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잠실구장에서 한화가 배팅훈련을 시작할 무렵 LG의 한 선수가 정영기 수석코치를 보고 넙죽 인사를 했다. 그리곤 정 코치가 무거운 배팅볼 바구니를 옮기려 하자 얼른 달려가 바구니를 같이 들며 운반을 도왔다. 다른 팀이라도 선후배나 사제지간에 인사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렇게 상대편에 도움까지 주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주인공은 현역 프로야구 선수 중에서 100m를 10초대에 뛰어 발이 가장 빠르다는 외야수 오태근(26)이다. LG에 2002년 신고선수로 입단했지만 그 이전인 2001년에 건국대를 졸업하고 오갈 데가 없었을 때 당시 스카우트였던 정 코치가 한화에 테스트를 받게 해준 데 대해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정 코치는 오태근이 빠른 발과 가능성이 있어 추천했지만 한화와는 인연을 맺지는 못했다고 회고했다. 이 얘기를 들은 LG 황병일 수석 코치와 노찬엽 주루코치는 “정말 성실하고 착한 선수”라며 “2~3년 후를 주목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태근이 진가를 발휘한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일 한화전에서 9회말 빠른 발로 극적인 동점을 올려 무승부를 이뤄냈다. 9회 2사 후 박용택이 내야안타로 출루했다. 박용택 역시 빠른 발의 소유자지만 LG 벤치는 대주자로 오태근을 투입했다. 이병규 타석 볼카운트 2-1에서 4구째를 던지는 순간 오태근은 냅다 2루로 달렸다.
한화 배터리는 그의 도루를 의식해 피치아웃을 한 뒤 2루에 공을 뿌렸지만 그만 악송구가 됐고, 공은 유격수 글러브에 맞고 외야로 흘렀다. 그 사이 오태근은 3루를 돌아 홈으로 질주했다. 마치 육상 단거리 선수를 연상시키는 빠른 발로 여유있게 홈을 밟아 동점을 만들며 이날의 히어로로 떠올랐다.
오태근은 도곡초등학교 시절 육상선수를 하다 중학교에 입학해서 뒤늦게 야구에 입문했다. 휘문고를 졸업하고 건국대에 입학했지만 4학년 때 슬라이딩을 하다 어깨를 다쳐 수술을 받았다. 이 때문에 프로야구 어느 팀에서도 지명을 받지 못했고, 1년을 쉰 뒤 2002년 LG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제주도 마무리 훈련에서 당시 그의 빠른 발을 눈여겨본 노 코치는 3루와 유격수쪽으로 내야땅볼만 쳐도 살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오른손타자인 그를 왼손타자로 바꾸는 모험을 했다. ‘안되면 말고’라는 심정으로 시도했지만 그의 노력은 남달랐다. 밤을 새워 손이 부르트도록 방망이와 씨름한 결과 마침내 왼손타자로 돌아섰다. 그리고 2군에서 불 같은 방망이를 휘두르며 1군 무대를 밟게 됐다.
노 코치는 “야구를 뒤늦게 시작했고 공백기도 있어 부족한 게 많지만 발전 속도를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고 칭찬했다. 엄청난 노력형으로 가르치는 대로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기량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첫댓글 오태근 선수에게 그런 스토리가!! 화이팅 해서 타격도 잘해 주시길..!!
감동적이네요...ㅠㅠ
오른 손 타자에서 왼손타자라 힘들었을듯..