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도 삼월의 삼 천배 절 수행은 공영 방송인 KBS1 다큐공감에서 해인사 백련암에 촬영나왔습니다.
공영 방송국인 KBS1 TV 다큐공감에 백련암 아비라 카페 삼 천배 절 수행 이야기를 한 시간 동안 4월 29일 토요일 오후 7시 10분
방송 예정입니다.
(촬영에 협조해주신 도반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회 신행수기 공모 당선작
바라밀상
내 안의 무한한 힘 (정명심, 정정희)
봄꽃들이 하나둘 지고 어린아이의 손처럼 부드럽고 여린 잎들이 하루가 다르게 푸르름을 더해가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눈이 있어서 볼 수 있고 귀가 있은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새소리,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 안의 나를 찾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행복하고 감사한 선물 같은 날들이다.
새벽이면 작은 기도 방에서 남편이자 도반인 태성 거사와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지심귀명례 보광불, 지심귀명례 보명불…”살아있는 것에 감사하고 소중한 인연에 감사하며 한 배 한 배 절을 하다보면 등줄기엔 땀이 흐른다.
누구나 삶을 살면서 크고 작은 아픔을 겪으며 살아간다. 나 또한 살아오며 아파했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아픔들이 많았지만 나는 불법을 만아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아파하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까 하는 마음에 용기를 내어 글을 쓴다.
삼 천배를 하고 나서 자신감을 얻었다.
19년 전 성철 큰스님 열반주기에 평소 무척이나 나를 아기던 보살님 손에 이끌려 해인사 백련암白蓮菴에서 생애 첫 삼 천배를 했다. 가끔씩 백팔배를 하던 나는 긴장감에 도량의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밥도 먹지 못했다.
새로 맞춘 무명 동방을 입고 서툰 몸짓으로 절을 시작했다. 억겁의 때가 녹아내리는 듯 온몸은 땀으로 젖었고 책장을 넘길 힘조차 없었다. 절 횟수가 더할수록 목도 아파 부처님 명호를 부를 수 없었다. 몽둥이로 맞은 듯 손가락 마디까지 아팠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통스럽게 절을 하는가?’, ‘왜?’ 끊임없는 물음과 포기하고픈 마음이 끝없이 일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무릎이 터질 듯 아파오고 피고름이 새어나오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밀려오는 수많은 망상들을 떨치려 더 큰소리로 부처님 명호를 불렀다. 호흡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옆에 계신 보살님들께 누가 될까봐 제대로 숨을 쉬지도 못했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살아오며 남을 아프게 했던 일과 미워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세세생생 지었을 무수한 죄업들과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업을 참회한다며 마음속으로 되뇌이고 또 되뇌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옆에 있던 보살님이 단호하게 내 팔을 잡아당겨 일으켰다. 그 마음이 고마워 죽을 힘을 다해 일어났다.
이천오백배가 끝나고 휴식을 취하러 고심원古心院 계단을 내려 오려는데 한 발도 뗄 수 없어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었다. 내가 민망할까봐 모른 척 지나가던 보살님들께서 등을 토닥여주며 “참지 말고 실컷 울어라”, “우리도 이랬다”, “젊은 보살이 장하다” 하며 격려의 말씀들을 해주었다.
절뚝거리며 계단을 내려와서 화장실에서 울고, 방에 가서 또 울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쉬는 시간은 어쩌면 그렇게도 빨리 지나가는지 마지막 삼 천배 하러 고심원에 들어섰다.
‘그래 오늘 여기서 스러져 죽더라도 삼 천배는 해보자’라는 마음에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좌복은 자꾸 달아나고 앞에 계신 보살님 엉덩이를 머리로 받아가며 두 손을 짚고 일어서며 명호를 불렀다.
이천육 백배, 이천팔 백배, 아무 생각 없이 횟수조차 잊어버리고 오르지 명호만 불렀다. ‘대자대민중생大慈大悲愍衆生’ 삼천배가 끝난 것도 모르고 다시 시작하는데 옆에 계신 보살님이 나가자며 팔을 툭 친다.
‘내가 해냈구나, 보살님 감사합니다. 큰스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하며 눈물을 쏟아졌다. 다시금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울면서 고심원을 나와서 옆에 계셨던 보살님께 고맙다며 인사를 몇 번이나 했다.
주의 보살님의 도움으로 삼 천배 회향을 했을 때 성취감과 환희심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새벽 별도 바람도 공기도 다르게 느껴졌다. 법당 안팎의 보살님과 거사님들이 모두 부처님처럼 거룩해 보였다. 삼 천배 후 겁 많고 소심했던 나는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부처님의 크나큰 가피는 수없이 많았다.
내가 죽으면 좋은 사람 만나서 다시 결혼해요.
서른여섯 살에 자궁경부암이라는 병마가 찾아왔지만 ‘올 것이 왔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두렵지가 않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서 세군데 병원을 다녀왔는데 암은 확실했다. 서둘러 입원해서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의사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며칠 후에 오겠다 말씀 드렸더니 “전이가 무섭다는 것 모르냐?”며 덤덤한 나를 보며 걱정스레 말씀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을 다잡고 결단을 내렸다. 겉보기와 달리 평소 아픈곳이 많았기에 남편을 설득해서 수술 대신 쑥뜸 치료를 받기로 했다.
그 시기에 알던 지인이 몸에 종양이 여러군데 있어서 항암 치료와 방사능 치료 대신 쑥뜸 치료를 하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서울에 계신 선생님을 뵈러 가기 전에 먼저 통화를 했는데 힘든 치료라고 말씀하시며 모질게 마음먹으라고 하셨다.
두려운 마음이 생긴 나는 부처님께 엎드려 청했다. 건강을 되찾게 되면 세 가지 일을 하고 저 세상에 가게 해달라고. 이 또한 욕심이라면 내려놓고 지금 가겠다고 아무도 없는 법당에서 흐느껴 울면서 간절하게 부처님께 청하고 청했다.
인과법을 믿었기에 원망도 집착도 내려놓았다. 부처님께 모든 걸 맡기기로 맘을 정하니 더 이상 마음의 동요가 일지 않았다. 서울에 가기 전날 시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아무것도 모르는 친척들이 가고 없는 밤에 남편에게 말했다.
“혹시 내가 죽거든 좋은 사람 만나서 재혼해서 잘 살아라.”
“쓸데없는 말하지 마라.”
내 부탁에 남편은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자다가 깨어보니 남편은 돌아누워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왜 울어?”
“내가 그동안 당신을 많이 힘들게 해서 당신이 아픈 것 같다. 미안하다.”
남편과 함께 살면서 처음 듣는 말이고 처음 보는 우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아니야, 내 탓이야. 만약 내가 잘못되면 아이들도 어려서 돌봐줄 사람도 필요하고 당신도 젊으니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
다시 한 번 남편에게 당부를 했다. 남편이 다시 물었다.
“수술을 먼저 하고난 뒤 쑥뜸 치료를 하면 어떻겠어?”
“결혼 생활 내내 당신 의사에 따랐으니 이번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세요.”
남편과 같이 울며 밤을 지샜다.
(4월달 계속....) (출처: 믿는 마음) (조방 씀)
2017年 4月의 아비라카페 三 千拜 (15日 토요일 백련암 18시)
발목이 아직 완쾌되지 않아 압박 붕대를 감고도,
청아한 목소리로 쉼 없이 지심귀명례 선창을 불러주신 정명심 보살님 덕분에 무사히 회향을 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적광전 삼 천배, 마지막 오백배 의 모습입니다.)
kbs1 다큐공감에 인터뷰 하는 가족입니다.
적광전에서 원택스님의 법문을 경청하는 도반님 들의 모습입니다.
적광전에서 삼천배를 같이 해주신 복 많은 스님 입니다.
사랑합니다.
부처님 불명을 부르는 도반님들~
삼 천배를 마치고 복 많은 스님과 추억의 사진~
www.bonsi.co.kr (법복, 절방석, 생활한복) 구경오세요~ 복댕이 님~~~~
첫댓글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감사합니다.
잠시 머물다 갑니다.
성불하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