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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 소믈리에’ 일명 스님 |
“소리 속에 존재가 있고, 자신이 있고, 내면의 진심이 있나니…” |
불교계에서 ‘스피커 도사’로 알려진 일명 스님. 스승의 설법을 녹음해 좋은 음질로 들려줘야겠다는 작은 일념이 지난 27년간 성능 좋은 스피커를 만드는 데 몰두하게 내몰았다. 그는 “명품 스피커는 단순히 뛰어난 기술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고 했다. 소리 안에서 진심을 보고 소리가 일치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소리 연구 역시 수행이라는 그는 “소리라는 줄을 따라 올라가면 결국 나 자신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
사찰의 대웅전에 가보면 보통 삼존불(三尊佛)이 모셔져 있다. 왜 세 명의 부처님이 한 조를 이루고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자비와 지혜를 나타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깨달음을 이룬 성자의 인격엔 두 가지 면이 있는데, 하나는 자비고 하나는 지혜다. 대체로 자비스런 얼굴은 미소를 머금는 경우가 많고, 지혜로운 모습은 냉철한 표정을 띄게 마련이다. 이들 상반된 두 가지 표정과 역할을 충돌 없이 나타내기 위해 양쪽에 두 명의 불상을 조성했다고 보는 설이다. 오른쪽 불상이 자비라면 왼쪽 불상은 지혜를 담당한다는 식이다.
둘째는 오랫동안 수행에 정진한 노스님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도를 닦고 있는 본존불을 양 옆의 두 불상이 시봉(侍奉)하는 것이라고 한다. 오른쪽 불상이 빨래를 하거나 밥을 짓고 불때는 일을 담당한다면, 왼쪽 불상은 돈을 벌어오는 역할이다. 도를 닦더라도 먹어야 하고, 집세나 전기요금을 내야 하는 게 사바세계의 실상 아니던가.
그러니 자금 공급책도 필요하게 마련이다. 좌우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본존불이 도를 통하면, 이번엔 본존불이 두 사람의 도통하는 일을 책임져야 한다. 서로 품앗이를 하는 셈이다.
셋째는 깨달음과 예술의 관계를 상징한다는 설이다. 가운데가 깨달은 도인이 앉는 자리라면 좌우는 예술가가 앉는 자리다. 도인과 예술가, 깨달음과 예술은 이처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상호보완적이면서도 한 걸음만 움직이면 서로 자리를 바꿔 앉을 수 있는 관계다. 즉 예술을 통해서 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수도나 예술 모두 집중을 요구한다. 그만큼 예술가는 깨달음에 접근해 있는 셈이다.
일명(一明·47) 스님을 만난 이유도 이 세 번째의 관계, 즉 예술을 통해서 도의 세계로 들어가는 노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다.
소리를 통해 도의 세계로
예술도 여러 가지다. 일명 스님은 어떤 장르의 예술을 해온 것일까. 바로 소리(音)다. 그는 지난 27년 동안 소리에 깊이 천착해왔다. 한국 불교계에서 ‘일명’은 ‘스피커 도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구도의 차원에서 음의 세계에 접근한 인물이다. 별명은 ‘소구산(小九山)’이다. 구산(九山·1909∼83)은 전남 송광사(松廣寺)의 큰스님이었다. 27세 때 폐병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다가, 어느 거사로부터 천수주(千手呪)를 외우면 낫는다는 소리를 듣고 지리산 영원사(靈源寺)에서 100일 동안 천수주를 독송(讀訟)하고는 기적적으로 완치됐다. 그리고 출가했다. 이렇듯 구산 스님은 천수주와 깊은 인연이 있었고, 일명 스님도 그 문하였으니 자연스럽게 관음보살과 소리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을 법하다. ‘천수주’란 천수천안(千手千眼)을 가진 관세음보살의 공덕을 찬탄하는 다라니(呪文)를 가리킨다.
일명 스님이 머무는 관음포교원은 서울 구로동에 있다. 구로동 하면 ‘노동’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치열한 세속도시의 현장이기도 하다. ‘비풍류처풍류족(非風流處風流足)’이라는 한시 대목처럼, 그는 노동의 한복판이라는 비풍류처에서 풍류가 넘치는 관음의 소리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어떻게 해서 소리에 관심을 갖게 됐나. 불교에서는 소리를 어떻게 보는가.
“기독교 성경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나온다. 불교에서는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왜냐면 불교에서는 태초의 부처님을 ‘위음왕불(威音王佛)’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법화경’의 ‘상불경보살품’에 의하면 위음왕불은 공겁(空劫) 때에 맨 처음 성불한 부처라고 한다.
공겁이란 태초를 의미한다. 그러니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가 된다. 말씀도 결국 소리로 전달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보면 기독교나 불교 모두 소리를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소리라고 하는 것이 그만큼 인간의 각성과 정신세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물론 사상적으로 그렇지만, 소리에 관심을 갖게 된 개인적인 계기도 있었다. 구산 스님의 법문을 녹음해서 신도들에게 들려줬는데, 음질이 좋지 않았다. 음질이 좋아야 더 생생하게 구산 스님의 설법을 들려줄 수 있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지만 탐탁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직접 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음질의 육성을 들려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음향에 관심을 갖게 됐고, 결국 성능 좋은 스피커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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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음(音)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지금 이렇게 두 귀에 뚜렷하게 들리지 않는가. ‘이렇게 들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화두로 삼아 참구(參究)해볼 일이다.”
-그렇다면 불교사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소리라는 것은 무엇인가.
“소리는 각기 다른 것 같지만 결국 하나의 소리로 귀결된다. 결국에는 차별이 없는 것이다. 서양음악은 분석이 강하다. ‘도레미파솔라시도’와 같은 음계의 분류를 중시한다. 서양음악은 모든 소리가 음계로 분류되어 표시된다.
반면 불교를 비롯한 동양음악은 음계의 분류를 넘어선 소리를 추구한다. 가령 범종소리를 들어보라. ‘우웅~’ 소리 하나로 귀결된다. 종소리는 하나다. 종소리에는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없지 않은가.”
소리에 대한 일명 스님의 말을 듣고 보니 공감이 됐다. 서양음악이 분석을 통한 음의 다기화(多岐化)를 포착하려 했다면 동양음악은 직관을 통한 통합화를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마치 화엄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의 관계라고나 할까. 이렇게 놓고 보면 다(多)는 서양음악, 일(一)은 동양음악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와 일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고 상즉(相卽)의 관계로 맞물려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종소리가 하나라고 한다면 그 한소리 너머에는 어떤 소리가 있는가. 궁극의 소리는 무엇인가.
“아주 좋은 질문이다. 바로 이 대목부터 수행에 들어간다. 화두선(話頭禪) 식으로 표현하면 ‘종소리가 일어나는 곳이 어디냐?’ 하는 화두가 성립한다.”
-어째서 이 물음이 수행에 해당하는가.
“소리를 즐기는 것이 음악이다. 음악은 존재를 소리로 표현한 것이다. 존재 그 자체는 빛이고 기쁨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 그 자체는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다.
존재는 불성(佛性)이고 신성(神性)인데, 어찌 슬플 수가 있겠는가. 근원적인 존재의 기쁨을 기쁨으로 표현하는 전달매체가 바로 소리다. 존재와 기쁨의 중간에 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누구나 기쁨을 느낀다. 음악이라는 소리를 통해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기쁨을 느끼다 보면 그 기쁨의 근원으로 소급해 올라가게 된다. 즉 소리라고 하는 줄을 따라 올라가면 자기 존재로 들어올 수 있다. 이게 바로 수행이다.”
-판소리에서는 ‘득음(得音)’을 이야기한다. 도대체 ‘소리를 얻었다’는 것은 어떤 경지를 말하나.
“명창이 되려면 득음의 경지에 들어서야 한다. 득음의 경지를 체득하기 위해서 폭포 근처에서 연습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자기 소리가 더 커서 폭포 소리를 제압하는 것을 득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잡소리를 제거하고 자기 소리만 듣는 경지가 바로 득음이다.
즉 폭포 소리가 안 들리고 자기 소리만 듣는 것이다. 자기 소리만 듣는다는 것은 자기 내면의 미세한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면 자기와 소리가 서로 혼연일체가 된다. 자기가 곧 소리다. 자기는 없어지고 소리만 남는다. 득음을 통해서 아상(我相·ego)을 털어내게 된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많은 사람 속에서도 자기 소리만 들린다’고 말한 것을 인상 깊게 들었다. 조수미씨도 득음을 한 것 같다.”
-한번 득음의 경지에 이르면 영원히 그 경지가 유지되는가. 돈오점수(頓悟漸修)라고 하듯 득음 이후에도 수행이 필요한 가.
“필요하다. 명창 임방울도 득음을 한 상태에서 세상에 나와 다양한 활동을 하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흐트러진 것 같다. 흐트러지면 다시 산에 들어가서 폐관(閉關)하고 정진해야 한다. 다시 추스려야 하는 것이다. 임방울도 다시 산에 들어가 공부한 것으로 안다.”
소리를 관(觀)한다는 것은?
소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잠깐 필자의 전공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필자(조용헌)는 불교의 ‘능엄경(楞嚴經)’을 연구해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일반적으로 능엄경은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깜깜 기신(起信)이요, 차돌 능엄(楞嚴)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기신론(起信論)’은 논리 전개가 복잡해 한번 들어가면 깜깜한 미로에 빠진 것 같고, 능엄경은 차돌처럼 단단해 도대체 이빨로 깨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능엄경의 핵심은 이근원통(耳根圓通) 수행법이다. ‘이근(耳根)’이란 귀를 가리킨다. 귀로 소리에 집중하는 수행을 하면 크게 통한다(圓通)고 설파한다.
‘법화경’의 ‘법사공덕품’에 보면 여섯 감각기관 가운데 이근이 가장 수승(殊勝)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안근(眼根)은 앞에 있는 사물은 볼 수 있지만 뒤의 사물은 볼 수 없다. 하지만 이근은 뒤에서 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전후좌우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눈보다 귀를 사용하는 것이 전천후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능엄경에서는 이근원통의 수행법이 여러 수행법 중 가장 우수하다고 한다. 소리에 집중하는 이 방법이 바로 관음보살의 수행법이다 |
“소리를 듣는 사람은 많다. 들을 수 있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소리를 직접 만드는 사람은 적다
왜 그런가. 소리를 만드는 과정은 무협지에서 말하는 비급을 완성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처음에는 무림에 나가 잘난 척을 한다.
그러다가 고수를 만나 처참하게 깨진다. 절치부심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절대고수인 사부를 만난다.
사부의 지도를 받으면서 험난한 역경과 수도생활을 거친 후 마침내 비급을 마스터한다. 무협지 시리즈가 대강 이렇다.
내가 스피커를 만들며 겪은 과정도 이와 흡사하다. 처음에는 조그만 지식에 우쭐해서 스피커를 만들었다.
싸구려 스피커보다는 좋은 성능이었으나, 명품 스피커와 견주어보니 족탈불급(足脫不及)이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그런 후 명품 스피커를 가져다놓고 내 것보다 무엇이 좋은지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낮은 단계에서는 높은 단계의 내공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하수는 고수의 경지를 모르게 마련이다.
좋은 소리는 낮은 단계에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스피커 만드는 기술은 어느 정도 공개되어 있다.
여기서 치고 올라가려면 ‘공덕(功德)’이 있어야 한다. 공덕이 있어야 좋은 스피커를 만들 수 있다.”
-좋은 스피커 만드는 일과 공덕이 어떻게 서로 연결된다는 말인가.
스피커 만드는 일은 형이하학적이고 기술적인 분야고, 공덕을 쌓는 일은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인 분야 아닌가.
이것이 어떻게 서로 연관된단 말인가.
“두 차원이 전혀 관련 없어 보여도 사실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좋은 스피커를 만들려면 자본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본이라는 것도 인연이다.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 결국 자본을 대게 마련이다. 자본도 사람이 가지고 오는 것이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이 분야에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팀워크가 잘 이루어져야 좋은 스피커를 만들 수 있다.
인연이 있어야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내게 호의적인 사람을 만나려면 평소에 공덕을 쌓아놓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내게로 돌아온다. 껍데기로 보면 기연(奇緣)이지만 알고 보면 공덕의 대가다.
영감도 같은 차원이라고 본다.
적선과 적덕이 축적되면 영감이 열린다. 홀연히 기발한 생각이 떠오르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일명 스님은 공덕을 쌓는 방법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첫 단계는 물질로 타인을 도와주는 것이다. 가장 초보적이자 아래 단계에 속한다.
둘째 단계는 자신을 정화하는 것이다.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고 되도록 육식을 적게 하며 욕심을 줄이고 하루에 1시간 이상 혼자 있으면서 자기를 성찰한다.
셋째 단계는 선정력(禪定力)이다. 깊은 삼매에 들어가는 과정이다.
소위 말하는 기도발(祈禱發)이 여기에 해당한다.
기도를 일심으로 하면 정신통일의 상태에 들어가고 이러면 정신세계에서 응답을 한다.
자타불이(自他不二)의 경지다. 또 기도를 제대로 하면 좋은 인연을 만난다.
-jangmoog 주-
기독교 십일조(수입의 1할을 교회헌금으로 내는 것)의 공덕은 쎄다.
왜냐하면 인연법에 의해 모든 수입의 1할을 보시하는 공덕은, 비록 재물 보시이긴 하지만 허공중에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진실하게 믿어 3대에 걸쳐 십일조의 공덕을 지은 가문치고 못사는 사람이 없다.
단지 타력에만 의지하고, 인간성이 하락하고, 예의 도덕이 땅에 떨어져 거기에서 공덕의 대부분을 까먹고는 일장춘몽 되는 것이 문제지.. (정일선사)
이러한 세 가지 차원의 공덕을 쌓다 보면 관상이 바뀌고 분위기가 바뀌며 그 사람의 에너지가 바뀐다.
그렇다면 일명 스님이 공덕을 쌓기 위해 실천한 방법은 무엇이었나.
우선 보약의 일종인 쌍화탕(雙和湯) 공양을 행했다. 1년에 1000재씩 다려 전국 선방의 스님들에게 무상으로 공양한 것이다.
한약 1재가 20첩 분량이니 1000재면 무려 2만첩이나 된다. 게다가 전국에서 생산되는 가장 좋은 약재를 구해 직접 정성스럽게 다렸다.
약을 다리는 솥단지도 그가 직접 제작했다. 효험이 있으려면 적정 온도에서 끓고 적절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특별히 제작한 솥의 재료는 구리였다. 구리 300kg을 사용해 만든 솥의 밑바닥에는 1000만원어치의 순금을 사서 붙였다.
그것도 방자(方字)로 쳐서 붙였다. 금이 자연스럽게 녹아나야 약의 효과가 높아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만발공양
그가 설명하는 공양에는 여러 차원이 있다. 대중공양은 한 사찰에 머무는 모든 스님에게 제공하는 공양이다.
산중공양은 한 산에 있는 여러 절의 모든 스님 에게 공양하는 것으로 대중공양보다 범위가 넓다.
산중공양보다 큰 규모의 공양이 만발(滿鉢)공양이다. 전국 선원(禪院)이나 강원(講院)의 모든 스님에게 하는 공양을 가리킨다.
일명 스님은 만발공양을 두 번이나 했다.
그는 만발공양을 실천하기 위해서 솥단지와 쌀, 반찬 등을 직접 가지고 다니며 전국을 순회했다. 장비 일체를 실을 수 있는 래커차를 몰고 다녔다.
보통 차에는 거대한 솥단지를 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방문하는 절에 부담을 주면 안 되기 때문에 절의 주방기구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만발공양 한 번에 찹쌀만 120가마가 들었다고 한다. 돈으로 환산하면 몇 억원이 들어가는 공양이다.
그가 만든 명품 스피커의 보이지 않는 밑바탕에는 이런 투자와 정성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한국적 소리’ 내는 혼형 스피커
스피커는 크게 콘(corn) 스피커와 혼(horn) 스피커로 나뉜다.
콘 스피커는 소리를 직접 방사하는 방식으로 증폭장치가 달려 있지 않다. 보통 가정용 오디오에 달려 있는 네모진 스피커다.
반면 혼 스피커는 넓은 공간과 먼 거리에 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만든 스피커다. 소리를 드라이브, 즉 증폭시킨다.
마치 입에다 두 손을 모아 말하는 형식이다. 모양은 커다란 나팔과 비슷하다.
일명 스님이 만드는 스피커는 혼형이다. 그는 한국적인 소리를 내는 데는 혼형이 적합하다고 말한다.
지난 27년간 개발해온 스피커는 모두 혼형이다. 오디오에 빠지면 ‘자식들 학비는 못 줘도 오디오는 산다’는 말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오디오 마니아라 부를 만하다. 이들이 이른바 하이 엔드(high end) 오디오를 만든다.
이는 단순히 기계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소리에 미친 사람들만이 만들 수 있다.
이들이 바로 세계적인 명품 오디오를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여성들 중엔 오디오 마니아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마니아는 대부분 남자들이다. 일명 스님의 부친도 마니아였다고 한다. 왜 그럴까.
일명 스님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자는 이미 자기 몸 내부에서 소리가 완성되어 있다.
하지만 남자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 그래서 밖에서 소리를 완성하려고 한다. 오디오에 빠지는 것은 이런 욕구의 분출이 아닌가 싶다”고 분석한다.
스피커의 품질을 좌우하는 요소를 정리하면 음향공학에 밝아야 하고, 소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돈이 있어야 한다.
일명 스님은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추기 위해 관음음향연구원(觀音音響硏究院)이라는 팀을 만들었다.
스피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고 한다. 사장은 관음포교원의 신도회장이 맡고 있다.
공학박사도 몇 명 포진해 있고, 오디오 마니아도 상당수 참가하고 있다.
또한 오디오에 관련되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네트워크가 형성돼 수시로 정보를 교환한다.
일명 스님이 이 연구원에서 하는 역할은 만들어진 스피커로 소리를 들어보는 일이다.
일종의 ‘스피커 소믈리에’라고 보면 적당하다.
일명 스님은 “각 나라에서 생산되는 스피커는 그 나라 국민의 소리를 담는 데 적합하도록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가령 미국의 ‘윌슨’ 오디오는 미국적인 소리, 즉 사실적인 소리를 내는 데 적합한 그랜드슬램 스피커를 만든다. 가격은 2억원을 호가한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포칼’에서 나온 ‘그랜드 유토피아’ 스피커는 포도주 냄새가 나는 스피커라고 한다.
스위스와 독일이 합작한 ‘골드문트’ 스피커도 유명한데, 자연에 가깝고 투명한 소리를 낸다. 가격은 2억3000만원 정도 한다.
그렇다면 일명 스님이 추구하는 스피커의 스타일은 어떠한가. 한국적인 취향과 에너지를 반영하는,
즉 한민족의 한(恨)과 흥(興)을 표현할 수 있는 스피커다.
삶의 피로를 풀어주는 소리
관음포교원 옆의 관음문화원에 들어가면 일명 스님이 직접 마련한 음악감상실이 있다.
그가 직접 제작한 스피커를 비롯해 음향시설 일습이 갖춰져 있다. 벽에는 스펀지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다. 스크린이 있어 영화도 볼 수 있다.
이 공간에서 한 달에 한 번씩 ‘2MF’ 모임이 이뤄진다. ‘Movie and Music Forum’의 약자다.
영화감독들과 오디오 애호가들이 만나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는다. 즉 영상과 소리의 배합을 감상하는 모임인 것이다.
필자가 찾았을 때 이곳에서는 중국 장예모 감독의 최근작 영화 ‘연인’을 상영하고 있었다.
남자 무사가 북에다 콩을 튕기면 다시 그 콩이 수십 개의 북에 부딪히면서 소리를 내는 장면과 기녀(妓女)가 소맷자락으로
역시 북을 튕기는 장면이 있었는데, 화려한 색상과 박진감 넘치는 소리의 배합이 인상적이었다.
혼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향은 시각과 청각을 온통 화면으로 몰고 가버렸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사운드였다. 매료당해야 번뇌가 사라진다고 했던가.
필자와 같은 범부에게는 바닷가의 해조음보다 DVD를 시청하면서 듣는 박진감 넘치는 음향이 번뇌망상에서 벗어나는 데 훨씬 더 효과가 있었다.
-과연 스님이 만든 스피커는 사운드가 다르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이런 소리를 듣는 소감이라면?
“소리에 대한 내 느낌을 표현한자면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기분이다. 어느 단계까지는 좋은 오디오와 스피커가 기쁨을 준다.
이 과정에서 좋은 기자재를 구입하기 위한 끝없는 경쟁이 시작된다. 그러다 보면 ‘얼마짜리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게 된다.
그렇게 되면 피곤하다. 하지만 이 단계를 지나면 모든 소리가 음악으로 들린다. 모든 소리가 음악이고 춤이다. 물론 이는 한참 진행된 차원이다.
일상생활에 지친 일반인들에게는 일차적으로 좋은 스피커로 좋은 음악을 들으며 기쁨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좋다.
삶의 피로를 푸는 데 소리가 좋은 역할을 한다. 소리를 듣다 보면 단순해지고 소박해질 수 있다.”
고수를 만나야 안목이 열린다.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간 소리에도 하나의 세계가 있다는 진리를 확실히 알게 됐다. (끝)
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趙龍憲
● 1961년 전남 순천 출생
● 원광대 대학원 불교민속학 전공, 철학박사
● 한·중·일 삼국의 600여개 사찰과 암자를 현장 답사
● 원광대 초빙교수
● 저서 : ‘나는 산으로 간다’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방외지사’
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
그냥 스쳐 지나가는 소리의 생명을 살리시는군요. 대단하십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좋은글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_()()()_
이글 쓰신분 사찰 기행기 책을 읽어본적이 잇는데 전국 사찰 돌아다니느라 가산을 탕진하셨다고 하네여 ㅋ 전생에 불연이 꽤 깊으신분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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