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일(토)
* 시작 기도
주님...
주님은 나의 목자가 되십니다.
그로 인하여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육신으로 이 세상에 사는 것으로는 여전히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주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살기에 모든 것이 자족합니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자족을 배웁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내게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베캄지역부 선교대회를 잘 마치고 돌아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로 하여금 육신의 것으로 행하지 않도록 성령으로 장악하여 주옵소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이 ‘하나님처럼’ 이라는 자기 의를 드러내어 자기를 높이는 자 된 것 같이 나 또한 얼마나 많이 그 본성으로 살고 있는지요?
나의 이런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가득 채워주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히 2:1-9
제목 : 예수를 요술 방망이로 생각하였고 나를 잘 되게 해주는 수단으로 믿었던 나.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5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6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7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8 만물을 그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 나의 묵상
우리는 배운 것에 더욱 신중하게 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결코 진리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하여 가르쳐주신 것 역시 진리다.
그것을 따라 살지 않거나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그에 상응한 벌을 받았다.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렇게 큰 구원을 받았는데 그 구원을 소홀히 여긴다면 그 벌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느냐?
이 구원은 주님께서 처음 말씀하셨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이다.
또한 그 구원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진리라고 확증해 주었다.
하나님께서도 여러 가지 표적과 능력 그리고 당신의 뜻대로 우리에게 구원을 가르쳐 주셨고 특히 성령의 선물로 그 구원이 진리임을 확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상을 천사들에게 다스리라고 맡기지 않으셨다.
성경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귀하게 돌보시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낮추셨지만 금세 영광과 존귀의 관을 그에게 씌우시고 모든 만물을 그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면 복종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지만, 우리는 아직 모든 만물이 그에게 온전히 복종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인자를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낮추신 후에 즉시 십자가의 고난과 무덤에 장사되심으로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게 하셨다.
인자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은 것이다.
사람들은 배운 것을 행하려고 한다.
따라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배우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어려서부터 배운 것이 몸에 체화되어 나도 모르게 그것이 습관이 되고 그것대로 행하게 되는 것이다.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하늘 곧 아들의 생명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의 생명을 가지고 그저 주어진 이 땅에서 잘 살아가려고 몸부림을 치며 애를 쓴다.
그것이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의 목적이다.
그런데 이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만의 모습이 아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어찌 보면 이들보다 더 악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남들보다 더 높고 나은 삶을 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왜냐하면 그것이 삶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믿고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그렇게 이 땅에서 잘 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권력과 힘, 부와 명예를 구하며 그 자리를 취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이런 모습을 보는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이유다.
나 또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적인 가치관이 나를 뒤덮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 또한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예수는 그저 나를 잘 되게 해주는 요술 방망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한다고 하면서 구하는 것들이 온통 땅의 것들만을 구하였으며 정욕으로 구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니 그 기도의 응답이 없을 수밖에...
(약 4:2-3)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나는 한 때 적어도 기도의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성대 결절이 올 정도로 목이 터져라 부르짖으며 기도했던 자이다.
나의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기도라기보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도였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것에 고무되어 더욱 열심히 기도하였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했던 나는 그야말로 악한 자가 아니던가?
내가 바로 예수를 믿고도 다시 지나간 때로 돌아가려는 유대기독교인이 아닐 수 없다.
무언가 희미하면 믿음이 점점 옅어지고, 손에 잡히는 것 같으면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양 뜨거워지는 그런 믿음이 바로 히브리서의 수신자인 유대기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처음 예수를 믿기 시작하였을 때는 믿음의 신선도 100%였으나 그 신선도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급기야 ‘이것이 아닌가봐’, 하면서 다시 옛날 유대교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나 자신이나 이러한 유대기독교인들은 마치 생선을 막 잡아 올리면 팔딱팔딱 뛰고 그 신선도가 100%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한 마리 두 마리 물 위로 떠오르고 그 눈은 흐릿해져서 신선도가 점점 떨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히브리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신선도의 문제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들이 숭배하는 천사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더 낫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낮아진 것은 다름 아니라 나를 비롯하여 주를 믿는 자들을 위함이었다.
이 구원이 완성되기까지는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모든 만물이 온전히 복종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부분적으로만 복종할 뿐이다.
그런데 그런 이유가 하나님께서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이 다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예수를 향하여 손가락질하고 부정하며 욕을 하기도 한다.
나아가 아무런 이유 없이 무조건 배척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은 주님께서 이루실 그 나라가 오기까지는 그런 현상은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예수님은 힘이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능력은 결코 우리를 이 땅에서 잘 되게 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하며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 아니다.
오직 주님의 뜻은 우리에게 창세전 약속을 이루시는 것이다.
창세전 약속은 다름 아니라 영생이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창세전에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말씀으로 태어나신 아들 그리스도는 모든 만물을 아버지와 함께 창조하셨다.
따라서 모든 만물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창조질서가 깨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난 모든 이들이 자기의 소견대로 살아가는 이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이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영생을 주시되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악한 자들을 통하여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무덤에 장사지내셨다.
그런데 이런 구속사건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영광 중에 기뻐하셨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으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받으시는 영광은 결코 이 땅에서 우리가 잘 되고 부자 되며 높은 권세를 차지하는 것에 있지 않다.
내가 어떠하든지 낮은 자리에 처하며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사건 안에 연합할 때 아버지의 영광이 극명하게 드러나신다.
그 영광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광이요 또한 나의 영광이기도 하다.
나는 구원과 영광을 오해하던 자였다.
구원이란 죽어서 가는 천국쯤으로 생각하였으며 영광은 내가 이 땅에서 잘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이것은 철저하게 유대인들의 메시야 사상이다.
이들은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면 정치적인 자유와 경제적인 부요 그리고 사회적인 정의를 이루었던 다윗의 시대로 회복할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런 힘 있고 능력 있는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생각했지만, 그 예수는 힘이 없고 자기들을 로마의 식민지에서 해방시켜 주지도 않으며 오히려 그들에게 잡혀서 죽고 마는 그런 약하디약한 자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예수는 그들의 메시야가 될 수 없었다. .
그래서 예수를 배척하였고 급기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만 것이다.
그들 안에 내가 있다.
나는 예수를 요술 방망이로 생각하였고 나를 잘 되게 해주는 수단으로 믿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그를 믿는 것 같았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겉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이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요, 죄인 중에 괴수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천사보다 낮아지셔서 이런 나를 살리시고 구원해 주셨다.
이제 나는 복음을 통하여 아들의 생명을 얻었으며,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아들의 생명으로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오늘도 진정한 영생으로 하늘의 기쁨을 누린다.
내 영혼이 은총을 입었기에 내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누린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가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나 아담의 생명으로 살면서 예수님을 나의 우상으로 삼고 살았던 악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를 이용하여 내가 잘 되기를 바랐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했으며 부와 명예를 얻으려 했던 죄인 중에 괴수가 여기 있습니다.
그런 나를 주님께서는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여 주셨사오니 감사합니다.
이제 나에게 가르쳐주신 이 복음을 따라 살게 하시되 생명으로 살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연합한 하루가 되게 하소서.
이 날이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는 그 나라가 되게 하소서.
나는 감추어주시고 오직 주의 나라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주님을 세상의 그 무엇과 비교하거나 세상의 좋은 것을 주는 우상쯤으로 여기지 않도록 나의 생각을 다스리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