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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히11:30)
1 불가능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앞에서 난공불락과 같은 여리고성을 마주했다. 이전에 약속의 땅 앞에서 정탐꾼을 보내고 불신과 원망으로 40년의 저주를 받고 지금까지 헤매었기 때문에 여리고성 앞에서 이들은 굉장히 진지하게 마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리고성은 2중 구조의 성벽이었다. 외벽은 기초성벽이 5m이고 그 위에 높이 7m 두께 2m로 되어 있었고, 내벽은 14m의 둑위에 벽을 높이 세웠다. 그리고 성벽에 집을 지은 튼튼한 성벽 구조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을 멸하기 원하셨다. 이스라엘도 여리고성을 멸해야 약속의 땅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니 여리고성 주민들과 싸우기에는 불가능할 정도로 이스라엘이 약했다. 여리고 성 주민과 싸울 수 있는 대적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난관을 이겨낼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했지만 더이상 할 수 없을 때, 오직 하나님께서만 도우실 수 있을 때 기적을 베푸신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기적만을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악하고 게으른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답답하시겠는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하는 일이 따로 있다. 기적은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힘으로는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수 없지만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믿음이 있을 때 일하시기 시작한다. 그때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군사들이 여리고성을 매일 한바퀴씩 돌고 마지막 7일째에는 7바퀴를 도는 것 이었다. 그리고 7명의 제사장이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불게 하셨고 마지막 7번째 날 나팔 소리와 함께 모두 함성을 지를 때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겠다고 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략이 얼마나 이상하게 들렸을까?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불가능해 보이는 전쟁을 언약궤를 가지고 하셨다. 언약궤의 의미는 약속의 땅과 생명을 주시고 거룩한 백성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뜻이다. 제사장은 그 언약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즉 하나님의 전쟁은 언약과 거룩함으로 하는 전쟁이다. 이러한 거룩한 전쟁이 난공불락의 성 앞에서는 우스워보이고 어리석어 보이고 아무런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비웃음과 멸시를 당할만 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전쟁은 거룩함으로 하는 것이고 거룩하지 않으면 무너지는 것이 전쟁의 모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싫어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쟁에 능하신 분이다. 전쟁을 통해 불의한 나라를 무너뜨리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그러므로 전쟁에 능한 나라가 되야 하고 강한 나라가 되야 한다. 그래야 악한 나라를 두렵게 하고 다스릴 수 있다.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수6:3-5)
2 우리 편입니까? 적들의 편입니까?
여리고성의 이야기는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 모두가 그와 같은 기적이 있기를 소망한다. 많은 사람이 한번쯤은 원하는 곳을 여리고성 삼아 돌아봤을 것이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마주하기 전에 먼저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만났다. 사람과 같이 생긴 천사였다. 그를 보자 이렇게 물었다. "우리를 위하느냐? 적들을 위하느냐?" 천사는 "너희를 위하여 왔다"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여호와께 속한 군대 대장이다"라고 대답한다. 그 말은 여호와께서는 누구의 편을 드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뜻이다. 오히려 우리가 여호와편에 있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여리고 성을 돌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도와주셔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여호와 편에 있기 때문에 도와주시는 것이다. 그 말은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르면 우리를 대적하시고 전쟁하실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그러므로 어떤 일이든 먼저 전쟁할 것이 아니라 공의가 어느 편에 있는지 먼저 분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공의를 위하시기 때문이다. 여리고성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기억해야 한다. 바로 법궤와 나팔이었다. 언약의 말씀을 나팔같이 불면서 기억나게 하시고 심판하시는 것 그것이 여호와께서 전쟁하시는 이유이다(수5:13-15).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수5:13-15)
#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히11:31)
3 기생 라합만 살아 남았다
당시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나라들의 심정은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애굽을 망하게 하고 홍해를 가르고 요단 물을 멈추게 하고 건너왔으므로 주위 모든 왕들의 마음이 녹고 기절할 정도로 두려워 떨었다. 그럼에도 여리고성은 난공불락이었으므로 문을 닫고 출입하는 자가 없었다. 함께 싸우는 것도 두렵고 가장 안전하고 강하다고 여겨지는 성에 숨어버렸다. 여호와께서 여리고성의 어떠한 물품도 취하지 않게 하셨으므로 그곳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부패하고 범죄가 만연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모두가 여리고성만 있으면 안전할거라고 여기던 때 기생이었던 라합은 생각이 달랐다. 홍해를 가르고 요단을 말리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앞에서 여리고성은 반드시 망할거라고 믿었다. 그녀는 이스라엘이 치른 전쟁속에 하나님께서 일하셨음을 믿었다. 그래서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홍해가 갈라지고 전쟁에서 이기며 요단강물이 마르는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목도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믿지 못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1세대는 광야에서 죽었다. 그러나 여리고 성에 있던 라합은 그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믿었다. 그래서 그녀는 모두 망하는 중에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라합이 믿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도 라합의 믿음이 있는가? 온 세상이 망해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혹시 대적의 무리에 속해 있는가? 괜찮다. 이제라도 하나님의 편에 서면 된다.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수2:9-11)
#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히11:32-34)
4 믿음으로 두려움을 비웃어라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은 믿음으로 사자들의 입을 막고 풀무불에 들어가서 타지 않았으며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워 승리했다. 이들은 모두 의로운 자들이었다. 평생을 완벽하게 살았다는 뜻이 아니다. 믿음으로 싸울 때 그들은 공의의 마음으로 전쟁했다는 뜻이다. 공의의 하나님 편에서 공의를 위해 전쟁한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고 공의를 행하고 약속하신 것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언제나 유리한 상황에서 전쟁한 자들은 아니었다. 사자 굴에 들어갈 때는 억울하게 모함을 당해 왕까지도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다니엘을 걱정했다. 풀무불에 들어갈 때도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다는 의로운 일 때문에 억울하게 들어가야 했다. 사실 믿음을 지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음에도 의를 행했을 때 불에 타지 않는 기적을 맛본 것이다. 또한 전쟁 앞에서 누가 떨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무 많은 군사들과 마병들을 바라보며 어느 누가 용감하게 맞설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병의 수로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으로 전쟁하는 분임을 알기에 용감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 즉 하나님의 언약을 지킬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불의와 타협하게 되므로 결국 불과 유황에 던져질 뿐이다(계21:8). 그러므로 믿음의 원수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사랑한다면 두려움은 떠나간다(요일4: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2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4:18)
#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히11:35-38)
5 끝까지 싸워라
만일 죽어야 하고 고문을 받아야 하고 감옥에 갇혀야 하고 욕을 먹고 채찍에 맞고 돌에 맞고 톱으로 잘려지고 칼에 찔려야 하고 굶주려야 하고 환난과 학대를 받아야 한다면 우린 계속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3년 반을 훈련받은 예슈아의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다. 사실 사자의 입을 막거나 풀무불에서 들어간 것도 살것을 예상한 것은 아니다. 이길거라 예상되는 싸움은 하기 쉽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시험하지 않으신다. 에스더도 이길 것을 예상하고 "죽으면 죽으리이다" 고백하지 않았다. 우린 언제나 불가능해 보이고 지는 것같은 싸움을 한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의 뜻은 '신뢰하다, 충성하다, 순종하다' 등이다. 즉 하나님의 공의를 믿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고 공의에 충성스럽기 때문에 싸우며 공의에 순종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해주실 것을 믿고 싸운다면 그것은 자신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닐까? 언제나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 결과는 우리가 정할 수 없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믿음이고 충성이고 순종이다. 전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싸워야한다. 그것이 예슈아께서 보이신 충성스러운 믿음이었다. 하나님은 말씀이고 말씀은 공의이고 진리이다. 그것을 위해 싸우기 때문에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를 살려주신다면 감사할 뿐이다. 심지어 우리는 죽을 수 없다. 육체만 죽을 뿐 우리는 영원히 산다. 그러므로 끝까지 싸울 것이 우리에게 요구된다. 영생을 정말 믿는다면 끝까지 싸울 것이고 약속대로 유업을 얻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어찌 세상이 감당하겠는가? 우린 이 땅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이미 하늘에 속한 아들들이다.
6 북한 성도들과 함께 서라
오늘날 이렇게 믿음의 싸움을 싸우는 자들이 있다. 북한 성도들이다. 그들은 갇혀있고 채찍질당하며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굶주리며 병들고 고문을 당하고 죽어가고 있다. 그들은 끝나지 않을 거 같은 마치 지는 것 같은 싸움을 싸우고 있다. 우린 성령 충만을 자주 외친다. 그러나 성령이 하시는 일은 이런 자들을 자유케 하고 억압을 풀어주는 것이다. 빵을 돌로 바꾸는 기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함이 아니라 이런 자들을 자유케하기 위해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필요한 것이다(사60:1-3). 이제는 진짜 성령의 일을 하자.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여호와께서는 북한 주민을 도륙되도록 창조하지 않으셨다. 김정은을 주석으로 인정하고 나라로 인정하고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가짜 믿음 가짜 기독교인들을 거절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다. 우린 핍박당하는 북한 성도들의 편에서서 그들을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 그것이 진짜 믿음이고 아버지의 사랑이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사60:1-3)
#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히11:39,40)
7 우리를 통해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수많은 순교자들은 믿음으로 언약을 받았다. 그러나 언약을 이루지는 못했다. 언약이 무엇인가? 약속의 땅이며 영원한 생명이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영생을 주실 부활의 하나님을 믿고 기꺼이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을 얻지는 못했다. 그것은 백보좌 심판후 모두가 부활할 때 모든 언약이 이루어질 것이다(계21:5-7). 하나님께서 이처럼 언약이 마지막에 이루어지게 하신 이유는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하게 하기 위함이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계21:5-7)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마지막 세대)를 통해 온전함을 이루도록 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예슈아께서 초림하신 당시는 아직 마지막 때가 아니었다. 그 후에도 2000년 이상 지났다. 그렇다면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우리는 마지막 세대를 뜻한다.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세대가 필요하다. 즉 구약 성도들도 필요하고 신약 성도들도 필요하다. 특히 식약의 마지막 세대는 율법의 일점 일획까지 모두 성취함으로써 가장 온전함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신약이 없이 구약만으로 언약이 성취될 수 없다. 그렇다면 온 열방에 복음이(언약) 전달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신약만으로 언약이 성취될 수 없다. 그렇다면 애초에 언약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온전함에 가까운 마지막 세대가 없다면 용과 맞서 싸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 어느 때보다 마지막 세대는 가장 영광스럽고 온전함에 가까운 자들이다. 점점 더 모든 비밀이 풀어지며 사단의 계략이 드러날 것이다. 즉 최후의 결전 하이라이트의 역사를 쓸 자들이 마지막 세대인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모두가 언약에 동참하게 하시고 어느 누구도 없어서는 안되게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다. 전 세대가 공의로운 언약을 위해 고난에 참여한 자들이 그날에 유업을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벧전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4:13)
샤밧 예배: 토요일 10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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