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1994년 6월 27일 / 독일전 한국은 1994 미국월드컵 독일과의 전반전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전까지 대표팀 골문을 든든하게 지켰던 최인영이 연달아 실수를 하면서 전반에만 세 골을 내준 것이다. 백전노장의 연이은 실수에 다른 선수들의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그리고 후반 시작과 함께 낯선 이가 대표팀의 골문 앞에 섰다. 바로 경희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무명’ 이운재였다. 이운재는 후반 내내 독일의 공격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한국은 대반격을 개시해 3-2까지 추격했다. ‘한국 축구의 역사’ 이운재의 화려한 등장이었다. ![]() 이운재가 정대세의 슈팅을 막아낸 장면은 사실 골에 가까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주심은 이운재의 선방을 인정했다. ⓒ연합뉴스 6. 2009년 4월 1일 / 북한전 2009년 4월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 한국은 북한과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놓고 운명의 5차전을 치렀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이 한국을 승점에서 앞서 조1위를 지키고 있던 터라 한국으로서는 반드시 승리를 따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위기는 후반이 시작하자마자 찾아왔다. 후반 1분, 북한의 정대세는 홍영조가 한국 진영 좌측에서 오른발로 크로스를 올리자 높이 솟구쳐 올라 강력한 헤딩슛으로 연결했다. 정대세는 헤딩슛 후 득점을 예감했는지 골 세레머니를 하기 위해 본부석 쪽으로 몸을 틀었다. 하지만 이운재는 골문 우측으로 날아간 공을 몸을 날려 가까스로 쳐냈다. 정대세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이후 오심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한국은 북한에 승리를 거두고 조1위를 탈환, 남아공으로 가는 8부 능선을 넘었다. 이운재는 최근 대표팀 은퇴 기자회견에서 “정대세의 슈팅을 막은 게 내 축구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억 남는다”고 밝혔다. 다시 돌려보면 골에 가까운 장면이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몸을 날린 이운재 덕분에 우리는 남아공에 편하게 갈 수 있었다. 5. 2007년 7월 22일 / 이란전 이란은 언제나 우리에게 버거운 상대였다. 더군다나 우리 안방이 아닌 곳에서 만난 이란은 항상 우리를 괴롭혔다.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2007 아시안컵 8강전 상대가 이란으로 결정됐을 때 많은 이들은 걱정부터 했고 역시 뚜껑이 열리자 이란은 강력한 공격력을 앞세워 한국의 골문을 위협했다. 비가 쏟아지는 날씨로 가뜩이나 좋지 않은 그라운드는 최악의 상태가 됐다. 이운재는 전·후반 90분과 연장 30분 등 모두 120분 동안 몸을 날려 이란 공격을 막아냈다. 결국 승부는 승부차기에서 결정나게 됐다. 이천수와 김상식이 승부차기를 모두 성공시켜 한국이 2-1로 앞선 상황에서 메흐디 마다비키아가 이란의 두 번째 나섰다. 마다비키아는 작정한 듯 달려들며 골문 오른쪽을 노렸지만 이운재는 이미 모든 상황을 읽고 있었다. 선방이었다. 한국은 김두현이 세 번째 킥을 실축했지만 또다시 이운재의 손끝이 빛났다. 이란의 네 번째 키커 라술 카티비의 강력한 슈팅을 또다시 이운재가 막아낸 것이다. 결국 한국은 다섯 번째 키커 김정우가 킥을 성공시키며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아시안컵 4강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운재가 승부차기에서 선방하던 순간은 49,3%라는 경이적인 텔레비전 시청률을 기록했다. 4. 2008년 11월 20일 / 사우디전 2008년 11월 20일. 대표팀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킹 파야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의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19년 동안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사우디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사우디 관중들의 열광적인 응원도 큰 부담이었다. 이 경기에서 승리를 거둬야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B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기 때문에 승리가 절실한 경기였다. 특히 이운재는 ‘음주 파동’으로 1년여 만에 대표팀에 복귀해 어깨가 무거웠다. 경기 도중 3~4차례 사우디 관중이 쏜 레이저를 눈에 맞으면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던 이운재는 후반 13분 사우디의 역습 상황에서 나이프 하자지와 일대일로 맞닥뜨렸다. 하지만 이운재는 하자지에게 달려드는 척 하더니 절묘하게 발을 뒤로 뺏고 심판은 시뮬레이션 액션을 취한 하자지의 경고 누적 퇴장을 선언했다. 이운재의 노련한 플레이에 결국 하자지가 말려들었고 한국은 수적 우세를 앞세워 19년 만에 사우디를 2-0으로 제압했다. 허정무 감독은 “이운재가 노련했다. 어린 선수들이었으면 하자지를 덥쳤을 것”이라고 이운재의 노련함을 높게 평가했다. ![]() 이운재는 독일을 격침시킨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독일 발락의 페널티킥을 막는 이운재의 모습. ⓒ연합뉴스 3. 2004년 12월 19일 / 독일전 2002 한일월드컵 4강전에서 독일 미하엘 발락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하며 결승행이 좌절됐던 한국은 2년 뒤인 2004년 12월 19일 독일을 안방으로 불러들여 설욕전을 준비했다. 이운재에게는 발락과 올리버 칸이 버틴 독일과의 승부가 남다른 인연으로 다가왔다. 이날 부산아시아드 경기장은 한국의 통쾌한 복수전을 지켜보기 위해 모인 관중들로 가득 찼다. 그리고 한국은 관중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후반 막판까지 2-1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한국은 후반 40분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다 잡았던 승리를 놓칠 위기의 순간, 역시 키커로 발락이 나섰다. 그러나 한국에는 이운재가 있었다. 이운재는 발락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뚫어보다 발락이 슈팅을 날리자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골문으로 빨려들던 공을 막아내는 신들린 선방을 펼쳤다. 2년 전 발락에게 허용한 통한의 결승골에 대한 복수였다. 결국 한국은 이후 조재진이 한 골을 더 추가해 3-1 완승을 거뒀다. 2. 2006년 6월 19일 / 프랑스전 2006 독일월드컵 조별 예선 2차전 한국과 프랑스의 경기. 1차전에서 토고를 2-1으로 제압한 한국은 ‘최강’ 프랑스를 맞아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역시 프랑스는 강했다. 프랑스는 전반 초반 앙리가 가볍게 선취골을 기록해 1-0으로 앞서 나갔고 이후 더욱 거세게 한국을 몰아쳤다. 한국으로서는 최악의 위기 상황이었다. 그리고 전반 30분 한국은 또 다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지네딘 지단이 올린 코너킥을 파트리크 비에라가 수비의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솟구쳐 올라 헤딩슛으로 연결한 것이다. 이 공은 그대로 한국 골문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제 아무리 반사 신경이 뛰어난 골키퍼라도 막기가 힘든 슈팅이었다. 하지만 이운재는 이 상황에서 동물적인 감각으로 손을 갖다 댔고 결국 공은 골문을 통과하기 직전 막히고 말았다. 한국은 이운재의 선방에 힘입어 전력을 가다듬고 프랑스를 추격한 끝에 1-1 무승부를 거둘 수 있었다. 이후 독일월드컵 공식 홈페이지는 ‘비에라의 골은 거의 골라인을 넘을 뻔했지만 공이 골라인을 넘기 전에 이운재가 쳐냈다’고 전하면서 오심 논란을 일축, 이운재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애국가에서도 빠질 수 없는 명장면. ⓒ연합뉴스 1. 2002년 6월 22일 / 스페인전 다들 1위는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다. 이운재가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순간 1위는 역시 2002 한일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 승부차기에서 보여준 눈부신 선방이다. 이운재는 이날 스페인 호아킨의 승부차기 네 번째 슈팅을 정확히 막아내면서 꿈에서도 그리지 못했던 한국의 월드컵 4강을 일궈냈다. K-리그 개인통산 12회의 승부차기 승부에서 11승 1패로 91.7%의 경이적인 승률을 기록한 이운재는 이 선방 하나로 한국을 기적적으로 월드컵 4강 무대에 올려 세웠다. 이운재가 슈팅을 막아낸 뒤 손을 모아 흔들면서 씩 웃는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최근까지도 이운재에 대한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그의 몸매를 보며 많은 이들이 비난을 퍼부었고 경기력도 최근 들어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그가 17년 동안 우리에게 선물한 행복은 뱃살 논란이나 최근의 경기력에 가려질 정도로 하찮은 것이 아니다. 이운재는 대표팀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너무 행복했다”고 했지만 오히려 내가 이운재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이운재 선수, 당신이 있어서 우리 모두가 행복했습니다.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 마지막 월드컵을 벤치에서 보내면서도 후배들을 독려했던 이운재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연합뉴스 footballavenue@nate.com |
첫댓글 이운재가 뜬건 2002년 스펙인전.
운재 형 있을 때가 좋았지.
2002년 때가 젤로 좋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