 가면 멋진 고릴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라고 링컨을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그런 비난에 대해 일절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스탠턴의 반대 공작에도 불구하고 링컨은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때도 스탠턴은 링컨이 대통령이 된 것은 국가적 재난이라며 악독한 악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스탠턴을 링컨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모든 참모들이 그것을 재고해 달라고 건의를 했습니다. 그때 링컨은 "그는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으로 국방부 장관을 하기에 적임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참모들이 "그래도 스탠턴은 당신의 정적이 아닙니까? 원수를 없애버려야지"라고 했습니다. 이런 참모들의 제안에 링컨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원수는 마음속에서 없애버려야지요. 그러나 그것은 원수를 사랑으로 녹여 친구를 만들라는 말입니다."
스탠턴은 그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링컨을 도와 남북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겼습니다. 1865년 4월 링컨이 암살을 당했을 때 제일 슬퍼했던 사람이 바로 스탠턴이었습니다. 그는 링컨의 시신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통치자가 여기 누워 계십니다." 링컨은 과연 주님께 온유를 배워 체득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온유의 복을 크게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주안에서 행복하세요.
https://youtu.be/RiGyUgfe1A0?list=RDRiGyUgfe1A0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