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교리(윤리)Ⅱ-(Ⅰ)
유럽 사회가 재편된 계기가 산업혁명이다. 우리나라도 7, 80년 대가 그런 시기였다. 삶에 찌들고 궁핍에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어 먹고 살기 위해 도시로 모여들었다. 부자들은 노동력을 착취하여 더 부자가 되며 노동자는 제도적 뒷받침이 없어 희생양이 되었다.
세상은 어지러운 사회로 뒤죽박죽이 되었다. 공산주의가 생겨나고 교회의 신도들은 떨어져 나가며 무너지는 형편이었다. 또한 그들은 엎친 데 덮친 격의 종교개혁으로 프로테스탄트로 넘어가는 추세였다. 사회는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의 두 계층으로 갈라져 갈등과 투쟁이었다. 이에 신부들은 임금의 개념, 노동자의 권익 옹호, 국가의 개입을 교황청에 호소했다. 교황청은 신스콜라학파에게 지금의 산업혁명이 뭐냐고 하며 문제 해결을 분석하고 연구하라고 했다.
교황 레오 13세도 원죄론적 세계관을 가졌다. 세상은 물질로 갈등하지 말고 천주 공경하면서 살다가 하늘나라에 가서 나자로처럼 살면 된다고 했다. 교회는 원죄론적 노동관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노동자는 가진 것 자체가 없으니 존재의 위기를 맞았다. 공산화의 물결이 팽배하여 노동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교황님의 결단으로 노동헌장이 반포되었다. 노동자에 대한 문제, 노동조합에 대한 문제, 국가에 대한 문제를 교회가 해결을 하면서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학문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이론이었다. 그래서 1883년 독일 뮌스터에 최초로 그리스도교 사회론이라는 학과가 생겼다. 그 결과 가톨릭 사회론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노동헌장은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다. 세상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이었다. 공산주의 방법과 자본가의 문제였다. 교회는 두 안을 절충하는 안을 내는 것이었다.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경제론은 자본주의 장점과 공산주의의 장점이었다. 공산주의의 장점을 딴 것이 자본 재화의 공개념이다. 이는 내가 가진 것이 나의 것인 동시에 우리의 것이고 하느님의 것이다. 그래서 사유 즉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다는 소유권이며 그 권한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절대적 소유권이다. 우리는 신앙적으로 재화를 점유하고 있다. 세상 사는 동안 갖고 있을 뿐이다. 가진 자의 소유권은 너의 것이지만 우리의 것이고 공동의 것으로 하느님의 것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다. 내 것이 없는데 노력하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
공산주의의 맹점은 사유재산을 거부하는 데 있다.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욕망을 없애버렸으니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100년 전 레오 13세는 회칙에서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한 예언이 딱 맞았다. 종교개혁으로 많은 사람이 개신교로 넘어가니까 제재한 것이 트리엔트 공의회였다.
교회는 노조 헌장을 반포하기에 이르렀다. 물질적 가난이 인간답지 못하게 함을 인정하고 교회가 나서서 가난한 사람, 노동자들에게 가난을 구제해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정신이었다. 교회만으로 안 되니까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아담 스미스는 자유 경제론을 내놓았다. 노동과 자본에 대해서 국가가 조정자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런 역할 분담으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당시 사회의 심각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로써 노동헌장을 교황이 선포하신 것이다. 인간이 노력하면 가질 수 있는 소유권을 인정한 것이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는 가정이며, 모든 것을 쏟아 넣어야 할 핵심 가치도 가정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재화로 가정(가족) 임금이다. 일한 대가가 임금이 아니라 인간이 가정을 이루며 인간답게 사는 게 임금이다. 그래서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말은 절대로 맞지 않는 말이다. 이런 것들이 다 교회가 노동자를 위해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가짐은 자연법적인 권한이다. 또한 하느님의 것이기에 어려움이나 가난에 처한 사람에게 나누어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보장해야 한다. 가정의 가장은 가족의 생계와 자녀의 미래를 돌봐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일한 임금은 가족 임금이 되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이 산업혁명에서 희생되었다. 교회는 노동자에게 휴식도 주어야 한다고 하여 쉬는 날이 생겼으며 유급으로 정했다. 노동법은 산업혁명에서 교회가 기초를 만든 것이다.
2024. 11. 23. 유스티노회 김정우 신부 강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